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63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02 00:00
조회
98
추천
4
글자
12쪽

#45. 특권이란

DUMMY

─아저씨. 언제쯤 이 짓을 그만둘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는 훨씬 먼 곳에서 마찬가지로 그렇게 불리던 날을 기억한다.


루돌프보다는 더 어른스럽고, 어른보다는 다소 어렸던 소년.


그 목소리가 줄곧 귓가에 맴돌면서 떠나질 않는다.


“산 결과물이 여깄었네.”


문득 대주교가 환희했다.


용케 그 질문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암부.


축복받은 이들이 이름을 날릴 때 머잖아 탄생한 또 다른 축복받은 집단.


오로지 아이들만으로 구성된 이들은 몇 년의 교육을 거친 후 청소년기에 정예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있어?”


대주교는 흥미가 솟는 말투로 하루에게 물었다.


아무리 씻고 봐도 그녀의 눈에 그는 오직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의구심이 증폭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뒷전인 양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입니다.”


한 마디, 한 단어에 새겨진 기세가 그녀를 더욱 소름 돋게 했다.


대주교는 질문을 주고받기라도 하잔 건지 우스웠지만, 까짓거 죽이기 전 궁금증 해소 정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암부? 그럼~ 난 아직도 그때가 가장 축복받은 ‘걸작’이라고 생각하거든.”


하루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처음엔 생체실험에, 그 후엔 첨단을 시스템을 이용한 인체 변화, 이번엔 아이들만 모아서 학대입니까.”


대주교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한동안 그 의미를 생각하다 뒤늦게야 깨달은 것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아아, 설마 그쪽을 만난 거야? 설마 그딴 놈들과 같은 식으로 엮일 줄은 몰랐네. 그 녀석들과 엄연히 다르니까 착각하진 마. 우린 생물한계돌파의 가능성을 믿거든. 너처럼.”


“뭐가 다르단 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봤을 땐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던데요.”


대주교가 일순간 표정을 썩혔다.


“이젠 내 질문에 답해줘야겠는데. 너, 그때의 아이 중 하나야?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기대하는 눈동자하고는.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현자는 특이한 경우였다.


어쩌면 하루 또한 그녀에 대한 기억은 없기에 첫 대면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 여섯 갈래의 날개는 영락없이 치품이었다.


왜 그녀가 세 쌍을 지녔는지 의문이 가는 와중에 하루는 차갑게 내던졌다.


“글쎄요.”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답이었는지 그녀는 지치지도 않고 또 표정의 변화를 보였다.


“곤란하네. 내 흥미가 식으면 난 다시 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갈 거야?”


“그렇게 두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이번 질문에도 성실히 답변해주신다면 답을 드리는 걸 고려해보죠.”


완전히 입장이 역변되었다.


그녀는 그런 그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드센 자신감은 생각보다 드물기에.


“천계인은 인계를 떠난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인계에 남아있습니까.”


“흐음.”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이번엔 도리어 하찮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보고도 감정의 기복이란 일절 없었다.


그 또한 꺼낸 답에 따르겠지만.


“새로워서 좋았는데 말이야. 방금의 질문은 좀 진부하네. 목적을 캐묻는 건 저지할 수 있는 자만의 특권인데.”


“·········하아.”


깊은 한숨.


순간 대주교는 제 귀를 의심했다.


그가 꺼낼 수 있는 행동 중에 그러한 반응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곧 그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그녀는 실소하고 말았다.


“그냥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주면 좋았을 텐데.”


“아까의 역산으로 기고만장해진 것 같은데, 네가 축복받은 이라면 천계인과는 역 상성이라는 것쯤─”


“당신이 치품의 날개를 지니게 된 연유까진 묻지 않겠습니다. 그건 어쨌든 업무와 연관성이 없는 것 같으니까요.”


방금의 발언으로 그녀는 멋대로 확신했다.


그의 정체는 최초의 축복을 칭호로 달았던 소문의 그 남자뿐이리라.


묘하게 고조된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에 하루는 질색했다.


“뭔가 이상한 착각에 빠진 건 그쪽 같습니다만, 특권이라는 거 한 번 누려보죠.”


#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방안에서 그레이는 홀로 테라스에서 서성였다.


잠시 포름에게로 시선을 옮기기라도 하면 그는 여지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했다.


“혹시라도 뛰어내릴 생각이라면······”


“죄송하지만 그런 무식한 방법은 당신 말곤 생각 안 합니다.”


괜한 헛기침을 하던 와중에 복도에서부터 누군가의 발소리가 점차 다가왔다.


덜컹


“그레이님.”


아까 전의 측근이었다.


그레이가 테라스에서 멍하니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녀는 재차 주인을 불렀다.


목소리는 들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레이의 미간이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하더니 눈동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곧 고개를 획 돌려 문 앞에서 대기하던 측근을 바라보면, 그제야 그녀도 그레이가 뭘 봤는지 예측했다.


“지인분들이시라면 들여보낼까요.”


그레이가 목울대를 꿀렁이다 끝내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뭔가를 지시하는 것보다도 그 자리에서 뛰어내리는 게 빠르다고 판단했다.


“그레이?!”


“그레이님!”


그녀의 행동에 측근이나 포름 둘 다 테라스 쪽으로 뛰어갔다.


그땐 이미 지상에 펼쳐진 술식 위로 가볍게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방금 그런 무식한 방법은 안 쓴다고······.”


간을 졸인 둘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잇따라 포름은 그녀가 향하던 목적지로 시선을 옮겼다.


잠시 멈칫하던 그도 소소한 미소를 띠면서 테라스 난간을 짚고 뛰었다.


“앗!”


다시 찰나의 추임새만 내지른 측근은 어느새 정문에 선 둘과 아이들을 눈에 담았다.


영 사정을 모르는 게 서운하면서도 그녀의 눈물이 보이니 안타깝지만, 또 동시에 미소가 만연하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


“요즘은 난간으로 나가는 게 유행일까요.”


난간에 기대 턱을 괸 채 측근은 멍하니 그들을 지켜봤다.


선선히 바람도 불면서 구름은 노랗게 물들어가는 게, 이 광경을 즐기기엔 썩 안성맞춤이었다.


그레이가 아이들을 껴안고 있었다.


가녀린 몸에 어떻게든 모두 품어보려는 욕심이, 그녀답지 않게 과했지만 드물게 보이는 매력이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도 과하게 물들면 게슴츠레 눈을 뜨곤 저 멀리 내다봤다.


노을에 물든 것은 아니었는데, 제 눈앞에 드리운 건 더 아니라면서 부정했다.


최소 광역계 달인급 마법진이 펼쳐진 하늘이란, 그렇지 않아도 상상하기 힘든 새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축복의 상징이자 그들만이 지닌 고유의 색.


어쩌면 이 영지를 다 뒤덮고도 남았을 거대함이, 함부로 입에서 감탄사를 낼 수도 없을 비탄을 자아냈다.


아래에 선 필이 그 광경을 마찬가지로 빤히 바라봤다.


무심코 과거의 대화재를 연상했다.


떨리는 온몸을 두 팔로 감싸려 애썼다.


제발 머릿속에서 떠나길 바라며 지그시 눈을 감고 있으면, 문득 그날의 손길도 함께 떠오른다.


제 손바닥에 새겼을 투박한 손.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있기에, 그만큼 어떻게든 구원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 가만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대주교란 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 기운이 닿았는지 아이들이 동요했지만, 그레이는 그에 반하듯 크게 외쳤다.


“생츄어리!”


그녀의 주위로 거대한 반구가 형성되었다.


영지 내의 피난령이 급하게 울렸지만, 모두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곁에 있는 작은 미래를 위해 제 몸 하나 불살라보리라.


소란이 끊이지 않을 것 같던 그때.

영지 내에 마치 이미 죽음이 한번 몰아친 것 같은 침묵이 도사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쥐죽은 듯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누군가는 탓하거나 원망하고 누군가는 포기할 때.

또 누군가는 그 행위가 모순을 빚는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른 채 두 손을 모은다.


하지만 그들이 수놓던 언행들은 어쩌면 모두 같은 바람이었기에, 마치 이 뒤의 일은 기적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우직

콰장창!


하늘을 가득 메우던 굉음에 모두는 일제히 하늘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법진을 형성하고 있던 술식들.

그리고 그 술식들을 형성하고 있었을 한 획 한 획들이 가루가 되어 지상으로 낙하한다.


허공에 맺힌 별들의 외침처럼.


잔잔한 풍경 같은 마찰음이 자잘하게 퍼져갔다.


그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온 순간이었기에 꿈만 같이 여기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저 먼 곳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 아이들은 깨달았다.


적어도 자신들을 구한 게 기적이 아니란 것을.


#


깨져가는 술식들이 짤랑대는 마찰음을 내고 있다.

넋이라도 나간 듯 대주교는 공중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이윽고 저 아래 하루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어깨만 으쓱인다.


달인급의 술식으로 이뤄진 광역계였다.


물론 그럴 생각이 없었다곤 해도 일개 영지 정도는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던 순간을 너무 쉽게 버린 것에 대해, 그의 개념은 비이상적이었다.


비이상적이라고 치부하기도 무안할 정도로.


대주교가 핏줄이 금방 터질 듯한 눈동자가 되어 쏘아봤다.


으득


가지런한 이들을 계속해서 짓이기듯 갈았다.


최초의 축복이라 해도 이미 반파되었을 심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건 그녀의 예상이 보기 좋게 틀렸다는 걸 암시했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야아아!”


허공에서 빠르게 그에게 돌진하는 그녀가 목놓아 외쳤다.


하루에게 닿는 울분이 너무 처절해 미안해질 정도였다.


쿠웅─


그녀가 그의 얼굴로 주먹을 내지른다.


가볍게 공격을 흘려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주먹을 내지른다.


맥없이 휘두를 뿐인 그것이 공격이라고 보기에도 힘들었다.


“앱하손 그 새끼지! 왕성에 몰래 세운 지부가 들킨 거야? 고작 지부 하나로 영역침범이다, 그거야 지금?”


“왕성?”


불현듯 스치는 건 처음 발견했던 벽의 낙서였다.


하루가 피하기만 하던 그녀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붙잡힌 주먹을 빼내려다 꿈쩍하지 않자 이번엔 있는 힘껏 째려봤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시죠.”


“이거 왜 이래. 그쪽 집단도 이미 아이들 소문으로 다 눈치깠잖아. 성역이 완성되면 자연스럽게 편승하려 했으면서 어딜 시치미야?”


이 여자는 뭘 착각한 건진 몰라도 머리끝까지 피가 쏠려선 전부 토해내고 있었다.


왕성, 낙서, 칠성교, 성서, 파벌······


스쳐 가던 퍼즐 조각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데저트 펑크 때 잠시나마 머릿속이 훑어졌던 경험을 다시 떠올리니 구역질이 나온다.


그 짓도 그녀의 짓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 알아내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아악! 아프잖아, 이 ㅆ···!”


“고상한 척하기 바쁜 짓도 이젠 집어치웠나? 천계인도 입이 다 거칠어지네.”


무심코 과거의 흔적이 일부 말투에 배고 말았다.


그의 안면에 진 그림자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인간상을 하고 있었다.


대주교가 입을 다물었다.


축복받은 이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이유가 아직도 앱하손이라는 남자의 기운이 묻어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녀의 당황스러움은 뵈지도 않은지 하루는 더욱 손에 힘을 쥐어 무릎을 꿇렸다.


더 이상 힘도 제대로 실리지 않는 그녀의 주먹에,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신음만 흘렀다.


“그놈의 특권이란 건 이미 얻은 것 같은데, 말해봐. 늦어진 만큼 추가된 질문들도 빼놓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작가의말

델타 변이된 코로나가 다시 극성이더군요.. :(

독자분들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9 #68. 너만은 널 21.08.04 73 3 12쪽
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8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4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 #45. 특권이란 21.07.02 99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7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10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