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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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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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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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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56화 (2부 4화)

DUMMY

“바라멜 사냥단이라···.”


크리스는 습관처럼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황제가 몸소 나설만한 사건이었다. 그대로 방치했다간 혐오가 낙엽 위의 불씨처럼 순식간에 번지고 말 테니.


그와 별개로 크리스는 이번 일에서 익숙한 불쾌감을 느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사와 엮인 일은 꼭 이렇게 된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공격하며 상처 입히게 된다. 굳이 그가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서 멸망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노력할 생각 없긴 하지만.


‘정말 기분 탓인가? 어째 슈나가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크리스는 괜히 찝찝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크리스는 크세르트의 질문에 신중하게 생각한 뒤 대답했다.


“셋 다 수상하게요. 벨라블에 다녀온 뒤 이런 상황이 되도록 절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들도, 증거도 없이 깡패처럼 쳐들어간 바라멜도, 친우를 고발한 첼로 남작이란 자도요.”


“깡패요?”


“아···. 예전에 제가 살던 곳에서 폭력적이고 막무가내인 자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크세르트는 크리스의 설명을 듣고 납득했다.


“아아-. 저도 셋 다 수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편지에 나오지 않은 부분을 덧붙이자면, 첼로 남작의 여동생이 헬버튼 남작의 부인입니다. 만약 헬버튼 남작의 아들이 진짜 마법사고, 그를 숨겨준 죄로 헬버튼 남작이 작위를 박탈당하면, 남작 부인이 영지 및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루제르트가 불쑥 질문했다.


“형님, 어째서입니까? 남작 부인도 공범일 가능성이 있잖아요.”


“남작 부인은 정신적 문제로 대외활동을 끊은 지 오래다. 그리고 그건 재판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는 사유지.”


“아하.”


“그렇다면 첼로 남작이 헬버튼 남작의 재산을 노리고 고발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맞습니다. 첼로 남작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헬버튼 남작은 명예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될 겁니다. 마법사에 대한 제국민들의 혐오는 상상을 초월하니까요.”


크리스는 크세르트가 내민 종이들을 쭉 훑었다. 보면 볼수록 그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이 사건에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요. 직접 가 보지 않으면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둘 중 하나입니다. 만약 헬버튼 남작의 아들이 마법사일 경우 처단하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헬버튼 남작과 그 아들을 보호해 황궁으로 데려와 주십시오. 방식은 뭐든 크리스 님께서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크세르트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 크리스는 그 반응에 뒷말이 더욱 궁금해졌지만 재촉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렸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생기는 자투리 시간에는 자유롭게 행동하셔도 됩니다.”


그 말은 즉, 슈나를 찾을 시간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크리스는 크세르트가 아까 있었던 일로 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는 걸 알았다. 순간적으로 크리스의 기분이 확 좋아졌다.


“감사합니다. 저를 배려해 주셨군요.”


“큼!”


크세르트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설마 크리스가 이렇게 기뻐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에 봤을 땐 목석인 줄 알았더니,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루제르트가 처음 크리스를 친한 형이라 소개했을 때만 해도 크세르트가 속으로 ‘루제르트가 저런 사람과 친하다고?’라고 생각할 정도로 크리스는 잘 만들어진 인형 같았다. 어딘가 서늘한 분위기와 텅 빈 몸통에 공허한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도 그랬다. 그건 평소 크세르트가 많이 듣는 무뚝뚝함과는 많이 달랐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조금 사람 같았다.


크세르트는 마지막으로 크리스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렇다고 막 물의 수호자임을 들켜서는 안 됩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두 사람 사이의 어색했던 기류가 조금씩 풀어졌다. 루제르트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반색했다.


“오, 두 사람 그럼 화해한 거야?”


“아니.”


“싸운 적 없다.”


“··· 그러시던가.”


볼일을 마친 크세르트가 방을 떠나고, 크리스는 종이를 끌어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크리스는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아무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루제르트가 침대 위에 엎드려 종이에 사각사각 펜을 놀리던 크리스의 어깨를 툭 쳤다.


“정말 잘 됐다. 임무를 수행하면서 틈틈이 슈나 님을 찾으면 되겠네, 그치?”


“응. 다행이야.”


“풋!”


“왜?”


갑자기 웃는 루제르트 때문에 크리스의 허밍이 뚝 끊겼다.


“형이 다리를 흔들고 있는 게 웃겨서.”


크리스는 기분이 좋은지 그답지 않게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크리스를 침대에 데려다준 뒤 곧장 크세르트에게 가 대판 싸우고 온 루제르트는 크리스의 밝아진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기세등등하게 달려가 놓고 막상 형님의 방문을 두드리려니 살짝 무서웠는데 그때 용기 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크리스는 속으로 별게 다 웃기다고 생각했다.


“형, 그럼 바로 헬버튼 남작가로 떠날 거야?”


“음··· 곧 바로는 아니고 벤을 만나러 루담에 다녀올 생각이야.”


“갑자기?”


“응. 벤에게 맡겨둔 의뢰가 있거든. 얼마 전에 꽃을 받아서 빨리 나가고 싶었는데 마침 나갈 기회가 생겼네.”


루제르트는 생각지도 못한 크리스의 철저한 준비성에 놀랐다. 크리스는 입이 떡 벌어진 루제르트를 보고 작게 웃었다.


“아니, 황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은 사람이 무슨 수로?”


“아, 그건 유리가 휘셀로 돌아갈 때 부탁했어. 루제, 나는 제논을 찾을 생각이야. 여태껏 발견된 유일한 물의 수호자가 제논이지. 제논이라면 슈나를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몰라.”


과연 제논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러니까 이건 도박이다.


‘와···. 나는 제논을 완전 까먹고 있었는데.’


루제르트는 크리스가 그저 방 안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크리스는 황제도, 황궁 안의 그 누구도 모르게 이미 한발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형은 진짜 진심이구나?”


“뭐가? 슈나 찾는 거? 당연히 진심이지. 내 첫 친구인데. 왜?”


“아니··· 그냥 뭔가 형은 다른 사람을 챙기는 게 상상이 잘 안돼서.”


“엥? 어째서? 내가 그렇게 매정한 이미지야? 나 사람 잘 챙기는데.”


“아니, 아니!”


루제르트는 본인이 말해놓고 스스로 놀라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이 복잡한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그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난 간다! 형, 잘 있어.”


루제르트는 붙잡을 새도 없이 인사를 남기고 도망치듯 방을 떠났다.


크리스는 황망해져 중얼거렸다.


“내가 뭔가 루제를 섭섭하게 했나?”





[바람의 제국 휘셀]


“이거···. 정말 큰일이군.”


케인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 앞에 앉아있는 부하 두 명의 얼굴 또한 어두웠다. 케인은 심각하게 앉아있는 유리와 발터를 다독였다.


“자, 자! 너무 심각해할 것 없어. 지금이라도 알아냈다는 게 중요하지. 다들 축 처져있지 말라고!”


발터가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올려 보였다가 힘없이 떨어뜨렸다.


“설마 했는데 진짜일 줄이야.”


“케인 님,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게. 크리스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는걸.”


발터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케인에게 돌진했다.


“너 일어나 봐.”


케인은 영문도 모른 채 발터에게 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터는 케인의 여기저기를 주무르며 그의 몸 상태를 샅샅이 살폈다.


“너 괜찮아? 어디 아픈 데 없어? 봐봐.”


“없는데···.”


어느새 유리도 합심해 옆에서 발터를 응원했다.


“발터, 좀 더 꼼꼼하게 봐주십시오. 케인 님은 담배 이리 주세요. 당분간 금지입니다.”


“그래, 담배. 그게 있었지.”


발터와 유리가 케인이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뺏으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자 케인이 그들을 피해 잽싸게 달아났다. 닭 쫓던 개가 된 발터는 주먹을 불끈 쥐고 케인에게 고함쳤다.


“이리 안 와?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몰라서 그래?”


그러나 케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담배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아니! 담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나 진짜 안 아프다니까?”


“아픈지 안 아픈지 한 대 맞아볼까? 유리, 내가 저놈을 기절시킬 테니까 네가 담배를 뺏어.”


“알겠습니다.”


“야-! 진정하라고 이것들아!”


끈질기게 달라붙던 그들은 케인이 바람의 힘으로 결계를 친 뒤에야 잠잠해졌다.


“야, 넌 수호의 힘을 고작 이런데 사용하냐, 쪼잔하게?”


“쪼잔합니다.”


케인은 바람에 묶인 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올려다보는 두 사람에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담배만큼은 절대 안 돼.”


그와 별도로 케인은 감개무량한 기분 또한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이 둘을 제압하다니.’


유리와 발터는 케인이 이끄는 부대원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다. 예전 같았으면 둘 중 하나에겐 맞았을 테지만, 오늘 드디어 둘 다 막는데 성공했다. 로테와의 싸움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뒤로 힘의 사용에 고민을 많이 하고 연구한 결과였다.


“쟤 저 표정 저거 분명 우리 이겨놓고 뿌듯해하는 표정이다.”


“그러게요. 아주 투명하게 다 보이는군요.”


“···너흰 나랑 좀 떨어져 지내자. 나를 지나치게 잘 알아.”


케인은 다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부하들에겐 너무 신경 쓰지 말라 했지만, 그도 속으로는 많이 걱정되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당분간은 다른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케인 님이 무방비해지는 취침 시간 동안에는 제가 곁을 지키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케인과 발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돼!”


“미쳤냐?”


유리는 합당해 보이는 자신의 제안에 두 사람이 격렬하게 반대하자 미간을 찌푸렸다.


“하···. 일이잖습니까. 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해 봤자 두 사람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유리, 아무리 그래도 그건 절. 대. 안. 돼.”


“꿈도 꾸지 마라. 얘는 무슨 말 하나하나가 화산 같지? 아주 그냥 벨라블에서 살지 그러냐?”


“발터는 제발 부탁인데 일 절만 해주십시오.”


케인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무작정 아무나 의심할 수는 없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경계심은 결국 티가 나기 마련이니까. 내 생각인데, 일단 크리스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아. 그라면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낼지도 모르지.”


“좋은 생각이군요. 저는 크리스라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꽤나 똑똑한 자 같으니까요.”


“케인, 크리스 오빠가 얼마 전 벤에게 꽃을 보냈으니 지금쯤 연락을 받고 루담으로 향하는 길일 겁니다.”


유리의 말에 케인이 이마를 탁 쳤다.


“오, 좋은 걸? 적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여기보다 훨씬 낫군. 두 사람은 당장 떠날 준비를 해줘.”


“좋아. 오랜만의 외근이군.”


“알겠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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