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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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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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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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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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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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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얼음산의 주인 1화

DUMMY

“자, 이번 달도 정말 수고 많았어.”

“감사합니다!”

힐 제국의 동쪽에 위치한 레모룬 마을. 그 마을의 평범한 시민인 크리스는 가게 사장님이 주신 월급 주머니를 들고 기뻐하는 중이었다.

“네가 와 준 뒤로 일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 다른 놈들은 조금 하고 힘들다고 금방 관뒀는데 말이야. 좀 더 넣었다.”

어쩐지 가죽 주머니의 무게가 심상치 않더라니.

그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한 것뿐이지만, 그 수고로움을 알아주고 더 챙겨준 사장님이 고마웠다.

그는 술집에서 서빙을 담당했는데, 근처에 용병소가 있어 의뢰를 마친 용병들이 많이 오다 보니 직원들이 거친 용병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크리스가 지원하러 왔을 때도 체구가 평범하고 얌전해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당할 뻔했었다. 당장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고 사장님께 사정사정을 해 겨우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용병들은 그를 어려워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용병들이 짓궂은 장난을 치고 무례하게 굴다가도 앞머리를 눈 밑까지 길게 내린 크리스가 침묵으로 일관하면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자리에 돌아가 술이나 홀짝거리다 순순히 돌아갔다.

그 모습을 몇 번 지켜본 사장이 이제는 크리스에게 열광하며 계속 같이 일해달라고 매달렸다.

그동안 자리에 앉아 공부만 해왔던 크리스는 이 거친 거리에 갓 나온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나름 잘 적응하는 중이었다.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바람, 평화로운 거리에 피어나는 꽃, 그리고 월급. 크리스는 그답지 않게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그는 게 요리를 먹으러 갈 생각이었다. 비록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처지였지만, 월급날 저녁만큼은 꼭 그를 위한 소비를 했다. 비싸서 월급날이 아니면 먹지 못하는 게 요리는 크리스가 스스로 주는 보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갓 잡아 올린 게의 맛과 껍질을 벗겼을 때의 그 오동통한 흰 살을 상상하며 잔뜩 신이 나서 가죽 주머니를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며 걷는데, 손에 마땅히 떨어져야 할 묵직한 감촉이 돌아오지 않았다.

“도둑이다!”

소중한 월급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두 다리가 달리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주머니를 낚아챈 괴도는 검은 후드를 뒤집어써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크리스가 목이 터져라 도움을 외쳤지만, 오늘따라 거리에 사람이 적었다. 일부가 큰소리에 일을 멈추고 뒤돌아보았지만, 이미 도둑이 그 뒤를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 뒤였다.

크리스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그는 살면서 이렇게 심장이 터져라 뛰는 것이 처음이었다.

"거기∙∙∙ 서!"

크리스가 헉헉거리며 간신히 뛰고 있는 반면 몸집이 작은 도둑은 건물 사이에 난 좁은 길만 골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이걸 도둑맞으면 당장 생활비가 없다.'

숨이 차서 토할 것 같았지만, 크리스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하나로 묶은 긴 검은 머리카락이 그를 따라 격하게 나풀거렸다.

그보다 한참 앞서있던 도둑이 그대로 쭉 달려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이 어딘지 고민할 새도 없이 까딱하면 놓칠까 봐 크리스 또한 문을 통과했다.

[용병소]

근처에 있다는 말만 들었지, 용병소를 처음 들어와 보는 크리스는 눈 앞에 펼쳐진 낯선 공간에 정신을 못 차리다 이내 재빨리 다른 도주로가 있는지부터 살폈다.

계단 없음. 후문 없음.

‘거기다 후드 사이로 놈의 푸른 머리카락을 봤으니 넌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라고 생각했건만, 도둑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크리스가 용병소를 구석구석 샅샅이 살폈지만, 그가 똑똑히 본 후드 차림의 작은 사람은 비슷한 인물조차 없었다. 게다가 안에 있던 용병들에게 물어봐도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그가 너무 두리번거려서 그런지 그런 크리스를 수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말도 안 돼∙∙∙! 사람이 증발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용병소 안을 한참 서성거리다 구석의 테이블에 털썩 주저앉았다. 생활비를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졌다. 자리에 앉으니 흥분이 가라앉으며 점점 속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멍때리며 앉아있는데 카운터 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힐 산에 관한 의뢰는 받을 수 없다.”

별다른 것 없는 용병소 안내원의 말이었으나, 그 한마디에 용병소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저런∙∙∙. 누군진 몰라도 여기서 힐 산을 언급하다니.’

힐 산은 이 레모룬 마을 뒤에 위치한 산이다.

크리스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이곳에 와서 파악한 바로는 이 마을에서 힐 산을 입에 담는 건 금기라는 것이다. 지친 몸을 벽에 기대고 있던 크리스가 낮게 혀를 차며 안내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을 구경했다.

키 큰 남자와 어린 소년이었다. 좀처럼 용병소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조합이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지? 의뢰비는 얼마든 지불할 수 있다."

"삼촌! 잠시만요!"

안된다는 안내원에게 협박하듯 말하는 남자 보단 그 옆의 어린 소년이 그나마 눈치가 있는지 용병소 내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삼촌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남자는 용병들의 험악한 시선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마주 노려보았다.

“감히 뭘 그렇게 보는 거지, 나는 의뢰를 하러 왔을 뿐이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면 당당하게 나와 말하던가 해라.”

척 보기에도 근육질 용병들과 비교하여 체구가 밀리지 않았던 남자는 실력에 꽤 자신이 있었는지 용병소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금기어에 예민해져 있던 용병들이 그 말에 각자 무기를 움켜쥐고 곧 튀어 나갈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크리스는 도둑을 잡으러 왔을 뿐인데 그가 있던 공간이 한순간에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어서 당황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소년이 삼촌의 옷을 잡아당겨 그 뒤에 숨으며 울먹였다.

“무서워요! 저희가 뭘 잘못했나요?”

곧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겁에 질린 어린 소년의 외침에 들고일어났던 용병들이 아차 하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꼬마야, 미안하다. 우리가 심했군.”

“아이 앞에서 싸울 순 없지.”

험악한 기세였던 용병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러서자 안내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곳에 있었던 일을 정말 모르는 건가?”

“모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군.”

당당하게 눈을 마주쳐 오는 남자는 정말로 모르는 기색이었기 때문에 안내원도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

“대체가∙∙∙ 뭔 시골구석에서 살다 왔소? 꽤 떠들썩한 사건이었는데 말이야.”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나라에서 물의 수호자님이 사라지고 저 힐 산이 하루아침에 눈산으로 변한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수호자님이 사라진 이유를 찾겠다고 수많은 모험가가 힐 산으로 몰려들었소. 모험가들 때문에 마을에 숙소가 꽉 차서 난리였던 것이 아직도 생생해. 하지만 저 산에 올랐던 사람들은 전부 살아 돌아오지 못했지.”

“그 정도는 알고 왔소. 날씨가 변덕이 심해서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모험대의 길잡이 용병은 대부분 힐 산의 지리를 잘 아는 우리 레모룬 사람이었고 당연히 레모룬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소. 그렇게 저 산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났지. 그런데 뒤늦게 큰 상단에서 투자받고 온 모험가들이 나타난 거요. 놈들은 우리의 경고를 묵살하고 어떻게든 산을 올라야 한다고 생떼를 썼지.”

“큰돈을 받았으니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었겠지.”

“그래. 하지만 저 산에 오르면 죽을 게 뻔한데 누가 길잡이를 하겠다고 하겠나? 더 이상 길잡이 용병은 구해지지 않았고 놈들은 이 마을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소.”

“어떤∙∙∙?”

“제국에 위험이 닥쳤는데도 모르는척하는 이기적인 마을이라는 거야!”

쾅!

안내원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카운터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

“이 제국의 온갖 사람들이 이 마을을 욕하고 협박했지. 여론이 만들어지자 돈을 투자했던 대 상단들이 담합하여 물자를 끊어버리겠다고 나섰소! 하는 수 없이 젊은 용병들이 길잡이를 하고 목숨을 잃고 나서야 이 마을이 이기적인 게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지!”

말을 마친 안내원의 눈이 분노로 번들거렸다.

이마저도 아이를 위해서 최대한 순화하여 표현한 말이었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4개의 제국. 그중 물의 제국인 힐에 수호자가 사라진 뒤, 극도의 불안함과 공포에 미친 제국민들은 힐 산을 오르는 데 협조하지 않는 이 마을에 온갖 화풀이를 해댔으니까. 결국에 마을 사정을 보다 못한 몇몇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나서야 가혹한 행위들이 사라졌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에서 놓지 못하는 이 마을 사람들은 그 뒤로 힐 산 얘기만 들어도 경기를 했다.

오랜 세월 이 용병소에 몸담아온 안내원도 그렇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네놈들도 그렇게 헛소문을 퍼트리고 협박할 테냐?”

어느 용병의 조용한 물음에 두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설마 수호자가 사라지고 이런 일이 있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딸랑.

“제길!”

두 사람이 나가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욕설이 새어 나왔다. 아직 그들은 힐 산에 가깝다는 이유로 죽어 나간 자신들의 이웃을 잊을 수 없었다.

크리스는 조용히 용병소를 나가 방금 나간 두 사람을 찾았다. 과연 그들은 아직 멀리 가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크리스가 다급하게 두 사람을 불러세웠다. 곧바로 차갑고 매서운 눈동자가 크리스의 전신에 꽂혀 들었다. 직접 마주 본 남자는 멀리서 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뭐지?”

이런 사내를 상대로 쌀쌀맞게 군 용병소 직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괜히 크리스가 말했다.

“힐 산 길잡이, 제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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