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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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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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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73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26 00:01
조회
81
추천
4
글자
12쪽

#61. 답답하진 않네

DUMMY

즈즛


노이즈를 내며 떠오른 건 빛의 고리였다.


고리라기엔 원의 형태가 불분명해 위화감이 있었지만, 그건 틀림없는 천계인의 상징 중 하나였다.


레온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제 밑에 놓인 그들의 반응을 즐기듯 여유롭게.


일행들이 패닉에 빠져 있을 때 하루는 천천히 레온의 행색을 살폈다.


날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 천계인마다 개성이 뚜렷한 탓에, 고리의 형태도 각양각색이라곤 하나 그의 것은 특히나 이질적이다.


분명 태생이 천계인이 아니라는 것에 기인한 탓이리라.


기어코 앱하손의 실험체로 전락한 그를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전락했다기에도 애매한 상태였지만.


레온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하루를 발견했다.


다른 이들의 반응과는 달리 침착한 그에게 흥미가 돋았다.


“택배기사, 우리는 세 번째 만남이던가.”


“······.”


“내 모습에 당황하진 않는군. 나는 제법 신비롭게 대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는 태랑, 두 번째는 백묘였지. 지금은 또 백묘가 아닌 묘한 조합을 달고 왔군.”


“당신, 어째서 멀쩡한 겁니까.”


여태 봐왔던 대로라면, 적어도 제 이성을 유지한 이는 없었다.


발터가 제작한 골렘이나, 드레이코, 버드와 같은 전례를 떠올리면 어렴풋이 예상은 갔다.


“실험의 결과가 성공했는지 묻는 건가.”


하루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레온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역시, 나로선 알 수 없군. 그자는 이것을 성공이라 부를까······. 이왕이면 내가 그만한 자격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주진 않겠나.”


“모든 기사가 당신과 같은 길을 택한 겁니까.”


“······그것까지 알려줄 의리는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그의 고리가 주기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그의 음성에 반응하는 것 같이.


“그래서 당신이 얻는 게 무엇이었습니까. 이미 당신은 충분한 강함을 지니지 않았습니까.”


본부에 있던 단원들 말만 듣자면 쿠데타 당시엔 천계인의 형상을 띠고 있진 않았다.


그만큼의 영향력을 보였다면, 단원들이 입에 담지 않았을 리 없다.

히나같은 주력 멤버를 상대로 저 힘을 쓰지 않았다면 그때만큼은 정상이었던 건가.


“얻는 거라.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왕좌.


마치 이미 제 손에 넣은 듯한 말투.

자만이 아니라면, 그와 현재 대치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덜컹!


그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건 드레이코와 발터, 포름이었다.

어째선지 그 뒤에 불청객을 붙이고 왔다.


하루는 그들을 마주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름은 레온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레온······ 기어이 타락한 신앙을 품고 말았느냐!”


“스승님. 폐하를 모시면서 검을 지니지 않으시다니, 너무 안일하신 건 아닙니까.”


그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지금 포름의 손에 검다운 검이 들려있다면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갔으리라.


포름은 입을 다물었다.


그야 물론, 제 저택이 점거되어 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다고 꺼내진 못했다.


그는 굉장히 분한 듯 입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어쩐지 굉장히 안타깝지만, 하루는 그게 바로 천운이라 여겼다.


“아, 정말 귀찮게 하네.”


뒤에서 따라오던 불청객 중에 렉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그레이가 익숙한 수녀의 얼굴을 봤다.


렉스 역시 낯익은 목소리에 그녀를 발견했다.


그리곤 곧 조소를 띠었다.


“성녀는 역시 그쪽에 붙었나.”


괜히 기분 나쁜 투에 욱한 그레이가 희미한 핏대를 세우면서 비웃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그렇게 미치광이 소리를 하더니 결국, 거기에 붙으신 건가요?”


“아, 그래. 어쨌든 히스테리녀나 광신도나 거기서 거기지만, 기왕이면 승기가 있는 쪽이 낫잖아.”


칫.


그레이가 먼저 혀를 찼다.


렉스는 그런 여자였다.


매사에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하면서, 그 신앙만큼은 유지하려는 간사한 인물.


분명 그 신앙을 유지 시켜준다고 하면, 어느 단체라도 들어갈 인물이었다.


그녀가 괜히 칼리파 옆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레이는 양쪽에서 조여오는 압박에 옴짝달싹 못 했고, 렉스는 그런 그녀를 서서히 조여왔다.


천천히 걷는 그녀의 발걸음을 레온은 위에서 느긋하게 관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아니.”


짤막한 단어와 함께 목소리를 내었다.


렉스는 제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등 뒤로 비치는 후광이 마치 천계와 지상을 잇는 제사장이라도 되는 양 찬란하다.


“무슨 말이지?”


그 후광 때문인지 단순히 기분이 나빠선지 눈살을 찌푸린 그녀가 물었다.


“말했을 텐데. 그들과는 오늘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고.”


앱하손에게 전해 들은 바였다.


하지만 칼리파를 죽게 한 장본인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하는데 순순히 놓아달라는 말인가.


간단하게 버리긴 했어도, 렉스에겐 최소한의 염치는 있었다.


“······읏.”


그러나 뭔가를 꺼내려던 입이 몇 번 뻐끔대더니 곧 다물어졌다.


그 최소한의 염치보다도 이후에 있을 귀찮음이 속에서 증식했다.


하아.


렉스는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뒤돌아 가려던 그때,


“이봐, 무슨 짓이야?”


옆에 있던 또 다른 신자가 언짢은 억양으로 툭 내뱉었다.


“뭐가?”


“이대로 떠날 거야? 우리의 리더는 어디까지나 대주교님이다. 누가 굴러들어온 돌들 아니랄까봐,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거냐?”


렉스는 그가 나불대는 와중에도 레온을 한 번 흘깃 스쳐봤다.


“뭐라는 거야. 그 잘나신 대주교님이 직접 명한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누가 굴러온 돌이래? 우리가 가져온 자료 덕에 진전 없던 실험이 다시 돌아갔는데.”


렉스는 그새 곤란한 일을 직감하고 홀로 가던 길을 갔다.


렉스의 무리가 먼저 자리를 벗어나면, 방금까지 발언하던 신자의 무리만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쯧, 건방진. 됐다, 이 녀석들이야 우리만으로 충분하겠지.”


레온의 말은 없던 것으로 치는 건지 하루 일행들을 연행하기 위해 다가오던 신자의 행동에,

레온의 눈썹이 지그시 가라앉았다.


하루가 다가오던 신자를 무표정하게 방관할 때,


구웅


묵직한 음성이 울리더니 신자는 누가봐도 불편하게 내뻗은 팔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권능은 제대로 작동하는 모양인데. 아직 내 권위가 신자들에게까진 닿지 않는 건지, 네가 그 정도 작용도 받지 못하는 신앙심없는 말단인 건지.”


과연, 자격은 둘째치고 그가 특별하다는 사실만은 잘 알았다.


권위.


권능을 발현시키기 위한 필수자격,

신앙심을 받을 수 있는 존재.


칼리파가 용사로 착각한 하루와 자신의 상성이 나쁘다고 말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용사들이 권위에 거스르면서까지 천계인과 대적한 때가 있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그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거절하는 부작용이 컸으니,

만일 당시 인계가 용사의 힘에만 기댔다면 인계는 식민지화된 또 다른 미래를 생성했을지 모른다.


권위의 발현엔 일단 움직임의 자유가 사라진다.

지금의 신자처럼.


기본적으로 권위를 발현시킨 대상에게 경외심을 느끼고, 언령의 범위내 대상으로 선정된다.


말마따나 사라지라고 말한다면 그 존재는 눈앞에서 연기처럼 흩어진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나 상식에서 벗어난 언령을 다루는 자는 목격한 바가 없었다.


그만한 자가 존재했던 건지도 의문이었다.


실제로 뒤이은 장면은 레온이 구태여 언령이 아닌, 제 힘을 과시함으로서 그를 굴복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레온의 중지와 엄지를 맞댄 손가락들이 서로 경쾌한 마찰음을 냈다.


그를 중심으로 주변으로 퍼져나간 파동이 알현실 벽에 닿았다.


파스스슷···


이내 닿은 면적을 기준으로 황금빛을 내기 시작한 벽이 사라져간다.


공중분해라는 말이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일 정도로.


그게 정녕 두 손가락으로 행해진 사실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순식간에 알현실은 성 가운데 높게 솟은 전망대처럼 되었다.


주변 풍경이 한 번에 눈에 들어온다.


지고 있는 태양, 하늘에 드리운 낮과 밤의 경계.


고도 탓에 부는 바람이 레온의 금발을 연이어 흔든다.


주변에 있던 인원들이 하나 같이 커진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털썩


그의 권능을 잠시나마 몸소 느꼈던 신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네 말대로 종교에 속해있는 자를 내 멋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언제든 사라지게 할 힘은 있겠지만.


그 한 마디가 생략된 듯하다.


하루는 식은땀을 흘리며 도망치듯 떠나는 그들을 바라봤다.


그가 자신들을 놓아준다는 말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봐도, 쉽사리 떠오르진 않는다.


그보다 앱하손이라는 자는 정말 실험의 영역을 넘어선 걸지도 모르겠다.


─그건 연성이 아니라 창조야.


살아있는 인간을 토대로 창조라는 말이 가능한 걸까.


그렇게 말해도, 지금 제 앞에 있는 자를 봐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과거의 흔적은 있는지 낯설기만 하다.


“아까 그 자를 위해서만 보인 건 아닙니다.”


레온은 세인을 응시하며 말했다.


세인에게 그에 대한 답은 없었다.


레온이 지그시 눈을 감는다.


“정녕, 투항의 의지는 없는 모양이군요. 그렇다고 다시 쳐들어오지 않을 것도 아닌 듯하고.”


“레온!”


포름이 다시 외쳤다.


방금 있던 일을 보고도 그렇게까지 목청을 드높일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그였기 때문이라고 레온은 생각했다.


“그럼 대화는 정말 끝인 듯합니다. 돌아가시죠, 스승님. 이후 다시 이곳에서 만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굳이 왕성으로의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것도 아니면 제 군세를 전부 몰아내고 도달하라는 의미였을까.


어찌 되었든 세인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세인이 레온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딘 포름의 손목을 잡았다.


“폐하······.”


고개만 숙인 채 정적을 유지하는 그의 등이 한없이 작다.


그들은 곧장 계단으로 향했다.


내려가던 하루가 뒤돌아 그의 옆모습을 눈에 새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알현실이 있는 층엔 적막이 드리웠다.


그렇지 않아도 넓은 알현실이, 한없이 넓어졌다.


레온은 멍하니 앉아 사방이 뻥 뚫린 만큼이나 가득한 공허함을 만끽했다.


‘그래도, 답답하진 않네.’


#


“그래도 사실 목표는 무난하게 달성한 셈입니다. 애당초 그를 회유하는 것보다, 무사히 대화를 마치고 오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자신보다도 더 풀 죽어있는 포름에게 세인은 위로의 말을 덧붙였다.


그럼에도 포름의 어깨는 이미 땅에 닿을 것같이 축 처진 채다.


“제자의 그런 모습을 목격해버리면, 아무래도 무리겠죠.”


하루의 일침에 세인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하라 일렀지만, 움찔하던 포름은 이미 회생 불가상태다.


물론 침울해진 건 포름뿐만은 아닌 듯했지만.


발터와 드레이코가 아무 말이 없다.


아까부터 무척이나 불만인 얼굴을 한 드레이코를 보면, 얼추 예상은 갔다.


“괜찮아.”


필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끌렸다.


그렇게 내뱉는 맹한 푸른 소녀의 얼굴이 그리도 우스웠던지, 보고 있던 일행들에 하나둘 미소가 드리웠다.


정작 그녀는 고개만 갸웃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셰프와 오너가 그들을 반겼다.


그럼 포름도 마지못해 씁쓸한 웃음을 흘린다.


마찬가지로 모두 그 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방금의 걱정이 무색하게 일행들의 팔엔 그리도 생기가 감돈다.


작가의말

더워 죽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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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2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4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4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9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4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7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1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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