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카니발.(2)
오늘도 어김없이 도서관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바닥 닦는 것부터 해서, 책 정리, 아무렇게나 떨어진 의자 붙이기 등······.
그나저나 도서관에 사람이 원래 이렇게 많던가? 바닥을 쓸면서 머릿수를 세어본다. 한 테이블에 네, 다섯 명. 얼추 스무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
근데 느낌이 이상하다. 아까부터 줄곧 지켜봤는데, 페이지를 안 넘기고 있다. 마치 다른 용무가 있는 것 마냥ㅡ나를 돌아본 생도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웃었다. 속시원하다는 웃음ㅡ그걸 본 순간 지금 무슨 엿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지 대번에 이해했다.
느릿하게 눈을 굴린다. 입술을 앙 다물었다. 고개를 내려 청소에 집중했을 때, 수많은 시선이 내게 꽂혔다.
그렇다. 나는 동물원 속의 원숭이가 된 것이다. 저들은 원숭이가 어떻게 생겼나, 뭘 하려나 구경하러 온 것이고.
배지를 보니 2학년 생도인 듯했다. 클래스는 B인 것 같다.
“······.”
“······.”
물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생도도 보인다. 하지만 연막이라는 생각을 뇌에서 지울 수 없었다.
손놀림이 빨라진다. 이들은 그저 내 구경을 위해 모인 건 아닐 것이다. 분명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반짝이는 눈빛들을 봤으니까.
뒤늦게 생각이 났다. 악연의 연결고리가 강해졌다는 말. 그 말은 분명 저들 중 누군가에게도 적용이 될 터였다. 작게는 여동생부터, 남동생 혹은 거기서 더 나아가 친인척이 나와 엮였을 수도 있었다. 정확히는 노아 폰 볼프강과.
좀 구석진 곳에서 책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앉아서 정리하고 있는데 누가 내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이.”
고개를 올려다본다. 전형적인 불량배 얼굴, 모히칸 머리, 입술이 두껍고 키가 팔 척 이상인 장신 거인(巨人)이 책장 사이를 몸으로 막고 있었다.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지.”
“···네.”
이름이 뭐였더라. 2학년 B클래스에 배치된 장신의 엑스트라 생도. 하도 엑스트라 생도들이 자주 죽어나가다 보니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했다.
“노아 폰 볼프강, 맞냐?”
“맞습니다.”
뚜두둑, 뼈 분질러지는 소리가 났다. 살벌했다. 목뼈까지 뚜둑, 뚜둑 꺾는데 정말 위협적이었다. 능력은 분명 근력 계열이겠지.
젠장, 노아 폰 볼프강 이 씹탱.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니가 내 남동생 건드렸다며? 긴 말 안 한다. 따라와라.”
“······.”
슬쩍 고개를 돌린다. 아까 보았던 웃는 얼굴의 생도가 양쪽 책장 벽을 두 팔로 짚고 있었다. 퇴로도 완벽히 차단됐고. 이렇게 된 이상······.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순순히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도망칠 생각 마라.”
모히칸 생도가 으름장을 놓는다. 나는 휙휙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 새꺄.”
“······.”
두 눈두덩이 우묵해진다.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른다. 난데없는 환호성을 들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나보다. 앉아서 기다리던 생도들이 신내며 들러붙었다. 어느 누구는 내 어깨에 팔을 걸치기도 했다. 누군가 내 귀에 속삭인다. 넌 뒤졌어, 라고.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도서관 사서, 네메시스를 쳐다본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그저 엎드려 자고 있다. 마치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것처럼.
다 안다. 지켜보고 있다는 걸. 그런데 왜 아무 액션도 취하질 않지?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들었다. 빨리 가자고. 엎드려 있던 네메시스와 눈이 잠깐 마주친다.
“······.”
이끄는 힘에 딸려간다. 나는 왜 네메시스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단박에 깨달았다.
그건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눈빛이 아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또 의문이 떠오른다.
왜? 아니, 봉사활동하러 온 후배가 처맞게 생겼는데······. 그건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
도서관 뒤뜰, 작은 콜로세움이 마련됐다. 돈만 없을 뿐이지, 소리 지르며 열광하는 꼴이 꼭 미친 구경꾼들 같았다.
2학년 B클래스 모히칸 생도의 이름은 하멜이었다. 기억난 건 아니다. 그냥 지 스스로 말해주더라. 똑똑히 기억해두라면서.
하멜이 자세를 잡는다. 이름뿐 아니라, 자기는 무투(武鬪)쪽 재능이라고도 했다.
거기에 더불어서 재능이 추가적으로 개화된, 즉 강화된 무투(武鬪) 능력을 보유중이다. 절대 쉽게 여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긴장했다. 움켜쥔 손에 땀이 찬다. 까닥 잘못하다간, 한방에 나가리가 될지도 몰랐다.
“나는 니새끼를 절대로 가만 두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널 박살내고야 말겠노라고 했거든. 부디 애처럼 울면서 니 집안에다 고자질하길 바란다. 우르르 니 집안 새끼들도 다 박살내줄 테니까.”
주변에서 커다란 호응이 이어진다. 얄팍한 도발이었다. 나도 자세를 잡았다.
“징계는 신경 안 쓰십니까?”
아마 나는 또 징계를 먹게 되겠지. 싸웠다는 소문은 금방 퍼질 테니까.
그러나 먼저 싸움을 걸어온 건 하멜이었다. 더군다나 2학년이라 징계 수준은 나보다 훨씬 높을 터였다. 단순 봉사활동이 아닌, 퇴학을 하게 될 수도ㅡ
생각의 끈을 이어가려던 찰나, 슉 하고 바람 소리가 났다.
-팡!
옆에서 공기를 찢는 파공성이 터졌다. 두 눈이 커다랗게 홉떠진다. 얼른 허리를 꺾는다. 등을 가르는 바람의 물결.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맞으면 절대로 멀쩡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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