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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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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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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83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8.04 00:00
조회
73
추천
3
글자
12쪽

#68. 너만은 널

DUMMY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저택 내부에서 일원들이 장비점검에 들어갔다.


창문에 붙어 전방 감시를 하는 하루에게 유리가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하루.”


맥없는 목소리가 순간 유리가 맞나 의심스럽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방금 우리를 노린 광역계 술식 뭔가 이상해.”


그녀의 표정으로 짐작건대 좋은 말은 아니었을 터다.


“중위급······ 술식이야.”


그녀의 말에 곧바로 반응할 수는 없었다.


분명 자동 술식으로 만들어낸 인페르노는 거의 동등하게 상쇄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본래 중위급과 고위급의 차이가 명백한 만큼 받아들이긴 힘들다.


“누가 포격한 건지 모르지만, 분명 평범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한 급의 효율을 더 높이다니, 어지간한 천재이거나······”


“상식선에서 벗어난 누군가거나.”


유리가 몸을 돌려 통신팀에게 향했다.


“2조에게 소식은 아직이야?”


“계속 시도 중인데 응답이 없습니다. 통신 장애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유리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래저래 뜻대로 되지만은 않네. 그렇다면 이쪽에서 움직이자. 어쨌든 우리의 위치는 노출되어있다고 봐야 해. 마냥 머물 수만은 없어.”


“일원들이 수긍했다.”


포름은 아직도 멍하니 검을 바라봤다.

급하게 취한 자세만으로 그만한 위력을 발산하다니,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물건일지도.


그러다 문득 조용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던 그레이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고맙네.”


“뭐예요 낯간지럽게. 어쨌든 저도 빚진 게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청산한 거고.”


그레이가 볼을 긁적였다.


포름의 표정은 한층 밝아졌을 뿐 아니라 확실한 자신감을 획득한 듯했다.


기사단장의 명예를 재차 돌려받은 느낌이다.


하이든은 그런 그를 빤히 응시하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유리가 속박되어있는 그에게 다가선다.


“정말 몰라?”


“모릅니다.”


“알 텐데?”


모르고서야 그런 말을 꺼냈을 리가 없다.


─빠르군요.


“그건 분명 우리한테 한 말은 아닐 거야. 맞지?”


“저 역시 예측했을 뿐입니다.”


“무슨 수로?”


“······.”


하이든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기사단장을 원망한다 한들, 적군에게 내부분열에 대한 것까지 발설할 정도로 이성이 엇나가진 않았다.


하이든은 기어코 눈을 감았다.


“······반군도 마냥 외길은 아니구나.”


그러면 하이든은 움찔했다.


얼마 보이지 않은 행동과 말만으로 그렇게까지 추측하는 건가.


분명 소문의 금안으론 심리까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을 터다.


재차 눈을 뜬 그는 그녀와 마주했다.


백색의 털을 가진 금안의 신묘.


짤랑.


귀에 걸린 장신구가 흔들린다.


한밤의 달빛을 받은 그녀는 그야말로 평범한 수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과연 영험한 피인가.’


여전히 입을 다문 그를 뒤로 유리가 씁쓸하게 물러섰다.


“슬슬 이동하자.”


“포박한 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


유리는 잠시 팔짱을 끼고 고심했다.


저택 채로 같은 아군까지 날리려던 집단이 좋게 판단되진 않는다.


끙 앓는 소리를 내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고 있으면, 필이 유리의 앞에 조용히 섰다.


유리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한참 필을 멍하니 마주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유리가 먼저 묻자 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망설이고 있었다.


장기간의 능력 발현은 다소 자신감이 없었다.


필이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유리가 용케 그녀의 의도를 파악했다.


오히려 왜 그녀를 먼저 떠올리지 못했을까.

예비 지부장으로 후보를 올린 건 자신이었을 텐데, 아직 그녀에 대한 신뢰가 자신 또한 부족 하다 여겼다.


여느 때처럼 유리가 씩 입꼬리를 올린다.


곧 그레이 쪽으로 돌아보더니 그녀를 불렀다.


“무슨 일이죠?”


“그레이 경, 필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요?”


“필의 능력은 알고 있겠죠. 필의 능력이 정신적으로 연관이 있다면, 안정의 기도가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레이가 바로 답하기를 꺼렸다.


아이들에게 사용했던 안정의 기도를 아이들 외의 누군가에게 읊조리다니.

저도 모르게 귀를 발갛게 물들였다.


“그레이 경?”


“그, 그래요.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용케 수긍하면서도 할 수 있을지 단언할 수는 없었다.


“필.”


유리가 떠나기 전 필을 나지막이 불렀다.


“능력의 숙련도를 얼마나 잘 쌓았는지 알고 있어. 무엇보다 네가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믿어. 세상 그 누가 널 믿지 않아도, 너만은 널 믿어.”


필이 두 눈이 한껏 커졌다.


그녀의 주위로 은은하게 둘려진 달빛이 괜히 신비롭게 느껴져, 그녀의 말마따나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필이 다시 굳은 눈빛으로 말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인다.


유리가 해맑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방금은 분명 대주교나 기사단장의 술식이야. 네가 판단했을 때 적절한 때에 움직여.”


필이 고개를 끄덕이면 그녀는 자리를 떴다.


“통신팀의 인원 몇 명은 이쪽에 붙어줘.”


유리가 꼬리를 살랑이며 점차 멀어진다.


이내 그녀를 포함한 일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필은 그제야 일원들과 움직였다.


#


정문의 인원을 제압하고 들어선 2조는 정면 돌파를 하다말고 멈춰있었다.


그들을 막아서던 반군의 병사들도 다르지 않았다.


적군과 아군이 서로 같은 장소에서 멍하니 무언가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


“갑자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장이 당황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나 질문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속으로 똑같은 의문을 가졌다.


분명 옆에 있던 건물 하나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니, 연기라기보단 빛줄기로 변하더니 하늘로 솟았다고 해야 하나.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투움도 그 이상한 현상을 두 눈을 씻고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멀쩡하던 건물 하나가 있던 곳은 텅 빈 토지만 남아있었다.


반대편 병사의 뒤에 있던 강경파의 귀족들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그런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벤과 로자릭은 서로 같은 의구심을 품었다.


“뭔가 짐작 가는 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벤이 그들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귀족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는가의 문제보단 그들도 아직도 당황하는 도중이었다.


“알고 계신 것이 있다면 부디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본래 같은 곳에서 살아가던 국민이었을 터. 아직 협력할 여지는 남아있습니다.”


로자릭은 최대한 그들을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내부에 있을 인물에게 향한 불만보다, 세인에게 향했던 불만을 더 크게 여기고 있었다.


“같은 국민이라니! 애초에 너무 빨리 직위에 오른 게 문제였나. 귀족과 평민의 차이도 이해하지 못해서야, 격변하는 시대는 그만큼 토대가 완고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건 오히려 너희지 않느냐! 로자릭가도 몰락할 만큼 몰락했구나.”


로자릭이 순간 움찔해서 한 발짝 나서면 벤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럼 지금 반 세력 내부엔 문제가 없다고 하시는 겁니까?”


차분하게 내뱉는 벤의 말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받아치기 바쁘다.


“흠, 너희가 상관할 바는 아닐 테지. 결국엔 해결될 문제다.”


“글쎄요. 본디 썩은 틈에서 시작된 문제는 뿌리를 뽑아야 하는 법. 그걸 모르셔서야 평생의 숙제가 되겠습니다만.”


그의 말에 귀족들이 발끈했다.


로자릭은 그들의 분노가 참으로 형편없게 느껴졌다.


“그들은 받아들일 그릇이 안 되어도, 너무 안 되었다.”


아련한 눈동자를 띠던 로자릭의 미련을 벤은 그 말로서 단칼에 끊어냈다.


로자릭의 눈빛이 발터를 볼 때와 비슷하다.


보고 있던 장이 둘의 앞으로 나섰다.


“부탁한 대화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은데.”


“예. 감사했습니다.”


장을 올려다보던 벤은 그 등의 넓이에 넋이 나가 있었다.


기사수행을 앞으로 몇 년을 더 한다 한들, 과연 그와 같은 신체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장은 어깨너머로 벤의 멍한 표정을 흘겨봤다.


“걱정하지 말게 젊은이. 인간은 훨씬 잠재력이 충만한 종족이니.”


“예? 아, 예.”


벤은 그제야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정신 차렸다.


“그나저나 백묘가 말한 건도 있어 용써봤지만, 역시 저들에게 같은 길을 걷는 건 무리인가.”


그녀가 이 자리에 있다면 장담할 일은 아니라 일렀겠지만, 현 상황에서 가장 우선시할 게 그 일은 아니었다.


파앙!


주먹과 손바닥을 마주치던 장이 몸을 풀기 시작한다.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한 영지의 영주라 불리는 이들입니다.”


“음.”

‘영주가 지닌 역량이 보통 일반 병사의 몇 배더라.’


곧 생각하던 걸 관뒀다.


장은 아무렴 상관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검을 치켜든 자세가 각자 다른 것으로 봐선 서로 다른 검술을 연마한 건가.


장이 앞으로 한 발 나섬과 동시에 병사와 귀족의 긴장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하지만 장은 한 발짝 내딛기만 했을 뿐 그 자리에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어르신?”


뒤에서 지켜보던 투움이 그를 나지막이 부르면 그는 뒤돌아 다시 벤과 로자릭의 뒤에 섰다.


그의 행동에 투움의 안색이 나빠졌다.


‘설마 저 양반, 또 병이 도진 건가.’


그리고 이내 속으로 되뇌면서 두통이 오려는 이마를 어루만졌다.


“장 어르신?”


벤도 당황해서 그를 불러봤지만 미동도 없다.


그러다 슬쩍 얼굴을 올려다보니 그는 말없이 웃고 있었다.


“지금 우릴 우롱하는 건가!”


장의 얼굴이 적군들에게도 비췄는지 발끈해선 외쳤다.


그런 적군들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장은 벤과 로자릭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거대한 손바닥에 두 사람이 흠칫했다.


“자네들이 상대해보지 않겠나.”


“예?”


이내 로자릭이 말을 잃었다.


벤도 마찬가지로 그 옆에서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좌우로 크게 고개를 몇 번 흔들던 벤이 제 뺨을 쳤다.


“오.”


장이 젊은이의 혈기를 방관하며 짧은 리액션을 내놨다.


“하, 하지만 저희는 아직 영주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한······”


“음? 그대는 이미 영주의 지위를 이어받았다고 들었네만.”


로자릭이 다시 흐물거리는 입을 열지 못했다.


단순히 그가 제 지위를 확인시켜줬을 뿐이었는데, 어딘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게 바로 권성의 표용······!’


로자릭이 멋대로 착각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선 벤이 검을 쥐었다.


스릉─


“벤, 자네!”


벤이 호흡을 길게 뺐다.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외운 카심류의 초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몸이 기억할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내심 이제껏 연마한 기량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로자릭. 우리 한 번 해보지 않겠나.”


로자릭은 고개를 돌려 그렇게 말하는 벤의 옆모습을 주시했다.


이미 각오가 굳은 눈.

언젠가 지금보다도 더 모자란 자신이 괘씸하게 봤을 눈이다.


로자릭은 정면을 향해 조용히 심호흡을 몇 번 반복하곤 곧 미소를 지었다.


스릉─


이내 답 대신 검을 치켜든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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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너만은 널 21.08.04 74 3 12쪽
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6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8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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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2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1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4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6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90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4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9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4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7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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