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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님의 서재입니다.

엑스트라 악당이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박지훈
작품등록일 :
2021.05.12 12:48
최근연재일 :
2021.07.06 23:56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67,279
추천수 :
1,405
글자수 :
111,089

작성
21.06.26 23:58
조회
1,687
추천
41
글자
8쪽

차원 전이.(3)

DUMMY

교관님이 도서관 사서 보조 봉사활동을 하라고 했을 때, 실은 뛸 듯이 기뻤다. 도서관 안쪽에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하는 골치 아픈 일이 순식간에 해결됐기 때문이다. 티는 절대 안 냈지. 도리어 귀찮다, 맘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냈다.


교관님은 오히려 그걸 보고 씩 웃었다.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싫어도 별 수 있겠냐고. 고생 좀 하면서 내면의 고찰을 좀 해보라고 했다. 잘하긴 했지만 단독 행동을 벌인 건 신중하지 안하며.


물론 마냥 좋지만은 않다. 자는 사이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암살자 네메시스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만약 내 행각을 들키기라도 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안 된다.


혹여라도 흔적을 들킬까,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현관 안으로 들어선 나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본관으로 진입할 수 있는 카드키. 이 카드키가 없었으면 안쪽 깊은 곳에서 잠자는 고서(古書)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었을 것이다.


카드키를 긁는다. 삑소리가 엄청 크게 들린다. 황급히 뒤를 돌아볼 정도로 컸다. 다행히 불량은 아니다. 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선다.


낯선 공기가 폐 안 가득히 밀려들어왔다. 기분 좋은 향내음이 난다. 발을 앞으로 더 내민 순간, 오래된 책들만의 쿰쿰한 냄새가 났다.


진짜 오래됐구나. 그런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도서관 안쪽 깊숙한 곳 비밀의 공간ㅡ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주인공 에밀이 지식을 필요해서 온 적이 없었기에 세세한 묘사는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아슬란 왕실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특별한 장소이자, 특권이라는 것 말고는······.


가슴이 뛴다. 오직 국왕들에게만 허용된 공간이, 지금 내 앞에 있다.


멀거니 서서 대가리를 데구르르 굴려본다. 일단 어제 여기 온 건 확실했다. 하도 비슷한 책장들이 많다보니 고생하지 않도록 메모도 해놨다. 똑똑, 책장 안쪽을 두드려본다.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난다.


······문제는 이제 어떻게 여냐는 건데. 머리를 짚는다. 뜨뜬했다. 소설의 원작자가 비밀의 벽장 여는 법을 모른다니. 보물고를 눈앞에 두고서 커다란 벽을 만났다. 큰일이다.


방법이 뭐였더라. 암호ㅡ‘열려라 참깨!’의 열화판ㅡ이었던 거 같은데. 얼른 주저앉는다. 등 뒤 책장에 얼굴을 기댄다. 눈을 깜빡깜빡 슴벅인다. 어슴푸레히 깔린 달빛이 음산하게 웃는 듯했다. 째깍째깍,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하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든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



아슬란 국왕들은 대대로 특별한 존재들을 섬겼다. 앞에서 말했듯, 내가 쓴 소설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120가지 방법’은 수많은 미지의 소재들이 튀어나오는ㅡ이름하여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시대ㅡ라고 했다.


국왕들이 특별한 존재 즉 미지의 존재를 섬겨왔으니, 암호도 개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언급됐을 때 그런 식으로 언급됐던 것 같다.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아무래도 불분명한 발음이나 억양으론 틀릴 수도 있으니까. 또 낮고 우중충한 국왕의 목소리를 생각해서ㅡ가슴에 힘을 팍 준다.


“기어오는 혼돈.”


반응을 기다린다. 반응이 전혀 없다. 아닌가보다.


“1,000마리 새끼를 거느린 숲의 검은 암컷 염소.”


이것도 무반응이다.


“이름 없는 안개.”


······.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


반응이 전혀 없다.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여기서 지체되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해져ㅡ금방 떠오를 것들이 안 떠오른다. 뭐가 더 있지. 아, 하나가 떠올랐다.


“그레이트 올드 원.”


요지부동이던 책장이 부르르 떨었다. 됐다. 서서히 입을 벌리는 책장을 보며, 작게 환호한다. 이걸 맞추다니.



*



나를 들여보낸 책장이 서서히 닫힌다. 안은 칠흑색 어둠으로 가득했다.


화(火)속성 샐러맨더를 부른다. 내 지시에 샐러맨더가 전신의 불꽃을 거세게 일으킨다.


-화르륵!


그제야 사방이 보인다. 보면서 넋을 잃는다. 바닥에 깔린 하얀 대리석. 곳곳에 가득한 병기(兵器)들. 커다랗게 걸려 있는 국왕들의 초상화······. 죽 둘러보면, 길게 늘어선 책장이 보인다. 찾았다.


물론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수통을 조심스레 던진다. 후웅, 날아간 수통은 톡토도독 소리를 내며 땅을 구른다.


“······.”


귀를 기울인다. 혹시나 함정이 있을까봐. 샐러맨더가 뭐 하냐는 듯 갸웃거리며 나를 올려다본다. 괜한 기우였나. 그러나 슈슈슉, 뭔가가 빠르게 허공을 가른다. 넘실거리는 불빛 속에서 본 그것들은 분명 화살이었다.


기우가 아니었다. 하마터면 인간 과녁이 될 뻔했다. 아니, 그럼 국왕들은? 이 함정들을 어떻게······. 따로 무언가를 가져다 놔야 하나. 그것까진 모르겠다.


아무튼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샐러맨더는 나를 따라오며 재밌다는 듯 꺄르륵 웃는다.


무사히 책장 앞에 다다랐다. 하지만 오래 머무를 순 없었다. 서둘러 고서(古書)들을 훑는다. 첫 서적을 잡자마자 웃음부터 나왔다. 대박.



* * *



남자는 자고 있었다. 타고난 무인(武人)답게 근골이 장대하며, 수많은 전쟁을 치루어 백전노장(百戰老將)이라 불리우는 남자의 이름은 루시우스 백작.


그의 몸 위로 기이한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자라난다. 그림자 안에서 형체를 가진 단검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윽고 사방에서 비슷한 모습의 그림자들이 자라난다. 동시에 날이 번뜩이는 단검들이 그를 향해 빛살처럼 쇄도한다.


-푹!


소리가 났다. 하지만 목표는 죽지 않았다. 되려 산불 맞은 멧돼지마냥 잽싸게 튀어올랐다.


크윽, 바닥을 구른 루시우스가 옅은 신음을 흘린다. 허리가 커다랗게 베였다. 얼굴에도 깊은 생채기가 났으며,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더군다나 독을 발랐는지 인지 능력이 급속도로 악화되어간다.


틀림없이 고도로 훈련받은 암살자였다. 루시우스는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전신에 식은땀이 흐른다.


암살자는 대답이 없다. 루시우스는 얼른 주변에 있던 장검을 빼어들었다.


-스르릉!


“누구냐!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감히 잘 때를 노리다니. 고얀 것!”


루시우스는 사방을 경계했다. 뒤쪽에서 소리가 났다. 루시우스가 몸을 홱 돌렸다.


자박, 자박. 굽이 있는 새까만 구두. 새까만 타이즈에 감싸인 발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차갑디 차가운 눈빛, 그와는 대조적으로 붉은 눈동자가 빛에 반사되어 번뜩인다. 새하얀 단발 머리. 새까만 마스크. 뚝뚝 피가 흘러내리는 단검.


수많은 전장을 넘어서도 불패였던, 백전노장(百戰老將) 루시우스는 직감했다. 자신은 이미 죽은 몸이라는 걸. 벌써 독이 도는지, 두 눈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골이 마구 울린다. 장검을 지팡이삼아 겨우 몸을 지탱하는 게 고작이다.


“대. 대체 왜 날······.”


들은 적 있다. 일반인들과는 차원을 달리 할 정도로 강한 존재들. 이능(異能)을 지닌 이들이 뒷 세계에서 암약한다는 걸 들은 적 있으나, 루시우스는 그들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거라니.


“······.”


암살자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진다. 루시우스의 몸이 천천히 쓰러진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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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희(雪姬) 이솔렛. (2) - 수정 +5 21.05.14 3,733 74 14쪽
2 설희(雪姬) 이솔렛. (1) +8 21.05.13 4,678 79 12쪽
1 프롤로그. 악당의 이야기 +5 21.05.12 5,887 8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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