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루엘(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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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케릭은 많은 사람들과 이동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나의 영지로 가는 중이었다.
저주의 땅에서 사흘을 보내고 다음날 길을 떠나 점심때를 맞춰 옥토로 변한 강변에 다다를 수 있었고, 이미 풀밭이 되어버린 곳에서 환호하며 점심을 준비하는 용병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떤 놈들은 수영자랑이라도 하듯 강물로 뛰어 들어간 놈들도 있었다.
완전히 개판인 용병단이었다.
“저 강변 건너편이 엘루엘님의 영지 인가요?”
멜리안이 나의 옆에 달라붙어 묻는다.
“맞고 떨어질래?”
잽싸게 떨어지는 멜리안이었지만 표정만은 자신만만이었다.
“전 황녀님께 허락받을 자신이 있다고욧.”
이미 자동인식 프로그램상의 나와 이야기가 끝난 것 같다.
황녀의 허락 하에 인정하기로…….
그리고 7개월 후에 엘살바르제국 주위의 제국과 왕국들의 왕족과 귀족들을 초청한 파티가 잡혀 있단다.
또 한 번의 쇼를 끝으로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될 수 있으면 소냐를 남겨두고 혼자만 가고 싶었다.
소냐에겐 할 일이 많은 것이다.
없으려나?
소드마스터 상급의 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고, 기반을 잡지 못한 엘살바르 제국으로 볼 때, 꼭 필요한 인재였기에 소냐는 필요했지만, 나까지 덤으로 끼어 허송세월을 보내야 할 정도로 시간이 없었다.
소냐가 몇 년간만 제국의 뒤를 봐준다면 스스로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냐가 하기 나름인 것이다.
몇 년간 죽어라 하고, 기사들을 조련하면서 엉겨드는 주위의 왕국이나 제국에, 잠간의 난동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강을 건너 푸른 초원을 달렸다. 훈련을 겸한 용병들은 들떠 있었다.
이미 기사서약을 한 그들이었고, 거대한 제국이 될지 모르는 곳의 몇 명 없는 기사들인 것이다.
수적으로야 3천이라지만, 이 넓은 땅 조그마한 영지라도 꿰찰 수 있다면 지금, 조금 힘들겠지만, 고향의 부모 형제를 대리고 와서 생활하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노예들을 사들이고 이주해 오는 평민들의 위에 서서, 자신들이 이루려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기사! 그 후론 남작, 자작, 백작까지도 넘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은 자그마한 영지의 준 남작이라도 만족하겠지만 자신의 후손은, 노력여하에 따라 더 높은 작위를, 더 많은 영지를 넓힐 수 있는 기회의 땅인 것이다.
아틀란타 대륙 중, 황금의 땅이라 불리던 엘살바라 공국!
이제는 제국이라는 이름아래 아틀란타 대륙의 중심에 설 곳인 것이다.
그리고 작게 남아 자신들의 이름도 대대로 물려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꿈을 꾼다. 고되고 힘들어도…….
나는 꿈을 꾼다.
3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나의 성을!
보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배나 다리 좀 놓아 봤으면, 하고 말이다.
젠장!
혼자 튀어, 나의 성으로 갔으면 좋았으련만, 새로 편재된 기사단의 훈련 감독관이라는 명칭의 쓰잘데기 없는 감투를 주고, ‘제. 에. 발 부탁드립니다.’라는 공작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어,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구르면서도 마법사가, 검사를 교육시키는 황당함에 투덜거리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죽어라 터지고 몇 대 더 맞은 다음 솔선수범하는 기사였다.
강을 건너면서는 알아서 겼다.
꿈이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블랙스타성이란 말이 어색하게 하얀 벽돌로 지어진 나의 성이 눈에 들어왔다.
높지는 않지만 제법 위용을 자랑하는 벌거벗은 산 중턱에 세워진 나의 성!
그리고 산 아래에 펼쳐진 초록빛 대지가 파헤쳐지고 있었다.
겨울을 날 수 있는 곡식을 심기위해 만여 명에 이르는 나의 영지민들이 농토를 개간 중이었다.
거대한 천막이 수십 개 세워져 있었고, 여기저기에 흙으로 쌓아올린 듯 한 벽들이 보였다.
비 한번 쏟아지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아슬아슬 함이 거기 있었다.
농사지으랴, 겨울철 준비하랴, 바쁜 나의 영지민들이었다.
흠……. 고민된다.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나의 영지민들을 뒤로 하고, 영주라는 작자는 떠날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다.
스타성으로부터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소냐!
나의 앞에 오자마자 무릎을 꿇고 발에 입을 맞추는 황녀!
“호오……. 얼굴이 포동포동 하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며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었지만, 쉽게 넘어가 줄 수는 없겠지 싶다.
“이제부터, 니 담당이야. 잘 가르쳐.”
일복 터진 소냐였다.
“네. 주인님……. 안아주세요.”
으…….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였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이 늙은 몸으로 땅을 파랴? 아니면 흙을 뭉쳐서 집을 지랴?”
다섯 명의 관리자들이 모여 떠들어 대는 모습이 시장 통 상인, 저리가라였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수천 년이 걸려도 제대로 된 마을이나 도시를 만들 수 없습니다.”
“뭐가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하지요.”
“죽어 나가는 영지민이 한 둘이 아닙니다.”
에구……. 이러니 이곳에 머물고 싶겠는가?
난 게임을 즐기려고 온 거지, 땅이나 파고 집이나 지으려고 온 게 아니란 말이다.
노력으로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에, 인간도 없고 물자도 없는 이런 황야에서 뭘 어쩌란 말인가?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또 다시 나의 골방인생의 시작이었다.
텔레포트스킬과 이동스크롤을 연구하면서 말이다.
그리곤, 며칠 후 라르가 왔고, 튀었다.
풍족한 물과 식료품들을 도둑질하듯 담고는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소냐가 성벽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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