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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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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팀
작품등록일 :
2022.05.11 22:48
최근연재일 :
2022.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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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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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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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의 주인 65화 (2부 13화)

DUMMY

“오셨습니까?”


크리스는 방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그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실감이 되었다.


“남작 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지요.”


끼이익-.


집사가 문을 여는 그 짧은 사이에도 몇 번이나 침을 삼켰다. 그래서 크리스는 자신이 꽤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긴장.’


신기했다. 긴장이라는 것이 이렇게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기분이었다니. 다른 사람이 긴장했다고 말하는 건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거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손끝이 약간 차다.


크리스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애매한 기분이 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방금 사 온 물건이 제대로 들어 있는지 확인했다.


‘과연 이게 맞을까?’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남작 부인.”


다행히 어지러운 머릿속과는 다르게 입 밖으로 나오는 말투는 평온했다.


“···.”


오늘도 어김없이 남작 부인은 조용히 크리스를 응시했다. 크리스는 저 눈에 이번 일의 핵심 열쇠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 누구라도 그녀의 눈빛을 보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선, 눈, 마음.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으면 눈을 보고 대화해야지.]


크리스는 천천히 손을 들어 앞머리를 치웠다. 주머니에서 핀을 꺼내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앞머리를 싹 잡아 고정시켰다. 크리스가 남작 부인의 말을 듣기 위해 준비한 것은 바로 본인의 눈이었다.


그러나,


‘아.’


앞머리가 치워지고 크리스의 눈동자가 드러났을 때 충격을 받은 것은 남작 부인도, 집사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이었다.


크리스는 눈을 깜빡였다. 눈을 가리고 있던 어두운 암막을 걷어내고 나자, 원래 보던 것보다 훨씬 맑고 투명한 풍경이 펼쳐졌다.


‘내가 그동안 본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구나.’


물방울 하나가 잔잔한 호수의 표면에 파문을 일으키듯,


‘겁쟁이처럼 뒤에 숨어 있느라 어둡게만 보고 있었어.’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온 깨달음 하나가 그의 심중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무언가가 그의 뺨을 타고 흘러 툭 떨어졌다.


‘뭐지?’


그는 바지의 색이 짙게 변한 부분을 손으로 문질렀다. 머리로는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그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홀린 듯 눈물 자국을 비비던 그는 그가 남작 부인 앞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화들짝 놀라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왜···.”


크리스는 민망했다. 스스로도 그럴진대, 남작 부인은 얼마나 황당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괜찮아요.”


“···!”


크리스는 눈가를 문질러 닦다 말고 남작 부인의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그녀는 처음보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는 제게 목소리를 들려주시는군요.”


“그동안의 무례에 사과드립니다. 제가 멋대로 크릿 님을 시험했어요.”


“괜찮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과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믿어보고 싶군요.”


남작 부인은 눈앞의 청년이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딱 한 번 본 것만으로 바로 정답을 찾아온 것도 그랬고, 앞머리를 걷어내고 나서 오히려 자신이 더 무언가에 크게 감동한 듯 우는 것도 그랬다.


“상담가님은 지금 몇 살이죠?”


“열아홉···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어리시네요. 눈을 보고 나니 확실히 알겠습니다. 제 아들도 열아홉이에요.”


그녀의 입가가 서글픈 미소로 주름졌다.


“부럽습니다.”


“··· 네?”


어리둥절한 크리스를 두고 남작부인과 집사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남작 부인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디 제 아들을 도와주십시오. 제 아들은 마법사입니다. 이대로라면 남들의 손에 잡혀 처형되겠지요.”





루제르트는 순식간에 헬버튼 남작가에서 온 첫날 크리스와 점심을 먹었던 가게에 도착했다. 온갖 사람들이 그의 시야를 스쳐 지나갔으나, 그에게는 오로지 단 한 사람, 바라멜 만이 눈에 들어왔다.


의자에 너른 자세로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있던 바라멜은 루제르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


“왜. 마음이 바뀌었나?”


“지금부터 그걸 확인해 보려고.”


루제르트는 주위를 둘러보며 안대를 쓴 남자를 찾았다. 이윽고 찾던 사람과 눈이 마주친 그는 보고서를 넘겨 그 안에 적힌 문구를 낭독했다.


“세드릭 – 전 경비대장. 헬버튼 남작이 순찰을 핑계로 경비대원들을 끌고 다니며 평민들을 괴롭히자 보다 못해 그를 발로 차고 체포됨. 1급 폭행죄로 수감되어 10년 형을 받았으나, 경비대원들에게 구해져 바라멜 사냥단에 입단. 맞습니까?”


뜬금없이 과거사를 듣게 된 세드릭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걸 어떻게?”


헬버튼 남작이 말한 포악해서 쫓아냈다는 경비대장이 이자였던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은 남작의 말과 상당히 달랐다. 배신감에 루제르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보고서를 넘겨 다음 글귀를 읽었다. 이번에는 분홍머리 사내의 차례였다.


“잭 – 헬버튼 남작이 세금이 밀렸다는 이유로 친구의 아내를 끌고 가려고 하자 병사들과 싸우고 도주. 그 일로 수배령이 걸려 2년간 남작령을 떠났다가 바라멜 사냥단에 입단 후 최근 다시 돌아옴. 맞습니까?”


“억···.”


잭은 순간적으로 소리를 내었다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 외에도 헬버튼 남작이 별장을 짓겠다는 이유로 땅을 빼앗으려 하자 맞서 싸우다 수감되었던 사람, 남작저 수리에 강제 동원되어 도망쳐 나왔다가 가족 모두 벌을 받게 된 사람··· 등!”


보고서를 전부 읊은 루제르트의 얼굴에는 씁쓸함 만이 남았다.


“당신들은 전부 헬버튼 남작에게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었군요.”


쾅!


세드릭이 못 견디겠다는 듯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맞소. 그래서 지금 우리를 동정하러 온 거요?”


“그게 아닙니다!”


“그럼 여긴 왜 온 거요? 우리 사냥단의 정보력을 얕보고 있군. 당신이 헬버튼 남작의 손님이라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소.”


“그러니까··· 저는 대화를···.”


목구멍이 턱 막힌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


그저 진실을 알고 나니 너무 화가 나서 무작정 바라멜을 찾아왔을 뿐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던 헬버튼 남작이 사실은 고약한 인간이었다는 것도 화가 났고, 그저 나쁘게만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실 피해자였다는 것도 화가 났다.


“후우···.”


루제르트는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천천히 다시 생각했다. 만약 크리스였다면 여기서 뭐라고 했을까? 그러자 정말 거짓말처럼 해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사실 마법사를 잡는다는 핑계로 헬버튼 남작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제가 도울 방법이 있을 겁니다!”


바라멜은 한마디 말로 루제르트의 희망을 짓밟았다.


“아니.”


“그, 그럼···. 정말로 헬버튼 남작의 아들이 마법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건···!”


“정확히 말하면 둘 다지. 마법사도 잡고, 사람들도 구할 생각이다.”


“대체 소남작이 마법사라는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아하. 그게 문제였나? 진작 말할 걸 그랬군. 그건 내가 마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저택에는 분명 마법사가 있어.”


“뭐라고요?”


루제르트는 순간 그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사냥단원들만 봐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이제 내가 사냥단의 단장이 된 이유를 알겠지? 나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라. 백발백중이지. 그런 눈으로 쳐다봐 봤자 나도 내가 마법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모른다. 돌연변이인가 보지 뭐.”


“미, 믿을 수 없어!”


“그럼 내가 증거를 하나 대지. 귀 대봐.”


바라멜은 가까이 다가오라는 뜻으로 루제르트에게 손짓했다. 루제르트는 잠깐 망설였지만,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했다.


바라멜이 루제르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랑 같이 있던 남자도 뭐 있지?”


쿵-.


루제르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걸 어떻게? 설마 진짜로 마법을 느낄 수 있는 건가?’


루제르트는 뒤늦게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뻔뻔한 남자는 이미 그의 표정을 보고 본인의 말이 맞았다는 걸 확신했을 것이다.


‘귀엽긴.’


바라멜은 루제르트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특히 갈대마냥 바람 부는 대로 정신 못 차리고 휘둘리는 점이.


“자, 이젠 믿겠지? 우리와 손잡자. 함께 사람들을 구하고 저 기만자들을 처단하는 거야.”


바라멜은 루제르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이 어린 청년이 다잡은 물고기나 다름없다고 확신했다. 누군가가 멋대로 그의 손을 쳐 버리기 전까진 말이다.


“이봐, 멋대로 남의 동생을 홀리지 마.”


바라멜은 갑자기 나타난 방해꾼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가 눈부신 태양빛의 방해를 받아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멜은 크리스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에게서는 물 냄새가 났으니까.





바라멜과 루제르트를 발견하기 전, 크리스는 제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숲에 들어갔다. 사실 루제르트와 함께 올 생각이었지만, 롬에게서 그가 나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하는 수 없이 혼자 나왔다.


제논은 이미 크리스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줘.”


“좀 기다려보십시오···.”


크리스는 준비한 주사기를 꺼내 그의 손목을 타고 이어진 푸른 핏줄에 꽂았다.


“으···.”


피가 빨리는 감각이 소름 끼쳤다. 크리스는 꾹 참았다가, 붉은 액체가 정확히 정량에 도달하는 순간 재빨리 주사기를 뽑아 제논에게 내밀었다.


“자.”


제논은 기다렸다는 듯 냉큼 주사기를 낚아채 갔다. 밥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모습에 크리스가 어이없어했다.


“그게 그렇게 좋습니까?”


제논은 옆에서 들려오는 말을 무시하고 주사기를 꽃는 데 집중했다. 피를 주입하고 나서 곧바로 예정된 고통이 찾아왔다.


크리스는 제논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옆에 앉았다. 그는 적어도 제논이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 떠날 생각이었다. 제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크리스는 그의 옆에서 대자로 누워 멍하니 눈만 끔뻑거리는 제논에게 질문했다.


“제논 씨. 당신은 제가 수호자라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꿈뻑 꿈뻑.


“생각해 보니 이상해서요. 그때 당시 저는 아무에게도 제 정체를 밝히지 않았었는데 제논은 처음부터 저를 노렸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 리는 없고··· 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냄새.”


“냄새요?”


“물 냄새.”


더 물어봐 봤자 똑같을 거 같아서 크리스는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그러면 혹시 저 말고도 이 헬버튼 남작령에 물 냄새가 나는 사람이 또 있습니까?”


끄덕.


‘역시.’


짐작 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은 물빛을 지니지 않아 의심 대상이 아니면서도 희한하게 계속 눈길이 갔으며··· 무엇보다 처음에 딱 봤을 때부터 기분이 어딘가 이상했다.


“혹시···. 그 사람이 바라멜 사냥단의 단장 바라멜입니까?”



끄덕.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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