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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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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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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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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55화 (2부 3화)

DUMMY

“아직입니다.”


“그렇습니까.”


크세르트는 조용히 한숨 쉬었다.


“크리스 님. 지금 크리스 님의 상황도 결코 좋지 않습니다. 지금은 귀족들의 입을 단속하여 소문이 퍼지는 것을 늦추고 있지만 물의 수호자가 등장했다는 걸 언젠가는 제국민들에게 들키게 될 겁니다. 그때 가서 왜 비를 내리지 않냐는 수많은 백성들의 원망을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비. 크리스는 물의 수호자지만 물을 다루지 못한다. 그것이 크리스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다.


크리스는 물님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자렌과 케인에게 들은 덕에 뒤늦게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수호자가 되자마자 자연스럽게 원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언제나 수호자의 곁에 있으며 수호자가 부르면 언제든 나타났다고 한다. 설명을 들은 크리스는 묻고 싶어졌다.


‘그게 좋은 건가?’


항상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무언가라니. 크리스라면 좋기보단 부담스럽고 싫을 것 같았다. 그러나 들떠 각자의 원소를 자랑하는 자렌과 케인의 얼굴에서는 그런 기색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도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크리스는 내키지 않았지만 물을 다루기 위해, 더 나아가 비를 내리기 위해 여러 번 물님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도는 전부 실패로 끝났다.


크리스가 멍하니 과거를 회상하고 있으려니 다시금 크세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 부디. 지금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단 황궁 안에서 여러모로 힘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크리스는 크세르트가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갈 때까지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루제르트는 크세르트가 뒤돌아 사라지자 덜컥 크리스의 팔을 붙잡아 흔들었다.


“아, 아니! 저 형님이? 형,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형 탓이 아닌 거 알지?”


루제르트는 말로 크세르트를 이기지 못한 것이 못내 분해 씩씩거렸다. 그는 옆에서 가만 서 있는 크리스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휙 고개를 돌려 형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형···?”


루제르트는 크리스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발견하고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크리스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우엑-.”





“이봐, 친구. 수호자님께 너무 심하게 말한 거 아니야?”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무 위에 올라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매튜는 크세르트가 연무장을 나가자마자 그의 곁에 달라붙었다.


“크리스 님이 고의로 비를 내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처음엔 물의 수호자가 뭔지도 몰랐던 모양이던데 꼭 그렇게 말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었어? 굳이 따지자면 이건 무책임하게 사라진 슈나 님 잘못에 더 가깝지.”


“그런 이유를 제국민들이 납득할 것 같나? 사람들은 무작정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만약 크리스 님이 물의 수호자라는 소문이 다 퍼질 때 동안 물을 다루는 법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그 뒤는 말하지 마라. 아무리 너라도 정떨어질 것 같으니까.”


그를 향해 정색하는 매튜를 보며 크세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 나라를 책임진다는 것은 그런 거다.”


“웃기지 마, 너는 물의 수호자가 반쪽짜리라는 걸 귀족들이 알게 되면 겨우 안정되려 하는 황권이 또다시 흔들릴까 봐 걱정하는 거잖아.”


크세르트는 멈칫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매튜에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너, 책임을 지려는 건지, 지우려는 건지를 잘 생각하지 않으면 율켄이랑 다를 바 없게 될걸.”


매튜는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뒤 크세르트의 곁을 떠났다. 크세르트는 멀어져 가는 친구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젠장.”


꽉 쥔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 또한 자신이 세간에서 불리는 것만큼 성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루제르트는 그가 받는 수많은 교육이 뭘 뜻하는지 알까?


“루제르트. 너는 과연 어떤 황제가 될까.”





크리스는 이번엔 다른 이유로 또다시 침대에 눕게 되었다.


구역질하는 크리스를 본 루제르트는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크리스를 간단히 어깨에 짊어지고 척척 걷더니 그를 침대에 내려놓고 어디론가 쌩 떠났다.


‘흥분해서 사고 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혼자가 된 크리스는 금세 조금 전 상황을 복기하는데 푹 빠졌다.


황제는 그를 비난했다. 그렇다면 그는 크리스를 싫어하는 걸까? 이런 걸 신경 써 보는 건 처음이다. 사람이 그를 싫어하든 말든 어차피 사람은 길가의 돌멩이나 마찬가지라 상관없었던 것이 그동안의 크리스였다.


‘내가 왜 이걸 신경 쓰지? 황제가 루제르트의 형이라서? 나는 황제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걸까?’


비난은 크리스에게 곧 공격 신호, 공격에는 반드시 공격으로 되갚아줘 왔던 크리스는 이번엔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했다. 그게 잘 보이고 싶다는 뜻 아닌가?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문제는 보이지도 않는 물님과 소통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크리스가 구역질을 한 이유는 어지러워서였다. 추상화. 그는 자신이 추상화 속에 떨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온갖 선과 색이 난무하는 가운데 무슨 의미인지 전혀 해석이 되지 않으며 열심히 고민해 봤자 결국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 그는 그의 상태를 스스로 진단해 가장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나약해졌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약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크리스는 눈을 감고 감각을 차단하기 위해 집중했다. 이 불쾌한 감각을 빨리 없애버려야 다시 강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 이게 아닌가?”


크리스는 눈을 번쩍 뜨고 이불을 걷어찼다. 그가 묻어버리려는 이 감각이 자렌이 말한 그 노크라면?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게 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아픈 건가? 정말로 무언가가 나를 두드리고 있어서?”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이번엔 심장 소리에 집중했다.


두근.


두근 두근.


그러기를 몇 시간. 결국 크리스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루제르트가 다시 돌아온 것은 밤이 깊어 밖이 한참 어두워진 다음이었다. 멋대로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루제르트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잠들어 있는 크리스를 흔들어 깨웠다.


“형! 일어나 봐!”


“잠깐만···.”


‘그러고 잠들었었구나.’


크리스는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잠이 쉽게 깨지 않아 머리가 띵하고 무거웠다.


“무슨 일 있어?”


“좋은 소식이야!”


많이 좋은 소식이라는 건 반짝반짝 빛나는 루제르트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크리스는 먼저 자꾸만 침대를 흔들어대는 루제르트를 잡아 진정시켰다.


“뭔데?”


“형님이 우리 둘 다 바깥에 나가도 좋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크리스의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어···? 조금 전까지 반대했던 사람이 갑자기?”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윽.”


크리스는 단번에 한 떨어진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았다. 가벼운 차림으로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생각대로 황제 크세르트였다. 크리스는 아까 좋지 않게 헤어진 사람을 바로 보려니 싱숭생숭한 기분이 되었다.


‘싱숭생숭이라니. 이건 또 뭐야.’


또다시 속이 울렁거리려고 했다.


“제가 불편하십니까?”


크세르트는 크리스의 표정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크리스는 자신이 이렇게 읽기 쉬운 사람이었는지를 오늘 처음 알았다.


“아닙니다. 조건이 뭡니까.”


“간단한 일을 하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크리스가 더 말하라는 뜻으로 물끄러미 쳐다보자 크세르트가 의자를 끌어와 가까이에 앉았다.


“마인 사냥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처음 들어 봅니다.”


“어-. 나는 아까 수업 시간에 들었는데. 일이라는 게 마인 사냥에 관한 건가요?”


“그래. 크리스 님은 처음 들어봤다 하셨으니 마인 사냥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불의 마법사들이 벨라블을 장악하려고 시도했다 실패했던 일을 알고 계시죠? 크리스 님께선 그때 당시 벨라블에 직접 다녀오시기도 했으니.”


“네.”


얼마 전이라 해봤자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 마법사는 제국군과 자렌 님에게 제압되었지만 소수의 마법사가 도망쳐 곳곳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벨라블에서는 도망친 마법사를 사냥하는 일명 ‘마인 사냥’이 유행하고 있죠.”


“형님, 그렇다면 저희가 갈 곳이 벨라블인가요?”


“아니.”


가만 듣고 있던 크리스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크세르트에게 물었다.


“마법사는 굉장히 위험한 인물일 텐데요. 일반인들이 마법사를 잡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마법사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마인 사냥꾼’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상당한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죠. 현재까지 알려진 마인 사냥단만 열 개는 넘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마인 사냥은 크리스의 임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설마···.


“혹시, 부작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크리스는 크세르트의 표정을 보고 그가 정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루제르트도 단번에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아.”


“그렇습니다. 역시 수호자님과는 얘기가 빠르군요. 그들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법사를 사냥해 준다는 명목으로 마을에 거액의 숙식비를 요구하는 건 부지기수고 더 심각한 건, 마인 사냥꾼들이 일반인을 마법사로 몰아 사냥한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반응이 그게 다야?”


루제르트는 충격 받은 그와는 다르게 무덤덤한 형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번갈아 보았다.


“이 서신을 읽어보십시오.”


크리스는 크세르트가 내미는 두루마리를 잡아들었다. 그는 루제르트도 편지를 같이 읽을 수 있게 몸을 살짝 기울여 자리 잡았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 규탄하여 주시옵소서!


힐 제국의 귀족들은 부끄럽게도 마인 사냥꾼들의 장난질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소신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제 아들은 유학하러 갔다가 건강이 나빠져 최근에 다시 돌아와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바라멜 사냥단이라는 놈들이 저희 영지에 쳐들어오더니 아들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제가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글쎄 제 친우인 첼로 남작이 제 아들을 고발했다고 합니다. 벨라블 제국에서 유학을 다녀와 오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니 마법사인 것이 분명하다고요.


분명 바라멜 그 교활한 놈이 순진한 제 친구를 꼬드겨 이런 짓을 벌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폐하, 부디 저를 가엽게 여겨 도와주십시오! 제 아들은 결백합니다!


신 헬버튼 남작 올림.]


크리스가 편지를 다 읽고 내려놓자 크제르트가 두루마리를 도로 회수해 갔다.


“참고로, 이 편지에 등장하는 바라멜은 사냥단은 힐 제국에서 최근 빠르게 세력을 키우고 있는 신생 사냥단입니다. 단장인 바라멜은 깔끔한 일 처리도 그렇지만 그보다 잔인한 성정으로 더 유명하죠.”


작가의말

요즘 날씨가 시원하네요.

좋은 밤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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