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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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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80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20 00:01
조회
80
추천
4
글자
12쪽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DUMMY

“뭘 원하십니까.”


차라리 하루는 그렇게 되물었다.


레이첼이 틀림없이 원하는 바가 있었으니 내거는 제시는 어차피 무의미했다.


게다가 이곳엔 예비지만 제2 지부장이 있다.


유리의 판단을 물을 수는 없어도 필의 의견이라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을 것이었다.


어쩐지 욕망에 가득 찬 눈빛의 레이첼이 실실 웃고 있다.


방금의 말을 물리고 싶어지지만, 이제 그녀가 물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좋아요!”


“레이첼!”


“아버지, 아니 단장.”


“어, 어?”


마운트의 기사단장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저희에게 일거리를 준 건 맞지만, 갑작스러운 쿠데타로 평범한 삶을 잃은 이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그건······!”


“그건 우리와 관계없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전 사실 그런 세력에게 끝까지 믿음을 줘도 될지 내심 고민했으니까요.”


그가 입을 다물었다.


여태 그녀의 의견을 듣지 않은 반동이었을까.

차마 받아칠 수가 없었다.


이토록 딸이자 단원이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린 기억도 없다.


그럼에도 현재 왕성으로의 의뢰가 사라지고, 앞으로 없을 걸 생각하면 역시 뼈아팠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느덧 흥분한 억양은 사라지고 차분한 질문을 그녀에게 내뱉었다.


레이첼은 고개를 돌려 하루를 빤히 바라봤다.


괜스레 하루는 목울대를 꿀렁였다.


“마운트 기사단에게 지분을 주세요.”


“지분?”


“업체들이 자유 도시에 진출하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 아시죠? 벌써 그쪽 소문은 무성하다구요. 그런 자리를 우리 기사단이 꿰차고 들어갈 확률은 사실상 없죠. 그러니까 일종의 자리제공, 어때요?”


잠시 고심하던 하루는 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침 그녀는 생각을 마친 모양이었다.


“그거면 돼?”


나긋나긋한 어조 속에 무게가 실려있다.


“예?”


“단순히 터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묻는 거야. 그 이후부터 마운트 택배가 살아남는 일은 순전히 본인들 몫, 그렇게 이해했어.”


예나 지금이나 그런 면으론 매번 날카로웠다.


말투는 그래도, 내심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꺼내지도 않았을 말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진출만이 목적이라면, 앞으로 영역을 점차 확장 시킬 자유 도시로 들어오는 허들 자체는 높지 않을 터다.


문제는 그곳에 모인 모든 업체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일.


마운트 택배에겐 그만한 밑천이 없었다.


기세 좋게 제시한 것까진 좋았지만, 만약 필이 되묻지 않았다면 그들의 결말은 정해진 일이나 다름없었으리라.


이번엔 반대로 레이첼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럼 방금까지 정색하던 필이 미소를 띠었다.


그녀를 지켜보던 하루의 두 눈이 그것을 확실히 담았다.


“그럼 백묘의 산하 기관으로 들어오는 건 어때.”


“산하요? 백묘에서 마운트를 산하로 둘 이유는······.”


“물론 없어.”


레이첼이 단호함에 시무룩해지려던 찰나,

뒤이은 필의 말에 다시 활력이 들어섰다.


“아직은. 다행히 유리는 기회를 충분히 주는 단장이니까.”


본격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의지가 보인다.

조곤조곤한 말투나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 등, 레이첼의 심장에 녹아 들어간다.


어설픈 제시로 그들의 우위를 점거하리란 야망이 보기 좋게 무너지던 순간이었다.


“돌아간다면 유리······ 단장에게 적극적으로 건의해볼게.”


자상하다.


레이첼은 촉촉한 눈망울을 하고 입술을 씰룩였다.


하루는 얼마 전까지 그녀가 타인을 돕는 법에 서툴다고 판단했었다.


함께 다루스 영지에 있던 순간까지도.


그게 기우일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하루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드레이코로 추정되는 이는 아직 서 있었다.


심적으로 혼란한 상황인 줄만 알았는데 그마저 자신만의 착각이었다.


결국, 유리의 눈은 정확했던 걸까.


쿠웅!


그 장소에 있던 이들이 다들 갑작스러운 소리에 움찔했다.


레이첼의 뒤쪽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로 절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아직 어떤 것도 보장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는 그렇게 외쳤다.


“아버지······.”


그녀의 눈물은 쏙 들어갔지만, 눈썹이 아련하게 찌푸려졌다.


“앞으로 왕성의 의뢰는 받지 않을게. 지금 있는 의뢰도······”


“아뇨.”


하루가 그의 말을 끊었다.


“의뢰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익을 포기할 이유는 없죠. 게다가 머잖아 작전이 시행된다면 어차피 당분간은 왕성으로의 수주는 전부 끊기게 될 테니.”


“아.”


슬슬 거래가 성사되는 것 같으면, 그제야 딸과 함께 들어온 두 사람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근데, 저 사람들은?”


모두의 시선이 각각 발터와 드레이코에게 향했다.


어떻게 제 얘기인 걸 알았는지 드레이코가 뒤늦게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온다.


“제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에요.”


레이첼의 답에 하루와 그 일행들은 다소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분명 위화감을 느낀 단어에 제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도움?”


“네. 마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두 분이 마침 지나가지 않으셨다면, 꼼짝 못 했을 거예요.”


마운트의 단장은 엎드린 상태 그대로 다시 그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쿵!


숙였다기보단 박았다.


일일이 그렇게 소리를 내는 건 그만의 감사법에 속하기라도 한 걸까.


“내 딸을 도와줘서 고맙네!”


발터와 드레이코가 어떤 반응을 내비쳐야 하는지 망설였다.


그런 망설임에는 분명 하루와 일행들의 몫도 있었으리라.


두 번의 박치기가 있고서야 마운트의 단장은 몸을 일으켰다.


“소개도 늦었구만. 마운트의 단장 레이저야. 우리 가족 모두 불칸인이네.”


불칸인이라는 말에 하루의 고개가 슬쩍 움직였다.


분명 장이라는 사장도 같은 세계에서 왔다던가.


그보다 그녀도 그 종족에 속하는 건가,

저도 모르게 한 번 레이첼을 흘겨본다.


역시 겉보기만으로 알 수 없는 건 어느 세계나 똑같이 작용한다는 얘기다.


그러고 있으면 드레이코가 필을 마주 봤다.


“여어.”


따위의 반응으로 필에게 한 손을 슬쩍 들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엔 다시 미소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기분 나쁜 듯한 태도도 아니었지만, 여느 때와 같이 무념무상의 눈빛이다.


“왜 숨어 계신 겁니까?”


알면서도 뻔뻔하게 물어보는 하루에게 드레이코는 무안한 듯 혀를 찼다.


“아, 몰라!”


그새 제법 귀여운 리액션을 익히기라도 한 건가.


그답지 않은 답에 조금은 당황했다.


“서로 아는 사이셨어요?”


레이첼이 하루와 드레이코를 번갈아 바라봤다.


“예, 뭐.”


여러 가지로.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의 사이였지만.


하지만 왜인지 레이첼은 조금 시무룩하게 있었다.


“걱정하지 마. 이 사람들은 백묘 일행은 아니니까.”


필의 말에 그녀는 다시 웃었다.


하지만 반대로 하루가 그들의 의도를 의심했다.


“저, 혹시 근처에 쉴만한 곳이 있을까요.”


아까부터 잠자코 있던 세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촌락이라 그럴듯한 식당 같은 건······. 괜찮으시다면 기사단에서 쉬세요. 아까 무례를 보였던 사죄로 뭐라도 대접해 드릴게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레이첼이 권하는 말에 세인이 난감해하다가도 옆에 있던 발터를 흘깃 스쳐본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레이첼이 1층의 카운터 옆 방으로 들어갔다.


하루 일행과 발터, 드레이코가 서로 눈치만 보다가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진다.


서로 누가 먼저 질문해야 할지 가늠하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눈동자만 굴러가기 바쁘다.


“왕성에서 어떻게 나온 겁니까.”


운을 뗀 건 하루였다.


발터나 드레이코 둘 중 한 명이라도 상관없었다.


어찌 되었든 누군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를 알려주었으면 했다.


“쿠데타가 일어난 건 알고 있을 테지. 그 틈에 빠져 나왔어.”


드레이코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필이 의심쩍게 말해도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렇게 간략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럼 이번엔 발터가 대신 말했다.


“우리도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의심스럽게 여기던 부분입니다. 너무 손쉬운 탈출이었기에.”


사실상 왕성의 이례적인 참사였던지라, 수용소라고 해도 질서는 어지러워졌을 것이다.


경비가 없다면 자력으로 철창을 뚫고 나오는 정도, 그들 수준에서 손쉬웠을 거라 여겼다.


그럼에도 그토록 손쉬운 탈출이 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어쩌면 고의적인 해방일 수도.


그런 의구심을 늘어놓고 있는 하루의 옆에서, 세인은 연신 불편한 듯한 표정이었다.


“목숨이 아까워진 건가.”


화라도 난 억양이다.

실제로 세인의 눈빛이 차갑다.


하지만 발터는 동요하지 않고 고개만 천천히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내가 억지로 끌고 나왔어.”


드레이코가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당당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한 남자다.


“저 녀석에겐 말한 적 있는데.”


문득 그가 하루를 응시했다.


“그 녀석들을 찾게 되면 귀띔이라도 해달라고. 그 새끼들의 목을 손수 분질러줄 테니까.”


확실히 그러기 위해 탈옥이라도 감행하겠단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귀띔도 안 해줬거니와 실제로 실행에 옮기리란 생각은 미처 못했지만.


“제가 찾았단 얘기를 안 했는데 나온 걸 보면, 직접 발견한 모양이네요.”


“·········직접 행차하셨더군.”


데저트 펑크에서 마주했던 그 기운.


드레이코는 왕성을 빠져나오기 직전, 귀족의 세력이 끼어있던 그 오라를 놓치지 않았다.


“틀림없어. 생각보다 그들의 세력이 커서 대책 없이 대피했지만.”


그리 보여도 사리 분별 하나는 확실하다.


이미 알고 있던 정보였지만, 그곳에 칠성교가 있던 건 확실한 모양이었다.


앱하손.


아는 정보라곤 칼리파에게 들은 이름뿐이었어도, 요주의 인물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래서 그대 둘을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한다고?”


세인은 드레이코와 발터를 번갈아 노려봤다.


그에게 있어서 둘은 명백한 죄악이었으리라.

한때는 둘의 죄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며, 동정마저 마다하지 않던 그에게도 죄인을 놓아주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럼 할 말이 없던 드레이코가 아쉬운 대로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지금 와서 우리를 넣어두지도 못하잖아.”


세인이 못마땅한 듯 테이블로 시선을 깔고 눈썹을 찌푸렸다.


왕성을 탈환 당한 것도 모자라 방생된 죄인을 방관하고 있자니, 왕의 입장도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드레이코도 그들에게서 도망칠 궁리 따위를 하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뒤이은 말에는 정반대의 의지가 엿보인다.


“당신들한테도 적대적인 세력이잖아. 적의 적은 동료라고, 어차피 미래가 정해진 사형수 정돈 적당한 보험 정도로 생각해두라고.”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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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6. 전조 21.08.02 7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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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2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2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1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4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90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4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9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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