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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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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43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6.25 00:00
조회
109
추천
4
글자
12쪽

#39. 흥미가 있습니까

DUMMY

과거 푸른 리치 왕의 영역을 침범해 인계군단과 올랐던 빙산.


그들이 그곳을 올랐을 때 간과한 건 미끄러운 발판도, 살이 에일듯한 칼바람도, 푸른 왕의 강력함도 아니었다.


그곳에 서식하고 있던 생물들의 맹독성.


침, 이빨, 발톱, 가시 등에 작은 찰과상이라도 입어 사망자가 대거 발생했다.


부상자는 첫째로 차갑게 온도가 식어가며, 그와는 반대로 식은땀이 흐르고 극한의 추위를 느낀다.


무엇보다 독이 퍼지는 부위 주변으로 서리가 생기는 게 독이 퍼지고 있다는 확증이었다.


그러한 증상들로 작전에서 수난을 겪은 사건 이후, 세간은 빙산 서식지 생물들의 독을 서리독이라 명명했다.


“그냥 치료로 되는 거야 그거?”


이야기를 듣던 루이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치료법은 없었습니다.”


“뭐?”


“불칸족들이 나타나기 전엔 말입니다.”


“그 종족들이 왜.”


“불칸족이 살던 세계에도 비슷하지만, 상처 부위에 서리가 아니라 심지처럼 타들어가는 증상의 독이 있습니다. 그게 서로가 가진 독의 상쇄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슬럼가에 그런 게 어딨어?”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그거였다.


그런 재료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의사가 있을 리 없었다.


“내가 빠르게 정보상한테 정보라도 구해볼까?”


곁에 있던 루돌프도 덩달아 조마조마한 듯 발을 굴렀다.


하지만 하루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하다못해 근처에 조금만 더 큰 마을이 있었······다면···.’


다 죽어가던 정보상도 순간 하루의 눈동자에서 흔들림을 발견하고 조금이나마 더 희망을 품었다.


뭔가를 떠올린 듯한 하루가 고개를 획 돌려 루돌프를 응시했다.


“정보상한테 정보 거래가 아니라 다른 걸 부탁하세요.”


“뭐?”


#


덜컹!


요란하게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내부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단숨에 끌렸다.


“누가 전서 좀 보내줘!”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진 몰라도 정보상들은 루돌프의 말을 귓등으로 들을 생각도 않았다.




루돌프가 손에 쥐고 있던 자루를 테이블에 던졌다.


“자유도시 백묘 택배단 앞으로 가장 빠르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가장 근접한 정보상 한 명이 자루를 열면 한가득 뭉친 금화와 은화가 빛을 영롱하게 뿜고 있다.


“내가 보내주지!”


“누구 맘대로!”


방금과는 다르게 앞다퉈 싸우는 그들에게 루돌프는 재차 외쳤다.


“발신인 하루! 내용, 서리독 환자 발생! 장소는 이곳 성당으로!”


단 세 마디를 들은 정보상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술집 문을 박차고 나갔다.


한순간에 빈 술집엔 바텐더가 닦는 유리잔과 루돌프의 거친 숨소리만이 공존했다.




바텐더가 내려놓은 유리잔에 은은한 조명이 감돈다.


“로즈베리 드링크라도 한 잔 드릴까?”


루돌프가 근처 의자를 끌어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자루에서 은화 한 개를 꺼내 정확하게 던지자 바텐더가 한 손으로 은화를 잡아낸다.


“탄산 포함으로.”


#


“들어봐. 그 수도복······ 내가 알던 그 녀석이 아니었어.”


줄곧 파들파들 떨리던 입술이 용케 말을 하고 있었다.


“······이미 제거됐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럼 그에게서 들으려던 정보도 없을 테니 더 말 안 하셔도 좋습니다.”


성당 바깥에서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퍼졌다.


“온 모양이네요. 루돌프, 이곳까지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루돌프가 문을 벌컥 열고 나가 공중에 보이는 와이번을 몸짓으로 유인했다.


세찬 바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거대한 발소리와 동시에 멈췄다.


곧 문을 열고 낯선 얼굴들 속에 흰 제복을 입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배송왔습니다!”


백묘 일행들과 자유도시에서 함께 온 의료진이었다.


염독을 수트케이스에 담아 온 일행들이 하루의 어깨에 슬며시 손을 올렸다.


“수고했어 하루씨.”


“단장이 있어서 그나마 술식도 안정되게 유지했습니다. 이런 장르는 영 젬병이라······.”


의료진이 정보상의 상태를 확인했다.


“염독 주사기 주세요!”


“이미 상당히 퍼져서 어느 통로든 다 가능합니다.”


의사 한 명이 주사기를 집어 동맥에 곧바로 꽂아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도를 체크한 의사 한 명이 일단 한숨을 돌렸다.


“안심은 금물입니다. 상처 부위 봉합되면 서둘러 환자 이송해주세요.”


백묘 일행들이 들것에 정보상을 천천히 올렸다.


“하루씨도 같이 갈래?”


“아뇨, 그나저나 유리가 아무 말 없던가요?”


“어? 음······ 글쎄.”


그 말에 하루의 눈이 반쯤 감겼다.


“전 아직 의뢰 중이라 전해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일행이 들것을 들어 올리면 정보상이 슬금 고개를 하루 쪽으로 돌렸다.


“목숨까지 빚졌는데 정보도 없어서야, 살아도 불구로 살겠네.”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 걸 보면 아직 살만한 모양이네요. 금화를 돌려줄 생각이 없다면 백묘 단장을 찾으세요. 아마 모자란 정보비에 맞는 대안을 찾아주실 겁니다.”


정보상이 피식 웃다가 기침을 토했다.


“당신은 적어도 굶어 죽진 않겠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성당 밖으로 실려 나갔다.


루돌프는 마지막까지 성당 밖에서 달빛에 바랜 흰 제복들이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천천히 걸어 나오던 하루가 그의 눈빛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그 속엔 생기란 게 있었다.


찰나의 순간인지, 깊이 새긴 결심인지 어느 쪽이든 지금 만큼은 한없이 찬란하다.


“저게 검은 아저씨 동료들이야?”


“흥미가 있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루돌프의 눈이 다른 곳을 비추고 있다.


이내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갑작스레 말을 돌렸다.


“빨간 아저씨는 언제 오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보죠.”


“그나저나 그 정보상 살아서 다행이야.”


미소짓는 눈동자엔 아까의 찬란함은 그새 사라지고 없다.


하루는 묵묵히 그의 눈동자 속 변모를 지켜봤다.


“누가 백묘 아니랄까 봐 빠르긴 하네. 게다가 왜 그런 의료품까지 구비되어있는 거야?”


루이스도 이미 사라진 와이번의 잔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분해할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같은 자유도시 일원 아닙니까.”


“누가 분해했다고 그래? 게다가 자유도시면 뭐 이익금도 나눠 가지나?”


드물게 새침한 표정인 루이스가 툴툴대다 보면 누군가의 거친 호흡이 들려왔다.


셋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포름이 달려오고 있었다.


“하루님! 찾았습니다!”


그의 말에 금세 긴장이 감돈다.


포름이 코앞까지 와서 잠시 숨을 골랐다.


“후우. 그녀가 맞았습니다.”


“예?”


“아니, 맞았다기보단 그 관계자가 그레이의 영지로 향한 걸 봐선······.”


“끝까지 쫓지 못한 거야?”


루이스의 질책에 포름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도중에 말을 타고 이동하는 바람에 끝까지 못 쫓은 겁니다. 다크엘프는 말이 없어도 말보다 빨리 이동하실 수 있으신 건가?”


“아아 명색의 전 근위대장이라는 분께서 일개 다크엘프보다 못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렇게 뛰어나신 다크엘프님께서 가시지 그러셨습니까?”


또 둘이 말싸움을 주고받기 시작하자 하루가 제 관자놀이를 지그시 짓눌렀다.


“그만. 일단 그레이의 영지로 갔다는 말 아닙니까. 그럼 그녀에게 묻는다면 뭐라도 나오겠죠. 정말 성녀라면······ 분명 반응이 있을 겁니다. 지금은 대면하긴 늦었으니 내일 아침 출발합시다.”


루돌프가 시무룩하게 고갤 숙였다.


그런 그의 머리를 하루가 조용히 쓰다듬었다.


금방 손을 뿌리칠 줄 알았던 루돌프는 조용히 하루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이를 보는 어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위로라는 걸 눈치챘던 걸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성녀라면, 적어도 당신 동료들이 위험하게 두진 않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번만큼은 확신하지 못했다.


그 긴 세월을 보내면서도 자신 역시 성녀를 직접 대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성한 소문만으로 유추할 뿐인, 내심 그 기대를 실어 자신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면 다들 한껏 초췌해져 있었다.


이런 허름한 숙소라도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루돌프는 피로할 뿐 졸음이 오지 않았다.


“내가 루돌프를 데리고 있을 테니까 둘이서 들어가.”


“뭐야, 아줌마하고 같이 쓰는 거야? 싫은데 잠버릇 심할 것 같고.”


“아하하, 이 코흘리개가 보자보자 하니까. 누구씨가 돈자루를 죄다 떠넘겨서 그런 거라고 생각 안 해봤니?”


루이스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루돌프가 먼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남은 셋이 서로 시선과 얕은 한숨만 나눴다.


루이스가 뒤따라 들어가고 나서야 하루와 포름도 맞은편 방문을 열었다.


“저는 바닥이 편하니 포름이 침대 쓰세요.”


“예? 그럴 수는······”


이미 바닥에 누운 하루를 보고 무안하게 침대로 올랐다.


한동안의 적막이 감쌌다.


누구 하나 잠이 들지도,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어째선지 하는 생각은 별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님.”


“······.”


“주무십니까.”


“아뇨.”


“혹시 택배기사가 아닌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다소 걱정되었다.


혹여 부정적인 언어가 하나라도 언급될까 봐.


한때 그의 뒷모습을 보고 희망을 품었던 이들에게 실망감을 품었을까 봐.


포름은 그가 입을 열 때까지 조마조마했다.


“아무것도.”


하지만 그들에게 실망감을 품을만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멋대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전 한때 기사들이었을 그들이, 지금에서야 새로 탄생하는 기사들만도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게 화가 났습니다.”


“······.”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검을 휘둘렀을 그들이, 지금에야 연이어 재판대에 서는 꼴에 처음엔 웃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선 이미 그들을 기사로 보고 있지도 않더랍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저만 과거에 얽매여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당신이 본 목적은 정말 하나였습니까.”


“예?”


“그때부터가 착각이었을지 모릅니다.”


포름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하는 말을 곧바로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진 않았다.


머리보다 다른 곳에서 그 말을 곧바로 받아들인 것처럼.


하루는 함께 전장을 누비던 이들에게 딱히 고정된 인상을 심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이나 의식을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무언의 종전선언이 있던 언덕 위에서 지극히 이기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을 품었던 것 또한, 그래서 가능했다.


“이미 허름한 옷은 벗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그들처럼 살아가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더 좋겠지만. 예를 들면······ 루돌프를 후계자로 키운다거나.”


“그런······.”


“루돌프를 양아들로 들일 생각이었던 거 아닙니까.”


포름의 눈동자가 커졌다.


단지 의뢰의 내용만으로 그 의중을 파악했다는 건가.


어디까지나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사내였다.


포름은 그제야 소소한 미소를 품었다.


“뭐, 저도 제복을 벗고 홀몸이라 아이 한 명 정도는 부양할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요.”


하루는 그 말에 루돌프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그럼 이참에 아들 하나 딸 하나 균형 맞추시죠.”


반응을 떠올리다 보니 갑작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대체 무슨 균형입니까 그건.”


“그렇지 않으면 루돌프가 거절할지도 모릅니다.”


포름의 의구심만 증폭시켰다.


아무리 떠올려도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내 둘은 한동안 같은 빈 천장만 마주하며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금의 상황이 아련한 과거를 떠올릴 정도로.


작가의말

이번주도 부디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


+ 39화 이후에 41화를 올리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40화는 44화 이후에 찾으실 수 있습니다.

혼란을 야기해 죄송하다는 사과와 더불어 거듭 양해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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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8. 너만은 널 21.08.04 73 3 12쪽
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8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7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3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6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1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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