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전이.(5)
“···고생했어. 이제 들어가도 돼.”
갸르륵, 샐러맨더가 내 팔에 제 얼굴을 부빈다. 애정이 가득한 몸짓이었다. 이윽고 빙글 몸을 돌며 천천히 사라진다.
의자에 등을 기댄다. 삐걱 소리가 났다.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눈두덩이를 주무른다.
‘마나 하트 제작 방법에 관하여.’
이 책은 확실히 지름길이 맞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과정이 상당히 길고 복잡하다. 필요한 소재 중에 비싼 것도 있다. 내 개인적으로도 몸을 갈고 닦아야 했다.
마나 회로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지력과 마력을 일정 수준이상 충족시킨 후에, 특별한 소재를 사용해야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다. 그 특별한 소재라는 건 ㅡ드래곤 투스ㅡ암시장에서 나올 법한 엄청 희귀한 소재였다.
그 소재를 사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드래곤과 거래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애당초 드래곤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와 거래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내 몸으로 드래곤과의 대면은 거의 불가능ㅡ레이드 클럽(club) 혹은 길드에 가입하는 방법도 있지만ㅡ나는 성인(成人)이 아닌 미성년자 생도였다.
없이 하면 안 될까?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부작용이 상당했다. 특별한 소재를 써도 부작용이 있는데, 없으면 부작용이 더 커진다.
더군다나 몸 내부에 있는 것을 마나 하트로 삼는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자칫하면 평생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될지도 모른다, 고 책에서 엄중히 경고했다. 위험성이 엄청 높았다.
만약 그렇게 되면 평생 이곳을 탈출하는 건 불가능ㅡ내 현실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곧이어 다른 반문이 떠오른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 빨리 뒤지나 느리게 뒤지나의 차이일 뿐 일단 해보자. 성공할지도······.
또 회의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정말 성공할까? 성공 확률이 5할, 실패 확률이 95할에 달하는데도?
아, 얼굴을 쓸어내린다. 고민만 깊어지는 밤이었다.
책상에 고개를 파묻는다. 잠깐 머리를 식혔다가, 다시 도로 몸을 일으킨다. 더 고민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푹 자야겠다.
소중하디 소중한 책을 보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안도 철저히 했다. 무려 자물쇠가 있는 나무통에다 조심히 넣고, 잠궜다. 마구 흔들어도 쉽게 깨지지 않는 걸 확인한다.
완벽했다. 나무통을 잘 보이지 않는 곳에다 두고, 침대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간다.
누워서 눈을 감는다. 오랜만에 여러 일을 겪은 탓인지 졸음이 금방 밀려왔다.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파란만장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내일은 그날이다ㅡ대련 연습날ㅡ덧붙이자면 아리아와 검을 맞대는 날이다. 원작 속의 노아 폰 볼프강은 아리아에게 패해 성격이 더 나빠졌던 걸로 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흠씬 두들겨 맞는 날이었다. 만약 평범한 노아 폰 볼프강이었다면 전례를 그대로 답습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할만 했다. 다만 충분한 숙면으로 체력을 보충해둘 필요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메디테이션을 이용한 마인드셋까지 할 생각이었다. 아직 햇병아리긴 해도, 아리아와 겨룬다는 건 여러모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ㅡ그녀는 검술(劍術)계통으로 유망했다ㅡ해서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 * *
다음날, 생도간의 훈련이 시작됐다. 이번 생도 훈련은 같은 조 생도끼리가 아닌, 다른 조 생도끼리 시작하게 된다.
무기는 여러개가 있다. 목도, 나무 검, 나무 단도, 나무 지팡이······. 무기는 자유롭게 쓴다. 무기를 잃고 행동불능 상태가 되면 훈련을 멈추되, 서로의 몸에 해를 입히지 말 것, 을 지시했다.
같이 할 생도는 랜덤하게 배정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드디어 내 차례, 교관님이 나를 호명했다. 그리고 함께 할 생도의 이름을 연달아 부른다.
“······.”
“······.”
나는 지금, 굉장히 떫은 표정으로 서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결과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짧고 붉은 빛이 도는 머리, 살짝 눈살을 좁힌 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의 주인공은 아리아였다.
에밀은 이솔렛과 훈련을 시작했다. 엘레사르는 라헬과 함께였다. 라헬은 금발 머리에 여장부다운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다. 웃음도 어찌나 하이톤인지, 기차화통 삶아먹었냐는 소리를 듣기 딱 좋았다.
엘레사르는 금방이라고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라헬은 빙긋빙긋 웃으며 엘레사르를 재보는 듯했고, 엘레사르는 그야말로 거미줄에 걸린 나비마냥 어쩔 줄을 몰라했다. 더군다나 눈빛으로 내게 필사적인 신호를 보낸다.
······미안하다. 어제의 고마움을 보답해야 하는데, 엘레사르도 강해져야만 했다.
“훈련 시작했어요.”
“어.”
내 말에 아리아가 느릿하게 눈을 슴벅인다. 그녀의 두 눈빛에서 의지를 읽는다. 이 사람, 흠씬 두들겨 패야겠다는 그런 의지.
“주로 무슨 무기를 쓰시죠?”
“아직은 없어.”
아리아는 지체 없이 목검을 쥐었다.
“저는 검을 주로 씁니다. 당신은 아무거나 하셔도 됩니다.”
“······.”
일반적으로 리치가 짧은 건 리치가 긴 것에 불리하다. 나는 목창이나, 도끼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목검을 잡는다. 손아귀에 잡히는 감각이 사뭇 신선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게는 가볍다.
“허······.”
아리아가 천천히 앞에 선 나를 보며 웃는다.
“자신 있어요?”
“글쎄.”
어깨를 으쓱인다. 솔직히 좀 떨리긴 했다. 지금 모두가 우리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마치 메인 이벤트마냥ㅡ더러는 훈련하는 척하며ㅡ보고 있길래, 얼굴이 좀 화끈하다.
원래라면 아리아는 좀 더 뒤에, 에밀과 겨루고 나서 크게 성장하게 되지만······. 그 시기를 좀 더 앞당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마디로 아리아를 자극할 심산이었다. 어차피 나는 잃는 것보단 얻는 게 많았다.
“갑니다!”
탓, 그녀가 땅을 박찬다.
* * *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솔렛님의 시선을 사로잡은ㅡ최근들어 이솔렛님은 더 이상해지신 것 같기도 했다. 그 원인이 눈앞의 남자, 노아 폰 볼프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로잡았다고 해서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이솔렛님은 눈앞의 남자를 싫어했다. 안심했다. 하지만 요즘 묘한 기시감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쾌했다.
아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노아 폰 볼프강이 약하니 손속에 사정을 두라고, 교관님이 말씀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후웅!
강한 파공성이 일었다. 적잖은 힘이 실린 일격을, 노아 폰 볼프강은 되려 피하지 않고 받아내려 한다. 그런 바보같은 짓을.
-팍!
“······!”
두 손목이 짜르르 울린다. 노아 폰 볼프강의 두 눈이 커진 것을 보았다. 아마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다. 아리아는 예감했다. 벌써부터 자신이 이겼노라고.
지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내리꽂는다.
-파악!
큰 소리가 났다. 노아 폰 볼프강의 몸이 뒤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교관님은 분명 신체에 위해를 가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가볍게 차서 목검을 떨구는 것까진 괜찮겠지.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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