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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러 개의 운명 (6)

구매해도 될 거라 리저드의 속삭임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그가 물었다.

“어떻게, 초보 여행자를 위한 마검사 패키지로 하시겠소?”

지훈이 리저드를 힐끗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청아한 질서의 결정 3개나 조각 300개 되겠소. 아시겠지만 반품은 사절이오.”

[ 초보 여행자를 위한 마검사 패키지를 구매하시겠습니까? 계정당 1회만 구매 가능하며 한 번 사용하면 반품이 불가하니 재고 후 진행해 주십시오. ]

“예.”

대답과 동시에 청아한 질서의 조각 300개가 빠져나갔다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대신 장비가 습득되었다는 정보가 차례대로 주어졌다. 지훈은 빠르게 해당 내용을 확인했다.

[ 여행자의 마력의 장검 – 일반

공격력 8, 마력 증폭 x1.4

방어 5, 내구 50

마법 부여 2 가능, 마석 소켓 1

사용된 재료로 인해 마력을 증폭시키는 기능이 내장된 법사, 술사용의 장검. 마검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초보 여행자들에게 어울리는 장검이다. ]

[ 여행자의 로브 – 일반

방어력 9, 마법 방어력 10, 내구도 30

마법 부여 2 가능, 마석 소켓 1

마법을 사용하는 초보 여행자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수준의 로브. 제작에 사용된 재료의 배합 비율 때문에 방어력에 비해 마법 방어력이 조금 더 높다. ]

[ 여행자의 장갑 – 일반

방어력 3, 마법 방어력 3, 내구도 30

마법 부여 1 가능, 마석 소켓 1

여행자의 로브와 짝을 이루는 장갑. 마법을 사용하는 초보 여행자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수준이다. ]

[ 여행자의 신발 – 일반

방어력 4, 마법 방어력 3, 내구도 30

마법 부여 1 가능, 마석 소켓 1

여행자의 로브와 짝을 이루는 신발. 마법을 사용하는 초보 여행자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수준이다. ]

[ 초급 방어 증강의 마법진 ]

다른 장비들은 모두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마법진은 재능이 없어 상세한 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만 떠 올랐다. 이름만으로도 그 효과를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확인은 불가했다.

“좋은 거래였소.”

“수고하세요.”

인사와 함께 지훈이 돌아서자 리저드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마법진은 저희 같은 엘로힘들 혹은 마법진 각인을 제대로 배운 자들만 확인할 수 있어요. 아니면 마법진 확인서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건 비싸요. 초급 방어 증강 정도는 제가 확인할 수 있으니 정보를 공유해 드릴께요.”

그녀의 말에 지훈은 은색 선들이 복잡하게 그려진 베이지색의 매끈한 종이 세 장을 그녀 손에 넘겼다. 그녀가 그걸 받아들자마자 메시지 창이 떠 올랐다.

[ 리저드가 정보 공유를 요청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

‘예.’

승인하자 그녀가 확인 중인 마법진 정보가 공유되었다.

[ 초급 방어 증강의 마법진 (방어구용)

방어력 증가 3~6

방어력 증가 마법이 새겨진 마법진. 마법진을 각인할 수 있는 이들에게 마법 부여 여력이 남은 방어구와 함께 가져가 각인을 요청하자. ]

“가장 기본적인 방어 마법진이에요. 방어구에만 각인 가능한 것이고, 아쉽게도 추가 효과는 없나 보네요.”

“추가 효과요?”

“네. 방어 증강 마법진이라도 다른 효과도 동시에 부여되는 ‘중첩 마법진’도 있거든요. 아드리안 아저씨가 중첩 마법진 제작의 대가에요. 구매했던 목걸이에 새겨 넣을 마법진에는 한 번에 여섯 개 효과를 동시에 부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참고로 전 네 개가 한계였고요. 뭐, 지금이야 몸이 이러니 마법진 하나도 그리기 어렵지만요.”

하지만 지훈은 다중 마법진을 그린다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는 물론 네 개의 마법진을 동시에 그려 넣는다는 게 얼마 대단한지 알지 못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 들이는 걸로 끝이 났다. 지훈의 그런 반응에 리저드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각인을 할 수 있다 해도 당장은 장비가 없어서 힘들어요. 일단 이 마법진들을 각인하러 각인소로 가요. 각인만 한다면 지금 장비들은 초기 장비로 사용하기에는 괜찮으니 바로 마을 밖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아까전에도 들었던 것만 같은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드디어 사냥을 갈 수 있다는 말에 이내 지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물약류는 좀 사고 가야겠네요.”

그 정도 쯤이야. 지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나저나 보통 장비는 어떻게 사면 되는 거죠? 결정? 돈?”

“장비의 구매에는 돈과 결정 두 가지 재화 모두를 사용 가능해요. 공적치를 이용하면 제국에서 보관중인 일부 장비도 구할 수 있지만 그건 당장은 불가능하니 넘어가고요. 대략적으로 보면 고급 장비처럼 금액이 큰 것은 결정을, 기본 장비나 재료와 같은 금액이 작은 것은 돈을 사용한다고 보시면 돼요.”

돈으로 구매하는 것과 결정으로 구매하는 것의 차이가 확 와닿는 설명에 지훈이 고개를 끄덕 였다.

“하지만 결정은 한 가지 단점이 존재해요. 돈은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결정은 결코 그렇지 않거든요. 음, 단탈리안, 혹시 질서 결정의 가장 큰 소모처가 어딘지 아세요?”

곰곰이 생각하던 지훈이 자신 없는 말투로 답했다.

“아이템의 구매?”

리저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임무 완수 대체?”

마찬가지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여행자분들이 질서의 결정을 가장 많이 소진하는 곳이 장비의 승급 시도에요. 여행자분들은 지른다고 표현하더라고요. 일반 장비나 마법진 각인은 결정으로 승급한다는 게 불가능하지만, 마석은 가능하거든요. 장비별로 마석을 장착할 수 있는 수가 정해져 있다 보니 한 장소에 더 좋은 마석을 박으려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마석은 같은 방식의 마석 두 개를 융합하거나 하나의 마석에 새로운 결정의 힘을 더해서 더 강한 마석을 만들 수 있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 전개에 지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확률 싸움인 건가요?”

“맞아요. 승급을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해서 마석을 잃을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기존 마석에 새로운 마석이나 결정에 내재된 힘을 강제로 욱여넣는 것이다 보니 파장이 안맞거나 잘못된 조합일 경우 폭발할 수도 있거든요.”

확률성 게임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지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확률이 얼마나 되나요?”

“딱 정해진 확률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좋은 것일수록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으니 폭발할 확률이 더 높겠죠. 게다가 성공을 한다고 하더라도 두 성질이 최상의 조건으로 융합될 확률은 낮아요.”

대략적인 방식을 이해한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둥근 건물 중 한 곳에 멈춰선 리저드가 문 바로 위에 그려진 마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엑스 자로 교차 된 두 자루의 붓이 다비드의 별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흰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여기가 각인소예요. 새겨진 그림이 검은 바탕에 흰 색으로 그려져 있으면 저희 제국민들이, 흰 바탕에 회색이나 검은 색이면 여행자들이 운영하는 곳이니 참고 하시구요.”

상업지구의 건물들은 일반 집처럼 취급되어서인지 관청이나 길드 같은 건물들과는 달리 현관문이 존재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원형의 방 가운데에 원형의 데스크가 있었고, 그 데스크에선 안경을 쓴 백발의 케루빔 남성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테이블 여덟 개가 둘러서듯 놓여 있었는데, 그 중 네 개에서 다른 이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리저드가 데스크로 바로 다가가 남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작업대를 사용하려 하는데요.”

리저드와 지훈을 슥 쳐다본 직원이 물었다.

“직접 하는가 보군. 초급이요?”

“네. 세 개를 작업할 거예요. 초급 각인 용액 세 개도 필요하고 장비도 대여해야 해요.”

“사용료 개당 20동, 각인 용액 병당 40동, 3회분 장비 대여료 80 동. 합해서 2은 60동 이오.”

리저드가 지훈을 쳐다보자 지훈이 대신 지갑을 열었다. 돈을 받아든 남성이 방 한쪽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리저드에게 각인 장비를 건넸다.

“저 테이블을 사용하시면 되오.”

“네.”

리저드의 요청으로 지훈은 마법진 3장과 로브와 장갑, 신발, 그리고 질서의 조각 네 개를 건넸다. 리저드는 우선 마법진 하나와 로브, 조각 두 개를 꺼내어 작업대 위에 올려두었다.

“이제 작업을 좀 할께요.”

그 말을 끝으로 리저드는 입을 닫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대 구석에 있는 석판에 질서의 조각 하나를 올려두고 망치로 두드려 가루를 만들었다. 그 가루에 각인 용액을 조금씩 섞어 점도를 확인하면서 개어 둔다. 리저드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붓처럼 생긴 것에 그 혼합물을 묻혀 신중하게 마법진의 은빛 선을 따라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붓이 지나간 은색 선이 은은한 빛을 일으키며 붓이 지나갔음을 알렸다. 모든 선이 빛을 발하자 리저드는 그 마법진을 뒤집어 옷에 밀착시키고 자신의 마력을 불어 넣어 뒤로 비치는 빛을 따라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강약을 조절해 가면서.

처음 보는 마법진 각인에 지훈은 숨소리도 죽인 채 그녀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마법진이 빛을 모두 잃기까지 걸린 시간은 3분여. 그동안 마력을 모두 소진한 것인지 리저드가 마력을 채우겠다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일어나 장갑에도 마법진 각인을 시작했다.

멍하니 두 번째 각인의 모습을 쳐다보던 지훈이 리저드 몰래 데스크로 다가가 남성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혹시 각인 장비를 팔기도 하나요?”

리저드를 힐끔 쳐다본 남성이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이오. 우리 가게에는 초급, 중급, 고급 장비까지 있지.”

“각인 장비에도 등급이 있군요. 고급 장비가 있으면 초급 마법진도 각인이 가능할까요?”

남자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능은 하오만 그닥 추천하고 싶진 않소. 각인 장비는 사용하다 보면 내구도가 떨어지는데, 등급과는 무관하게 각인 작업의 횟수에 따라 하락하는 거라오. 멀리까지 보고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저 처자의 능력을 고려할 때 중급 정도면 충분할 거요.”

[ 마법진 각인 장비 (초급)

초급 마법진을 장비에 각인하는 데 필요한 장비 세트

- 비용: 11 은

- 잔여 각인 횟수: 50

- 사용 조건: 초급 마법진 각인 기술 보유 ]

[ 마법진 각인 장비 (중급)

중급 이하 마법진을 장비에 각인하는 데 필요한 장비 세트.

- 비용: 1 금 1 은

- 잔여 각인 횟수: 50

- 사용 조건: 중급 마법진 각인 기술 보유 (단, 초급 마법진 각인은 초급 마법진 각인 기술 보유 시에도 가능) ]

각인 장비를 쳐다보던 지훈이 고심하다 초급과 중급 하나씩을 고르고 대금을 치렀다.

“뭐해요?”

어느새 장갑에 마법을 부여하는 작업을 끝낸 리저드가 지훈의 뒤에 와 있었다.

작가의말

형평성 문제로 이전 화 '초보 여행자를 위한 마검사의 길 패키지'에 포함된 동전의 양을 3만 골드에서 300 금으로 하향 조정합니다. 금은동으로 하려니 계산이 잘 안되네요.

그리고 금화 1개는 은화 10개, 은화 1개는 동화 100개의 가치를 지닌다는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