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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치킨 가챠로 EX급 각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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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드로우
작품등록일 :
2024.07.28 23:41
최근연재일 :
2024.09.18 09:30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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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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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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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나의 이름은

DUMMY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깜찍한 호칭에 그제야 그 얼굴을 알아본 선우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꾼꾼님 맞으시죠!?”

“아, 그, 예···. 또 보네요.”


세상에 뭐 이딴 우연이 다 있나.


어느새 풀린 속박 마법에 성큼 다가온 유주희가 성덕마냥 꺅꺅거렸다.


‘저번에도 꾼꾼님이 구해주셨는데 이번에도···!’


심지어 그때랑 비슷한 상황이었지 않나. 


‘이 정도면 이미 운명인 게 아닐까?’


“꺄, 어뜩해!”


그녀가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꼬자 선우가 대체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실자와 살자가 웃음을 삼키곤 조용히 말했다.


<꾼꾼.>

<꾼꾼.>


그러자 순간 섬뜩해지는 선우의 분위기.

그가 빙의혼들을 향해 경고했다.


‘내가 금지어라 했다.’


<······.>

<······.>


바로 잡힌 기강에 한숨을 삼키기도 잠시.

그 속내를 모르는 유주희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또 한 걸음 다가왔다.


“혹시 그때처럼 또 꾼들을 잡으러 오신 건가요?!”


거기에 선우가 한 걸음 멀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 그런 셈이라고 볼 수 있죠.”


가면이라서 편한 점은 딱히 표정 관리까진 할 필요 없다는 점이었다.

아마 가면을 벗고 있었다면 그는 지금 굉장히 애매한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


“저저, 그때 사인받은 방어구 아직도 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보실래요?”

“아뇨, 됐···.”

“짠! 어때요. 그때 이후로 수선도 했어요!”


거의 빛의 속도로 인벤을 열어 그때 사인받은 방어구를 들어 보인 그녀의 두 눈이 반짝인다.

마치 칭찬을 바라기라도 하는 듯한 눈빛.

강아지였으면 지금쯤 꼬리가 겁나게 흔들리고 있지 않았을까.


“···잘하셨네요.”

“그쵸! 진짜 그때 이거 사인받고 너무 좋아서. SNS에 인증했더니 다들 못 믿겠다고 부럽다고 난리도 아니···.”


그 믿기지 않는 텐션에 도살자가 나지막이 감탄했다.


<참 회복력이 대단한 여자다.>

<그러게나 말임다. 저 모습을 보고 누가 방금 전까지 겁탈 당할 뻔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슴까.>

<살짝 머리가 고장난 게 이 업계에 최적화된 인재군. 마스터, 이 여자는 장수할 거다.>


거기에 미묘한 위화감을 눈치챈 선우가 물었다.


‘근데 왠일로 실자가 얌전하냐.’


그러자 실자가 미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저번부터 빠순이 같은 모습을 보다보니 좀 깨서 말임다.>

‘아, 그래···.’

<그리고 굳이 취향을 따지면 강아지상보다 여우상이 더 좋슴다. 거기에 마음이 넓기까지 하면 더 나이스이지 말임다.>

‘아니, 거기까진 물어보지 않았는데.’


한 귀로 흘린 신실자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특별 퀘스트에서 만났던 그 이쁜이가 정말 딱 제 취향이었는데 말임다···.>

‘이쁜이?’


아아. 그 성마 길드 각성자 말하는 건가.


모르는 얼굴이었던 지라 아마 그가 길드에서 쫒겨나고 난 뒤에 들어온 신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뭔가 굉장히 말이 서로 안 맞는 느낌이었지.’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유주희와는 다른 의미로 안 맞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랬더니, 글쎄. 제 친구가···.”

“근데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네? 네! 물론이죠!”

“지금이 며칠 쨰죠?”

“···넹?”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큰 눈망울을 깜빡이는 그녀에게 선우가 다시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다른 곳에 있다가 와서 지금··· 시간 감각이 좀 없는 상태라.”


하여간 썩 좋은 핑계는 아니었음에도, 다행히 그녀는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가는 낌새였다.


“어··· 지금 퀘스트 시작부터 닷새 정도? 네, 그 정도 됐어요.”

“공세는 지금 열 번째까지 진행된 상태고?”

“···네.”


그러자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는지 조금 눅눅해진 유주희였다.


“이거 바깥은 지금쯤 난리가 났겠는데.”

“난리요?”

“고작 난이도 12짜리 퀘스트인데 닷새째 진행 중인 거잖아요.”


이런 경우는 고난도 퀘스트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

지금은 밖에서 보기에도 명백한 이상 사태였다.


“무조건 말이 나올 수밖에 없죠.”

“아하···. 생각해보니 그렇겠네요. 역시 꾼꾼님!”

“······.”


그놈의 꾼꾼에 정신 나갈 거 같은 선우였다. 


<슬슬 익숙해져라.>

<받아들이시는 검다.>

‘둘 다 닥쳐.’

<근데 궁금한게 왜 이 분한테만 존댓말을 쓰시는 검까.>

<팬 관리인가?>

‘아니거든.’


거기에 한숨을 삼킨 그가 잠깐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약간의 소란이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이 올라오는 기색은 없었다.


‘닷새째, 그리고 열 번째 공세라.’

<다행이군. 그래도 그렇게까지 시간이 지체된 건 아니다.>


왜냐면 이 퀘스트의 공세는 총 스무번까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끝으로 갈수록 점점 공세의 물량과 난이도가 올라가는, 문자 그대로 디펜스형 퀘스트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20번의 웨이브를 모두 막을 필요는 전혀 없다.>


이는 곧 지금까지 그들이 깨왔던 다른 퀘스트들과 큰 틀에서 달라질 건 없단 소리였다.


여기서 며칠 더 지내며 20번의 공세를 일일이 막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이 사태의 원흉, ‘철혈의 아니스’를 토벌하는 게 훨씬 나을 터.


‘엔간하면 오늘 밤에 끝내고 싶은데.’

<가능은 하지만 대신 공세를 막아줄 사람이 어느 정도 있는게 안전할 검다.>

<아니스가 움직이면 그 휘하의 군단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내성 안쪽까지 뚫린 상황이면 아니스를 잡는 사이 성이 함락당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안전하게 S 랭크를 따려면 오늘 밤 나 대신 내성을 방어해줄 각성자들이 좀 필요하단 건데···.’


밤마다 이뤄지는 공세는 총 두 번.


‘한 번은 내가 막는다고 쳐도.’


잠시 침음한 그가 생각했다.


‘역시 현 상황파악이 우선이겠어.’


선우가 유주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닷새 동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못 들었네요.”

“네?” 


그런 그의 시선이 방어구조차 없이 대충 블라우스만 주섬주섬 여미던 그녀에게 향했다.

남몰래 한숨을 삼킨 그가 인벤토리에서 뭔가 걸칠 것을 꺼내 건내며 물었다.


“주희 씨. 대체 철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


‘이상하네.’


그날 오후. 외성에서 내성으로 이어지는 길목.

그 좁은 통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성의 연회장에서 말린 육포를 뜯던 호완 길드의 팀장, 황성빈이 찜찜하단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이 여태 무명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 거지?’


이 퀘스트를 수주했다면 어쨌든 이 철성에 올 수밖에 없을 터.

그런데 요 며칠 동안 성안의 각성자란 각성자는 모조리 확인했지만, 길드로부터 전해 들은 인상착의와 비슷한 자는 한 명도 보지 못한 그였다.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쳐도···.’


어차피 등불을 들고 있다면 결국 눈에 띌 수밖에 없을 텐데.

그가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을 지었다.


‘설마 퀘스트를 수주하지 않았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단 생각이 슬슬 드는 황성빈이었다.

초반에 푸른 등불을 독점한 덕에 호완 길드의 꾼들은 거진 다 생존한 상황.

수성마저 포기했으니 남는 인력으로 무명 수색에 주력해온 그들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이상하지 않나. 


‘빌어먹을, 만일 정말 수주하지 않은 거면 시발 시간이 아까운데.’


그간의 경험상 ‘생존’으로 클리어할 경우 기여도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 안 봐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각성자들을 탈탈 털다 보니 최소한의 수지타산은 맞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가 술잔을 기울이자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바로 술을 따른다.

공포심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지만, 꾹 참는 것 같은 모습.

손을 뻗어 허리를 잡아당기자 짧은 비명과 함께 품 안에 안겨든다.


‘뭐, 여자도 있고 나쁘지 않긴 한데.’


그가 짧게 혀를 찼다.

덜덜 떠는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던 황성빈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벌써 저물기 시작했나.”


이곳의 밤낮이 현생과 같지 않은 건 분명했다. 

어떤 날은 너무도 낮이 짧고, 또 어떤 날은 너무 길었다.

거기에 무슨 의도가 있는진 알 수 없다.

정확히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는 데에 더 가까웠다.


그가 제 인벤에서 활활 타오르는 등불을 꺼내 들며 말했다.


“아까부터 든 생각인데 말이야.”

“예?”


그러자 테이블을 따라 육포를 씹고 있던 꾼들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생각 말씀이신지···.”

“별 건 아니고.”


킁, 하고 코를 마신 황성빈이 입가를 말아 올렸다.


“뭔가··· 이제 슬슬 좀 지루하지 않아?”

“??”

“아니, 그렇잖아.”


오늘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붉은 눈보라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바로 그제만 해도 밤마다 벌레 새끼들이 아득바득 살겠다고 배신에, 혈투에, 아주 버라이어티 쇼가 따로 없었는데 말이야.”


그러자 그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꾼들 사이로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젠 밤마다 망자 놈들이 성을 헤집는 소리 말곤 그냥 조용해. 재미가 없어.”


그런 황성빈의 시선이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너머, 연회장 앞에 하인처럼 도열해 있는 각성자들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노경준이가 없네?”


거기에 체인 갑옷으로 무장한 각성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다름 아닌 노경준과 오랜 시간 같이 활동해온 길드의 고참 중 한명이었다.


“그게···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 같습니다.”

“뭐?”

“아직도 안 돌아와?”


그 말에 기가 찬 듯 꾼 중 한 명에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아니 시발 그까짓 계집년 하나 잡아 오는데 무슨 한 세월이 처 걸려!”

“이 새끼 지금 지 혼자 재미 보느라 날 저무는지도 모르고 있는 거 아냐?”

“그럴 만해. 그렇게 그년만큼은 지 꺼라고 싸고돌았잖아.”

“팀장님. 돌아오면 그 새끼 그냥 망자들한테 먹이로 던져버리시죠.”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하고.”


육포를 질겅질겅 씹던 황성빈이 노경준의 팀원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야, 너 등불 있지?”

“예?”

“있냐고 새끼야.”

“예, 그,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내놔 봐.”

“···!”


놀란 그가 선뜻 움직이지 않자 인상을 팍 구긴 황성빈이 소리쳤다.


“내놔 보란 말 안 들려?!”

“여, 여기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서 등불을 넘겨받은 황성빈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이내 등불을 냅다 바닥에 내던져버리는 게 아닌가.


“?!”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져나간 램프를 거대한 구둣발이 가볍게 지르밟는다.


“드, 등불이···!”

“음. 역시 이게 더 낫네.”

“이게 무슨···!?”

“뭐해. 곧 눈보라 시작된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차가워지기 시작한 주변의 공기.

황성빈이 당황한 노경준의 팀원들을 향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려가서 안 뺏어?”

“···!!”


거기에 그 말뜻을 이해한 그들이 허겁지겁 연회장 밖으로 내달렸다.


“이, 이런 시발···!!”

“달려···!!”

“빨리!!”


그 모습들에 부하들과 낄낄거리던 황성빈이 제 등불을 쥐고서 창가 앞에 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얼마 없는 등불에 의지해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저 등불도 저들의 것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 호완 길드 꾼들에게 불을 쓸 수 있도록 허락받은 이들이었으니까.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황성빈이 입을 열었다.


“정명아.”


그의 부름에 부팀장인 최정명이 바로 달려왔다.


“넵, 부르셨습니까.”

“저기 아래 말이야.”

“예?”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뭔가 아직도 불이 너무 많은 거 같지 않냐?”


그러자 움찔하는 최정명.


“지금 저기서 딱 절반만 남으면 눈이 편안~해질 거 같은데.”


그를 돌아본 황성빈이 킬킬 웃으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


“그런 식으로 흘러간 건가.”


유주희한테 그간의 일을 모두 전해 들은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사정은 대충 알았어요.”

“네, 그러니까 지금으로선 등불을 지키면서 성안에 숨어 있는 게···.”

“아니. 그건 안 됩니다.”

“네?”


그가 내성 밖을 바라보자 갑자기 꾼들이 사람들을 향해 마법을 쏘아대는 게 보인다.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등불이 박살 나면서 아래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빠졌다.


시선을 들면 어느덧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진 채였다.

본격적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붉은 눈보라에, 쇳소리 같은 망자들의 노랫소리가 바람과 함께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 온다. 온다. 그들이 온다.


거기에 그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자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자, 잠깐만요.”


눈보라 너머로 들려오는 건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이었다.


“사, 살려줘! 제발!”

“불을 내놔! 불!”

“아아악!”

“내놓으라고!”

“추, 추워! 누가···!”


서로 버려지고 버리고 죽이고 죽임당하는 그 지옥에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지금 저기로 내려가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죠?”


그가 난간에 발을 올리며 대답했다.


“그럴 건데요.”

“네?! 아니, 왜···!”

“그래야 구할 거 아닙니까.”

“네?!”


구한다고? 뭐를. 

유주희가 저 아래의 각성자들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 사람들을?

혼자서?


그녀가 황급히 그를 말렸다.


“그게 무슨···! 망자들의 군세가 어느 정도인지 못 보셨어요?! 그러다가 꾼꾼님까지 죽···!”

“주희 씨.”


거기에 그가 외벽에 장식된 거대한 횟대를 뽑아 들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건 제게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야 최대한 파편을 파밍할 게 아닌가.


“···!!”


하지만 그 속을 알리가 없는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뜰 따름이었다.


“그리고 제 이름은 그게 아니에요.”

“네···?”


양손에 검과 방패를 쥐어든 선우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 무명입니다.”

“···!!!”


이를 끝으로 그녀 앞에서 사라지는 그의 신형.


“푸하하하! 도태된 것들은 저리 꺼져!”

“아아악!”

“병신 새끼들 존나 웃기네!”

“야! 시발 뒤지고 싶어?!”


불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이 꾼들에 의해 어둠 속으로 내던져진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경민아! 시발 박경민! 네가 어떻게 날···!”

“내 불이었다고! 내 불!”


그와 동시에 지척에서 울려 퍼지는 망자들의 노랫소리.


- 온다. 온다. 그들이 온다.


이윽고 그들 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밤이 되었습니다.]

[곧 열한 번째 공세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각성자들은 개인 정비를 끝내 주십시오.]


이를 본 사람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노, 놈들이 온다!!”

“이, 이제 다 끝났, 끝났어···!”


공포에 질린 이들이 뒤를 돌아보면, 무너진 성벽 사이로 끝없이 몰려드는 붉은 안광이 보인다.

그 저항할 수 없는 죽음의 파도에 사람들이 저마다 희망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 온다. 온다. 그들이 온다.

- 온다. 온다. 그들이 온다.


“아아···!”

“벌을 받는 거야···!”


한 때 제 팀원을 버리고 살아남은 남자가 제 얼굴을 움켜쥐었다.


“이건 벌을 받는 거라고···!”


그렇게 그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두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

“뭐, 뭐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그 때아닌 광경에 이를 웃으며 지켜보고 있던 황성빈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야 저건?”


그런 그때, 화르르륵! 하고 한 줄기의 푸른 불꽃이 짙은 어둠을 밝히고 선다.


거기에 놀란 사람들이 경악성을 토해냈다.


“?!”

“···!!”

“등불, 등불이다!!”


이를 본 꾼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저거 뭐야?!”

“모든 등불은 우리가 통제하고 있을 텐데, 대체 어디서···!”


그와 동시에 가라앉은 먼지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다름 아닌 검은 가면.

한 손으로는 검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어둠을 밝히며 그 남자는 다가오는 군세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마치 그 자리에서 홀로, 저 모든 죽음을 맞이하려는 듯이.


거기에 그 생김새를 알아본 황성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건···!”


그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무명···!”


놀란 사람들이 입을 벌린다.


“무명? 무명이라고···?”

“무명이면 그 S 랭크 달성자 말야?”


그런 무명이 램프의 유리를 깨고 그 불을 횟대로 옮겨 붙인다.

그러자 마치 봉화처럼 타오르는 푸른 등불.

그가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뛸 수 있을 때 내성을 향해 전력으로 뛰어. 공세가 시작되면 저놈들도 길을 막고 있진 못할 테니까.”

“예, 예?!”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순간 쾅! 하고 횟대를 땅에 박더니 이를 등지고 서는 무명.

저 너머로 망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


거기에 방금까지 절망했던 남자가 소리쳤다.


“뭐, 뭐하는 겁니까?! 설마 혼자서 지금 저것들을 막겠다는···!”

“두 번 말 안 해.”


선우가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뛰어! 지금 당장!”


히든 스킬도 없는 사람들이 뭐 이리 굼 떠?


“!!!”


그제야 허겁지겁 다시 내성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거기에 꾼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저 미친 새끼 지금 뭐 하려는 거야?!”

“기, 길목을 혼자 막고 섰어···?”


마치 장판파처럼 내성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목 한 가운데를 막고 선 그가 중얼거렸다.


‘도살자에게 남은 빙의 시간 앞으로 2시간···.’


그리고 신실자는 남은 시간 앞으로 4시간.


‘도살자의 대기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신실자가 말했다.


<밤을 보내기엔 충분하고도 넘치지 말임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


선우가 그 끝을 모르는 붉은 흉광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까 호완 길드가 등불을 독점하는 바람에 성이 개판이 됐다 했었나.’

<그렇다.>


푸른 등불을 많은 망자를 처치할수록 더욱 커지게 되어 있었다.


그럼 만일 오늘 밤 혼자서 저 많은 군세를 막아내게 된다면?


대체 이 불은 얼마나 커지는 걸까.


“그럼 어디···.”


그가 입가를 말아 올렸다.


“이 개판을 한 번 바로 잡아 보실까.”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짙어진 눈보라가 사람들 앞에서 그의 모습을 집어삼키고.


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유주희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꾼 사냥꾼의 정체가···”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사실 무명이었다고?”


그럼 최근 무명의 클리어 속도가 느렸던 것도 설마.


“지금처럼 꾼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 순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망상에 그녀가 헛숨을 삼켰다.


‘그럼 설마 여태까지 S 랭크를 달성했던 것도···!’


지금까진 이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기여도 보상 때문에 달성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유주희가 그만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그게 아니었던 거야.”


기여도 보상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실패율을 낮추기 위해?”


전혀 엇나간 결론에 도달한 그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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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이름은 +13 24.09.08 5,606 129 19쪽
30 철성의 정상화 +6 24.09.07 5,762 129 17쪽
29 히든 스킬 +6 24.09.06 5,959 134 17쪽
28 좀만 서두를까? +6 24.09.05 6,107 136 19쪽
27 잠시만 얼굴 좀 봅시다 +6 24.09.04 6,423 139 17쪽
26 내겐 공략본이 있어요 +6 24.09.03 6,591 140 16쪽
25 때아닌 선물 +8 24.09.02 6,757 139 18쪽
24 꾼이 되었다 +5 24.09.01 6,853 140 17쪽
23 맛있게 빨아 먹자 +9 24.08.31 7,006 153 18쪽
22 청부업자 +18 24.08.30 7,126 151 16쪽
21 약 주고 병 주고 +8 24.08.29 7,159 159 17쪽
20 너의 이름은 +9 24.08.28 7,194 156 18쪽
19 성염술 +12 24.08.27 7,288 160 13쪽
18 충분하고도 남는다 +5 24.08.26 7,257 149 12쪽
17 정답이지? +8 24.08.25 7,379 156 15쪽
16 자랑이다 +5 24.08.24 7,431 145 13쪽
15 이제 가볼까 +6 24.08.23 7,554 150 17쪽
14 루미네의 마굴 +3 24.08.22 7,661 1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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