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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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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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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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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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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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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58화 (2부 6화)

DUMMY

은근히 기대하는 케인의 질문에 크리스는 즉답했다.


“아뇨.”


“윽.”


케인은 힘없이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크리스는 실망해 하는 그를 위로하여 말했다.


“제가 원래 직접 보지도 않은 상황을 말만 듣고 판단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이번 일을 마치고 아예 휘셀을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마침 케인에게는 부탁할 것도 있고요.”


“오! 자네가 와준다면 나야 좋지.”


크리스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케인은 크리스의 방문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런데 부탁할 거라는 게?”


“원소와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엥?”


너무 의외의 것이라 케인은 순간적으로 크리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원소와 소통하는 법을 알려달라니. 그건 수호자에게 숨 쉬는 법을 알려달라는 말과 같은 거였다.


크리스는 이미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도 여러 번 시도하고 실패하기 전에는 한적한 곳에서 조금만 집중하면 바로 성공할 줄 알았으니까.


“저는 물님과 대화를 하지 못합니다.”


“에에엥? 하지 못하고 자시고 그냥 보이지 않아? 자네가 말하는 ‘못한다’가 무슨 느낌인지 잘 모르겠는데.”


“말 그대로예요. 저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고요. 저야말로 케인이 바람을 본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는데요.”


케인은 눈을 깜빡였다. 그렇다면 물의 수호자인 크리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이렇게나 많은 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방안에만 해도 수많은 은빛 장난꾸러기들이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크리스의 머리 위에서 낮잠 자는 아이도 하나 있었다. 케인 보고 웃으라고 저러는 게 뻔해서 귀여웠다.


“···그럼 평소엔 힘을 사용할 땐 어떻게 하는데?”


“어떻게요?”


“내가 바람들에게 지시하는 것처럼 자네도 뭔가 하지 않아?”


“아뇨? 저는 그냥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립니다. 그럼 나와요. 이렇게요.”


크리스의 손바닥에 냉기가 모여들었다. 얼음으로 된 꽃잎이 한 장 한 장 피어날 때마다 그의 머리도 한 가닥씩 물빛으로 물들었다.


신비로운 광경에 유리가 감탄했다.


“와···. 아름다워.”


크리스는 유리가 좋아하는 것 같자 그녀의 손에 꽃을 올려주었다. 케인은 꽃이 깨질세라 두 손으로 꽃을 조심히 감싸는 유리에게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확실히 크리스의 방식은 여느 수호자와 달랐다. 수호자의 의지는 곧 힘의 의지. 수호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의 동의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크리스, 저번에 마법사의 추적을 피하려고 내가 내 환영을 만든 적이 있잖아. 그때도 자네의 제안이었지. 기억나나?”


“네, 그때 바람들이 케인의 모습을 갖고 장난쳤던 게 인상 깊어서 기억납니다.”


“그렇지!”


마침 케인이 말하려고 했던 것을 크리스가 정확히 짚었다.


“가끔 수호자의 의지와 힘의 의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때 저번처럼 그 인상 깊···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건데, 자네는 그런 적 없어?”


“저는 없었습니다. 그냥 생각하면 그대로 나왔어요.”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힘의 사용은 상상의 구현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대화에 더 가까운데. 생각하면 딱 나온다니 뭔가 기계적이고 딱딱한 게 자네답긴 해. 하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다.”


“··· 대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크리스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케인이라면 뭔가를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럼 자렌에게 가봐야 하나?’


“아! 그게 있었지? 발터!”


그때, 케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가 옆에서 멍 때리고 있던 발터를 불렀다. 발터는 깜짝 놀라 한발 늦게 대답했다.


“어, 어?”


“‘칼레다’! 그곳이라면 역대 수호자와 관련된 기록이 있지 않을까?”


“칼레다요?”


휘셀 출신이 아닌 크리스와 루제르트를 위해 유리가 설명했다.


“칼레다는 바람의 탑 중층에 있는 거대한 서고입니다.”


바람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바람을 닮은 휘셀 사람에게도 은근한 이야기 수집 욕구가 있는데,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아슬러파. 자유로운 아슬러인은 주로 동화, 시, 도감, 역사책, 소설, 학술지에 달하는 다양한 책을 수집한다. 그리고 카제르파. 학술적인 카제르인은 바람에 관한 온갖 사소한 것들을 기록한다. 그 두 가지가 합쳐져 지금의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게 된 것이 바로 칼레다이다.


설명을 들은 루제르트와 크리스는 기뻐하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형, 이거다! 수호자의 기록을 찾았어!”


“응!”


안 그래도 이미 반년 전 수호자의 기록을 찾아다녔다가 실패한 전적이 있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기뻤다.


그러나 발터는 케인의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카제르도 정리를 포기한 곳인데 그 책 더미 속에서 과연 수호자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칼레다의 서고지기조차 그곳의 책을 반의반의 반밖에 모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적당히 크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루제르트가 발터의 말에 경악했다.


“헉, 책이 그 정도로 많아요?”


“예. 무려 5층에 달하니까요. 지금도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아···. 그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는걸.”


“루제, 내가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 볼게.”


형제의 대화를 들은 발터는 속으로 놀랐다.


‘포기하지 않는 건가.’


불가능을 알려줬음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이 발터로 하여금 도와주고 싶게 만들었다. 때마침 케인이 발터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다가왔다.


“왜? 발터 너랑 유리, 크리스, 루제르트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벤까지 다섯 명이나 되는데 설마 못하겠어?”


처음엔 고개를 끄덕이던 발터는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얌마, 나도 있는데 왜 네가 빠져있지?”


“아, 아니 나는 바쁘니까.”


“저보다 바쁘십니까?”


“헉!”


빈틈으로 슬쩍 빠져나가려 했던 케인은 불쑥 나타난 유리를 보고 기겁했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라 슬쩍 빠지려고 했던 케인이었으나, 결국 발터와 유리에게 잡혀 울며 겨자 먹기로 합류가 결정되었다.


“아, 알았어! 나도 하면 되잖아!”


“하하.”


휘셀 일행을 보고 있던 크리스에게서 절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장면만 봐도 유리가 휘셀에서 얼마나 잘 지내는지 알 수 있어서 안심되었다.


“그럼···. 크리스, 루제르트, 나중에 휘셀에서 보지. 최대한 빨리 와 줘···.”


“나중에 뵙겠습니다.”


형제는 부하들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걷는 케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잠깐 말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벤이 들어왔다.


“케인 님은 또 끌려가시네. 항상 저러신다니까.”


드르륵-.


벤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 뭉치가 들려있었다.


“자, 부탁한 거다.”


벤이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자 절로 쿵 하는 육중한 소리가 났다.


“자, 너희가 말한 외향과 성격, 그동안의 행적을 토대로 선별한 제논 후보자 100선!”


“으악, 너무 많은데?”


“괜찮아, 루제. 생각보다 읽을 게 많지는 않아.”


재빨리 서류를 훑어본 크리스가 머리를 쥐어뜯는 루제르트를 안심시켰다. 그제서야 루제르트도 서류의 첫 장을 슬쩍 들었다.


“어? 그러게. 대부분 그림이네.”


양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얼굴이 밝아진 형제를 보며 벤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거 보면 아직 어린애들이 맞긴 하구만.’


형제는 곧바로 읽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사된 인물들은 모두 과거가 불분명하고 연고가 없는 자들이었다.


[자크 – 검은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산에서 거주. 목재를 상점에 팔러 한 달에 한 번 내려옴. 최근에 반년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전적 있음. 왼팔이 썩어 도려냈다는 소문이 있음. 도시 놀가.]


[도노반 – 검은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팔에 핏줄이 많이 돋아 있으며, 근육질에 험악한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좋지 않음. 대장장이이나 영업을 거의 하지 않음. 웰버 마을.]


[펠 – 검은 머리지만 머리가 살짝 하얗게 세어있음. 어렸을 적 10년이 넘게 실종되었다가 최근에 돌아와 마을 사람 모두가 알아보지 못함. 말수가 적고 대외 활동 하지 않음. 도시 미엘라.]


사락.


서류를 넘기던 크리스의 눈에 한 사람. 그리고 한 지명이 들어왔다.


[센 – 검은 머리. 식당 짐꾼.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함. 다부진 몸에 힘이 셈. 최근 헬버튼 남작령에 정착.]





[헬버튼 남작 저]


우당탕!


“이 쓸모없는 자식! 이거 하나 해결을 못해? 첼로 남작은 내 친우이다. 그런데 뭘 했길래 안 만나 준다는 거야!”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저택 안.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의 남자가 멀쑥한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게 온 집안이 떠내려가라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럴 때 변명하면 남작이 더 화를 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하인이 잠자코 사과했지만, 발길질이 날아왔다.


퍽!


“으악!”


하인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가 맞고 있는 동안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헬버튼 남작은 이 남작저의 주인이었이자 폭군이었으니.


“쯧쯔···.”


밖에서 복도에 난 창을 통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집사는 혀를 차며 우편함을 열었다.


끼이익-.


어두운 우편함 속을 손으로 더듬어 보니 납작한 것이 집사의 손에 닿았다.


‘드디어!’


하얀 편지 봉투에 찍힌 황제의 인장을 확인한 집사는 남작저 안으로 향했다.


“당분간 내 눈에 띄면 죽을 줄 알아!”


집사가 도착할 때까지도 헬버튼 남작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집사가 눈짓하자 다른 하인들이 눈치껏 맞아 기절한 하인을 데리고 복도를 빠져나갔다.


‘후우···.’


집사는 눈을 한번 질끈 감고 헬버튼 남작을 불렀다.


“남작님.”


“왜!”


역시 성질이 더러운 사내였다. 이래서 말 걸기 싫었건만 이로 인해 당분간 남작가가 평화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었다.


“황제 폐하로부터 저번에 보낸 서신에 대한 답장이 왔습니다.”


헬버튼 남작의 고개가 당장 집사가 든 편지로 돌아갔다. 성큼거리며 다가온 남작은 집사의 손에든 물건을 빼앗아 갔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어차피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집사는 쥐 죽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그동안 남작이 봉투를 거칠게 찢어 안에 든 편지를 꺼냈다.


“하, 하하··· 하하하하!”


미친 사람처럼 웃던 남작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닷새 뒤 황제 폐하의 사람들이 이곳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집사!”


“네.”


“준비에는 차질 없겠지?”


집사는 번뜩이는 남작의 눈을 보고도 겁먹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그래···. 가 봐!”


“네.”


집사는 막히기 일보 직전인 숨통을 틔우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남몰래 정원수 사이에 숨어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의 사람이고 뭐고 그는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작가의말

좋은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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