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이다
*
“시, 시발! 이게 뭐야!”
“모두 물러서!!”
요새의 내성. 그 북(北)문.
마굴의 구멍들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아귀에 당황한 각성자들이 물러섰다.
“저, 저건 대체?”
“뭐야 나 저런 거 처음봐.”
“시발, 강현우!!”
“예진이도 먹혔어!”
그런 그 때 한 각성자가 검을 세우곤 소리쳤다.
“이 새끼가! 당장 다시 안 뱉어?!”
푸른색 마력을 흩날리며 돌진하는 그 모습에 성마 길드 공략팀장, 박요한이 소리쳤다.
“잠ㄱ···! 접근하면 안 돼!!”
그 순간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간 육편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
고개를 들자 언제 휘둘러졌는지 모를 거대한 손바닥이 바닥에 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미, 미친···!”
“안 보였어. 시발 안 보였다고!”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레벨 100짜리 퀘스트냐고!”
그런 그때 마굴로부터 거대한 울림이 퍼져나갔다.
[1시간 주겠다. 선택해라.]
그와 동시에 어깨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압력.
“···!”
그걸 느낀 박요한이 이를 악물었다.
마치 머릿속을 타고 휘젓는 것만 같은 이 울림.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의 공포심을 조금씩 건드리는 듯한 불쾌함.
전부 그의 기억에 있는 것이었다.
‘확실해, 이건···!’
그가 마굴을 노려보았다.
인간과는 상성이 결코 좋지 않은 인외의 존재들.
‘악마다!’
그 목소리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1시간이 지나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성녀의 주검이 해방될 것이다.]
그걸 끝으로 스르륵, 물러나는 검은 손들.
그 자리에 남은 핏덩이에 각성자들이 저마다 코를 막았다.
거기에 박요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자신을 제외한 성마 길드의 길드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완전히 당했다.’
그의 주변에는 한순간에 제 연인, 친구, 동료를 잃은 각성자들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그럼 이대로 그냥 가자는 거야?!”
“정신 차려! 지옥의 하수인이라고! 하수인! 우리끼리 가는 건 자살행위야!”
“시발 진짜 미치겠네!”
“이럴 때 팀장님이 있었으면···!”
“투표, 그래. 투표로 정하자고!”
“네가 뭔데 투표로 정하라 말아야?!”
“아니, 시발 가면 다 죽는다니까! 귀환석 없는 거 잊었어?!”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규합할 리더가 없었다.
지금 그의 주변에 성마 소속 각성자들이 없듯이, 이곳에 있는 길드원들도 그들의 팀장은 이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했지만 이젠 확실해졌다.’
역시 이 파티 찢기는 랜덤 같은 게 아니었다.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게 각 길드를 섞고 그곳의 구심점들을 따로 떨어뜨려 놓은 거야.’
뿐만인가.
‘그러면서도 친구나 연인같이 특정한 관계성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한 그룹으로 묶어놨다.’
그리고 그 의되는 지금 잡혀간 자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 모두 그 관계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누군가의 동료, 아끼는 후배, 여자친구 같은 자들 뿐이었으니까.
“빌어먹을.”
하지만 이걸로 다행인 점이 하나 있었다.
‘류연서는 무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녀는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고, 언제나 홀로 고립된 사람이니까.
그런 여자를 왜 길드장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라고 명령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의 생각이 맞다면 류연서는 잡혀가지 않았을 거라는 것.
거기에 박요한은 고심했다.
‘우리 길드원들도 분명 몇 명은 잡혀갔겠지.’
요는 이거였다.
‘길드장이 당부한 류연서냐, 아니면 잡혀간 팀원들이냐.’
그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고민할 필요도 없네.’
어차피 팀원 중 자신이랑 사적으로 친한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길드장 빽인 류연서다.’
그렇게 생각한 그때였다.
쿠구구구! 소리와 함께 마굴 앞에 거대한 쌍둥이 석상이 위로 솟구친다.
그 기묘한 석상의 위에는 각각 로마자로 I과 II가 표기되어 있었다.
“이건···.”
“선택하라는 건가?”
그 찰나였다.
갑자기 왼쪽 하늘 위로 ‘II' 자가 불빛처럼 번쩍이곤 사라졌다.
*
[‘동문’은 II, 구출하지 않고 요새를 탈출한다를 선택하였습니다.]
“!!”
“?!”
요새 내성, 서문.
마치 폭죽처럼 사라진 로마자 II에 류연서의 눈동자가 떨렸다.
거기에 재천 길드의 각성자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 이런 식인 건가.”
“투표를 해서 정한다?”
“시발 장난하나.”
고개를 저은 그들 중 한 명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봐. 결국 2가 최선이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
침묵하는 이들 가운데, 그들의 시선이 성보 길드에게로 향했다.
“너흰 몇 명 잡혀갔지? 우린 2명이야.”
“이쪽은 동하를 비롯해서 3명.”
“유망주를 잃었나···.”
“유망주는 시발, 그 전에 내 불알친구다 이 새끼야.”
“그래서, 그럼 구하러 갈 거야?”
“그건···.”
서로의 눈치를 보던 그들 중 한 명이 혀를 찼다.
“아니. 우리도 II가 맞다고 생각해.”
“하.”
저도 모르게 흘린 헛웃음에 류연서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왜 쪼개냐?”
“아니, 그냥 좀 재밌어서. 친구라면서 결국 버리는구나.”
“뭐 시발. 그렇다고 걔 하나 때문에 다 같이 뒤질 순 없는 노릇 아냐. 그리고.”
“그리고?”
그가 말했다.
“···박동하 그 새끼도 여기 있었으면 아마 똑같았을걸?”
그 말에 류연서는 씁쓸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거참 좋은 핑계네.”
“뭐라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다들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우린 굳이 ‘지옥의 하수인’과 싸울 필요 없어.”
“그게 뭔 소리야?”
“퀘스트 시나리오에도 그렇게 적혀 있잖아. 지옥의 하수인을 피해서 구출하라고.”
“그건···.”
“애초에 생각해봐. 지금까지 공략법이 없는 퀘스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어. 설마 우리보고 지옥의 하수인과 싸워 이기라고 하는 거겠어?”
류연서가 제 가슴에 손을 얹고서 말을 이었다.
“나는 괜찮은 색적 스킬을 가지고 있고, 여기엔 민첩 관련 스킬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하수인을 유인할 수 있는 조합이라고.”
심지어 모두가 겪어 보지 못했을 뿐 하수인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알고 있을 터.
“작전만 잘 짜면 승산이 있어.”
하지만 그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서로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결국 성보 길드의 각성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옥의 하수인’이야. 마족과 싸워 본 경험이 없는 우리가 놈을 제대로 유인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어디있겠어.”
“맞아. 리스크가 너무 커. 자칫 잘못하면 전멸할 수도 있잖아.”
“우, 우리가 모르는 기믹이 또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마, 마굴이잖아!”
“만일 귀환석이라도 작동했으면 모르겠는데···. 그거 없이는 좀.”
“그지?”
“······.”
그 반응들에 류연서가 눈을 감았다.
각성자가 영웅? 누군가를 구해?
‘그래. 뭘 기대했어. 류연서.’
그녀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게 우리인걸.’
그 순간, 오른편 하늘에서도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그것이 가리키는 건 다름 아닌 II 였다.
[‘남문’은 II, 구출하지 않고 요새를 탈출한다를 선택하였습니다.]
그걸 지켜보던 재천 길드의 각성자가 말했다.
“그럼 이견 없는 걸로 알고, 우리도 2로 한다.”
“······.”
이어지는 정적에 고개를 끄덕인 그가 II라고 새겨진 석상에 손을 뻗는다.
그걸 본 류연서가 주먹을 쥐었다.
‘저렇게 5명, 아니 그 이상이 죽겠구나.’
그리고 자신 또한 엄연히 그들의 죽음을 방조한 한 사람일 터.
그 사실을 통감한 류연서가 체념한 얼굴로 두 눈을 감으려던 그때였다.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낯선 목소리가 그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잠깐. 그거까지 눌러 버리면 마굴이 닫힌다고 하거든.”
“?!”
그 순간 잡힌 뒷덜미와 함께 휙 멀어지는 시야.
“억?!”
쿵! 하고 뒤로 넘어지는 그의 모습에 류연서의 두 눈이 커졌다.
석상 앞에는 어느새 검은 가면의 각성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소리쳤다.
“당신은···!”
마력안으로 봤던 그 사람···!
그런 그가 그녀를 흘깃하더니 뻔뻔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한데. 입구 하나는 열어둬야 해서.”
그리곤 로마자 I이라고 적힌 석상의 레버를 잡아당기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자 덜컹! 소리와 함께 내려가는 레버.
동시에 하늘 위로 I 형태의 불꽃이 솟구친다.
[‘서문’은 I, 붙잡힌 자들을 구출하여 탈출한다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를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던 각성자들이 뒤늦게 반응했다.
“시발!”
“지금 저 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5명이지?”
“뭐?”
순간 눈살을 찌푸린 그들에게 가면이 되물었다.
“잡혀간 사람. 5명 아냐?”
“마, 맞는데 그건 왜···.”
“왜긴 왜야.”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그가 말했다.
“몇 명인지 알아야 전부 구할 거 아냐.”
선우가 생각했다.
‘이걸로 동서남북 다 포함해 총 18명 정도인가.’
‘설화의 파편’ 파밍 조건은 다름 아닌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인명 구출은 그야말로 영웅적인 행동의 정석일 터.
한 명 한 명이 귀한 ‘설화의 파편’이 될 수도 있는데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에 놀란 이들은 저마다 숨을 삼킬 따름이었다.
“구, 구한다고?”
“마굴로 잡혀간 사람들을?”
“그래.”
“당신 미쳤어?! 상대는 지옥의 하수인이라고!”
그 말에 검을 뽑아든 가면이 그 자리에서 석상들을 베어버렸다.
콰아앙-!!
너무도 쉽게 박살 나는 돌덩이들에 먼지구름이 위로 튀어 오른다.
“그래서.”
재차 검을 다시 집어넣은 그가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게 뭐?”
“···!!”
그 한 마디에 순간 압도당한 각성자들.
그건 류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이러면 선택 못 바꾸지 이제?’
<넵. 의외로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그냥 석상을 부숴버리는 게 낫지 말임다.>
<악마 주제에 쓸데없는 곳에서 융통성이 있군.>
그러면서 홀로 마굴을 향해 나아가는 그 모습에 사람들이 저마다 입을 벌렸다.
“저, 저 새끼 뭐야 대체.”
“설마 지금 혼자 들어가서 구하겠다는 거야?”
“미쳤,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거기에 정신을 차린 류연서가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
“자, 잠깐만요, 정말로 혼자 마굴에 들어갈 생각인 건 아니죠!?”
“그런데?”
“···!!”
놀란 그녀가 되물었다.
“호, 혹시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잡혀간 거예요?”
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네? 그러면 왜···.”
아까부터 뭐가들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짜증이 난 그가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대충 대답했다.
“그래야만 하니까.”
“!!”
안 그러면 대체 특별 퀘스트 보상을 어떻게 먹겠나.
하지만 거기에 류연서는 마치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런 그녀를 남겨 둔 채, 선우가 마굴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럼 살자야. 가자.’
<음. 내게 맡겨라 마스터.>
<내비게이션도 준비됐지 말임다.>
‘그래, 후딱 해치우고 돌아가서 맛있는 거 먹고 자자.’
<마스터, 난 함바그가 좋다.>
<새우깡도 괜찮겠슴까. 아까 먹어보니 맛이 좋았지 말임다.>
‘그래, 그래. 늬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라.’
보상만 먹는다면야 뭔들 못 사주겠니.
그렇게 빙의한 도살자가 땅을 박찬 그 순간이었다.
그의 신형이 마치 섬광처럼 마굴 속으로 쏘아졌다.
“······.”
“······.”
마치 폭풍이라도 왔다 간 듯한 자리.
모두가 할 말을 잊은 가운데, 류연서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야만 하니까···.”
이내 입술을 깨문 그녀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더니 마굴을 향해 뛰었다.
“야! 야! 너까지 어디가!?”
“아니 저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류연서가 전용 스킬 ‘릴리스의 마력안’을 사용하자 펼쳐지는 범위 안에 빠르게 이동하는 기묘한 마력이 붙잡힌다.
처음 성벽에 오르는 걸 감지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
그녀가 생각했다.
‘저 사람이 하수인의 시선을 끄는 동안, 누군가는 사람들을 밖으로 이끌어야 할 거야.’
그리고 류연서의 또 다른 스킬 ‘테세우스의 실타래’.
지나온 길을 모두 기록하는 이 맵핑 스킬이 있다면 적어도 탈출구를 잃어버릴 일은 없을 터.
그녀가 이 악물고 뜀박질 속도를 높이는 한편, 거침없이 마굴의 심부로 나아가던 선우에게 여미새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데 말임다. 선배, 마스터.>
<···?>
‘왜.’
<아까 그 마스크 쓴 여자 말임다. 좀 이쁘지 않았슴까?>
<모른다.>
‘마스크를 썼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에헤이, 제가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런 건 딱 척 보면 척이지 말임다.>
선우가 한숨을 삼켰다.
‘그래, 자랑이다. 성직자인데 척 보면 척 알아서.’
<크흠···.>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