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62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15 00:00
조회
83
추천
3
글자
12쪽

#54. 스미스 정비소

DUMMY

“하루씨!”


백묘로 돌아오자마자 가엔의 부름을 받는다.


하루가 다가가면 가엔이 카운터 밑에서 뭔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내 택배 포장된 기다란 물건 하나를 꺼낸다.


“뭔진 모르겠는데, 하트님이 보내신 것 같던데요.”


낑낑대며 겨우 카운터 위에 올려놓던 그녀가, 물건에 의문을 가졌다.


“감사합니다.”


하루가 붙은 테이프를 주욱 뜯더니 나온 건 한 자루의 검이었다.


손잡이를 들어 검집에서 슬쩍 빼냈다.


다 닳아빠진 날이 유독 눈에 띄는 녹슨 검.


이제 약값을 지불할 정도의 수입도 있었으니 담보는 돌려받았다.


물론 담보 정도의 값어치도 없거니와 그녀도 가져갈 리는 없었겠다만.


“그게 뭐예요?”


척 봐도 검이었지만, 가엔의 의구심은 가시질 않는다.


“제가 전쟁 때 쓰던 놈입니다.”


장장 수백 년을 함께했다곤 말하지 않았다.


“설마 쓰려고?”


함께 왔던 유리가 뒤늦게 발견하고 나란히 섰다.


“예, 뭐.”


“전에 말했던 술식에 부담을 느껴서?”


“그런 거죠.”


장정이 몇 번씩 픽픽 쓰러지는 모습을 봐서야, 유리도 여간 힘든 상태인 건가 싶었다.


“아무리 투움이 무기제작을 거부했다곤 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유리의 영 미덥지 않다는 표정이 그대로 검을 향했다.


일반적이라면 당연하고도 남는 반응이었다.


겉보기만으로는 어느 유적에서 주워왔나 싶을 정도의 외견이었으니.


“유리. 혹시, 백묘 단원 중에 대장장이가 있습니까?”


돌연 그렇게 물어오면 유리는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보더니, 그렇다고 했다.


백묘의 이름을 알린 주력 단원 중 한 명.


“혹시 지금 여기 있습니까?”


구태여 그렇게 물어본 건 확신이 없어서였다.


“음······. 혹시 그의 도움이 필요한 거면 곤란한데.”


그럼 그렇지.


만약 도시에 남아 있었다면 연합의 장에서 한 번쯤은 언급이 됐을 법도 했다.


“괜찮습니다. 얼추 예상은 했으니까요.”


“어쩌려고?”


유리는 그가 질문한 시점에서 이미 예상한 듯, 검에 시선을 고정하고 물어왔다.


“투움에게 가봐야죠.”


“엥? 하지만······”


“그가 스스로 와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루는 검을 허리춤에 맨 후 들어온 입구로 돌아 나갔다.


남은 유리와 가엔이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랬던가?”


뒤늦게야 답하면서 가엔을 쳐다봐도 그녀는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


얼마 전부터 도시에 활기가 더해졌다.


활기라기보다 단순히 바쁜 것뿐일지도 모르겠다만.


하지만 오전까지만 해도 들려오던 망치 소리가 사라져서인지 소음은 한층 적어진 느낌이다.


이래저래 주변의 변화를 관찰하다 보니 투움의 정비소에 도착했다.


‘이곳이 스미스 정비소.’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업체 앞마당에 한가득 기계들의 부품이 널브러져 있다.


하루는 조심스레 대문 너머로 들어갔다.


점차 기계 만지는 소리가 커진다.


망치 소리 정도는 아니지만, 업체 내부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그때 문득 걸어들어오는 하루를 목격한 사원이 고글을 벗었다.


“누구쇼?”


“아, 저 투움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대뜸 제 업체의 사장을 찾는 이를 달갑게 보라는 법은 없겠지만, 외형이 그렇다 보니 노려보는 눈이 더 위협적이다.


“누구신데 사장을 찾으쇼?”


그제야 하루는 품에서 택배기사 신분증을 꺼냈다.


“백묘 택배기사 단원 하루입니다.”


“백묘?”


그제야 그 눈에 하루가 입고 있던 백묘의 제복이 눈에 들어왔다.


쭈그려 앉아있다가 일어나니 체구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하루에게 천천히 다가가선 들고 있던 신분증을 더 가까이서 확인하곤, 혼자 끄응 하는 효과음을 흘렸다.


곧 볼을 긁으며


“기다려보쇼.”


한 마디만 던져놓곤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다른 인원들은 홀로 덩그러니 놓인 하루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했다.


자유 도시에 속한 업체만 수십.


게다가 발명한 최신 기계들을 시험 운용해보는 시기인지라 자잘한 문제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으아아!”


옆에서 들리는 비명에 화들짝 놀랐다.


누군가 제 머리를 헤집으며 발광하고 있다.


그들의 스트레스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하하, 또 그놈이냐?”


누군가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안쪽에서부터 빠져 나왔다.


“예, 뭐. 휴대용 증폭기의 부품 하나에서, 기존에 쓰던 술식을 받아들이질 않네요.”


비명을 지르던 이에겐 익숙한 목소리인 듯, 자연스레 문제점을 설명했다.


투움이다.


그가 하루는 둘째치고 먼저 문제점을 제시한 이에게 걸어갔다.


무안하게 선 하루가 그들이 의논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그의 첫인상과는 다르게 진지하다.


대장장이였을 시절에 망치질을 대하던 태도가 훤히 보이는 것만 같이.


“그럼 이렇게 전력계 부품을 직렬 술식으로 고쳐 써봐. 새로 고쳐 써야 하는 수고는 있겠지만.”


“예, 사장님.”


볼일이 끝나면 처음으로 그가 시선을 돌렸다.


“아, 미안. 손님을 기다리게 해버렸네.”


방금과는 또 달리 그의 얼굴에 조소가 어렴풋이 보인다.


자신이 했던 말을 그도 잊어버리진 않은 듯하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무기에 관한 건이겠지?”


“그렇습니다.”


“흐음, 그럼 네가 무신이야?”


역시 그의 말에 이따금 비웃음이 섞여 나오는 이유였다.


무신이라는 호칭을 받은 기억은 없어도, 무신과의 대련을 취해본 적은 있다.


그런 이야기 따위를 전하면 그는 또 여지없이


“오오, 그래서? 이겼어?”


비꼬듯 묻는다.


“전패입니다.”


참지 못한 그가 폭소했다.


썩 웃기는 답도 아니었을 텐데 그것도 고의였을까.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아니면 내 얘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던 건가?”


그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답을 내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엔 그에게 먼저 요구했다.


“그것 때문에 부탁드리려고 한 겁니다. 제작은 필요 없습니다만, 제 무기를 고쳐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하루가 허리춤에 찬 검을 한 손에 쥐고 그에게 내밀었다.


방금까지 웃음기 가득하던 얼굴엔 순식간에 정색이 드리웠다.


과연 현 사장의 위치에 있는 값은 한다는 건가.


한눈에 알아본 게 틀림없다.


이 검의 ‘무게’를.

정확하게는 이 검이 본래 지닌 무게를.


“이 검, 네 거야?”


무신에게 전패했다 자랑하듯 망설임 없는 사람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맞습니다.”


“평범한 건 아니네. 아니······ 그런 설명으로 끝내도 될 문제는 아니고.”


투움이 이번에도 실눈을 게슴츠레 뜨고 검에게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하루는 내민 손을 거뒀다.


대장장이로서의 탐구심이 반사적으로 일으킨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찰나가 아니란 것도 잘 알았다.


“고쳐주시겠다면 맡기겠습니다.”


투움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사원들도 정비를 멈추고 하루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하아. 이 여우 같은 놈 보소. 이런 물건을 먼저 보여주고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투움이 식은땀을 흘렸다.


하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에야 백묘의 대장장이에게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니, 남은 건 그래도 도시에서 이름이 있는 투움 정도였다.


“좋아.”


그가 그렇게 답했을 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한 가지만 확인시켜줬으면 하는데.”


“예?”


“말이 수리지 이 정도 파손이면 거의 제작급이잖아. 게다가 내가 내뱉은 말도 있는데 그정돈 지켜야 하지 않겠냐?”


“뭘 듣고 싶은 겁니까.”


“뭐긴. 아까 하려던 말, 마저 듣자는 거지.”


다시 검을 둔 대치상황.


대충 넘어가려 했던 자체가 어설프긴 했다.


“무신과의 전패는 사실입니다. 대체된 검이었으니까요.”


“그게 뭐?”


“이 검을 보고 느끼신 게 없습니까?”


투움은 하루의 말에 검을 빤히 바라봤다.


덤으로 옆에 있던 사원들의 눈도 따라 움직였다.


그러더니 투움 혼자 뭔가를 눈치챈 듯 사색이 된 얼굴을 했다.


“설마 너······”


사원들은 여전히 의문인 눈빛으로 투움의 답을 기다렸다.


“···이 검밖에 사용할 수 없는 거냐?”


“예. 다른 검을 사용하면 일회성이 되어 버리는 모양이라.”


어쩐지 그가 들고 온 검은 처음 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모양새였다.


쉽사리 낡거나 닳지 않을 터였다.


적어도 제 눈이 잘 못 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이라면 여태 품었던 의구심이 풀렸다.


둘의 대화에도 사원들은 알아듣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마치 머릿속 필터에서 이해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


필터를 제거하고 억지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회성이란 말을 검에 접목해도 납득가지 않는 말이긴 했다.


사색도 잠시 투움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실소가 섞인 한숨.


그는 뒤늦게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검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쓸 수밖에 없던 이유를 떠올리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도 인재가 없었던 건가.”


혹은 그마저도 안 되었던가.


“무리하진 마세요. 탓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이었던 건진 알 수 없으나 그 말이 더욱 투움의 투지에 불을 지폈다.


“하! 무리? 아닌데 전혀? 기다려. 선발대가 돌아오는 날에 맞출 테니까.”


도발을 받은 아이처럼 반응하면 하루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었다.


가능하다면 두 번 다시 잡는 일은 없었으면 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게 분명하고.

앞으로 있을 배송에 택배기사가 제대로 몸을 쓰지 못해서야, 해고는 불 보듯 뻔하니까.


거기까지 가정했을 때 하루는 온몸에 끼치는 소름을 떨칠 수 없었다.


‘제발 그것만은.’


괜히 허전한 허리춤을 매만지며 연신 되뇌었다.


#


여신상을 빤히 바라보던 수도복의 그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만 살짝 돌린다.


끼이─


천천히 성당 문이 열린다.


슬며시 새어 나오는 빛과 함께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기사단장이었다.


“대주교님.”


“기사단장님이 여긴 어쩐 일로.”


낯익게 부르는 둘의 목소리만 건물 안에 퍼진다.


“오늘도 기도 중이신가 보네요.”


“예, 뭐. 종교에 몸담는 이가 그것 말고 달리 뭐가 있을까요.”


그러곤 다시 여신상에게로 시선을 가져갔다.


기사단장도 그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서 새어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 여신의 머리 위에 감돈다.


“이전에 말씀해주셨던 건······”


기사단장의 언급에 수도복 소매가 움찔한다.


“여러분이 안심할 결과를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기사단장이 잠시 고심했다.


그 모습이 여신상에게 어떤 기도를 올리는 형태처럼 보인다.


이윽고 생각을 마친 듯 대주교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봤다.


“다른 귀족분들의 의견은 아직이지만, 전 받아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대주교가 뒤를 돌아 그를 마주했다.

여태 보였던 반응들과는 확연히 큰 차이다.


거뭇한 후드의 안쪽이 어떤지 보이진 않아도, 그의 나긋한 목소리만 들으니 그나마 긴장은 덜했다.


‘날 보고 있는 건가?’


혹은 말을 듣지 못한 건가.


그의 미세한 숨소리만 들어선 어떤 상탠지 알 수가 없다.


기사단장이 한동안 그와 묵묵히 마주 서 있으면,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앱하손이라 부르세요, 형제님.”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9 #68. 너만은 널 21.08.04 73 3 12쪽
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8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4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7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10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