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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님의 서재입니다.

엑스트라 악당이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박지훈
작품등록일 :
2021.05.12 12:48
최근연재일 :
2021.07.06 23:56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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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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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
글자수 :
111,089

작성
21.05.1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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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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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글자
10쪽

설희(雪姬) 이솔렛. (3)

DUMMY

역시 좋은 용건은 아니었다.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솔렛의 말은 내 예상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신은 스스로가 아슬란 왕립 아카데미에 어울린다 생각하시나요?’


‘저는 약한 당신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 공격을 버텨낸다면 아카데미 생도로 인정해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당장 짐 싸서 떠나주세요. 이사장님도 허가하신 건입니다.’


“······.”


내가 정말 신경 써서 만든, 내 자식 같은 캐릭터에게 폭언을 들은 나는 지금, 공터에 우두커니 서 있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얼굴을 꿰뚫을 듯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무기는 필요 없나 보네요.”

“네.”

“맨몸으로 버틸 수 있어요?”

“아마도요.”

“···웬 존대죠? 당신은 상대가 누구든 간에 항상 하대하잖아요.”

“알았어.”

“······.”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이솔렛은 오히려 날카롭게 째려본다. 아이고.


저 풋풋한 생도들처럼 설렘 가득한 아카데미 청춘물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할 일만 다 하고 이 소설을 탈출하고자 하는 내 작은 바램이, 눈앞의 괴물녀를 기점으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솔렛ㅡ지금은 아마 구성(九星) 중 구(九)의 위치에 있을ㅡ그녀는 최연소로 구성(九星)에 든 엄청난 실력자이자, 빙결(氷結) 마법의 대가다.


하늘이 내려준 인재(人才), 천재(天才)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그녀는 현재도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곧 머지않아 고학년 선배들의 목을 따고 더 높은 곳에 오를 것이다.

그때는 분명 빙결(氷結) 마법에 한해서 멀린보다 뛰어난 능력자가 될 터.

그걸 알기에 생도들 대부분이 이솔렛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했다. 1학년 생도 중 최강자인 그녀에게 밉보여서 좋을 리 없다며.

나는, 그런 그녀의 공격을 버텨야만 했다.


“봐드리지 않겠습니다. 크게 다쳐도 다른 말 하지 마시길.”


하아아······. 태양과 등을 진 그녀의 입에서 연거푸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온다.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새하얀 눈동자는 잘 벼려진 칼날처럼 서슬 퍼런 빛을 발한다.


분명 태양이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주변은 한겨울 같았다. 새하얗게 죽어가는 땅. 싱그러운 녹빛 초목은 생명력을 잃고, 공기는 쩌저적 얼어붙는다.


그 땅 위에 오연히 선 그녀는 마치 전설 속 설녀(雪女)가 지상에 현현한 듯했다.

온몸이 떨린다. 그녀의 능력으로부터 비롯된 스산한 한기가 발치부터 스며들어, 내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 고비를 넘기지 않으면, 나는 영영 이 소설에서 나갈 수 없게 되니까.


“시작해.”


이솔렛이 벼락처럼 양손을 좌우로 내질렀다. 스으으, 그녀의 머리 위에 새하얀 얼음들이 빽빽하게 밀집하여, 하나의 거대한 얼음창으로 재탄생한다.


재탄생된 얼음창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회전하며 몸집을 막대하게 불리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수 미터는 될 법한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 또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단박에 깨닫게 된다.


아예 내 입에서 포기하겠다는 말이 듣고 싶은 거구나. 무서워서 바르르 떨며, 애걸복걸하게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의 눈빛에 당황한 빛이 어린다. 새하얀 두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아······.”


지금, 제어가 안 되는구나. 감정의 제어는 가능하나, 힘의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임이 분명했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쯤 마나 회로가 꼬였을 거다. 아직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이거,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피, 피해요.”


가볍게 심호흡을 한다. 두 눈에 힘을 주어 응시하는 순간, 시야가 노르스름하게 물들며ㅡ힘이 주욱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묘한 탈력감을 느낀다.


지체하지 않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부여해준 권능을 쓴다.


두 눈이 홉떠지고, 전신이 번개 맞은 듯 저릿했다. 돌연히 샘솟은 충만함이 온몸을 감싼다. 마치 무엇이든 막아낼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른다.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울룩불룩, 등허리에서 시작된 그 변화가 차츰 등을 타고 올라오더니.


“피하라니까!”


ㅡ쐐액!


빛살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는 얼음창을 향해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 * *



노아 폰 볼프강,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적당히 겁을 주어 쫓아낼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다시는 아슬란 왕립 아카데미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약조도 받아내고.


하지만 특유의 여유만만한 태도. 남을 깔보는 듯한 눈. 예전에도 보았던 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고, 성적도 나쁘면서.

오직 가문의 위세만 믿고 날뛰는 저 미생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더군다나 자신을 눈앞에 두고서 존대하다가 반말을 하는 장난질까지 치다니.


그 한량 같은 행동에 이솔렛은 격분했다. 그녀는 전신의 마나를 모조리 끌어내어 거대한 얼음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얼른 마나를 운용하려 했다. 하지만 마나 회로가 꼬여버렸다.

덕택에 그녀가 만든 얼음창은 그녀의 제어를 떠났으며, 그것을 직면하게 될 노아의 미래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순간.


“피, 피해요.”


저도 모르게 약한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노아는 꿈쩍도 않는다. 되려 그의 두 눈동자에 이채가 서리더니, 오히려 맞서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미쳤어, 미쳤어. 지금 무슨······.


“피하라니까!”


ㅡ쐐액!


안 돼.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이솔렛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들려야 할 파육음이 들리지 않는다. 도리어 게걸스레 삼키는 소리가 났다.


이솔렛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은 광경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작게 벌렸다.


“아······.”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칠흑색 거대한 뱀의 머리가 자신의 온 힘이 담긴 얼음창을 여유롭게 잡아먹는 모습ㅡ여지껏 그녀는 그러한 힘이 있다는 걸 들은 적도 없었다.


얼음창을 모조리 집어삼킨 뱀은, 그대로 유유히 꾸물대며 노아의 등허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게 저 남자에게서 나온 거라니. 이솔렛은 털썩 주저앉았다.


“···말도 안 돼.”


믿기지 않았다. 재능도 없고, 성적도 최하위인 저 남자에게 저런 힘이 있었다니······. 그 불가해(不可解)한 현상에 마치 세상이 뒤집어진 듯한 착각을 느꼈다.


“후우······. 됐지?”

“······.”


이솔렛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사장님한테 잘 말해라. 간다.”


기우였다.

노아는 오히려 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리고 그는 줄곧 지켜보던 아리아를 흘끔 쳐다보더니, 묘한 표정을 짓고는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 이솔렛님!”


아리아가 뛰어왔다. 그녀의 얼굴엔 놀라움과 함께,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솔렛은 다시 한 번 노아의 등을 바라보았다. ···여태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처음에는 멍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어쩐지 분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선량한 생도들을 괴롭히다니.


멍때리지 말고 계속 공격했어야 했다. 계속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이이, 그녀는 분해서 입술을 앙 깨문다. 너무 분했다.

다음에는 기필코 콧대를 꺾어주고야 말겠어. 그녀는 그의 등을 쏘아보았다.



* * *



예상했던 불청객이 다시 이사장실을 방문했다. 제롬은 얼른 자세를 고쳐잡았다.


“오, 그래. 왔나?”


빠르긴 빠르다. 역시 구성(九星)이 아니랄까봐. 하지만 표정은 그리 좋진 못했다. 마치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물론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어도, 그녀가 이겼으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터다.


“이사장님.”

“응?”

“···오늘 제가 오전에 했던 말은 없던 일로 해주세요. 난동을 피워 죄송했습니다.”

“······?”

“그럼, 피곤하니 이만 가볼게요.”

“······!”


또, 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이솔렛은 등을 돌렸다. 분명 노아와 대련을 했을 텐데. 무슨 일이지···? 제롬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무 일도요.”

“···직접 퇴학시키겠다더니.”

“아무튼, 제가 잘못했어요. 이사장님도 그를 건들지 마세요.”

“혹시 갑자기 그를 좋아하게 됐다던가······.”


뒷말을 이으려던 제롬은 꼴깍, 목울대를 울렸다. 순간 호흡이 멎을 뻔했다. 그만큼 이솔렛의 시선이 살벌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가겠습니다.”


ㅡ쾅!


다시금 감도는 적막함. 제롬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진짜 좋아하나보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긴 했다. 서로 죽일 듯이 살벌하던 관계가, 어느 날 급속도로 진전이 되어 연인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음······.”


노아가 아슬란 왕립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힘든 경우긴 해도, 이솔렛이 옆에서 착실히 도와준다면 분명 변할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혹시나 해서 친우에게 편지를 보내려다 말았는데, 이렇게 풀리다니. 일단은 이솔렛을 믿는 수밖에.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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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희(雪姬) 이솔렛. (1) +8 21.05.13 4,677 7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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