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 사고
평일 오전의 서해대교를 잘빠진 무천도령의 스포츠카가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제철소에 가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뭐가 달라지냐? 그리고 나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너 돕자고 하는 일이잖아!"
어제 무리했는지 늦잠을 자고 일어난 무천도령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당진을 간다며 집을 나섰다.
구름 위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모닝 인절미를 음미하던 나도 허둥지둥 따라나섰고 어제의 이야기를 저승사자 누나로부터 대충 전해 들은 최영 장군도 칠푼이 같은 놈들끼리 보내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서 뒤늦게 따라나섰다. 당연히 나를 따라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승사자 누나는 생각할 것이 있다면서 집에 남았다.
= 여기 들어갔다가 가자.
"장군님, 거의 다 왔습니다."
최영 장군이 끝끝내 졸라서 행담도 휴게소에 잠시 차를 세웠고
= 간만에 바닷바람이 좋구나.
"수군도 아니셨으면서......"
브랜드 원두커피를 마시면서 무천도령이 투덜거렸다.
"박 부장은 뭘 말하고 싶어서 제보자를 이야기했을까요?"
"제보자를 이야기하고 싶었겠지."
"제보자가 누군지 박 부장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세요?"
"그건 나도 모르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보나마나인 사람에게 괜히 했다 싶었다. 하긴 제보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면 파일을 건네면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겠지.
"어제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돈을 어떻게 이렇게 많이 벌었어요?"
"전부 장군님 덕분이지."
"두 분 다 용한 분들인가 보죠?"
"일단 나는 사람들 마음을 잘 읽고 달래는 방법을 아는 거고 장군님은......"
"장군님은 죽은 사람을 잘 달래요?"
"장군님은 다방면으로 유능하시지. 자주 찾아오시는 분 중에는 5선의원 최병삼씨도 있고 억성전자 회장님도 계시니까."
최영 장군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이 보였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왜 그런 허름한 곳에서 영업을 해요?"
"그건, 뭐랄까...... 컨셉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컨셉요?"
"생각해봐라. 고층빌딩 20층 사무실에 무당집이 있으면 거기 사람들이 쉽게 오겠냐?"
"그렇기는 하지만 깔끔하잖아요. 인텔리해 보이기도 하고 스마트해 보이기도 하고."
"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인텔리나 스마트가 아니니까."
발상의 전환이 유익한 장르는 따로 있나 보다. 생각해보면 대리석 바닥 깔린 곳에 신당이 있고 촛불 켜고 향냄새 풍기는 장면이 익숙하고 편안한 그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제철소는 서해대교를 지나 처음 나타나는 I.C로 빠져 얼마 걸리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왕복 6차선으로 비교적 곧게 뻗어있는 도로 위로 대형 화물차들이 무섭게 달리고 있었다. 길 오른쪽에 위치한 제철소는 끝과 규모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거대한 구조물들로 이뤄져 있었다.
= 차는 어디 세워놓고 여기서부터 걷자.
제철소 맞은편 작은 상가 공터에 주차한 우리는 왔던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근데 낮에도 귀신이 나타나는 게 참 신기했어요."
"그럼 낮에 죽은 귀신들은 해질 때까지 잠시 보류상태겠냐?"
"저는 왜 귀신은 밤에만 나타난다고 생각했을까요?"
"귀신은 무서운 존재니까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밤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는 편견이지. 다만 여러 가지 기운들이 아무래도 밤이 귀신들에게 더 편안한 시간인 게 맞기는 해."
바로 몇 걸음 옆으로 대형 화물차들이 무거워 보이는 짐을 가득 싣고 바람을 일으키며 위협적인 속도로 지나갔다. 무천도령이 살짝 밀릴정도의 바람이었다.
"이런 길이면 대형사고도 자주 날 것 같은데 귀신이 안 보이네요."
"여기가 지금 보행자도 거의 없는 도로인 데다가 오가는 자동차들밖에 없는데."
"그게 귀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사람이 재미없으면 귀신도 재미없는 거야. 귀신이 여기서 뭘 하겠냐. 그것도 햇볕 쨍쨍한 대낮에. 밤이라 한들 아스팔트랑 놀겠냐?"
사람이 재미있을 만한 것이 없으면 귀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퍼뜩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장소에 나 혼자 있는 걸 상상해보니 귀신 입장에서 볼 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 저기는 좀 모여있네.
최영 장군이 우리 앞에 나타난 고가차로 아래 그늘진 곳을 가리켰다.
역시나 대부분 교통사고를 당한 듯한 모습의 귀신들이었고 뭔가에 잔뜩 겁먹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저 귀신들은 장군님을 무서워하는거예요? 아니면 무천형을 무서워 하는거예요?"
"일단 난 아닐걸? 우리 무속에서 영매는, 무당은 니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냐. 우리는 사람의 마음도 달래고 혼의 한도 달래는 상담사 같은 역할이지 퇴마 같은 걸 하는게 아니니까."
"그럼 저 귀신들은 무서운 것도 아닌데 왜 저기 저렇게 모여 있는거에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재미있어하려고 그런 거지. 기가 약하면 귀신을 본다고 하잖아? 그런 사람들한테 장난치려고 저러고 있는 거야."
귀신아 물렀거라! 라고 하는 그런 대사를 하는 무당을 본 것 같기도 한데 무천도령의 이야기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헷갈렸다.
= 날 무서워하는 것이다. 현재로써는 잡귀 놈 너도 무서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럼 저런 귀신들 말고 악귀도 장군님을 무서워하나요?"
= 악귀는 무서워하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자기들 맘대로 안되는 우리 같은 존재를 싫어할 뿐이지. 원한이나 슬픔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두려움과 공포 같은 것을 다 초월해버린 것들이 악귀들이다.
"복잡하네요."
싫어하는 것과 무서워하는 것이 다르기는 하다. 싫어는 하는데 무서워하지는 못한다는 게 복잡할 뿐. 더군다나 두려움과 공포를 초월하다니. 좀 멋있지 않은가!
"그럼 장군님 같은 분들은 그걸 초월하지 못한 건가요?"
= 우리는 두려움 대신 원한이나 슬픔을 초월한 존재들이다.
이게 더 멋있다!
"여기는 장소의 특성상 저 귀신들을 저대로 두면 사람들에게도 저들도 위험하겠는데요?"
= 좀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구나.
귀신들에게 뭐가 위험한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에게 장난을 친다면 눈 깜박할 사이에 살아 있는 사람에게 너무 큰 재앙이 생길 수 있는 장소였다. 철근을 싣고 무섭게 달리는 저런 화물차에는 아마 스쳐도......
"엇! 저기!"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화물차 짐칸에 악귀가 타고 있었다.
= 쏴라!
악귀는 우리를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내 의지대로 손에 활을 쥘 수는 있었지만
너무 빨랐다.
최영 장군이 화물차를 따라 뛰기 시작했지만, 그 속도로는 어림도 없는 거리였다.
최대한 침착하게 조준하고 화살을 날렸으나 허공을 갈랐다.
"동현아! 저건 또 뭐냐!"
몇몇 귀신들만 보이던 고가차로 아래 그늘에서 빨간 눈을 어른거리며 악귀가 나타났다.
"분명히 없었는데!"
"저걸 먼저 쏴!"
이번에는 너무 멀었다.
하지만 거리가 먼 것은 어려운 문제였지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었다. 거리를 감안하고,
"빨리 쏴!"
'쉬-익'
내 손을 떠난 화살은 악귀를 태우고 달리던 화물차를 아슬아슬하게 앞질러 고가차로 아래의 악귀를 향해 날아갔고 화살에 맞기 직전, 옆에 있던 귀신을 화물차가 달려오는 도로 쪽으로 밀치며 쓰러졌다.
"퍽-"
'끼이이이이익-'
화물차가 갑자기 스키드마크를 그리며 급정거하기 시작했고 짐칸에 실렸던 철근들이 앞쪽으로 쏠리면서 운전석을 뚫고 지나가며 뇌수와 붉은 피를 뿌렸다. 다행히 뒤따르던 자동차들은 화물차 뒤에 아슬아슬하게 멈춰설 수 있었다.
최영 장군은 화물차 위로 뛰어오르며 남은 악귀를 쫓았다. 그런데 화물차 앞쪽에서 내 화살에 맞아 사라졌어야 할 악귀가 화살을 어깨에 꽂은 채로 최영 장군을 향해 화물차를 오르고 있었다.
"무천형! 쟤는 왜 안없......"
돌아본 무천도령은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그건 움직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정지화면 같은 모습이었고 그때서야 나는 화물차 뒤를 따르던 자동차들이 아슬아슬하게 멈춰 선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정지한 것임을 깨달았다.
"시간 정지!"
고가차로 아래에서 보라색 안개가 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트럭 기사였었던 것으로 보이는 귀신과 또 다른 저승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화살을 꽂은 채 최영 장군을 쫓던 악귀가 방향을 돌려 그 두 귀신 쪽을 향했다.
= 이런 시시한
"퍽-"
화물차 위에 있던 악귀는 최영 장군의 대도에 머리 부분을 정통으로 맞고 먼지처럼 흩어졌고
= 잡것들이 날
"퍽-"
방향을 돌리던 악귀도 대도의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 뛰게 만드네.
등장하자마자 난장판을 구경하게 된 저승사자와 귀신이 되자마자 귀신이 박살 나는 것을 보게 된 두 존재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최영 장군을 바라봤고 장군은 가벼운 윙크로 화답했다.
- 긴 시간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간 옥체......
= 됐고 됐고. 뻔한 소리는 집어치우고. 요즘 그 동네 분위기는 어떠냐?
- 옥황상제님이 그간의 일들을 다 파악하기 시작하셔서......
= 안 좋겠네? 알겠다. 볼일 봐라.
저승사자는 가볍게 묵례를 올리고 트럭 기사의 령과 함께 안개를 거두며 사라졌다.
"꽝! 꽝! 꽝!"
그제야 화물차의 뒤를 따르던 자동차들이 연쇄 추돌을 일으켰다. 다시 시간이 멈추지 않는 걸 보면 사망자는 없나 보다.
"장군님 괜찮으십니까?"
무천도령이 허겁지겁 뛰어오며 내 쪽을 향해 오고 있는 최영 장군에게 소리쳐 물었다. 제일 괜찮은 걸 걱정해야 할 사람은 본인인 것 같은데.
= 나야 당연히......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던 최영 장군의 미간이 좁아지며 대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장군님, 뒤! 뒤!"
- 작가의말
작가는 믹스커피를 마시는 중
1
“무천형은 전통차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원두라니......”
“향이 구수하지 않느냐.”
“그럼 숭늉같은 걸 드시는 건......”
2
= 어째서 첫번째는 맞히지 못했냐?
“장...... 장군님이 시야를 가렸어요.”
= 각도상 설명이 안되는데?
“양궁은 과학입니다. 활을 잡은 손과 쏘는 손의 각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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