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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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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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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29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12 00:00
조회
95
추천
5
글자
12쪽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DUMMY

“정말 이유는 없어?”


카뮤가 머리 위에서 얼굴을 눈앞까지 들이밀었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루돌프와의 대화를 말하는 거였다.


얼굴을 너무 들이민 탓에 어지러움을 호소하니 그제야 다시 머리 위로 올라갔다.


“들은 겁니까?”


“뭐, 들린 거지.”


“글쎄요. 예전에 필과 처음 만났을 때 유리에게 들었던 이유하고 비슷합니다.”


“엥? 뭐라고 했더라······. 그때 한 말을 어떻게 기억해!”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하루는 카뮤를 약 올리는 데 더 진보한 자신과 마주했다.


“뭘 뿌듯해하는 거야!”


“아야야.”


카뮤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 무표정한 얼굴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원래 저런가?”


그런 모습을 한구석에서 신기하게 보던 나머지 일행들이 필에게 물으면 그녀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저었다.


하루가 그레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비행선의 이륙 전부터 줄곧 답답한 듯한 얼굴은 여태 남아있다.


기어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판 위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거센 바람이 그녀를 맞이한다.


품에 넣어두었던 끈으로 머리를 고정한 후에야 제대로 자신의 영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미 성은 저만치 멀어져 누가 서 있긴 한 건지 구분도 안 되었다.


“걱정되십니까.”


뒤따라 나온 하루가 나란히 섰다.


그레이가 그런 그를 흘겨봤다.


“그런 거 묻는 사람으론 안 보였는데.”


“그런 건 또 뭡니까.”


그레이는 옅게 웃었다.


물론 그가 자신을 신경 써서 묻는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 또한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그렇게 여기면 그것도 그의 이미지와는 사뭇 멀었지만, 성에서 대하던 태도로는 묘하게 아이들에게 약한 듯했으니.


“아이들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 겁니까.”


“모두 제가 지어줬으니까요.”


그녀의 발언은 다소 의외였다.


이름을 지어줬다는 부분이나 아이들에게 이름이 없었다는 부분도.


루돌프와 나탈리만 보곤 틀림없이 이미 이름을 지니고 있던 줄로만 알았다.


성녀에게 지어졌던 이름이었던 건가.


성녀가 직접 작명한다는 행동 자체에 의미가 있었으니, 어쩌면 그때부터 아이들의 미래엔 빛 한줄기가 드리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제 옆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하루의 시선에 그녀는 조금 얼굴을 붉혔다.


“물론 이름을 가진 채 온 아이들도 있었어요.”


쑥스러운 듯 덧붙였다.


“아이들이 모두 잘 따르던데요.”


“그러게요. 내가 뭐라고.”


그렇게 말해도 그들을 전부 포용했을 때 그레이에겐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었다.


오롯이 애정만 간직한 채 행동한다는 게, 인간으로서 애초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한때 스승이라 불린 이가 그녀를 택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물론 하루는 그녀가 애정뿐만 아닌 다소의 죄의식을 지니는 게 낫다는 쪽이었지만,

루돌프가 미소를 지었던 순간을 목격해버리면 어찌 되어도 좋은 일이었다.


“두 분, 여기 계셨습니까.”


막 갑판으로 올라오던 세인이 흩날리는 머리칼을 넘겼다.


무심코 미소년이라 읊조릴 만큼 같은 성별인지도 의심스러울 미모다.


그렇게 제 쪽으로 다가오던 그를 보고 있자니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폐하.”


그레이의 자연스러운 격식이 이어진다.


세인이 그녀를 보고 잠시 씁쓸하게 웃다가 곧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줬다.


“그레이. 이제 그런 건 그만두세요.”


“아.”


하루는 한동안 그 사이에서 혼자 방황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세인이 하루를 보더니 잠시 깊게 숨을 내쉰다.


그리고 조금은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형님. 저는 앞으로 왕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예?”


그가 무슨 말을 내놓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분명 언젠가 그분은 내려오시겠죠. 그뿐 아니라 귀족제를 모조리 뒤엎어버릴지 모릅니다.


한참 그의 의중을 파악하던 하루는 자신이 쓰러지기 전에 들었던 한마디를 떠올렸다.


그때가 아니라던 포름은 기어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까.


예사롭지 않았을 반발에 대해 걱정해도 그건 이미 과거의 일이었다.


하루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이 없어도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그럼 전 근위대장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일어난 것도······”


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세인이 무안하지 않도록 잔잔한 리액션만 흘렸다.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딱히 제게 사과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딱히 세인의 결단이나 행동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 그는 그렇게 했을 위인이었기에.


그 ‘언젠가’가 지금이라는 것에 다소 놀랐을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세계는 급변하는 건가.


하루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세인의 계획이 무너질 거란 가정은 애당초 두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빈 왕좌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지겠죠. 왕은 아니겠지만.”


“그걸 따르지 않는 귀족들은요?”


“······사실 전 이번 쿠데타를 마냥 위기로 보진 않습니다.”


“그들을 전부 내치실 예정이었군요.”


“웬만하면 포용하고 싶습니다만······ 이미 반역자의 낙인을 택한 그들입니다. 제 의지대로만 상황이 움직일 리는 없겠죠.”


“전부 내쳐진 귀족들의 영지가 과연 제대로 운용이 될진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그 답에서 순간 세인이 눈을 피했다.


“세인.”


무의식이었다.


세인 역시 자신이 보인 반응을 뒤늦게 눈치채고 흠칫했다.


“그것을 무책임이라 여길 사람도 있을 겁니다.”


세인도 여지없이 잘 알고 있었다.


역시 그들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고작 2년이었다.


가장 놓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것 또한 그 자신이었다.


하지만 왕의 잔재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악습은 완벽하게 끊기지 않을 게 분명했다.


“영지는 영주가 아니라 시민 덕분에 남아있는 겁니다. 게다가 저라고 왕좌를 바로 비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새 지도자가 생기기 전까지, 그때까지의 대행일 뿐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 세인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하루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서 있던 그레이도 안타까운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 눈으로 보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버리지 않으시면 됩니다.”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 왕으로 남을 수 없······”


“선택을 받는다면 회피하지 마세요.”


“예?”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그뿐입니다.”


아직은 그게 어떤 말인지 세인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주 단순한 말에도 현재 속에 품은 어떤 개념이나 단어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이후에 지은 하루의 은은한 미소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러면 심각해져 있던 미간은 서서히 풀어졌다.


“쓰러지셨다기에 안부를 묻고 위로를 드리려 한 건 저였는데 말입니다.”


“이미 충분합니다.”


그의 한 마디가 뭉클하게 와닿은 세인의 얼굴을 다시 소년의 상으로 만들었다.


세인이 예의상 한 말로 여기고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하루는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고 느낀 바를 얘기한 것뿐이었다.


언젠가 그가 바랐던 대로.


어느덧 그레이의 표정도 너그럽게 풀려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곧 도착할 것 같네요.”


그리고 그녀의 말마따나 자유 도시의 선착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건 모두 함께 의논해야겠네요.”


저 멀리 연합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뒤로 수많은 마을이나, 도시, 다루스 영지를 보호하고 있는 구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세인은 가슴에 꽉 들어찬,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에 몸서리를 쳤다.


#


“오셨습니까.”


선착장에서 막 내리는 그들을 먼저 반긴 건 트레버였다.


세인의 모습을 뒤에서 목격하곤 간략하게 예를 갖추는 그의 눈엔 동시에 필도 들어왔다.


“당신이······”


그의 안에서 생각보다 더 무뚝뚝한 이미지여서 그랬던 건지, 첫인상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필이 그에게 고개를 숙이면 얼결에 트레버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네요, 트레버.”


“전 당신이 쓰러져 있을 때 먼저 안부를 물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그랬을 수도.

들릴 리가 없었겠지만.


“뒤에 계신 분들이 포르테스 경과 그레이스 경입니까. 카뮤도 제대로 있군요.”


“덤 취급인 것 같은데 이번에도 기분 탓인가!”


그레이의 성을 처음 들은 하루가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그녀는 익숙한 듯 미동도 없다.


생각해보면 이름으로 불리는 쪽이 더 드문 일이었던가.


“재회는 미루고 이동하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트레버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곤 먼저 앞서 나갔다.


새삼 그 말에 왜 긴장을 하게 되는 건지 세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속에 있던 압박감을 한 번에 토해냈다.


“갑시다.”


굳은 의지가 새롭게 떠오르는 눈빛으로 트레버를 따라나섰다.


그 탓에 곁에 있던 이들의 각오까지 다잡아지는 분위기다.


#


“유리씨.”


가엔의 부름에 연합의 장 구석에 앉아있던 유리가 뒤를 돌았다.


“누가 찾아왔는데요.”


수많은 인원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강당으로 막 들어서던 누군가가 가엔의 뒤에 섰다.


낯설게 흘겨보던 가엔의 시선을 따라 유리는 오히려 반가운 표정을 했다.


“정보상!”


“또 그렇게 부르시네.”


“그쪽이 편한걸. 다음부턴 이름으로 불러보도록 할게, 스펨씨.”


딱히 유리의 지인을 파악하지 못한 것에 이상할 건 없었지만, 가엔은 다소 의심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가엔이 모를 만도 하네. 이쪽은 스펨. 하루에게 목숨을 빚진 정보상이야.”


“아.”


아주 정확한 설명에 스펨은 반박도 못 하고 어깨만 으쓱였다.


“그럼 전 다시 일이 있어서 가볼게요.”


가엔은 다시 고개만 슬쩍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어때? 뭔가 알아낸 거라도?”


정보상은 주변을 살피더니 그녀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착석 했다.


“벌써 왕성이더군요. 아무래도 쿠데타를 부추겼다는 종교 쪽에 합류한 모양이에요.”


“벌써······ 라기엔 며칠이나 지났으니 시간은 충분했겠네.”


유리가 혀를 찼다.


남은 잔당이었다곤 해도 그들의 인력이 증강되었다는 건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하루가 쓰러져서 왔을 당시 곧바로 은거지를 뒷조사했지만, 이미 빈 이후였다.


마치 미리 대주교를 버릴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깔끔하고도 신속하게.


“저도 그렇게 빨리 이동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말이죠.”


“지하에 레일이 깔려있었어. 설마 왕성까지 이어지리라곤 볼 수 없겠지만,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겠지.”


분하다.


우두머리 하나를 잘라냈다곤 해도, 정작 그들이 수집한 자료 및 프로젝트에 가담한 인력들은 모두 놓친 셈이다.


고심하는 유리를 잠시 지켜보던 스펨이 돌연 슬며시 무릎을 꼬더니 점점 거만한 자세를 취해갔다.


“크흠.”


헛기침을 내면 겨우 유리가 눈치채곤 한쪽 눈썹을 올렸다.


“크흠. 크흠.”


그의 행동을 읽으려는 유리의 애꿎은 귀만 연달아 움직였다.


점차 스펨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려고 할 때,


“유리에게 그런 과시는 안 먹힙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유리와 스펨 모두 뒤를 돌아봤다.


“하루!”


“당신······”


은인을 마주한 스펨의 눈동자가 일순간 아련하게도 빛났다.


하루에겐 성당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훤하게 드리운다.


“그녀는 단도직입적인 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니까요.”


작가의말

오늘 내일 폭염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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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6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7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6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3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3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3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09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09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6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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