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2,190
추천수 :
122
글자수 :
371,246

작성
22.08.02 22:00
조회
28
추천
0
글자
11쪽

얼음산의 주인 64화 (2부 12화)

DUMMY

“하···.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른 아침부터 헬버튼 남작의 집무실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오늘 새벽에 첼로 남작으로부터 의미심장한 편지를 받아본 까닭이다.


편지의 내용은 짧고 간단명료했다.


“소남작의 상태를 공개해라. 그렇지 않으면 마법사인 것으로 간주하여 3일 뒤 사냥을 집행하겠다고.”


루제르트는 편지에 적힌 글귀를 중얼거렸다.


“남작님. 아예 첼로 남작을 불러 소남작의 상태를 한번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요? 소남작의 상태를 보면 첼로 남작도 그동안 소남작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아닙니다. 첼로는 몰라도 바라멜 그자는 제 아들의 머리카락이 없는걸 보면 더욱 의심스럽다고 몰아갈지도 몰라요.”


‘하긴.’


크리스는 헬버튼 남작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도 소남작의 머리를 보자마자 더욱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머리카락은 언제쯤 자랄까요?”


루제르트의 물음에 셰비가 엄지와 검지 사이를 조금 띄워 보였다.


“이 정도 자라려면 한 달은 걸릴 거예요.”


“안돼. 너무 오래 걸려.”


삼일 안에 증명하지 못하면 공격받게 될 것이다. 크리스와 루제르트가 만나 본 바라멜 이라면 반드시 그리할 것이다.


크리스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이 있어 남작을 보았다.


“만약 바라멜 사냥단이 공격해온다면, 그를 막을 병력은 충분합니까?”


“어···. 그게···.”


남작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몇 달 전만 해도 충분하다 말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조금···.”


“네?”


크리스 일행은 남작의 대답에 경악했다. 설마 이만한 부자에게 사병이 부실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아니, 경비대도 어차피 헬버튼 남작가 소속 아닙니까? 여긴 다른 도시와 달리 남작령이니까요.”


“그, 그게···. 얼마 전에 경비 대원들이 단체로 경비대를 나가서요.”


헬버튼 남작은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전에 경비 대장이었던 자가 포악하고 제멋대로라 헬버튼 남작이 쫓아냈는데, 그가 부하들을 전부 이끌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경비대에 공석이 생겨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사병들을 동원해 경비대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했는데, 사병들마저 월급을 올려달라고 시위하다가 대거 이탈해 버렸다고.


루제르트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럼 사병들 월급을 늘려주거나 경비대를 새로 뽑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건 절대 안 될 말입니다. 제국 어떤 귀족이 사병을 그런 거금을 주고 고용합니까? 그건 제 위신을 땅에 떨어뜨리는 짓입니다.”


“아니···.”


루제르트는 안된다며 길길이 날뛰는 남작에게 뭐라 더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말해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다면 첼로 남작도 헬버튼 남작령을 지킬 병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군요.”


“예···. 첼로 남작은 제 친우라 남작저에 자주 놀러 오곤 했으니까요.”


“하···. 어쩐지 자신만만하게 쳐들어온다고···.”


모두는 답 없는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안절부절못하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던 헬버튼 남작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듯 크리스에게 매달렸다.


“크릿 님, 제 희망은 크릿 님뿐입니다. 제발 제 아내를 설득해 주십시오. 혈육의 정으로 호소하면 첼로 남작도 마음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


크리스는 회의적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조카를 마법사로 몰아 죽이려는 인간이라면 이미 혈육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게 뻔했다.


‘게다가··· 남작 부인과 제대로 된 상담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오늘도 남작 부인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막막해졌다. 대신에 그는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그럼 일단은 황제 폐하께 서신을 보내 상황 보고를 드리고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어떨까요? 황제 폐하께서 공격 금지 명령을 내리시면 첼로 남작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오, 좋은 방법인 것 같군.”


루제르트는 또다시 크리스에게 감탄했다. 확실히 이 방법이라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 하지만. 과연 황제 폐하께서 그렇게까지 해주실까요?”


“분명 그렇게 해주실 겁니다. 황제 폐하께선 이번 일에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나름 힐 제국에서 발생한 첫 마인 사냥 분쟁 아닙니까.”


황제는 소남작이 마법사일 경우 처단을, 아닐 경우 황궁에 데려오라고 했다. 그 말은 즉, 마인 사냥으로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세우는 데 그를 참고인으로 쓰겠다는 소리다.


“아···. 그렇군요. 하하핫! 그렇다니 걱정이 좀 덜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서신을 작성하시죠!”


크리스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헬버튼 남작의 말투가 신경 쓰였지만, 딱히 의심할 만한 것도 없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 사이 집사가 종이와 펜을 들고 나타났다.


루제르트는 유려한 필체로 서신을 작성했다. 편지 봉투의 한가운데에는 긴급을 의미하는 보라색 인장이 찍혔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인에게 시켜 곧바로 황궁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어느새 점심시간이군요. 오늘 점심이야말로 저번에 하지 못한 식사를 함께하시겠습니까?”


오늘 회의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은 게 많았던 크리스 일행은 바로 조사에 착수하고 싶었으나, 남작의 호의를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수락했다.


“··· 좋습니다.”


“이렇게 된 거 좀 쉬었다 하죠.”


“좋아요!”


그들은 오래 앉아있느라 찌뿌둥해진 몸을 펴며 방문을 나섰다. 맨 마지막으로 나온 루제르트는 남작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멀리서 서 있자, 문을 잡은 채 물었다.


“남작님께서는 함께 안 가십니까?”


“아, 먼저 가시지요. 저도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달칵.


루제르트가 꾸벅 인사하고 나간 자리에 문이 닫히자, 웃고 있던 헬버튼 남작의 입꼬리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내려갔다.


그는 책상에 고이 모셔져 있던 서신을 집어 그대로 촛불에 가져다 댔다. 불꽃이 넘실거리며 흰 종이를 집어삼켰다. 보라색 인장도 열 앞에서 무기력하게 녹아 바닥으로 추락했다.


남작은 재가 묻은 손을 탁탁 털며 크리스 일행을 비웃었다.


“답장? 흥. 백날 천날 기다려보라지.”





“으···. 배부르다.”


“역시 부잣집은 다르네.”


롬의 말마따나, 남작가의 주방장이 특별한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식당에 도착한 크리스 일행은 드넓은 테이블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요리들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내가 알던 그 채소가 맞나? 싶은 정도로 친숙한 재료를 재해석한 기발한 요리들은 물론, 바닷가재나 생선과 같은 귀한 식재료도 있었다. 양은 또 어찌나 많은지 배 터지게 먹고 나서도 절반이 넘게 남았다.


아까운 마음에 무리해서 먹은 결과 모두가 침대에 드러누워 숨도 못 쉬고 배를 두들기는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셰비가 브랜든의 다리를 베고 누운 채 웅얼거렸다.


“으아아···. 자료 조사해야 하는데 몸이 무거워.”


“나도.”


“와, 쟤 봐. 넌 그 상태로 지금 그게 읽혀?”


쟤, 루제르트는 롬이 대단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머쓱해져서 웃었다.


“살 것이 있다고 바로 나간 크리스 형도 있는데 뭐.”


“그 양반이야 원래 인간 같지도 않았으니 그렇다 치는데 너도 참 너다.”


“하하. 그게 뭔 소리야.”


루제르트가 읽고 있는 것은 그가 남작에게 부탁한 바라멜 사냥단의 신상 보고서였다. 그는 읽으며 점점 미간을 찡그렸다. 보고서에 이름과 정보만 적혀 있어, 누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바라멜 사냥단은 하나같이 죄를 저지른 전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경비대 폭행, 공무 방해, 침입에 절도까지···. 옥살이하고 나온 사람도 수두룩했다.


‘흉악한 사람들이 맞았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어느새 마지막 그의 눈이 마지막 글자에 당도했다. 그런데 보고서가 조금 이상했다.


‘왜 뒤에 빈 종이가 더 있지?’


글자는 끊겼는데 그 뒤로 계속해서 빈 종이들이 이어졌다.


‘실수로 들어간 건가?’


루제르트는 빈 종이를 휙휙 넘겼다. 그러자 머리를 그쪽으로 대고 누워있던 브랜든이 종이에서 생긴 바람을 맞고 황홀해했다.


“루제르트, 계속해 봐 그거 시원하다.”


“으아! 깜짝아!”


바로 아래서 소리가 들리자 루제르트가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떨어트렸다. 보고서는 그대로 브랜든의 얼굴에 철푸덕 엎어졌다.


“으악!”


“브랜든,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이 냄새는···.”


브랜든은 갑작스레 종이를 붙잡더니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확실하네. 너 암호문을 읽고 있구나?”


“암호문?”


브랜든은 어리둥절해하는 루제르트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응. 자, 봐봐. 붓에 물을 묻혀서 원래 써진 글씨를 살살 지워버리고,”


루제르트는 브랜든이 물에 젖은 붓을 서류에 갖다 대자 놀라 기함했으나, 브랜든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는 태연하게 그의 배낭을 뒤적이고 있었다.


“여기 있다.”


브랜든이 꺼낸 것은 검은 가루가 담긴 작은 유리병이었다.


“이걸 위에 솔솔 뿌린 다음에 털어내면, 짠!”


“어!”


검은 가루가 종이에 달라붙어 새로운 글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루제르트는 종이와 브랜든을 번갈아보며 감탄했다.


“우아, 브랜든!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이건 수성과 유성을 이용한 거야. 먼저 종이에 기름으로 글씨를 쓴 다음, 수성 잉크로 그 위에 다른 글을 쓰면 간단하게 암호문을 만들 수 있어. 읽을 때는 아까처럼 물로 수성 잉크를 방해 안 될 정도로만 번지게 해 놓고 이 가루를 뿌리면, 가루가 기름에 흡수되면서 숨겨진 글씨가 나타나는 거지. 종이의 냄새를 맡아보면 살짝 기름 냄새가 나지?”


“그렇네! 우아, 신기하다!”


“오~ 어쩐지 브랜든 녀석이 자기 전에 맨날 뭘 쓰긴 쓰는데 글씨는 안 보인다 싶었더니 이런 거였어? 비밀일기냐?”


“롬, 시끄러워! 난 원래 사생활이 중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랑 방 같이 안 쓴단 말이야.”


“하나도 안 궁금하구만 혼자 유난이야.”


브랜든과 롬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루제르트는 고민에 빠졌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는 누구길래 나에게 암호문을 보낸 걸까? 애초에 암호문이 왜 필요한 거지?’


“브랜든, 혹시 이 암호 어떻게 알게 되었어?”


브랜든은 발로 열심히 롬을 차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 이 방법 우리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건데···. 아! 옛날 군에서 사용하던 구식이라고 하셨다. 글씨를 쓴 지 오래되면 가루를 뿌려도 소용이 없다고. 기름에 민감한 가루가 따로 있긴 한데 비싸··· 악! 너 이리 안 와?”


“군?”


의외의 장소에 또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럼 작성자가 군인 출신인가?’


루제르트는 일단 암호문 해독에 집중했다. 그는 원래 글씨를 지우고, 그 위에 가루를 뿌리기를 반복했다. 빈 종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도 역시나 암호문이 적혀 있었다.


이윽고 모든 글씨가 드러났을 때, 루제르트는 암호문이 숨기고자 했던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작가의말

아이고... 비가 하루 종일 오네요.

비 오는 날 차도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얼음산의 주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장기 휴재 공지입니다. 22.08.21 27 0 -
공지 연재 주기 공지 22.06.10 26 0 -
75 얼음산의 주인 75화 (2부 23화) 22.08.21 24 0 11쪽
74 얼음산의 주인 74화 (2부 22화) 22.08.19 26 0 12쪽
73 얼음산의 주인 73화 (2부 21화) 22.08.18 26 0 11쪽
72 얼음산의 주인 72화 (2부 20화) 22.08.16 42 0 11쪽
71 얼음산의 주인 71화 (2부 19화) 22.08.15 23 0 11쪽
70 얼음산의 주인 70화 (2부 18화) 22.08.14 31 0 11쪽
69 얼음산의 주인 69화 (2부 17화) 22.08.12 31 0 11쪽
68 얼음산의 주인 68화 (2부 16화) 22.08.11 21 0 11쪽
67 얼음산의 주인 67화 (2부 15화) 22.08.07 25 0 12쪽
66 얼음산의 주인 66화 (2부 14화) 22.08.05 25 0 11쪽
65 얼음산의 주인 65화 (2부 13화) 22.08.04 23 0 11쪽
» 얼음산의 주인 64화 (2부 12화) 22.08.02 29 0 11쪽
63 얼음산의 주인 63화 (2부 11화) 22.08.01 26 0 11쪽
62 얼음산의 주인 62화 (2부 10화) 22.07.31 23 0 11쪽
61 얼음산의 주인 61화 (2부 9화) 22.07.29 15 0 12쪽
60 얼음산의 주인 60화 (2부 8화) 22.07.28 15 0 11쪽
59 얼음산의 주인 59화 (2부 7화) 22.07.26 16 0 11쪽
58 얼음산의 주인 58화 (2부 6화) 22.07.25 33 0 11쪽
57 얼음산의 주인 57화 (2부 5화) 22.07.24 21 0 11쪽
56 얼음산의 주인 56화 (2부 4화) 22.07.22 19 0 12쪽
55 얼음산의 주인 55화 (2부 3화) 22.07.21 21 0 11쪽
54 얼음산의 주인 54화 (2부 2화) 22.07.19 20 0 12쪽
53 얼음산의 주인 53화 (2부 1화) 22.07.18 23 0 12쪽
52 얼음산의 주인 52화 22.07.05 24 0 11쪽
51 얼음산의 주인 51화 22.07.04 28 0 12쪽
50 얼음산의 주인 50화 22.07.03 20 0 11쪽
49 얼음산의 주인 49화 22.07.01 19 1 11쪽
48 얼음산의 주인 48화 22.06.30 18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