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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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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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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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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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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얼음산의 주인 54화 (2부 2화)

DUMMY

“안에 계시는 것 다 압니다. 잠시만 문 좀 열어주세요. 진짜 잠깐이면 됩니다. 수호자님? 수호자님!”


이 방은 이전에 슈나가 사용하던 방이었다. 그러니 크리스가 보고 있는 이 동화책 또한 슈나의 물건일 것이다.


‘슈나가 동화책을 좋아했나?’


“이번엔 귀족들 만나는 일도 아닙니다! 방문 요청이 또 들어오긴 했는데 저희가 알아서 쳐냈어요! 잘했죠?”


‘그렇다기엔 이거 하나밖에 없긴 한데. 뭔가 특별한 동화책인가?’


혹시나 싶어서 책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특별한 걸 찾지는 못했다. 방안에만 있기 심심해서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 것을 보아 별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호자님~?”


계속 귀를 막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이대로 몇 시간이고 문 앞에서 시끄럽게 할 기세길래 크리스는 항복했다.


“싫다고 했습니다. 돌아가세요.”


“저번에 출타 일정이 미뤄진 것 때문에 많이 화나신 것은 압니다. 정말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땐 저희도 귀족들이 물의 수호자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떼거리로 찾아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단 말입니다.”


‘아아···. 길어진다. 이래서 처음부터 못 들은 척했어야 하는 건데.’


그래도 예의와 선을 중시하는 크리스의 성격상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마디씩은 꼭 대답을 해줬는데 그게 다 파악당한 것 같다.


“이해합니다.”


“그럼···!”


신하가 일말의 희망을 품는 것 같길래 크리스가 재빨리 선을 그었다.


“하지만 죄송한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할 말 있으면 황제 폐하께 직접 오라 해주십시오.”


“아니, 수호자님!”


“저 지금부터 아무 말도 안 할 겁니다!”


“수호자니이임-!”


신하의 절규를 뒤로하고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어버린 크리스는 또다시 침대에 엎어졌다.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해져 온몸이 축 처졌다. 그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을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크세르트의 부탁으로 여기저기 불려 나가기 바빴기 때문. 벨라블에서 돌아오고 난 뒤 크리스는 계속해서 크세르트가 귀족들을 만나는 자리에 따라다녔다.


초반에는 크리스도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럴 때가 아닌데···. 슈나를 찾아야 한단 말이다.”


슈나는 춥다고 했다. 크리스는 추운 것이 물리적인 감각이 아니라 루제르트와 잠시 헤어졌을 당시 크리스가 느끼던 것과 같은 느낌을 말하는 것일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 당시를 떠올리자 크리스도 조금 추워졌다.


‘이래서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더 나아.’


이 기분을 몰랐던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안 되겠다.”


몸을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말아 꿈틀거리던 크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헉···. 진짜 죽을 것 같아···.”


정치학 교수가 방을 나가자 루제르트는 그대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물에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졌다.


“너무 힘들어!”


율켄의 반란 이후로 루제르트도 그 나름 굉장히 바빠졌다. 무슨 일인지 갑자기 크세르트가 이것저것 선생님을 붙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내내 점심 먹는 시간 빼곤 제왕학, 지리학, 외교학, 정치학 등 교수들에게 시달렸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학문은 예전에 크세르트의 관심을 끄려고 열심히 했다가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뒤로 때려치웠었다. 그 뒤로 공부와는 담을 쌓아놓고 살았는데 갑자기 다시 하려니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크리스 형을 도통 보지 못했네. 잘 지내나?’


가만 누워 크리스를 생각하던 루제르트는 순간 울컥했다.


“아니, 이 형은 그렇다고 한 번도 안 찾아와?”


드르륵-.


루제르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창문을 열고 기어들어 오는 크리스와 눈이 딱 마주쳤다.


“···.”


“···.”


“와아악! 가지 마!”


루제르트는 의자에서 튕겨지듯 일어나 다시 슬금슬금 기어나가는 크리스를 붙잡았다. 크리스는 순간 동생을 놀려먹을 기회가 왔다는 걸 알았다.


“너무하네···. 너도 나 안 찾아왔으면서···.”


시선과 눈꼬리는 아래로, 입은 글자 삐죽을 흉내 낸 것처럼, 목소리는 뿌연 안개가 바닥에 가라앉듯이.


“그건 그런데···. 아니, 나도 가려고 했지~.”


루제르트에게 원하는 반응을 끌어낸 크리스는 씨익 웃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삐지는 거구나. 좋은 거 배웠다.’


사실 ‘삐지기’는 루제르트에게 배운 것이다. 그동안 크리스는 사람들이 왜 무작정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 상대를 당혹시키는 행위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긴 상황설명보다 이게 자신을 표현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안다.


“루제! 오랜만에 대련하러 갈래?”


의외의 소리를 들은 루제르트가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엥? 웬일로? 진짜야?”


“응, 진짜야.”


“아니, 형은 몸 쓰는 거 싫어하잖아.”


“어차피 못하니까 그렇지. 그래도 이런 핑계마저 없으면 이곳에서 너랑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할 거 같으니까. 가자.”


루제르트는 크리스의 말이 너무 공감되었다.


“와, 설마 형도 요즘 갇혀 살아?”


“어. 감옥이 따로 없어.”


“와···. 안 되겠다. 우리 따지러 가자.”


“이길 자신은 있고?”


루제르트는 대답 대신 턱 끝으로 크리스를 가리켰다. 그의 뒤에 숨어있겠다는 뜻이다.


‘어림없지.’


“나가기나 하자. 여기 있다간 숨 막혀 죽을 거 같아.”


“쳇. 알았어.”


빠르게 포기한 루제르트는 순순히 앞장서 창문을 뛰어넘었다. 그들이 그동안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크리스가 지독한 길치라는 것이다. 그 뒤로는 루제르트는 절대 크리스에게 맨 앞을 허용하지 않았다.


루제르트가 향한 곳은 그가 평소 검술 연습할 때 사용하던 개인 연무장이었다. 이곳은 옛날부터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장소이기 때문에, 병사들이 그들을 쉽게 발견할 염려도 없었다.


루제르트가 목검을 들어 가볍게 휘두르며 크리스에게 말했다.


“어디, 그동안 복습했나 볼까?”


“음···. 안 했는데.”


붕붕거리는 험악한 소리를 들은 크리스는 초보임을 강조하기 위해 서둘러 실토했다. 하지만 루제르트는 훈련할 때만큼은 절대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형, 죽기 살기로 덤벼. 한 대도 못 맞히면 연무장 스무 바퀴야.”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 내 기억엔 그동안 과소평가할 만한 실력만 보여줬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이상한 거냐, 네 눈이 이상한 거냐?”


“엄살 피우지 마. 무술은 원래 혹독하게 배우는 거야.”


크리스는 하는 수없이 검을 움켜쥐고 루제르트에게 달려들었다.


“또, 또!”


루제르트는 이번에도 무작정 돌격해오는 크리스의 손목을 잡아 뒤로 던지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옆쪽에서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오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검집?”


탁탁-!


루제르트는 빠르게 손을 휘둘러 크리스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그러나 크리스가 준비한 것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오?”


왼쪽을 향해 날아온 발차기 자체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도를 한 사람이 크리스라는 점에서 루제르트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오, 형. 늘었는데? 어쩐지 형이 내가 다 준비해 놨는데 그거 놔두고 굳-이 검집이 있는 목검을 잡더라. 노리는 게 다 있었구나?”


“자, 맞혔으니까 스무 바퀴는 취소지?”


“그건 또 뭔 소리야? 한 대도 못 맞혔는데.”


“아니지. 맞히다의 정의를 생각해 봐. 닿았으니까 맞힌 거지.”


“···.”


마지막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다. 크리스는 웃는 악마가 된 루제르트에게 대련을 핑계로 세대쯤 더 얻어맞은 뒤에 울며 겨자 먹기로 스무 바퀴를 뛰게 되었다.


“으억! 헉! 스무우울···.”


루제르트의 엄중한 감시 속에서 스무 바퀴를 다 뛴 크리스는 비틀거리며 잔디 위에 쓰러졌다. 루제르트가 한결 상쾌해진 표정으로 크리스에게 물을 내밀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워서 크리스는 루제르트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다.


“형, 나 생각해 봤는데. 형이 공격을 못 하는 이유 알 거 같아.”


“뭔데?”


“형은 공격을 받으면 무조건 돌려줘야 하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데도 신중해지는 게 아닐까?”


“나도 그대로 돌려받을까 봐 조심한다는 소리지?”


“응.”


“음···. 일리가 있는데.”


“근데 이형은 방어도 못 한단 말이지. 방어는 또 왜 못하는 거야? 이해가 안 되네.”


크리스는 루제르트의 마지막 말에 뜨끔해졌다. 그는 본인이 은근슬쩍 누군가가 건드려주길 바라는 고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윽, 나 성격 너무 이상한 거 아닌가?’


예전에 살던 곳에서 억누르기만 했던 것이 이곳에 와서 화산처럼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린 것 같다.


[거기선 이런 놈들 맘껏 혼내 줄 수 있어. 분명 네 마음에 들 거야.]


문득 생각나는 목소리 때문에 크리스는 이마를 찌푸렸다.


‘이래선 목줄이 풀린 개나 다름이 없군. 자제해야겠다.’


“어-.”


지쳐 쓰러진 그의 옆에 가만히 있던 루제르트가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고 반응했다. 크리스는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왜? 아.”


크리스는 뒤늦게 나무 뒤에서 등장하는 크세르트를 발견하고 멍한 소리를 냈다. 크세르트는 예의 그 딱딱한 표정으로 비장하게 다가왔다. 크리스는 재빨리 루제르트의 뒤에 숨었으나, 애석하게도 그의 키가 루제르트보다 더 커서 몸이 가려지지 않았다.


“으으···. 루제, 네 형 좀 어떻게 해봐.”


“···내가 뭘 어떻게 하는데.”


하긴. 그도 못 이기는 걸 루제르트가 가능할 리 없었다. 체념한 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툭툭 털었다.


“크리스 님. 저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진짜 오냐. 크리스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웃어 보였다.


“네. 매일 제 방에 오시는 신하님께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는데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서요.”


크세르트 또한 동요 하나 않고 마주 웃었다.


“그렇군요. 전달은 제대로 되었습니다. 다만, 저희도 사정이 있는지라 크리스 님의 요청을 들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점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


“지금 황실에는 황권 강화가 시급하다는 걸 크리스 님도 동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당분간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힐 제국의 황권이 이렇게 약화된 데에는 물의 수호자의 장기간 부재가 가장 컸으니까요.”


크리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크세르트의 말은 마치 크리스의 탓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 내가 과민한 건가?’


먼저 건드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돌려줄 자신이 있는 크리스였다. 그러나 왠지 망설여졌다.


‘내가 왜 망설이지? 황제가 루제르트의 형이라서?’


“형!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생각이 잠긴 크리스의 귓가에 화난 루제르트의 외침이 들렸다. 덕분에 크리스는 그가 과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크리스 님이 일 년 이상 정체를 숨긴 것은 사실이니.”


“그···!”


루제르트는 계속해서 곁눈질로 크리스의 눈치를 봤다. 그는 크리스가 다른 수호자와 달리 수호자로서의 의무감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제르트가 아니었다면 평생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살았을 거라는 것도.


“크리스 님. 물님과의 대화는 잘 되어가고 있으십니까?”


작가의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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