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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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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5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8.0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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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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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66. 전조

DUMMY

“단장님! 방금 하늘이······!”


계단으로 막 올라온 병사 하나가 저 위 왕좌에 앉아있던 레온을 향해 외쳤다.


옆에 있던 앱하손을 발견한 병사는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보셨습니까?”


레온이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든다.


방금의 광경을 담고 있던 그의 눈동자는 아무 말이 없다.


매번 사건의 중심에 있던 하루라는 택배기사가, 이번에도 제 앞에 선 건 어떤 인과가 따르는 것이라 여겼다.


레온은 줄곧 속에서 그 부분에 대한 의문만 되뇌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미소를 띠었다.


병사가 그 모습에서 큰 위화감을 느꼈다.


이미 과거에 자신이 알고 있는 기사단장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기어이 오는 건가.”


나지막이 흐르는 레온의 목소리에도 앱하손은 여전히 말을 아꼈다.


옆에 서서 안면조차 드러내지 않는 칠흑의 로브를 쓴 그의 초점이 어느 곳에 있는지도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레온에겐 들리지 않을 만큼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목소리가, 평소의 그의 것과는 다르다는 점만큼은 확실했다.


#


차다.


새벽공기의 쌀쌀함을 연합의 모두는 너 나 할 것 없이 피부로 체험했다.


“역시 아까의 퍼포먼스는 좀 무리한 거 아니야?”


카뮤가 말에 올라탄 유리의 머리에 앉았다.


“제 생각에도 좀 걱정되긴 하네요.”


이내 큐어도 카뮤의 의견에 동의했다.


새벽 출격이라는 말을 듣고 틀림없이 기습이라 여겼던 것부터가 착각이었던 걸까.


다들 내심 속으로만 하던 말을 내뱉진 못하고 있었다.


그럼 유리는 싱긋 웃었다.


“그러네.”


뭔가 다른 해결책이라도 있는 줄 알고 건넨 말이었는데, 그녀의 수긍을 듣고 말았다.


카뮤와 큐어는 물론 근처에 있던 이들이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눈동자만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시민들 정도는 휘말리지 말아야 하잖아.”


큐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제 사명이 긴급시술에 있다곤 하나 사전 예방까지 생각하지 못한 자신에게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리곤 다시 냉정한 눈동자로 돌아왔다.


“과연 그가 의도대로 해줄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게 할 거야. 아직 기사단장의 자아가 남아있다면.”


카뮤는 둘의 대화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는지 어리둥절했다.


주변 일원들의 눈빛은 더욱 견고해졌다.


연합은 천천히 왕성을 향해 전진했다.


휴식은 충분히 취했다.


음식은 적당히 섭취했고, 길을 비추던 달빛도 충만하다.


굳이 따지면 이번 쿠데타는 갑작스럽지만은 않았다.


꾸준히 유발되던 기사와 업체의 마찰은 그걸 예상하기에 충분한 전조였다.

그렇다면 비로소 온 현재는 적기인 것이다.

그들과의 마찰을 끊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어도 지금 연합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 상황에 제3의 변수가 끼어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루는 말을 천천히 이끌며 저 멀리 있는 왕성의 불빛을 상상한다.


아직 희미한 저 불빛이 레온이 있는 곳일까.

그리고 또 다른 대주교가 있는 곳인가.


앱하손이라는 이름이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건 분명 칼리파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리라.


곧잘 있는 건망증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짐이라곤 하나, 부디 지금만은 아니길 바랐다.

적어도 그 시절에 남아있을 존재가 남기는 악영향이 사소할 리가 없었기에.


하루는 크게 심호흡을 반복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도움이 되지 않는 상상만큼은 자제해야 했다.


그렇게 있으면 문득 비행선에서 반 정신이 나갔던 그레이의 말들이 떠오른다.


이번엔 한숨이 반복되고 만다.


‘뇌를 비우는 편이 낫겠어.’


생각이 많아질 나이인 건가.

그것마저 쉽지 않다.


세월이 가면 괜한 짐만 늘어간다는데, 때에 맞게 정리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차라리 지그시 눈을 감고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


조금은, 편해진다.


“괜찮겠나?”


그런 하루를 멀리서 지켜보던 장이 투움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뭘 말이에요?”


“하루라는 사내에게 그렇게 검을 많이 챙겨주지 않았나.”


사전에 하루가 투움에게 부탁한 일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예요?”


“우연히. 그보다 그만한 숫자······ 다루는 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확실한 건가?”


투움의 눈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선 진심으로 그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투움은 피곤한 듯 정면을 주시하며 피식 웃었다.


“그런 인간은 저도 본 적 없어요.”


“그럼 그렇지. 전부 저 사내의 검은 아니었던 건가.”


장의 기우였다는 식으로 마무리 지으려던 참에


“검은 전부 그의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게도 내뱉는 바람에 장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대체 어떻다는 거야?”


“말 그대로입니다만.”


정확하게 얘기해주지 않는 건지, 이미 해준 건지 통 알 수가 없는 화법이다.


장이 곤란하다며 투움의 얼굴을 슬쩍 확인했다.

그럼 그가 곧잘 귀찮아하던 악습관이 떠오른다.

또 뭔가에 실패한 건가.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실눈이 평소보다 더 퀭하고 사나워져 있다.


장은 의구심을 해소할 수 없었지만, 더 묻지도 않았다.


#


미동 않던 앱하손이 돌연 레온의 옆으로 다가가 뭔가를 속삭이는 듯했다.


남아있던 병사가 그 모습을 흘겨본다.


기존에 마음에 들지 않던 택배기사들을 한 차례 기죽인 건 좋았으나, 종교는 다른 의미로 더 아니꼽다.

그들이라고 모두가 종교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단숨에 자신들을 이끌던 기사단장을 변화시키고, 왕실 내부까지 이주한 그들을 좋은 마음만 갖고 대하는 게 불가능했다.


한참을 지그시 보던 병사가, 둘의 대화가 끝났다 싶을 즈음에 시선을 회피했다.


“슬슬 하이든 경을 불러주겠나.”


레온의 명에 옆에서 병사가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앱하손이 그런 병사의 뒷모습을 빤히 응시한다.


“역시 술식을 새기게 하심은······”


“······.”


앱하손의 제안에도 레온은 묵묵부답이다.


꼬신 것까진 좋았으나 레온의 그런 부분은 다소 거슬렸다.


고집이라 해야 할지, 뚝심이라 해야 할지.


그 덕에 둘 사이엔 최소한의, 그리고 필수적인 대화만이 존재했다.


알현실이었던 공간에서 그 외는 침묵만 있을 뿐이다.


한참을 또 그렇게 정적이 가득한 먼 전방만 주시하고 있으면, 누군가의 굽 소리가 무겁게 울려온다.


레온이 슬쩍 계단 쪽으로 눈알을 굴린다.


‘하이든.’


그가 천천히 걸어 왕좌 아래에 선다.


잠시 입을 열지 않는다 한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을 리는 결코 없으리라.


레온도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곧바로 본론에 접어들었다.


“마을 시민들의 대피는 끝났습니까.”


하이든이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했다.


“병사가 전달한 정보를 구태여 제게 다시 확인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곧 그들이 올 겁니다. 병력 배치는요.”


“물론 말씀하신 대로 끝냈습니다.”


“······.”


“용건은 그게 전부입니까.”


하이든의 말끝이 매번 날카롭다.


이전에도 그렇고 그의 언행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앱하손의 수도복이 바스락거리자 그의 의중을 어떻게 알고 레온은 팔을 들어 막아 세웠다.


하이든이 잠시나마 움찔했다.


“아직도 그 일로 앙금이 남아있는 겁니까.”


레온의 질문에 하이든이 잠시 뜸을 들인다.


레온이 말한 그 일이라도 떠올리고 있던 걸까.


이내 미세하게 떨린 입술을 자제하려 주먹을 쥐는 게, 애쓰는 듯 보인다.


“남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죠.”


그렇게 답한 하이든은 다시 고개를 들어,


“애초에 남지 않았다고 정말 생각하시는지요, 레온 경.”


경멸의 눈빛을 보낸다.


“아그레스 경을 그렇게 보낸 건 유감입니다만······”


“유감? 같지도 않은 소리. 또 그가 원한 바라고 되풀이할 셈입니까! 그딴 비인도적인 일을······!”


분노에 벅차 말을 이어가던 하이든이, 갑작스레 그 날의 광경을 떠올리곤 허리를 굽혀 몇 번의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하이든은 그 날의 아그레스를 잊을 수 없었다.


술식이 새겨진 몸,

기이한 비명,

사망으로 이끈 부작용.

끝내 화장하지 않고는 추모할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난······.


이젠 트라우마처럼 기억은 조각난 키워드로만 연거푸 스쳐 간다.


하이든이 헛구역질을 멈추고 이번엔 크게 심호흡을 반복한다.


“······이상 할 말이 없다면 전 가보겠습니다.”


하이든이 빠른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 시야에서 사라진다.


레온의 미간에 오랜만에 주름이 진다.


“지금 와서 당신을 탓하진 않습니다.”


말 없는 앱하손을 신경 써준다고 내뱉은 말이었으나, 정작 그는 레온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는 듯하다.

앱하손의 목소리들이 조금 더 다수 출현하고 있었다.

물론 레온이 눈치채지 않게끔, 후드 안에서 숙덕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틈새는 꾸준히 벌어지고 있었다.


연합 쪽에서 감지한 이가 있을 만큼, 생각보다는 크게.


#


왕성에 서서히 가까워지면 현자가 멍하니 그 방향을 응시했다.


“뭘 그렇게 생각합니까?”


옆으로 다가오는 하루에게 현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인다.


하루는 그런 현자가 익숙했다.

분명 카심이 죽은 그 날도, 그 후에도 똑같은 식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에 대한 신뢰가 쉽게 쌓이진 못했지만.


이쯤 되면 그저 타인의 반응을 즐기는 음흉한 여자였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괜찮습니다. 유리의 제안이었을 테고.”


“사실 저도 들떴어요.”


“······압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였다.


“그나저나 가장 문제는 그자겠네요.”


현자는 그자를 본 적도 없겠지만 여느 때처럼 낯설지 않은 자를 대하는 듯하다.


앱하손이라는 이는 현자에겐 그저 음산한 분위기로만 다가왔다.

들여다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존재.

언제부턴가 왕성 주위도 그랬다.


지그시 찌푸린 눈썹으로 있으면 하루는 의외인 듯 바라봤다.


“왜요?”


“드물어서요. 정말 위험인물이긴 모양이네요. 전 오히려 왕성에 있는 귀족이나 병사들을 걱정했습니다만.”


이번에도 흐후후, 따위의 이상한 웃음을 흘린다.


“또 뭡니까.”


“글쎄요.”


뻔히 말해주지도 않을 걸 알면서도 물어본 자신이 후회스럽다.


아주 여유로운 웃음이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내심 기대 아닌 기대를 하던 와중에 구태여 바라지도 않은 기회가 왔다.


왕성으로의 진입 이전, 갈림길에 멈춰선 연합은 전방에서 아주 날카로운 소리와 마주했다.


쐐액,


채앵──!


가장 먼저 소리의 정체를 포착한 필이 허리춤에서 푸른 단검을 꺼내, 원인을 깔끔하게 베어내었다.


‘중위급 단일계 뇌속성.’


단검에 남은 감촉만으로 술식의 정체를 파악하던 와중에도 적군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허공에 흩뿌려진 스파크가 사라지고 정적이 감돈다.

인기척은 없다.


“아마 원거리 저격일 겁니다.”


근처에 있던 소서러 하나가 의견을 내비치자 주위의 일대가 더욱 긴장감에 사무친다.


“그럼 여기서 작전대로 흩어집니다. 방금 것으로 깨달았겠죠. 방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유리의 말마따나 이제 적군의 범위 안이라 해도 무방했다.


각 조는 서로 다른 갈림길을 향해 나아갔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각자 다른 반응으로 전조를 맞이한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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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 #66. 전조 21.08.02 78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7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3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3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3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09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6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0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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