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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치킨 가챠로 EX급 각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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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드로우
작품등록일 :
2024.07.28 23:41
최근연재일 :
2024.09.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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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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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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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좀만 서두를까?

DUMMY

화들짝 놀란 록시안이 순간 늑대 형태로 변신하려던 그때였다.

가차 없이 그의 머리통을 잡고 눈밭에 처박은 도살자가 힘껏 그의 팔을 잡고 뒤로 꺾었다.


“어어어어억!!”


절반으로 깎인 능력치 레벨에 상태이상 ‘공포’까지 걸린 나머지 너무나 쉽게 돌아가는 오른팔.

이를 본 선우가 속으로 그를 타박했다.


‘야야야, 저항도 안 하는 데 너무 심하잖아.’

<미안하다. 마스터.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길래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아, 그런 거야?’


그런 와중에 도살자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꾼치고는 뭔가 몸이 단단한 거 같다만.>

<뭐, 관련 스킬이라도 있는 게 아니겠슴까?>


거기에 그의 머리채를 잡고 올린 선우가 물었다.


“너 뭐 이상한 짓 하려고 했니?”

“···!!”


그냥 평범하게 말한 그였지만 공포 상태인 록시안에겐 그저 섬뜩한 ASMR이 따로 없었다.

그가 즉시 비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살려주십쇼!!”

“흐으음···.”


눈썹을 까닥인 선우가 그의 머리통을 다시 눈밭에 밀어 넣곤 그의 위에 걸터앉았다.


“억!”

“그런데 꾼치고는 뭔가··· 맥아리가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만난 놈들은 그래도 악바리가 있어서 나름 때려눕히는 맛이 있었다만 이 놈은···.>


도살자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신실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더 못 패서 아쉬워하는 영웅이라니 대체.


신실자가 남몰래 이마를 짚는 사이, 선우가 ‘꾼피모’, 꾼들에게 피해당한 사람들의 모임에 신고된 ‘전석현’의 죄과들을 살펴보곤 혀를 찼다.


“뭐야 고작 묻지마 폭행 2건, 상해 및 약탈 10건?”

<그냥 피라미였나.>


어째 시작하자마자 개꿀이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선우가 괜히 눈밭에 박힌 록시안의 뒤통수를 찰지게 때렸다.


“억!”

<꾼 주제에 뭐 이리 착하게 산 건지 모르겠군.>

<폭행 2건에 약탈 10건이 대체 어딜 봐서 착하게 산 검까···.>


하여간 이런 피라미 한두 명 잡았다고 특성 ‘이야기꾼’이 반응할 리도 없었다.


‘최근 들어 도파민 역치가 올라갔는지 엔간한 걸론 파편을 주지도 않는단 말이지.’


그러다 보니 현재 가진 설화의 파편은 슬라임 먹이로 준 걸 제외하면 약 13개.

선우가 이 퀘스트를 수주하고 더 위로 올라가기로 결정한 건 슬슬 꾼 사냥의 효율이 떨어져 가고 있기 때문도 있었다.


“됐고. 야. 잡힌 김에 인벤토리나 열어.”

“이, 인벤토리 말씀이십니까?”

“왜, 싫어? 아니면 내가 강제로 열어줄까?”

“아닙니다! 당장 열어 드리겠습니다!”


록시안이 덜덜 떨며 인벤토리를 선우에게 공유했다.


“이거라도 빨아 먹을 게 있어야 할 텐데.”

<동감이다.>


이젠 너무도 익숙하게 인벤토리를 뒤지는 그들.

거기에 도살자가 두 눈을 끔뻑였다.


<음?>


마치 이게 왜 여기 있지 같은 목소리.

그가 꺼낸 건 다름 아닌 따스한 온기가 도는 ‘샐러맨더의 마력이 녹아든 물’이었다.

신실자가 두 눈을 끔뻑였다.


<엥? 이게 왜 여기서···.>

‘왜, 귀한 거야?’

<샐러맨더는 원래 고난도 퀘스트에서 희귀하게 등장하는 마수이지 말임다.>


그런데 그 마수의 마력이 녹아든 물이 뜬금없이 꾼의 인벤토리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 철성 지하에 숨겨진 던전에도 한 마리 있을 거다. 거의 다 죽어가긴 하겠지만.>

‘···그런게 왜 여기에 있는 건데?’

<북부 대공이 키우던 애완룡으로 알고 있다.>


선우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그딴 걸 성에서 키운단 말인가.

샐러맨더는 엄연한 괴수 아니야?


신실자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공략의 열쇠 중 하나이기도 하지 말임다.>

‘흐음.’


거기에 선우가 작게 침음했다.


“그런데 얘는 이런 걸 대체 어디서 구했대.”


그가 힐끗하자 눈밭에 코를 묻은 록시안이 움찔했다.


<뭐, 다른 각성자 인벤을 털어먹다가 운 좋게 얻은 게 아니겠슴까.>

“이 못된 놈 같으니라고.”

“억?!”


그가 재차 록시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어쨌든 잘됐슴다. 이건 저희가 쓰고, 지하에 있는 건 나중에 갖다 팔면 일석이조이지 말임다. 샐러맨더 자체가 그리 흔한 마수가 아니다 보니 여기서도 꽤 비싸게 팔릴 검다.>

‘오.’


하여간 요약하면 개꿀템을 얻었단 소리였다.

따스한 온기가 드는 병을 인벤토리로 가져간 선우가 계속 록시안의 인벤을 뒤졌다가 눈을 끔뻑였다.


“헐, 특제 힐링 포션 5개?”


뼈가 드러나도 금세 재생시켜준다는 500만원짜리 포션이 5개나 튀어나왔다.

뿐만 아니었다.


<이건 연금술 포션 세트군.>


각각 불, 얼음, 바람, 물리 내성을 부여하는 상급 연금술 포션 세트에 선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세트 하나가 1500만원 아니었나?”


대체 이놈은 누굴 털어먹었길래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거야.


“너 은근히 노다지구나?”

“······.”


그런 그의 손에 잡히는 따스하고 묵직한 감각.

놀란 선우가 재빨리 그걸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었다.


“!!”


그건 다름 아닌 마치 초승달처럼 휘어진 칼날이 인상적인 곡검이었다.


[아마스의 불기 어린 곡검] [등급: 희귀]

[검게 변색된 세상의 끝. 로도스 화산의 여신을 숭배하던 아마스 교도들이 깊고 깊은 용암에 달궈 제련했다던 불기 어린 곡검]

[교도들의 제련 기술이 부족하여 그 품질은 장인의 작품만은 못하나, 화산의 기운만큼은 확실하게 담겼다.]

[마력을 불어 넣을 시 로도스의 불길을 소환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이 불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단, 그 사거리는 반경 3m로 제한된다.]


“호오···.”


그가 살짝 마력을 불어 넣자 곡도의 칼날 위로 이해할 수 없는 글귀들이 은은하게 점멸한다.


<선배, 이거 꽤 괜찮은 장비로 보이지 말임다.>

<음. 로도스 화산이라면 나도 들어본 적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화산의 불꽃은 강철도 손쉽게 녹여버린다고 하더군.>

<진짜임까?>

<로도스 출신 영웅이 말한 거니까 아마 맞을 거다. ···허풍이 아니었다면.>

<영웅들은 허풍이 좀 많긴 하지 말임다···.>

“그래도 어쨌든 그만큼 뜨겁단 소리 아냐?”


‘잠깐, 그러고 보니.’


곡검의 칼날을 한 번 쓸어내린 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이것만 있으면 언제든 주변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거잖아?’

<그렇다만.>


그의 시선이 눈으로 뒤덮인 철성으로 향했다.


“샐러맨더의 마력이 담긴 뭐시기도 그렇고, 고급 라이터인 이 곡검도 그렇고.”


선우가 그를 힐끗하며 말했다. 


“누가 보면 퀘스트 내용을 미리 알고 빡세게 준비해온 줄 알겠다 야.”


그러자 록시안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의 뒤통수 위로 식은땀이 무지막지하게 흘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는 미처 늑대인간으로 변신하지 못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청부업자란 게 들키면 그땐 진짜 죽는다···!’


록시안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 그의 속을 전혀 모르는 선우가 마지막으로 ‘푸른 등불’을 꺼내 록시안 앞에 놔주며 말했다.


“이대로 두면 얼어 죽을 테니까 등불까진 안 가져갈게.” 

“가,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앞으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한 번만 더 나쁜 짓 하다가 눈에 띄면 그땐 팔 하나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알았죠?”

“네네넵!!”

“옳지. 착하다.”


록시안의 머리를 툭툭 친 선우가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때였다.


[오랜 시간 뒷세계에 악명을 떨치던 청부업자를 철저히 굴복시켰습니다!]

[이제 저 악당은 이날의 기억을 강렬한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당신의 믿을 수 없는 업적에 특성 ‘이야기꾼’이 반응합니다!]

[이야기꾼 전용 보상 ‘설화의 파편 x 3’이 주어집니다!]


“···엥?”


뒷세계에 악명을 떨치던 청부업자?


<마스터, 뒤를 봐라.>

“!!”


선우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저 멀리까지 도망친 ‘전석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짐승처럼 미친 듯이 설원을 질주하는 전석현.

이를 본 선우가 말했다.


“살자야. 다시 저 새끼 잡아.”

<알았다.>


거기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선우의 신형.

한달음에 록시안을 따라잡은 도살자가 손에 쥔 방패를 둔기처럼 내려찍는 그 순간이었다.


“···!”


갑자기 번쩍! 하는 록시안의 신형에 동시에 쾅! 하고 솟구치는 눈발.

눈 조각들이 가라앉은 자리.

핏자국만 남기고 사라진 놈의 모습에 선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얘 어디 갔어.”

<긴급 탈출이군. 아마 어딘가에 아이템을 하나 숨기고 있었던 거 같다.>

“귀환도 아니고 긴급 탈출? 그런 것도 있었어?”

<희귀하지만 있지 말임다.>


어쩐지 인벤을 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던 그였다.

거기다 긴급 탈출이니 뭐니 들어본 적 없는 기능의 아이템까지.

선우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청부업자란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수상하네···.”


도살자가 코를 킁킁거렸다.


<뭔가 냄새가 난다, 마스터.>

<선배도 그렇슴까?>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거기에 신실자가 턱을 긁적였다.


<청부업자라고 하니 생각난 거지만··· 설마 외부인인 건 아니겠지 말임다.>

“외부인?”


그 말에 선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뭐, 다른 세계에서 오기라도 했단 거야?”

<사실이라면 룰을 위반한 게 된다만···.>

<그래도 ‘청부업자’란 수식어가 그렇게 흔한 건 아니지 않슴까?>

<그것도 그렇다.>

“난 그런 부분은 잘 모르니 할 말이 없긴 한데.”


아무래도 이번 퀘스트가 끝나면 호완 길드 쪽을 한 번 파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전석현’은 호완 길드 소속의 꾼이었으니까.


“좀 찜찜하지만, 별수 없나.”


이미 시간이 꽤 지체된 상황이었다.

어쨌든 빨아 먹을 건 다 빨아 먹은 데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퀘스트일 터.

심지어 아직 귀환석이 막히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벌써 귀환했을지도 모르는 청부업자를 찾아 종일 설산을 헤맬 수는 없는 노릇.


“지금은 일단 퀘스트에 집중하자.”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지 말임다.>

<음.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도살자가 다시 철성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머지않은 자리.


“허억···! 허억···! 허억···!”


수풀에 쥐 죽은 듯 숨어 있던 록시안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 시발···.”


그가 탈출 직전 방패에 맞아 찢어진 상처를 움켜쥐고서 숨을 헐떡였다.


“이제, 쿨럭, 어쩌지?”


일순 신발 밑창에 숨겨준 귀환석이 떠올랐으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성좌, 그것도 흉포하기로 유명한 ‘광암의 심판자’의 의뢰를 수주한 이상 이렇게 순순히 꽁무니를 뺄 수도 없는 노릇.

자칫 잘못하면 동족인 늑인족들한테까지 화가 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의뢰를 이대로 강행해?’


전신을 짓누르던 살기를 떠올린 록시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괴물을 상대로?’


“하, 빌어먹을.”


제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낀 그가 중얼거렸다.


“좆됐네.”


*


1시간 뒤, 푸른 등불의 철성.


성벽 곳곳이 무너져 내린 그곳에서는 이미 도착한 각성자들이 성안으로 몰려 들어오는 설산의 괴수들을 상대로 싸움, 아니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뭐야, 이거 너무 쉬운데?”

“등불만 들고 있으면 알아서 놈들이 겁을 먹잖아?”


거기에 길드원들과 함께 싸우던 노경준이 소리쳤다.


“진형 유지하면서 조금만 더 힘냅시다!!”

“네!!”


그런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휘두르자 허공에서 열댓 발의 마탄들이 쏟아진다.


콰콰콰콰! 


그 확실한 후방 지원에 자신을 얻은 전열들이 등불을 앞세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너무도 순조로운 방어전.

그리고 그건 호완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너무 쉽겠는데?”

“그러게. 난이도 12라더니 난이도 6도 안 되는 것 같다 야.”


그런 그때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호완의 팀장, 황성빈이 부팀장에게 물었다.


“아직도 2조 애들 연락 안 돼?”

“예. 메신저를 아예 안 봅니다.”

“씨발, 이 새끼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거기에 부팀장이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혹시 무명에게 모두 당한 건···.”

“···에휴, 시발.”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명을 발견하면 교전하지 말고 우선 알림부터 날리라고 했지만, 모든 상황이 그렇게 뜻대로만 돌아가는 건 아닐 테니까.


‘제기랄, 무명 그 새끼를 철성에 오기 전에 족쳤어야 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철성으로 들어와야 했던 그들이었다.


‘어쩔 수 없지.’


어쨌든 간에 무명도 이 철성에 올 수밖에 없을 터.


‘이렇게 된 이상, 이 철성에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마침 퀘스트의 체감 난이도가 생각보다도 더 낮은 것이 천운이었다.

여유가 생기면 수색 인원을 나눌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그때, 두 눈에 쌍심지를 켠 황성빈이 소리쳤다.


“씨발! 너 뭐야?!”

“네, 네?”


그가 근처에서 고블린을 잡은 유주희에게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이 공터 쪽으로 오는 괴수들은 전부 우리 몫이야. 당장 안 꺼져?!”


그러자 유주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무슨, 이 공터 전부가요?”

“그래. 왜, 불만 있으신가?”

“아니, 저기요. 무슨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여기에 네 땅 내 땅이 어딨···!”

“주희 씨.”


그때 그들 사이에 끼어든 노경준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들 ‘꾼’입니다.”

“···네?”

“그냥 좋을 대로 하게 두는 게 좋아요.”


그 말에 황성빈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거기 그 젓가락 놈은 주제 파악을 할 줄 아는 모양이구만. 응?”


그러자 주변의 꾼들이 저마다 킥킥 웃으며 도망치는 설산 고블린의 숨통을 끊었다.


“하지만 우리만 이러는 게 아니야. 주변을 한번 잘 보라고. 아가씨. 난이도 12까지 와서 아직도 모르겠어?”


황성빈이 입가를 이죽거렸다.


“우린 퀘스트를 함께 깨는 동료 같은 게 아니야. 기여도를 놓고 싸우는··· 엄밀히 말하면 경쟁자지.”


거기에 주변을 둘러본 그녀가 작게 숨을 삼켰다.


“이미 모두가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둔 거 안 보이시나?”


잘 보면 이 드넓은 성내를 두고서 각 길드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서로의 영역을 구축해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런 디펜스류의 퀘스트는 더 많은 괴수를 막을수록 더 많은 기여도가 들어오는 법.

그럼 당연히 더 강하고 더 큰 길드일수록 더 넓은 영역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야 더 많은 기여도를 타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뒤지기 싫으면 얌전히 구석으로 가서 짜져 있어. 어딜 좆소 길드 주제에 시발 주제를 모르고 나대 나대길.”

“주희 씨.”


노경준이 그녀의 얇은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돌아가요.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봅니다.”

“!!”


어느새 웨이브가 끝나 조용해진 가운데. 크고 작은 길드들이 모두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그 시선들을 느낀 그녀가 분한 얼굴로 돌아선 그때였다.


[사악한 괴수들의 첫번째 공세가 종료되었습니다.]

[처치 수에 비례하여 푸른 등불이 더욱더 강하게 타오릅니다.]


그러자 일부 각성자들이 들고 있던 등불이 이전보다 강하게 그 불꽃을 키운다.

그와 동시에 더 넓게 퍼지기 시작하는 온기.


“오오···.”

“더 많은 괴수를 잡을수록 등불도 강해지는 건가.”

“이거 이렇게 되면 너무 퀘스트가 쉬워지는 거 아냐?”

“야, 나 아까 설산 예티한테 등불 깨졌어. 같이 좀 쓰자.”

“아 고추가 들러붙는 건 별론데.”

“이 미친놈이.”


[곧 두 번째 공세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각성자들은 개인 정비를 끝내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내성의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선우였다.

지난 번 특별 퀘스트 때처럼 남들이 모르는 계단을 타고 올라온 그가 그새 갈라져서 다투고 있는 각성자들을 바라보며 짧게 혀를 찼다.


“하여간 하루라도 사이좋게 연합하는 꼬락서니들을 못 봐요. 내가.”

<기여도 보상이 있는 이상 그럴 리가 없지.>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그나저나 전석현인가 뭔가 하는 놈은··· 안 보이네.’


역시 귀환했나.

쩝, 입을 다신 그가 물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여기서 구경하고 있으면 돼?”

<2차 공세가 시작될 떄쯤에 성의 지하 던전이 개방될 검다. 그때 빠르게 지하로 내려가서 던전을 털어먹으면 될 거 같슴다.>

“근데 샐러맨더의 물은 이미 하나 가지고 있잖아. 굳이 지금 던전에 들어갈 이유가 있나?”

<넵. ‘철혈의 아니스’가 지녔던 ‘혼백의 결정’을 먹어야만 하지 말임다.>

“혼백의 결정?”


도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샐러맨더의 마력이 담긴 물’과 ‘혼백의 결정’이 있어야만 등불이 없어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등불이 없어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거.”


마치 등불이 없어질 거란 말처럼 들리는데.


<역시 눈치가 빠르다.>


첫번째 공세에는 고블린만 있던 게 아니었다.

설산 트롤도 있었고, 포악한 예티도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들 모두 만만치 않은 체급의 괴수들.

그럼에도 뿔뿔이 흩어진 각성자들이 손쉽게 그들을 막아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손에 쥔 ‘푸른 등불’ 때문이었다.


그들의 등불이 마치 희망처럼 괴수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또 몰아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손쉬운 격전이었더라도 괴수의 공세는 공세다.

누군가는 그 와중에 등불을 잃어버렸고.

누군가는 실수로 등불을 깨뜨렸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괴수를 많이 처치해 등불을 더욱 키웠고.

누군가는 남이 떨어뜨린 등불을 몰래 훔쳤다.

물론, 그래도 대부분은 제 등불을 잘 간수했을 것이다. 

그만큼 어렵지 않은 공세였으니까.


<그래, 대부분은.>


바로 그게 문제였다.


<그리고 퀘스트는 아무 이유 없이 등불 같은 치트키를 내어주지 않는 법이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콰아앙!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차가운 설산 위로 끼기 시작하는 먹구름.


“어?”

“날씨가 갑자기 왜 이래?”


갑자기 어두워지는 세상에 모두가 당황하길 잠시.

곧 그들 위로 지금껏 없던 붉은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아르키아 북부 지역의 공포인 철혈의 눈보라가 푸른 등불의 철성을 향해 몰아칩니다.]

[주의! 눈보라의 한파에 노출될 경우 상태 이상 ‘둔화’와 함께 종합 능력치 레벨이 30% 감소합니다!]


이를 본 도살자가 말했다.


<마스터. 물을 마셔라.>

“···!”


선우가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샐러맨더의 마력이 담긴 물’을 꺼내 마셨다.


<이제 곧 ‘진짜’ 퀘스트가 시작될 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눈앞으로 출력되는 시스템 메시지.


[거센 눈보라에 버티지 못한 푸른 등불이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뭐, 뭐야.”

“저게 무슨 말이야?!”


당황한 사람들 사이로 하나둘 불꽃들이 사그라지고.


“등불, 등불이···!”

“등불이 꺼졌···!”


어느덧 짙은 어둠을 밝히던 푸른 빛의 상당수가 그 자리에서 사라진 순간.


“■■■■■■■■■···!!!!”


괴수들의 울음소리가 붉은 눈보라를 타고 울려 퍼지고.


“음, 살자야.”


벌써 아비규환인 각성자들의 모습에 선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 살짝만 서두를까?”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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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나도 모르겠다 +7 24.09.11 4,994 112 13쪽
33 위?기 +4 24.09.10 5,140 119 17쪽
32 역지사지 +6 24.09.09 5,272 121 12쪽
31 나의 이름은 +13 24.09.08 5,611 129 19쪽
30 철성의 정상화 +6 24.09.07 5,765 129 17쪽
29 히든 스킬 +6 24.09.06 5,964 134 17쪽
» 좀만 서두를까? +6 24.09.05 6,110 136 19쪽
27 잠시만 얼굴 좀 봅시다 +6 24.09.04 6,431 139 17쪽
26 내겐 공략본이 있어요 +6 24.09.03 6,594 140 16쪽
25 때아닌 선물 +8 24.09.02 6,763 139 18쪽
24 꾼이 되었다 +5 24.09.01 6,857 140 17쪽
23 맛있게 빨아 먹자 +9 24.08.31 7,011 153 18쪽
22 청부업자 +18 24.08.30 7,131 151 16쪽
21 약 주고 병 주고 +8 24.08.29 7,166 159 17쪽
20 너의 이름은 +9 24.08.28 7,198 156 18쪽
19 성염술 +12 24.08.27 7,296 160 13쪽
18 충분하고도 남는다 +5 24.08.26 7,263 149 12쪽
17 정답이지? +8 24.08.25 7,384 156 15쪽
16 자랑이다 +5 24.08.24 7,436 145 13쪽
15 이제 가볼까 +6 24.08.23 7,557 150 17쪽
14 루미네의 마굴 +3 24.08.22 7,666 1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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