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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무(율무) 님의 서재입니다.

T.E.S(true ending seeker)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라이트노벨

율무(율무)
작품등록일 :
2012.11.24 17:41
최근연재일 :
2014.02.13 18:1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779,364
추천수 :
10,203
글자수 :
1,738,667

작성
13.04.04 17:13
조회
4,892
추천
52
글자
19쪽

chapter. 13 - 과거와 미래의 천칭

DUMMY

“여기는 어디지?”


“그건 모르겠다. 주인.”


“응. 나도 모르겠어.”


율하의 그 질문에 콜린도, 아지단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나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모른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곳은 오직 어둠만이 남아 있을 뿐인 장소.

아니, 그것조차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그들이 느끼는 것은 그들이 딛고 선 이 땅. 약간은 질퍽거리는 감각이 전달되는 진흙같은 땅만이 끝없이 펼쳐질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무서워.”


한 동안 그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 볼 뿐 어디론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그들.

그 가운데 콜린이 양 손으로 꽉 하니 율하의 머리칼을 붙잡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니, 중얼 거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만이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그 방향으로는 고개 조차 돌리지 못한 채 그저 율하의 옆에만 꼭 붙어 얼어 붙는다.


“무서워? 뭐가?”


“응. 율하는...모르겠어?”


콜린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용기를 내어 고개를 다시 돌린 다음 어둠속의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눈을 꼭 감는다.


“아무것도...아니, 잠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바로 그 순간 율하는 콜린이 가리킨 그 방향에서 알 수 없는 이상한 소음이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착각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단지 콜린이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에 자신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건지도 모른다.


“......”


“뭐야, 이건.”


“착각이 아닌가?”


“무, 무서워-”


들려온다.

아니 이걸 들려온다고 할 수 있을까?

귓가에 무언가가 붙어서 간질이는 것 처럼 소근 거리는 느낌.

처음에는 아주 작아서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그 소곤거림이 점차 커진다.


“유, 율하야. 나, 이거- 무서워.”


콜린은 그 소곤거림을, 그 기이한 느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감지하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숫제 율하의 머리칼에 붙은 채 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숙여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녀. 지금까지 그녀가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


지난 번, 아니 어제 그렇게 무수한 악령들에 둘러싸였을 때도, 근원의 화신과 마주했을 때도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 심지어는 혈두오공 할미와 마주했을 때도 두려워하고 꺼려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을 가두는 그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콜린. 괜찮은 거야?”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이나는 느끼지 못해?”


“기분 나쁜 소리가 윙윙거리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것뿐인데, 아냐?”


“아지단은?”


“나 역시 같다 주인. 기분 나쁜 소리가 울리기는 하지만 그 뿐. 아니, 애당초 나는 마도서니 의미는 없지만.”


“역시 그렇군. 이건 나하고 콜린만 느끼는 거군.”


“무슨 소리?”


“아직은 잘 몰라. 하지만 이건?”


“이건?”


“...아냐. 아무것도.”


율하는 입을 다문다.

그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리가 전달되는 어둠의 저 너머를 바라본다.

그도 콜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역시 그 정체를 안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저기에 있는 것은 불가해 그 자체다.

율하 그가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그리 많은 건 아니라고 해도 저기에 [있는]것은 그런 영역 자체를 벗어나 있다는 그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율하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대정령이 어째서 자신들을 이런 곳으로 보냈는지, 저기에 있는 게 무언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자신들이 어째서 이런 곳을 헤매고 있어야 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함부로 그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말을 하는 순간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만 같았기에 그는 거기에 대해 화제를 돌렸다.


“이나, 혹시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


“응? 응. 내가 가능한 거라면.”


“혹시 길을 찾을 수 있어?”


“길?”


“응. 이나라면 혹시 가능할까 싶어서.”


“모르겠지만 부탁 해 볼게. 잠깐만.”


이나는 율하가 하는 말을 금방 알아듣고 오른 손을 들어올린다.

그와 함께 살짝 들어 올려지는 옷자락이 팔랑거린다.

이제는 꽤 익숙하게 느껴지는 청량한 바람이 일순 모여들었다가 흩어져 흘러들어간다.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어디론가 흘러가는 바람의 길.

그 앞에 반짝이는 그것은 정령인가?


“이쪽인 거 같아?”


바람이 가리키는 길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뭔가가 있다고 여겨지는 방면의 반대편을 가리킨다.


“그거, 정령?”


“응. 아무래도 이 장소 역시 정령계와 연결이 된 모양이야. 하긴, 대조상님께서 보내신 곳이니 연결이 되어 있겠지.”


“아아, 고마워.”


“이런 걸로는 그런 말을 할 필요 없어. 당연한 거니까.”


천천히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며 먼저 앞서 걸음을 옮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유지한 채, 아니 실은 무척이나 가깝게 붙어 그 뒤를 따르는 율하.

아직까지 두려움에 얼어붙은 콜린과 별 말 없이 침묵을 유지하며 그런 그들의 사이에 끼어 둥둥 뜬 아지단등 그 어둠으로 가득 찬 세계를 한 줄기의 바람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걸어가는 그들. 과연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꽤나 먼 것 같아.”


그런 적막함이 어색한 것일까?

그녀는 계속 걸음을 옮기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건 율하도 어느 정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아까 전 부터 그들이 계속 바람 길을 따라서 빠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걸음을 옮긴 것 같았지만 끝은 고사하고 별 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은 검은 공간.


“아직 끝을 못 찾은 거야?”


“응. 출구는 고사하고 안전한 곳도 안 보여.”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며 잠시 거기에 걸음을 멈추어 선다.


“안전하지 않아도 좋은데...적어도 빛이 있는 곳이라도 먼저 찾으면 좋겠어.”


“빛?”


“응.”


“정령의 말로는 그게 더 힘들 것 같다고 하는데?”


“그정도야?”


“응. 여기는 그런 것 같아.”


“어딘지는 혹시 알 수 있을 것 같아?”


“음...아닌 모양이야.”


천천히 고개를 젓는 이나.

그 앞에서 율하 역시 가볍게 한 숨을 내 쉴 수 밖에 없었다.

대체 뭐란 말인가.

대정령은 무슨 생각으로 자신들을 이런 알 수 없는 곳,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자신들을 보낸 걸까. 여기에서 대체 무엇을 얻으라는 것일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그래, 알겠어. 그것만으로도 고마워.”


“율하.”


“어?”


그녀는 율하의 고맙다는 말에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그의 모습. 사실 그녀는 받아들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믿기지는 않았다. 그래, 사실 이것도 꿈인지도 모른다. 대조상이 자신을 지금까지 무수하게 시험했던 것 처럼 이것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율하 뿐이 아니다. 지금은 더욱 더 분명하게 보이는 다른 둘 율하의 왼쪽 머리칼에 달라붙은 소녀의 귀령과 그와는 달리 조금 거리를 둔 채 공중에 둥실 뜬 소년 모습의 정령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을 위해, 단지 자신을 위해 그가 이렇게 까지 해 줄 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며 희미한 미소만을 지어 보이는 그녀.


“......”


“왜, 왜 그래?”


그녀의 알송달송하고 희미한 미소에 긴장하는 율하.

하지만 그녀는 그저 그런 미소만을 지어 보일 뿐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나?”


“한 가지 물어 봐도 괜찮아?”


“뭐, 뭔데?”


쿡-

그녀는 갑자기 손을 내 뻗어 율하의 가슴께를 쿡 하니 찌른다.


“뭐, 뭐야?”


“그냥. 진짜 같아.”


“진짜 같다고? 뭐가?”


“너도, 뒤의 귀령과 정령도. 정말, 진짜 같아.”


“......”


순간 율하는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래, 진짜 일리가 없잖아. 이것도 전부 대조상님의 시험.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 날 리가 없으니까.”


“어?”


전달되는 옅지 않은 슬픈 미소.

처음 본다.

미소조차도 그리 많이 지어 보일 일이 없는 그녀.

그래도 최근 들어서, 그래 적어도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그녀가 그에게 만큼은 미소나 조금은 풀어진 표정을 자주 보여주는 편이라고는 해도 애초에 감정표현이 그리 풍부한 편이 아니었다.


“항상 그랬으니까. 응. 아마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해.”


“이나. 너-”


하지만 율하를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돌연 그 가까운 거리에서 꽉 하니 자신에게 매달리듯 안겨 드는 그녀.


“......”


“어? 어?”


“알아. 이것 역시 내 환상. 너도, 네 옆에 모두도, 지금의 상황도 전부 내 나약한 정신을 읽고 대조상님께서 만들어 내신 약한 기대 심리. 하지만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렇게 진짜 같을까?


“끄응.”


“......”


그녀는 아마도 지금의 상황을 환각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닐 것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 시험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반인반요로서 요인의 규칙에 따라 내계에서 대조상, 즉 그가 대정령이라 부르는 그 존재에게 시달림을 받았다고 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래,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인기 좋군. 주인.”


“아지단 너......”


“아무래도 내가 끼어들 문제는 아니니까 모습을 감추어 주겠다. 수호령...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으니 상관없으려나.”


“야.”


그렇지만 단지 그 말을 남기며 연기처럼 자신의 모습을 흩어 사라지는 아지단.

율하는 한숨을 내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상황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한 가지, 주어진 상황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또 왜 이런 시련이 주어지는 걸까?


“끄응.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율하는 자신의 상체 전반에 느껴지는 무겁지 않은 무게감과 온기, 그리고 자신과는 또 다른 향을 느끼며 그녀의 머리칼 너머를 바라보았다.

사실 상황이 급한 건 아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어딘가를 급하게 간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따뜻하네. 환각인데도 말야.”


“후우,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잠시 고개를 들어 바로 앞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

가까운 거리.

그녀의 숨결이, 언어와 함께 전달되는 가벼운 공기의 움직임이 코끝을 스친다.

아련하게 자신을 뚫어 보는 시선.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살짝 돌리며 조금 붉어진 얼굴이 되는 율하.


“그럴 리가 없으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대체 무엇이?”


“율하가 여기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응, 그러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잖아? 그럴 이유도 없고. 그릴 리도 없고.”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하는 건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왜 그런 어둡고 희망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걸까.


“......”


“항상 그랬으니까. 내가 필요할 때는 없었으니까.”


문뜩 떠오른다.

그녀의 아버지인 정주가 했던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때는 가볍게 생각했지만 그건 그리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 지도 모른다.

반인반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

어렸을 때 부터 그렇기에 같이 지냈던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준 것은 아니기에 그 사정까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끄응.”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자신은 환상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환상인지도 모른다.

현실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가상의 세계였고, 지금의 자신의 모습은 엄밀하게 말해 아바타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녀가 말하는 것 처럼 자신은 환각, 혹은 환상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제외한다고 하면 실재하는 자신은 그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좋은 걸까? 그가 조금만 더 이성에 대한 경험이 있었으면 알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경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아직 남아 있네.”


“아아. 어쩌다 보니 말이야.”


“보통은 이 정도 깨달으면 대조상님께서 환각을 지우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텐데.”


“그러게.”


“......”


“으음.”


“혹시 진짜?”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율하는 어깨만을 살짝 으쓱 해 보인다.


“뭐야, 그 미지근한 반응은.”


“모든 것은 불확실하잖아? 나라고 해도 내 존재를 확신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나를 있다고 생각해도 꼭 그게 참이라는 확신도 없고.”


“.....에?”


순간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아니, 그 뿐이 아니다.

슬쩍 멀어지는 몸.

약간 아쉬운 느낌이 먼저 들었지만 율하 역시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


한동안 유지되는 침묵.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두 남녀는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침묵과 어색함 속에서 흘려보내야 했다.


“진짜였어? 율하, 너 정말로 진짜야?”


“일단 그런 회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를 제외하면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 조차 환각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래도 상관 없어. 그게...더 마음이 편하다면 말야.”


“...우으.”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그 자리에 무너진다.

뾰족하게 드러난 귀 끝까지 새빨개진 그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아무리 환각이라, 환상이라 생각을 했다고 해도 자신은 대체......


“이, 잊어 버려.”


“아아.”


“그, 그렇다고 그렇게 즉시 그래 버리면.”


“그, 그럼?”


“......”


“...끄응.”


“모, 몰라.”


“이나야.”


“......”


율하는 곤란해 하는 표정을 하면서도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머뭇거리며, 그리고 율하의 얼굴을 아직 올려다 보지는 못하지만 그가 내민 손을 바라보는 그녀.


“데리러 왔어.”


“진짜로 율하구나. 정말의 율하야.”


“응. 일단은 그래.”


“어째서?”


“어?”


“어째서 여기까지 온 거야?”


“......”


“어째서 율하가 날 데리러 온 거야.”


“글쎄.”


그는 그녀가 원하는 답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지, 무엇을 아파하는 지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그녀와 알고 지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있었다.


“대답해 줘. 어째서 율하가...”


“나 뿐이 아냐.”


“율하만이 아니라고?”


“응. 나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건 이나네 아버님.”


“아빠가? 아빠가 도와달라고 했다고? 율하에게? 그 아빠가?”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평소 조금은 날카롭게만 보였던 그녀의 눈이 순한 양처럼 커져 크게 흔들린다.


“응. 물론 지금은 이나네 어머님을 데리러 가셨지만 방금 전까지는 나하고 같이 있었어.”


“아빠가 엄마를?”


“내가 듣기로는.”


“말도 안 돼. 이것도 환각이지? 그런 일이 일어 날 리가 없잖아.”


그녀는 다시 한 번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사실일까 생각했지만 그래, 역시 이건 환상이었던 모양이다.

눈앞의 소년이 하는 이야기는 마치 꿈과 같은 이야기다.

아빠가, 그 자존심 강한 아빠가 남에게 부탁을 할 리가 없다.

그리고 엄마에게 무언가를 이야기 하러 움직일 리가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런 일이 일어 날 리는 없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앞에서 울리는 소년의 목소리.


“그런 일, 일어날 리 없으니까.”


“이나.”


“하지 마! 더 이상 그런 거짓말로 날 속이려 하지 마!”


“이나.”


“괴롭히지 마!”


탁-

그녀는 강하게 율하를 밀쳐 낸다.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강한 힘에 휘청 하니 뒤로 밀리는 그.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렇게 까지 완고하게 믿지 않는 것일까?

조금은 화가 날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율하는 화가 나지는 않았다.

대신 안타까웠을 뿐이다.

평소에 보였던 그녀의 강하고 무감정한 모습과 지금의 이 약해 보이는 모습의 갭이 너무나도 커서. 그리고 또 그것은 옛날의 어떤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에.


“......”


그렇기에 율하는 더 이상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그녀의 손을 잡는다.

약간은 차갑고 보통의 여자애들보다는 굳은살이 박인 것이 느껴지는 손.


“그럴 리가...없잖아.”


“적어도 환각은 온기를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해.”


“율하.”


“내가 환각인지도 모르지. 이나의 말 대로 그럴 지도 몰라. 하지만 이나가 지금 느끼는 온기만큼은 진짜라고 생각해.”


“......”


그녀는 고개를 든다.

아직 있다.

아무리 부정해 봐도 사라지지 않는다.

눈 앞의 소년은,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언제서 부턴가 들어와 있는 이 환상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려 하지 않는다.


“이나네 아버지도, 어머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나는 잘 모르지만 속으로는 그랬을 그러 생각해.”


“하지만 두 분은 항상 그랬어. 아빠도, 엄마도 내가 필요할 때 있었던 적이 없어. 항상 두 분의 일에만 바빴어. 지금까지 항상.”


“지금부터는 그렇지 않을 거야.”


“아니, 그럴 거야.”


"......"


“어떻게 장담해? 설사 율하 네가 진짜라고 해도, 너 만큼은 환상이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 그걸 장담하는데?”


“그건-”


율하는 거기에 대해 뒷 말을 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순간 망설였다.

물론 거기에서 할 수 있는 답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그게 정말로 일어날 지 아닐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거기에서 할 수 있는 말, 바라는 말이 단 하나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약간 마음을 먹고 그 말을 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악!!”


“뭐?”


“에?”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콜린.

아니, 그녀의 비명만이 아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울린다.

순식간에 반전된 세상.

어둠으로 가득 찼던 그 세계는 일순 아래쪽부터 붉은, 너무나도 불길한 붉은 기운을 포함한 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붉은 하늘의 바로 아래, 지금까지 그들이 지나쳐 왔던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 두 방면에서 동시에 드러나는 두 개의 거대한 그림자.


-...때가 왔다.-


-아니, 멀었다.-


도저히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이 거대한 두 개의 무언가가 서로를 바라본 채 대치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환각인 상태라 여겼을 때 조금 더 부끄러운 짓을 시키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어쩐지 제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아 일단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조금 더 대담해도 괜찮다고 하시면....(지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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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Chapter. 23 - 그날 본 용왕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6 13.11.26 1,638 46 26쪽
152 Chapter. 23 - 그날 본 용왕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8 13.11.25 1,349 52 25쪽
151 Chapter. 22 - 신시에서.. +6 13.11.23 1,906 44 25쪽
150 Chapter. 22 - 신시에서.. +4 13.11.22 1,637 44 24쪽
149 Chapter. 22 - 신시에서.. +7 13.11.21 1,644 42 25쪽
148 Chapter. 22 - 신시에서.. +5 13.11.20 1,577 42 25쪽
147 Chapter. 22 - 신시에서.. +8 13.11.19 1,192 44 24쪽
146 Chapter. 22 - 신시에서.. +8 13.11.18 1,480 48 24쪽
145 Chapter. 22 - 신시에서.. +5 13.11.16 1,529 42 24쪽
144 EP.3 epilogue - 맑음, 흐름, 비, 그리고 다시 맑음. +5 13.11.15 1,468 48 26쪽
143 chapter. 21 - 꿈의 온도 +7 13.11.14 1,818 58 25쪽
142 chapter. 21 - 꿈의 온도 +4 13.11.13 1,817 43 24쪽
141 chapter. 21 - 꿈의 온도 +3 13.11.12 1,917 48 25쪽
140 chapter. 21 - 꿈의 온도 +5 13.11.11 1,826 42 26쪽
139 chapter. 21 - 꿈의 온도 +9 13.11.05 1,680 54 18쪽
138 chapter. 21 - 꿈의 온도 +7 13.11.03 2,135 40 19쪽
137 chapter. 21 - 꿈의 온도 +4 13.10.31 1,638 42 18쪽
136 chapter. 21 - 꿈의 온도 +5 13.10.28 1,838 44 20쪽
135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7 13.10.27 1,634 48 17쪽
134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7 13.10.26 1,883 49 22쪽
133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6 13.10.24 1,171 51 19쪽
132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8 13.10.20 1,353 47 26쪽
131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6 13.10.17 1,575 52 25쪽
130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6 13.10.14 1,380 46 24쪽
129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7 13.10.09 1,991 54 20쪽
128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6 13.10.07 1,267 51 16쪽
127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6 13.10.05 1,311 52 16쪽
126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8 13.10.02 1,928 44 19쪽
125 chapter. 20 - 사신의 목을 비틀어도 죽음은 온다. +6 13.10.01 1,841 49 20쪽
124 chapter. 19 -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9 13.09.28 2,485 44 17쪽
123 chapter. 19 -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8 13.09.09 1,509 51 19쪽
122 chapter. 19 -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8 13.09.04 5,796 61 19쪽
121 chapter. 19 -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5 13.08.30 3,434 59 23쪽
120 chapter. 19 -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3 13.08.27 5,624 66 16쪽
119 chapter. 19 -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11 13.08.20 5,832 59 23쪽
118 chapter. 18 - 되살아난 망령 +7 13.08.18 4,342 46 19쪽
117 chapter. 18 - 되살아난 망령 +29 13.08.11 4,659 64 19쪽
116 chapter. 18 - 되살아난 망령 +5 13.08.08 3,606 63 18쪽
115 chapter. 18 - 되살아난 망령 +9 13.07.31 3,576 74 24쪽
114 chapter. 18 - 되살아난 망령 +10 13.07.30 5,273 72 29쪽
113 chapter. 18 - 되살아난 망령 +6 13.07.29 5,883 65 26쪽
112 chapter. 17 - 낙원의 파수꾼 +15 13.07.27 4,329 70 24쪽
111 chapter. 17 - 낙원의 파수꾼 +16 13.07.26 5,451 78 25쪽
110 chapter. 17 - 낙원의 파수꾼 +6 13.07.25 2,117 64 24쪽
109 chapter. 17 - 낙원의 파수꾼 +11 13.07.24 1,992 68 25쪽
108 chapter. 17 - 낙원의 파수꾼 +9 13.07.23 2,907 72 24쪽
107 chapter. 17 - 낙원의 파수꾼 +11 13.07.22 2,324 70 27쪽
106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7 13.07.20 2,744 65 26쪽
105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6 13.07.19 1,982 81 25쪽
104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9 13.07.18 1,981 76 27쪽
103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5 13.07.17 1,928 57 28쪽
102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5 13.07.16 3,785 93 29쪽
101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7 13.07.15 4,336 73 23쪽
100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8 13.07.13 5,661 80 24쪽
99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7 13.07.12 4,984 72 25쪽
98 chapter. 16 - 역습의 흑랑 +6 13.07.11 2,659 79 21쪽
97 chapter. 15 - 인왕의 주인 +5 13.07.10 4,458 74 23쪽
96 chapter. 15 - 인왕의 주인 +5 13.07.05 5,142 56 21쪽
95 chapter. 15 - 인왕의 주인 +8 13.07.03 6,051 54 18쪽
94 chapter. 15 - 인왕의 주인 +3 13.07.02 4,895 52 16쪽
93 chapter. 15 - 인왕의 주인 +6 13.06.30 4,319 62 20쪽
92 chapter. 15 - 인왕의 주인 +9 13.06.28 5,239 62 21쪽
91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6 13.06.27 3,748 74 35쪽
90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3 13.06.22 4,973 56 16쪽
89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11 13.06.19 4,085 64 18쪽
88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3 13.06.16 5,244 73 16쪽
87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3 13.06.08 3,653 59 18쪽
86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8 13.06.01 4,435 58 19쪽
85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9 13.05.27 4,209 56 14쪽
84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8 13.04.30 2,613 59 11쪽
83 chapter. 14 - 빠르게 흔들리는 시계추의 아래에서 +5 13.04.27 5,940 60 18쪽
82 EP.2 epilogue - 흐르는 밤, 흐르는 마음. +10 13.04.09 2,628 59 17쪽
81 chapter. 13 - 과거와 미래의 천칭 +8 13.04.06 4,985 60 17쪽
» chapter. 13 - 과거와 미래의 천칭 +6 13.04.04 4,893 52 19쪽
79 chapter. 13 - 과거와 미래의 천칭 +9 13.04.02 3,264 5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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