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 코어. (1)
원래대로라면 에밀은 이틀 전 겪은 일로 정신적인 타격ㅡ트라우마ㅡ를 겪게 된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사람이 맹해지고 힘이 없어지는, 이른바 의욕 상실ㅡ심지어 강의 태도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해도, 속은 여리고 순수한 에밀이다. 차후 소환 시험까지 그 영향이 주욱 이어진 탓에, 생명의 위협을 겪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이솔렛이 선뜻 그에게 다가가서, 위로해주며 자메스 루그닐 두 연놈의 질투심이 폭발하게 되지만······. 내가 그걸 미연에 방지했다.
만약 그때 에밀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에밀이 죽을 위기에 처한다는 커다란 리스크를 떠안아야만 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작중 주인공 에밀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여긴 내 작품이 아니라 독자님이 리메이크한 세계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의사가 수술을 할 때 홀로 집도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내 상황도 그러했다. 나는 이 세계를 홀로 집도해야만 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어떤 폭탄이 터질지 전전긍긍해 하면서.
불필요한 곁가지는 쳐내고 또 쳐내서, 에밀을 더 강하게 만든다. 필요하다면 인외마경(人畏魔境)에 서슴지 않고 발을 담굴 생각이다. 아니, 차후 전개를 생각해봤을 때 그게 맞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필요악(必要惡)이 된다. 설령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아무리 가시밭길이어도 나는 그 길을 걸어야만 한다.
물론 에밀뿐 아니라, 그의 하렘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돕는다. 이솔렛, 아리아, 엘레사르······.
넷 중 에밀이 가장 해맑게, 활발히 움직였다. 성격이 좋은 탓에 벌써부터 그를 좋아하는 생도가 여럿 생겼다.
“잘한다, 에밀!”
“힘내!”
이솔렛은 팔짱을 낀 채 에밀을 지켜보고, 아리아도 그녀의 옆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자메스와 루그닐은 떨떠름한 얼굴로 에밀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손봐준 거 아니었냐는 듯이.
놈들을 가볍게 무시했다.
엘레사르는······.
“저, 저기요.”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앞섶이 살짝 벌어진 빨간 운동복, 목까지 와닿는 연분홍빛 생머리, 무척 소중한 것인양 끌어안은 하얀 공, 그만큼이나 새하얀 얼굴은 어쩐지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언뜻 떠는 것 같기도 했다.
“응?”
“저랑 같이 하지 않으실래요······?”
“······.”
말하는 태도가 무척 조심스럽다.
아, 공놀이 같이 하자고. 조별 활동이 아닌 개별 활동인데. 왜 나랑······. 심지어 뒤에 같이 하려는 생도들이 몇 명 있던데ㅡ솔직히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워낙 쏘아보길래.
내가 말이 없으니까, 그녀의 눈망울이 엷게 일렁이더니······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모양새로.
“아, 안 될까요?”
그렇게 말을 하니까, 괜시리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젠장.
지금은 나보다는 여럿과 함께 해야 좋은 건데, 어쩔 수 없었다.
“그래, 하자.”
“아······!”
“그리고 편하게 불러.”
“노아, 님?”
“님자 빼고.”
“노, 노아.”
“······.”
말한 뒤 두 눈을 꼭 감는 건 뭔데. 조심스레 눈을 뜬 엘레사르는 멋쩍게 웃었다.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 일단 공 던져봐.”
그리하여 나는 딸과 놀아주는 아버지가 된 것처럼 그녀와 공을 가지고 놀았다. 적절하게 힘을 주고받으면서, 칭찬도 하고······.
결혼한 적은 없는데, 어쩐지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 * *
아리아는 짧은 새에 수많은 고민을 했다. 물어봐도 될지, 안 될지······. 그러나 그녀는 너무나도 궁금했다. 대체 그와 무슨 관계인지. 괜찮은 생도라며 어물쩡 넘어가기에는 평소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태도가 심상치 않았던 터라······.
“이솔렛님.”
“응, 보고 있어. 말해.”
“실은 에밀 저 분과 이솔렛님은 어떤 관계인지······.”
“분명 무슨 술수를 쓴 게 분명해. 노아 저 인간.”
순간 두 사람은 당황했다. 분명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에밀과 노아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라인에 있었기에ㅡ서로 보는 대상이 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그 남자를 보고 계셨군요.”
그 말이 마치 에밀이 아닌, 다른 남자ㅡ노아 폰 볼프강ㅡ을 보고 있었냐는 말로 들려서, 이솔렛의 얼굴이 삽시간에 엷게 달아올랐다.
“아, 아니. 둘 다 보이니까······. 그, 근데 에밀은 정말 괜찮은 생도라서 그래. 너도 대화해봐서 알잖아. 좋은지, 나쁜지.”
“네, 확실히 성격이 밝고 좋았어요.”
ㅡ질투날 만큼, 아리아는 턱 끝까지 차오른 뒷 말을 꾹 삼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시 부족하다. 아무래도 과거에 무슨 인연이 있던 것 같은데······. 이솔렛님은 그와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천천히 알아가겠다는 듯한 태도라, 그녀도 더 이상 별 말 하지 않기로 했다.
“근데 노아 폰 볼프강이 왜요?”
아리아는 뒤늦게 그를 발견하고는 어, 약한 탄성을 내질렀다.
“엘레사르가······.”
“에밀 못지 않게 심성이 착하고 고운 아이야. 저 아이가 선뜻 말을 걸더라. 분명 같이 어울리면 고생할 게 뻔한 데도.”
“······.”
아리아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솔렛님의 말은 단순히 두 사람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지켜봤다는 뜻이 되어서ㅡ어쩐지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도 모른 채, 이솔렛은 눈살을 살풋 구겼다.
이솔렛이 그리 말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해본 결과, 노아 폰 볼프강이 보여준 그 힘의 기저에는 확실히 마나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나가 없다는 건, 곧 마나 코어를 다루는 조별 과제에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자신의 고생길이 훤히 열려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엘레사르는 열심히 뽈뽈 뛰어다니고 있었다. 표정도 어쩐지 밝아 보인다.
“흥.”
분명 개고생할 테지. 이솔렛은 합이 맞지 않아 무너지는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꼭 지켜보고야 말겠노라고, 그녀는 다짐했다.
* * *
자메스와 루그닐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에밀을 쳐다봤다.
“야, 저 새끼 손봐준 거 맞지? 존나 팔팔하게 날아다니는데?”
“맞겠지, 뭐. 지 성격에 설마 안 팼겠냐.”
“아······. 좀 마음에 안 드는데. 또 이솔렛님한테 찝적댈 거 같은데?”
“그래도 건들지 마라. 좀 더 지켜보고 행동해도 늦진 않아.”
“흠, 그래도 인 것 같으면 어떡할래?”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자메스와 루그닐. 팔짱을 낀 채 발을 까닥대던 루그닐은 노아 폰 볼프강을 노려보았다.
“그때는 작살내야지. 저새끼도 같이.”
“어떻게?”
루그닐은 팍, 자메스의 가슴팍을 쳤다.
“다 방법이 있어. 대신 너도 각오 좀 해두는 게 좋을 걸.”
“뭘 하길래······.”
자메스가 말끝을 흐린다. 루그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던 까닭이다.
루그닐이 음산하게 웃었다.
“사령(死靈) 소환이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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