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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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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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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82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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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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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53. 나는 반반

DUMMY

정적이 어색하다.


순간 투움의 이마에 솟은 핏대를 목격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그의 나긋한 미소가 오히려 두렵다.


세인이 발언하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왕님. 내가 지금 철을 두드리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칼을 쥔다는 의미를 알고 있어?”


투움의 눈동자가 이미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눈을 띠고 있다.


어디선가는 한숨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저······”


“잘 알지. 보호해야 할 대상을 지키기 위함이다.”


세인이 잠시 주저하고 있을 때 옆에서 포름이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그게 투움의 이마에 두 번째 핏대를 만들었다.


“전 찬성입니다.”


“뭐?!”


큐어가 가세하면 기어코 참지 못한 그가 폭발했다.


쿵!


연이어 요란하게 주먹을 내리쳐도 개의치 않은 그녀는, 처음 이미지 그대로 마이페이스로 치고 나갔다.


“어느 의사가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 좋아라, 하겠어요? 상식 아녜요?”


“종전 선언으로부터 3년도 채 안 되긴 했지.”


슬며시 끼어들던 오르비스가 뒷머리를 매만지다가도 투움이 소름 끼치게 웃으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난 동물들을 함부로 하는 녀석들, 절대로 용서 못 해.”


이번엔 키티가 반대의견을 냈다.


“용서하란 말이 아닙니다. 폐하께선 최소한 목숨은 앗지 말자는 겁니다.”


그레이의 단호함에 키티는 다시 숙연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저곳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리가 팔짱을 끼고 옥신각신하며 점차 어수선해지는 광경을 지그시 관전했다.

잔잔하게 빛바래는 두 금안이 이번엔 무엇을 꿰뚫고 있을까.


하루는 또 그녀의 무언에 어떤 의중이 담겨 있을지 예상한다.


일원들과 달리 하루가 홀로 또 다른 논제를 만들고 있을 때, 유리가 손뼉을 몇 차례 두드려 소란을 잠재웠다.


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단숨에 몰렸다.


그럼 유리는 천천히, 똑바로 발음했다.


“난 반반이야.”


이게 무슨 양념 반, 후라이드 반 같은 소린가.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리자는 걸까.


무수한 추측이 그들 사이에 오가면 유리는 덧붙였다.


“어찌 되었든 반 세력은 자국민이잖아.”


일부 단장들의 수긍이 잇따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모든 이들의 이해를 끌어내진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후 남은 반의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칠성교, 아무리 나라도 거기까지 커버하는 건 힘들지도.”


싱긋 짓는 미소에 그렇게까지 많은 적개심이 나타날 수 있던 건지.


그날 그 장소에 있던 이들은 언젠가 ‘신묘’라고 불리기도 했던 존재의 노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그럼에도 그곳에 있던 나머지 일행들의 의견을 단숨에 모은다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그 중 둘은 극단적이었다.


“그럼 앞으로 무기 제작은 관둘게.”


투움.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이는 그가 많은 이들의 한숨을 끌어냈다.


덤으로 세인 또한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아마 칠성교마저 포용하고 싶다는 난제가 다소 자리 잡고 있던 탓이리라.


“잘 들어. 대장장이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무기의 탄생이란 생명을 해할 수밖에 없는 가능성의 탄생이야. 검을 들고서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야 할지 판가름하겠다고? 그것도 무기를 지닌 적 앞에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드르륵


투움이 조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물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각 파벌에서 무신을 담당했던 이들 정도? 만약 자신이 그 정도로 무기에 통달했다고 생각한다면 찾아와.”


가능성 없는 예시를 드는 게, 누가 들어도 비꼬는 얘기였다.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를 모두가 말없이 응시했다.

그 와중에도 포름과 그레이는 하루에게 시선을 보냈지만.


둘은 그의 발언 속에서 마침 적정인물이라 생각하는 이를 향해 반사적으로 반응했을 뿐이었다.


하루는 그런 그들의 바람이 어떤 건지는 몰라도,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만약 이대로 또 적장과 대립하게 될 일이 있다면, 그땐 정말 심장이 붕괴할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이 없게끔 적절한 매개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게 가장 연명하기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셋이 서로 시선을 나누고 있을 때 나머지 인원들은 당황하거나, 아쉬워하거나, 대책을 떠올렸다.


“뭐, 어쩔 수 없지. 그의 의견도 난 어느 정도 존중해. 아마 그도 망치를 손에서 놓을 뿐이지, 분명 정비공의 의무는 다할 거야. 대장장이는 다른 업체만으로 보충하자.”


유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세인이 다시 손을 들었을 때 유리는 또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았다.


그의 표정을 본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 역시······ 칠성교라도 의견은 들어봐야 한다 생각합니다.”


“미쳤어? 그들이 한 짓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반대편에 앉은 키티가 외쳤다.


모든 종족과 교감 가능한 그녀였기에 더욱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레이나 포름도 그것을 나무라진 않았다.


“그녀의 말이 맞아 세인. 나도 그들이 한 짓을 가장 가까이 목격한 사람으로서, 함부로 지지할 순 없어.”


그녀마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들도 이 세계에 남은 시민입니다.”


일부 단장들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가만히 팔짱을 끼던 장도 낮게 음만 흘렸다.


인품이라고 해야 할지, 의심스러울 만큼 다른 의미로 뒤틀려있다.


그의 속엔 모든 것에 동등한, 말 그대로 대해라도 자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선발대로 들어가면 어때.”


잠자코 있던 필이 나지막이 꺼낸다.


“폐하를 선발대로?”


“응. 위험은 따르겠지만, 내가 간다면 어떻게든.”


포름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필이 말한다.


말로만 듣던 그녀의 능력이라면 분명 위험성은 덜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역시 들었기에, 포름은 백묘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리와 하루가 필을 빤히 바라봤다.


“필. 제 부탁으로 능력을 사용한 게 얼마 전입니다. 짧았다곤 해도 역시······”


“좋아.”


하루의 반대와는 달리 유리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렇게나 시원하게 허가할 줄은 몰랐다.


머리 위에 있던 카뮤도 근심스러운 얼굴을 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단장의 의견이니만큼 반박하진 않았다.


게다가 유리가 하는 말이었다.


막무가내긴 했어도 그녀는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이였다.


“모두에게도 마침 들어온 정보에 대해 말해줄게. 투움한테는··· 차후에 전달 좀 해줄래?”


“정보?”


모두가 일제히 의문문을 띠었다.


“왕성으로 택배기사가 드나든다는 정보.”


“쇄국 운운하면서 틀어박혀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가 보네요?”


어느새 잠에서 깬 스텔라가 턱을 괴고 있었다.


“거기로 드나드는 물품이 뭐라고 생각해?”


“뭐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필수품목 아닐까요? 최근에야 택배기사 없이 식자재를 공급받는 귀찮은 일, 안 할 테니까요.”


스텔라와 똑같이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 유리는 문득 음흉하게 웃음을 흘리는 것이다.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였을까.


“콜로사이니!”


돌연 그렇게 외치면 상당수가 적잖이 놀라는 반응이었다.


음흉이 아니라 떠올린 것만으로 행복했던 건가.


그것보단 셰프가 그곳에 남아있다는 것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하루는 반대로 그였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왜 그가 거기에?”


아니나 다를까, 의문을 품은 인원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들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 하루가 답을 주었다.


“그는 전쟁 중에도 여타 다른 이들과 달리, 이 진영 저 진영을 다니며 맛과 요리법을 습득했습니다. 반 세력이 그의 레스토랑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가 떠날 이유도 없겠죠.”


“거, 거기까지일 줄이야.”


누군가는 경탄과 경악을 함께 내비쳤다.


“그럼 그 택배가 셰프 때문에?”


“모두 식당 때문이라기엔 뭐하지만, 분명 그런 연유로 드나드는 품목들일 거야.”


거기까지 정보가 오갔을 때 스텔라는 혼자 기막힌 발견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과연! 아가씨는 다른 택배기사로 변장해서 잠입하자는 거군요!”


이미 누구나 떠올리고 있던 생각이었지만,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한마음으로 보존해주었다.


옆에 앉아 녹티스가 대신 얼굴을 붉히고 있다.


유리는 두 자매가 그저 귀엽게만 보이는지 크게 웃었다.


“드나드는 택배업체와 협력한 후 콜로사이니로 잠입만 가능하다면, 필의 능력을 연이어 쓰지 않아도 셰프의 조력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야.”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소문은 나 있었지만, 언젠가 얘기했던 대로 그와 친분을 쌓고 있던 하루 역시 선발대에 포함하면 그만이었다.


“음. 하지만 역시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 폐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에도 포름의 걱정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레이는 그 반응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다루스 영지에서 있던 광경,

누구라도 대주교에게 위협을 느끼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하루라는 존재가 한 번 쓰러진 걸 목격해버리면 그 불안은 더했다.


고심하던 세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다는데, 내칠 순 없겠죠.”


포름은 이제 말릴 생각을 거뒀다.


그렇게까지 결단을 내린 눈빛의 세인은 그만한 고집을 동반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게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때론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경험했기에 느끼는 두려움.

그에겐 그런 게 없었다.


이번 작전이 이뤄지는 동안 그가 그것을 깨닫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내린 판단으로 좌절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한동안 회의가 더 진행되는 동안 하루의 정신은 그곳에 없었다.


세인과의 동행이 정해진 순간,

무심코 떠올리고 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머리를 굴렸다.


그럴 때면 또 자칭 신이라는 작자가 왜 이렇게 무소식인 건지, 그조차 나쁜 예감으로 연관시키고 만다.


“일단 선발대는 우리 쪽에서 투입 시킬게. 너무 많아도 좋진 않으니까.”


스텔라가 시무룩하게 테이블에 볼을 맞댔다.


그녀를 제외한 모두의 기세가, 회의의 막바지에 이르러 더욱 굳건해져 있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의 시대가 판가름 날 거야.”


“종전이랍시고 마냥 평안하게 지낼 줄 알았더니.”


“썩은 뿌리를 이제야 발견한 거지 뭐.”


하지만 유리는 푸념이 오가는 정경마저 좋다고 생각했다.


감히 상상이라도 했을까.


이들이 서로 같은 테이블에 앉아 마주 보며 기쁨, 슬픔, 불만이나 짜증을 서로 섞고 있을 줄.


“다들 잘 부탁해.”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합의 장을 나와 천천히 걷는 유리의 옆에서 하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


그녀는 속일 방법이 없다.


용케 신의 심장을 숨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필을 이번 선발대에 넣어도 괜찮은 겁니까?”


“······많이 자상해졌구나.”


그녀의 한 마디가 하루를 제법 당황 시켰다.


그런 반응이 재밌는지 유리는 연신 짓궂게 웃었다.


“이해해. 저번에 그녀를 부른 것도 네 나름대로 무리하게 부른 걸 테고. 그래도 이번 일이 끝난다면, 아직 지부장의 권한을 의심하는 단원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거야.”


생각해 보니 그러기 위해 자유 도시에 온 단원들이 있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유리는 하루가 미처 보지 못한 사각까지도 제대로 살피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말했잖아. 사전에 셰프에게 도움만 요청해도 그 아이의 부담이 훨씬 덜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자신하는 말투의 유리가 콧대를 높이며 앞서갔다.


하루는 잠시 멈춰 서선 가만히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자신이 걱정하는 게 그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아무렴 걱정 따위가 보잘것없어진다.


뒤가 휑했는지 돌아보던 유리가 번쩍 든 손을 흔든다.


조용히 혼자 웃음기를 띠며 다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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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2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2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1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4 3 12쪽
» #53. 나는 반반 21.07.14 86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90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4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9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4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7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1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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