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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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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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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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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68화 (2부 16화)

DUMMY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하인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니.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소남작은 크리스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남작 부인은 단호했다.


“내가 그동안 방안에만 있다 해서 눈과 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다른 하인들에게 다 듣고 왔으니 솔직하게 말하렴.”


궁지에 몰린 소남작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남작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남작을 설득했다.


“아가, 잘못을 인정하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거란다. 그러나 도망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어, 오히려 더 큰 두려움으로 돌아오지.”


“사과하자고요?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 하실 자격이 있으십니까? 어머니께서도 그동안 하인들에게 실컷 화풀이하면서 사시지 않으셨습니까?”


남작 부인은 소남작의 비난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 또한 그다지 떳떳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 그랬었지.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변명하자면 그 당시 나는 너무 지쳐있었단다.”


욕심 가득한 오라버니의 간섭, 폭력적이고 화가 많은 남편, 살벌한 집안 분위기, 엇나가는 아들··· 그녀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도 화를 내기 시작했다. 소리 지르고 험한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으며,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랬던 그녀를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복도에서 웅크리고 있던 하인의 원망 가득한 눈빛이었다. 심지어 그 하인은 이름도 모를 어린 소녀였다.


“그래서 정신병을 핑계로 방에 나 자신을 가둬놓고 살았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으면 더 이상 이런 짓을 저지르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까 결국 그녀 또한 도망친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 다 희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후, 마법사가 되어 돌아온 그녀의 아들이 재미 삼아 하인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녀는 그녀의 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들아.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단다. 그리고 그건 무엇보다 네가 있었기 때문이야. 내가 진작 너를 옳은 방향으로 가르쳤어야 했는데 내 생각만 하느라 너를 혼자 두었다···. 미안하구나.”


“어머니, 그건 나중에 말씀하시고 지금은···.”


“지금 당장 도망쳐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마법사가 된 이상 계속 쫓기게 될 거야. 그럴 때마다 계속 대역을 세워 대신 희생시킬 생각이니? 나는 네가 그러는 것을 용납할 수 없구나.”


“그, 그건···.”


소남작은 남작 부인의 꾸중에 고개를 숙였다. 아들이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자 남작 부인의 엄한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


“마침 도와주실 분도 계시니 얼마나 다행이니? 그동안의 잘못을 사과하고 새로 시작하자. 앞으론 내가 함께 있어 주마. 응?”


크리스는 모자의 대화를 들으며 남작 부인과의 지난 대화를 떠올렸다.


[저는 제 아들이 적어도 사람을 보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부인. 이미 늦었는걸요.’


크리스는 남작 부인을 껴안는 착한 아들의 그렇지 않은 얼굴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화악-!


화염이 크리스를 덮침과 동시에 푸른 방패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방패에 가로막힌 불꽃들이 반대로 역류하자 남작 부인이 비명 질렀다.


“남작 부인, 제 뒤로 오십시오!”


방패를 없앤 크리스는 혼자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남작 부인을 끌어당겼다. 그는 커다란 화염 구를 양손에 든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소남작에게 말했다.


“소남작. 이대로 처형당해도 좋습니까?”


“하하하! 처형? 누가 나를 처형할 수 있다는 거지?”


불덩이를 집어던지는 소남작의 두 눈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마법사가 되겠다고 시도하고, 죽어 나가는지 아나? 나는 마법에게 선택받은 자다! 이런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사실 소남작은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집안에 불만이 많았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고 무슨 가문의 수치라도 되는 마냥 감추려고 애쓰는 꼴이라니! 쳇, 벨라블 계획만 성공했어도 거기서 떵떵거리며 사는 건데 말이야.’


“아가, 대체 왜 이러는 거니?”


“어머니. 제가 왜 사과해야 하지요? 그놈들은 의무 고용 어쩌고만 없었어도 진작 길거리에서 굶어 죽었을 겁니다. 어찌 보면 저희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이 정도도 하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소남작은 흙먼지를 뚫고 들려오는 크리스의 목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물의 수호자는 그의 맹공격에도 흠집 하나 없이 멀끔한 모습이었다.


“고용에 대한 대가는 피고용자가 제공한 노동에 대해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것이지, 인격 모독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의미가 아니니까요.”


“어, 어떻게!”


“마법사 선배들이 수호자한텐 개기지 말라고 말 안 해줬어요?”


크리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얼음 사슬이 튀어나와 소남작의 목을 잡아 내렸다.


“으악!”


철컹, 철컹.


양팔, 다리에도 사슬이 감긴 소남작은 완전히 땅에 속박되었다.


“너···!”


“한숨 자고 나면 다 끝나있을 겁니다.”


소남작은 서리에 뒤덮여 얼어가면서도 끝까지 크리스를 노려보았다. 물론 크리스에게는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부인. 다 됐습니다. 소남작은 말씀드린 대로 불의 수호자에게 부탁할 생각입니다.”


마법이 사라진 걸 알면 소남작이 난리를 칠지도 모르지만, 저 힘은 원래부터 자렌의 것이다.


‘어쩌면 자렌에게 크게 혼나고 정신 차릴지도.’


“아···. 고마워요.”


남작 부인은 하나뿐인 기회가 끝나버렸다는 걸 알고 절망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차가운 얼음 속에 갇힌 아들이 걱정되는 모양인지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자꾸만 맨손으로 얼음 위를 쓰다듬었다.


두 모자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는 모쪼록 남작 부인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부인, 저는 이만 남작저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제 동료들이 걱정되거든요.”


스르르르-.


“네··· 어? 크리스 님. 이건 뭐죠?”


“네?”


마부가 도망치고 덩그러니 남은 마차에서 말을 한 마리 빼내 볼까 생각하던 크리스는 남작 부인의 다급한 물음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남작을 휘감기 시작한 가시덩굴을 보게 되었다.


··· 크리스가 알기로 가시덩굴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은 딱 하나였다.


“저런, 정말 의외의 인물인걸?”


목소리를 듣자마자 등 뒤에서 소름이 돋았다.


“당신은 누구···?”


“부인.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크리스는 홀린 듯 아름다운 여자에게 다가가는 남작 부인을 가로막았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고 하던가? 아니, 가시에 장미가 있는 거다.


“오랜만입니다. 로테.”


이름이 불린 로테가 크리스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당신이었구나? 플레임이 말한 물의 수호자가.”


크리스는 루제르트 일행에게 합류하려는 계획을 수정했다. 하필이면 여기서 로테를 만나게 될 줄이야.


“세상에! 설마 황자 옆에 더 대단한 것이 붙어 있었을 줄이야! 정말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군.”


크리스는 기가 막힌다는 듯 깔깔 웃고 있는 로테를 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로테를 잡으면 슈나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목적이 뭔지를 떠보자.’


“물의 수호자를 찾아온 겁니까?”


“그건 아니야. 너는 얻어걸린 거지.”


대답을 대신하기라도 한 듯 소남작의 몸이 로테 쪽으로 스르륵 끌려갔다. 크리스도지지 않고 재빨리 사슬을 끌어당겼다.


“크리스 님!”


“남작 부인, 위험하니 멀리 떨어져 계십시오! 절대 가까이 오셔서는 안 됩니다.”


“미안하지만, 이 아이는 그쪽에서 양보해 줘야겠어. 누구 덕분에 이제 마법사가 귀하거든.”


“절대 안 됩니다. 저는 소남작을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릴 겁니다.”


“평범한 사람이라···. 누구 마음대로!”


뭐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건지 로테는 분노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이어진 가시덩굴이 크게 출렁거렸다. 얼음이 된 소남작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빠르게 땅으로 추락했다.


“젠장!”


얼음 기둥이 차곡차곡 쌓이며 소남작에게 돌진했다. 이윽고 기둥의 맨 끝에서 손가락이 피어나더니, 떨어지는 소남작을 아슬아슬하게 움켜쥐었다.


“이봐! 소남작을 죽일 셈입니까?”


크리스는 대책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로테에게 화가 나 소리쳤다.


“가질 수 없다면 없애기라도 해야지, 안 그래? 그럼 죽이기 싫은 쪽이 양보하던가!”


크아아아!


이번에는 로테의 양쪽으로 흙 골렘들이 불쑥 솟아올라 괴성을 질렀다. 크리스는 귀를 막으며 급한 대로 얼음 골렘을 만들어냈다.


“가라!”


그러나 크리스가 만든 골렘들은 다리 하나를 간신히 움직이자마자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쿵-!


“어라?”


그나마 그들은 쓰러지면서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흙 골렘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으워어어!”


흙 골렘이 넘어지면서 땅을 짚자 아래에 깔려 있던 얼음 골렘의 몸체가 부서져 튀었다. 크리스는 고드름을 날려 그와 남작 부인에게 날아오는 파편들을 쳐냈다.


크리스는 당황했다.


‘왜 내 골렘은 움직이지 않지? 예전에 케인이 환영을 만들기는 쉬워도 직접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게 이런 뜻인가?’


쉬익!


생각할 틈도 없이 위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날아왔다. 고개를 든 크리스는 골렘의 팔을 타고 뛰어와 채찍을 휘두르는 로테를 발견하고 표정을 굳혔다.


촥!


로테의 채찍은 검에 베여도 끊임없이 재생되어 크리스의 몸을 감으려고 꿈틀거렸다. 크리스는 이를 가능케 하는 로테의 마법 숙련도에 감탄했다.


‘이래서 케인이 진 거구나.’


“제법인데? 수호자. 보기와는 달라. 공격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어.”


“···.”


로테는 대답 없는 크리스를 보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거 봐라?’


크리스의 시선은 바로 앞에서 말 걸고 있는 그녀가 아닌 소남작을 노리는 골렘에게 가 있었다. 허우적거리던 골렘의 손이 소남작을 잡은 찰나, 얼음이 사라지고 부피가 작은 몸뚱아리만 거대한 손아귀에서 쏙 빠져나왔다.


떨어진 충격으로 정신만 겨우 깨 비몽사몽하고 있는 소남작에게 크리스가 소리쳤다.


“소남작! 제가 막고 있는 동안 남작 부인이 옆으로 가십시오!”


그러나 그는 로테와 대치하고 있는 크리스를 보더니 대뜸 마차 쪽으로 뛰었다.


“젠장! 소남작!”


“아하하하!”


로테가 목이 터져라 웃으며 양손을 휘둘렀다. 크리스는 가위의 양날처럼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채찍을 막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재빨리 바닥을 굴렀다.


그동안 땅속에서 튀어나온 작은 골렘들이 마차의 운전석에 오른 소남작을 기절시켰다. 크리스는 축 늘어진 소남작을 마차에 대충 던져놓고 마부 대신 말고삐를 잡는 골렘을 보고 경악했다.


“무슨!”


“이대로는 너무 시시하니, 놀이를 시작하지. 저 마차는 지금부터 도시 한복판으로 향할 거야. 소남작이 시민들에게 처형되기 전에 나를 막으면 네 승리, 그러지 못하면 네 패배다. 네가 날 이길 수 있을지 한번 볼까? 물의 수호자.”


핏빛 붉은 입술이 잔인하게 휘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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