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 사자(使者)
지독한 악몽 같았던, 길고 길었던 하루가 지나갔다.
처절할 정도로 간절함을 담아 날려 보낸 나의 화살은 정확히 금마의 머리를 향했고, 박살 나기 일보 직전인 자동차 앞 유리와 자욱한 타이어가 마모되며 만든 연기만 남긴 채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금마는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서 정신을 차린, 금마에게 빙의되었던 남자는 의외로 그런 상황을 비교적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몽유병처럼 본인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의식이 없는 가운데 많은 일이 벌어졌고 그런 부분을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천도령이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고 급하게 견인차를 불러 그 자리를 떠났다.
앞 유리가 박살 난 상태로 겨우 근처 자동차 수리센터를 찾았을 때 그곳의 직원들은 차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부적을 보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 부끄러웠을 만도 했지만 나도 무천도령도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앞 유리를 교체하고 늦은 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묻고 싶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서 대화를 시작할 수 없었고 무천도령의 심리상태는 내가 알 수 없었다. 모시고 있는 신이 사라진다는 것이 무당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집에서 우리를 마중하는 사람도 귀신도 없었다. 집에 도착한 무천도령은 심한 몸살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힘없이 자리를 펴고 누웠고 나는 그 곁을 지켰다. 그때까지도 우리 둘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지만 잠이 든 건지 아니면 밤을 꼬박 새운 건지 알 수 없는 무천도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사이 해는 중천에까지 올라갔다.
"지예야."
그제야 물을 마시려고 일어난 무천도령이 부엌에서 지예를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설마 아직 자고 있나?"
무천도령이 지예의 방에 노크했지만 기척이 없었다.
"나 들어간다."
지예는 방에도 없었다. 무천도령이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지만 지예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동현아, 어젯밤에 집에 오고 나서 지예 본 적 없지?"
"어제 밤에도 못 봤으니까요."
"설마 어젯밤부터 없었던 건가?"
"저승사자 누나도 안 보여요."
무천도령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듯 집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예도 이성계 장군도 그리고 저승사자 누나도, 그 누구도 집안에 없었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어요?"
"거의 없지. 더군다나 휴대폰도 꺼져있고. 저승사자는 또 어디 갔데?"
"저승사자 누나야 뭐...... 어린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 보호자도 아니고."
"이성계 장군님이야 집을 비우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지예는......"
"일단 좀 기다려 보죠.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어디 볼일 보러 갔을 수도 있으니깐."
불안한 표정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만 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부엌으로 돌아간 무천도령이 클래식 음악을 틀더니 원두를 내리기 시작했다. 무복이라도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모르겠다. 국악에 전통차가 아닌 것을 가지고 농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다.
"무천형, 저랑 이야기 좀 해요."
"앉아라. 인절미라도 좀 줄까?"
"좋죠."
금방 내린 원두커피와 인절미 한 접시를 가지고 무천도령은 내 맞은편 식탁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이해를 한다면 거짓말이기는 하지만 형 마음이 많이 안 좋을 것 같기는 해요."
"뭐...... 대단히 큰일이기는 하다."
"힘드신 건 아는데 저도 궁금한 게 많아서요."
사실 무천도령의 안색은 굉장히 좋지 않았다. 늦은 봄인 것에 비해 날씨가 그렇게 덥지는 않았지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눈동자도 촛점을 잃고 멍해보였다. 곧 쓰러져도 이상할게 하나 없는 몰골이었다.
"말해봐라. 내가 아는 거면 대답을 해줄께."
"어제 그 악귀는 뭐예요? 금마?"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무천도령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줘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세상에 모든 원망과 나쁜 감정들이 집착으로 이어지면 원귀가 되고 그 원귀가 악귀가 되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을테고."
"그건 대충 개념을 잡았어요."
"어제 그 녀석은 그 악귀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그걸 발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악귀 다음 단계의 존재인데 마귀라고도 하기는 하는데 그건 더 이상 '귀'(鬼) 가 아니라 '마'(魔) 다."
"악마 같은 그런 건가요?"
"그 이미지로 생각하는 게 좀 보편적이기는 하겠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어제 싸운 존재가 악마라니. 물론 무천도령의 이야기를 해석하자면 종교적 의미에서의 사탄과는 좀 다른 존재인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세상 모든 종류의 집착은 결국 마가 될 수 있는데 어제 그 녀석은 아마도 전생에 대장장이였던 게 아닌가 싶다."
"대장장이요?"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리 된건 지는 내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그렇다."
"대장장이였고 자기가 다루던 금속 같은 것에 집착해서 죽고 난 이후 악귀가 되고 더 나아가서 악마가 같은 개념으로 금마가 되었다는 말씀이죠?"
"대충 그렇지."
금속을 다룬다는 것에서 어떤 나쁜 감정이나 집착이 생길 수 있는지는 이해가 얼른 가지 않았다.
"근데, 세상 모든 집착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라면......"
"자기가 만든 연장들이 피를 불러오는 것으로 인정을 받았고 더 큰 인정을 받기 위해서 더 많은 피를 보게 할 수 있는 더 좋은 연장을 만드는 데 집착했다면?"
그럼 좀 설명이 된다.
"종교가 보통 무소유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바로 소유하는 것에서 오는 집착하는 마음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어렵지만 대충 가이드라인은 이해가 가네요."
"우리나라 유교에서도 중용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집착은 지나친 것이다. 무관심은 모자라는 것이고."
"철학과 같은데 나오셨어요?"
학교다닐때도 저런 이야기가 세상 싫었다. 조선 시대 그 잘난 사람들이 고작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음'을 진지하게 이야기했을 것을 생각하니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럼 사직사자라는 건 뭐에요?"
"장군님이 안 계신다고 장군님 말씀을 잊은 것이냐?"
다 죽어가던 무천도령의 목소리에 노함이 섞이며 힘이 들어갔다.
"뭔지는 알고 입에 담지 말든 뭐든 할 거 아니에요."
"......"
안색이 워낙에 좋지 않아서 이야기를 해줄지 말지 망설이는 것인지 아니면 말해줄 힘이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염라대왕을 지키는 네 분의 장군님이라는 이야기는 해줬었지? 사직사자."
"글쵸."
설명해주기 위해서 힘을 아꼈나 보다.
"네 분들은 각각의 임무가 있는데 그 임무가 자세히 무엇인지까지는 나도 모르고 그 중 한 분은 우리 기준으로 보자면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이다. 경찰청장같은......"
"저승 경찰은 뭘 때려잡는데요?"
"뭘 때려잡는 게 아니라......"
힘에 부치는지 잠시 말을 끊어갔다.
"지금껏 우리가 봤던 악귀들을 집착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일을 하시지."
"어떻게요?"
"네가 했던 방법으로."
내가 했던 방법? 없애버리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차피 악귀가 되어버리면 되돌릴 수가 없다. 그냥 그 자체가 령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단지 욕망 그 자체인 존재일 뿐이니까."
"그럼 제가 그런 일을 하는 귀신이라는 말씀이세요?"
"저승사자는 그렇게 짐작하는 것 같았고 딱히 인정하시지는 않았지만, 장군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럼 혹시 최영 장군님도......"
"그런 일을 하셨던 분들 중에 아주 유명한, 전설적인 분이셨지."
무천도령의 이야기를 듣고 뭔가 해답을 얻고자 질문을 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이야기였다.
"그러면 최영 장군은 왜 일을 하지 않고 형님 집에서 빈둥거렸데요?"
"빈둥거리다니!"
"그렇잖아요. 형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일을 하시는 건 이번에 제철소에서밖에 못 봤는데."
"장군님은 추방자이시다."
"추방자?"
"저승에서 사자들의 업무환경 개선과 령권신장을 주장하시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셨지. 다행히 지난 세월 동안 세운 공을 인정받아서 크게 처벌받는 것은 면하셨으나 대신 저승에서 추방당하셨지. 이성계 장군도 마찬가지고."
저민련이라는 그걸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정이 살아 있네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잔인하고 냉혹하다는 사실을 넌 아직은 모르겠지. 저승도 전부 이승에 있던 사람들의 령이 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있다가 환생한 령들이 다시 이승으로 오는 것이고. 그곳이 이승과 딱히 뭐가 다르겠냐."
어쩌면 아직 내가 저승이라는 세계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놓고 생각해본다면 무천도령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그럼 장군님은 왜 사직사자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신 거에요?"
"도둑놈이 경찰을 좋아하겠느냐?"
"당연히 싫어하겠죠. 근데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싫어도 할 것이고 미리 안다면 피할 수도 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해하려고 할 수도 있겠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경찰이 범죄자에게 보복을 당하거나 하는 이야기는 뉴스든 드라마든 아주 가끔 듣던 이야기이기는 하다.
"'귀신같다'는 이야기가 있지?"
"있죠."
"언제 어디서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귀신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만에 하나라도 동현이 니가 사직사자에 소속된 사자가 맞다면 너에게 좋을 것이 없는 것이지."
"입방정 떨지 마라...... 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군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역정을 내가면서 조심스러워했던 최영 장군의 태도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 누가 무슨 사자라고?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귀신같이 이성계 장군이 거실에 서서 부엌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로 지예가 들어오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 작가의말
이번 작가의 말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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