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60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21 00:00
조회
87
추천
4
글자
12쪽

#58. 일단 먹고

DUMMY

“좋은 제복이네.”


필이 제 몸을 돌려보며 입고 있는 녹색의 제복을 뽐냈다.


“백 년 거목의 푸르른 잎을 상징해요.”


제복을 가져다준 레이첼이 필의 착의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반면 같은 제복을 입고 서 있던 세인은 아무리 봐도 어색한 느낌이다.


“잘 어울리십니다.”


옆에 있던 발터가 조심스레 건넨다.


“크흠. 그런데 왜 이 둘은 복장이 없습니까?”


헛기침을 한 번 내뱉는 세인이 발터와 드레이코를 가리켰다.


“한 마차에 그렇게 많은 택배 기사는 오히려 의심받을 겁니다.”


그럼 마침 제복을 바꿔 입은 하루가 답했다.


대규모 의뢰도 아닐뿐더러, 의뢰 내용을 보니 위험물의 배송도 아니었다.


둘은 물품을 실은 짐칸에 몸을 숨기는 편이 나았다.


세인은 둘째 치더라도 계속 안달 낼 필요 없는 자가 더 긴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끼익

끼이익


마룻바닥이 울린 지도 꽤 되었다.


슬슬 레이첼의 짜증이 웃는 얼굴까지 번졌다.


“아버지!”


레이저가 흠칫 놀랐다.


“본인들도 가만히 계시는데, 지긋이 좀 계세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계속 신경 쓰이잖아요!”


슬슬 터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준 입장이라곤 하나, 작전 내용을 괜히 엿듣게 한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슬슬 시간입니다.”


하루의 말에 세인은 깊게 숨을 끌어모아 내쉬었다.


아무래도 어지간히 긴장한 모양이었다.


왕좌에 앉은 것과는 분명 다른 차원의 부담이리라.


“포름과 그레이 역시 걱정입니다.”


“그들은 걱정할 필요 없겠죠.”


이래저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은 지극히 그답다.


발터가 그를 보는 눈이 아련해진다.


“마차는 바깥에 대기시켜 뒀어요.”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레이첼의 마중을 받으며 하루가 고삐를 잡고 내리쳤다.


다녀오세요, 라는 말이 저 뒤에서 들린 것 같다.


하루가 중간에 앉은 필을 힐끔 바라봤다.

어쩐지 오늘따라 드문 일면을 곧잘 마주하는 느낌이다.


“필님은 안 떨리시는 모양입니다.”


아직도 사색인 얼굴을 한 세인은 필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면 그녀가 무심코 지은 미소를 거뒀다.


‘아.’


하루가 속으로 짤막하게 탄식 비슷한 반응을 내뱉었다.


“나도 떨려. 그래도 명색의 예비 지부장이니까.”


그녀도 나름 단원들의 기대에 많은 부담을 받았다.


기대랄까, 일부는 아직 그 자질을 의심할 뿐이었지만 필은 비슷한 관심으로 여겼다.


“역시 그런가요.”


답을 들은 세인이 괜스레 흐뭇해진다.


부스럭


뒤에서 들리는 효과음에 그제야 둘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급 필의 기분이 나빠 보인다.


드레이코는 그런 그녀의 기분은 신경 쓰지도 않는지, 거리낌 없이 짐칸에 닫혀있던 암막을 걷고 얼굴을 드러냈다.


“뭐야, 필. 그런 자리까지 올라간 거야?”


정말이지 시종일관인 남자다.


또 어떤 식으로 딴지를 걸어올지 모르니 사전에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흐음.”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음을 흘렸다.


필이 흠칫 놀랐다.


곧 소름이라도 끼쳤는지 양팔을 쓰다듬었다.


“뭐야 그 반응은?”


드레이코가 불편한 억양을 띠면 필은 또 아무 말 없이 정면만 주시했다.


칫.


그가 또 혀를 찼다.


“아아─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들만 모였는지 원. 전쟁 시절 내 동료들은 말이야······”


그러더니 다짜고짜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군대 경험담이란 건가.


한참 얘기를 듣던 중 하루도 무심코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던 찰나였다.


왕성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어떤 마차의 실루엣이 띠었다.


조금 더 다가가면 조종석 쪽에서 누군가 손을 높게 들고 있었다.


포름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세인이 걱정 중 하나를 덜어낸 것처럼 안도했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포름은 세인을 향해 밝게 손을 흔들고 있다.


둘과 재회했을 때 둘은 여지없이 허리부터 연신 숙여댔다.


딱히 별 탈도 없던지라 아무렴 상관은 없었지만, 마운트 기사단에서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던 와중에 두 사람이 발터를 발견했다.


일부 마찰이 있을 뻔했지만, 다행히 무마되었다.


오히려 발터가 노발대발하는 그레이를 보더니 기겁했다.


재차 마차에 오른 후에도 씩씩대던 그녀가 과연 성녀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그나저나 대체 뭘 이렇게 실은 거야?”


드레이코가 제 옆에 놓인 상자를 툭툭 두들겼다.


“식재료입니다.”


“두 마차 전부?”


“지역마다 식재료의 신선도가 다르니까요. 게다가······”


“게다가?”


분명 셰프라면 그새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술식의 맛을 알아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이유라면 이곳저곳에서 식재료를 들여오는 것도 충분히 납득갔다.


말을 끊고 혼자만 생각하던 하루를 보더니 드레이코가 콧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식당으로 향한다는 거지?”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다만 그는 내심 기대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하루가 마차를 끌어 먼저 앞서면 포름이 뒤따랐다.


외길로 쭉 달리면 왕성의 정문이 금세 드러났다.


반 세력이어도 세계 곳곳에서 왔을 상인들의 줄은 끊이질 않는 모양이다.


하루가 행렬 가장 끝에 마차를 세웠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세인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세인이 묵묵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지기, 마차, 상인, 택배기사와 경비병.

하물며 주변의 풍경마저 일상과도 같이 위화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반 세력에 의해 왕과 수많은 업체가 쫓겨났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몇 번이나 되짚어본다.


자칫 낙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세인은 아무렴 문제가 없다면 그것만으로 더할 나위 없다 여겼다.


하루 역시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었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각 지역, 각 세계와 연결고리가 있었을 업체들도 다수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왕성으로 향하는 무역, 배송 마차의 행렬이 줄어든 기색이 없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도리어 모든 게 날조된 것처럼.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면 뒤쪽은 그만큼 안심할 테니까.


유리와 같은 생각을 한 누군가가 이 안쪽에 있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문득 혼란스러워진다.


“하루.”


필이 조심스레 하루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제야 하루가 앞 마차와 떨어져 있는 걸 깨닫고 다시 고삐를 쥐었다.


“피곤해?”


필이 물어오면 하루는 다시 멍한 눈을 했다.


여태 그 작자의 부름이 없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는데.

귀찮긴 해도 막상 소식이 없으니 참······


따위의 생각들을 하다 또 몇 번씩 마차를 늦게 모는 짓을 반복하니, 검문소에 다다랐다.


“마운트 택배······ 식재료, 콜로사이니 식당······. 잠시 짐칸 확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돌아가는 경비병의 인기척이 있자, 내부에 있던 발터와 드레이코가 더욱 짐칸 사이로 몸을 쭈그렸다.


마침내 경비병이 천을 걷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걸 뒤에서 보고 있던 그레이와 포름은 괜히 곤혹스러웠다.


경비병이 상자를 살피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연신 울린다.


두 마차 사이에서 고조되어가던 긴장감이 끝에 다다르던 찰나,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경비병이 뒤에서 얼굴을 빼꼼 빼내며 내뱉었다.


앞에 있던 마차는 물론 뒤쪽의 마차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잇따랐다.


하루는 천천히 마차를 몰아 콜로사이니 방향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시야에 들어오는 분위기는 이전과 차이는 없었다.


다만, 어딘가 부분적으로 비어있다.


높게 솟아있을 백묘의 건물이나, 길드, 일부 철거된 듯한 흔적은 분명 쿠데타의 잔해였다.


세인은 씁쓸한 눈빛을 지었다.


말발굽 소리가 멎으면 그들은 긴장감을 어느 정도 놓을 수 있었다.


콜로사이니.


눈앞에 있는 그 거대한 간판도 한몫했다.


마차가 가게 앞에 멈추는 소리는 여전히 기가 막히게 듣는 건지, 마침 셰프가 문을 활짝 열었다.


‘무탈해 보이네.’


사실상 이곳에 오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하루의 고민거리였다.


“식재료를 한 번 볼까나!”


익숙하게 짐칸을 열어 크게 숨을 들이마시던 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킁킁


몇 번 더 코를 씰룩이더니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식재료 사이에 불순한 게 끼어 있네.”


귀신이다.


순간 마차에 있던 이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머쓱하게 짐칸에 숨어 있던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셰프가 의문을 내뱉자 운전석에서 하루가 먼저 내려와 그에게 다가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덕에 확인하지 못했던 셰프가, 뒤늦게 하루임을 발견하고 놀라 한 발짝 물러섰다.


“하······!”


하루의 이름을 부르려다 말고 셰프는 주변을 살폈다.


용케 그가 반 세력과 적대하고 있었다는 걸 떠올린 모양이다.

아무렴 하루의 이름을 아는 자가 드물진 않겠지만.


“어떻게, 잘 지내셨습니까.”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어디 부상은 없어? 백묘가 추방당했다고 들었는데.”


하루는 자신에게 향한 질문보다 그의 손목, 팔 부위를 먼저 살폈다.


“왜, 왜이래.”


셰프의 당황한 기색에도 멈추지 않던 하루가 곧 안도하며 그의 팔을 내려놓았다.


“다행입니다.”


“어, 어···.”


짐칸에서 발터와 드레이코가 내려오면, 마침 운전석에서도 내려오던 세인이 그들을 보곤 기겁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속삭이며 주던 주의가 귀에 들어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여유로운 반응이다.


그런 둘의 태도에 하루 역시 없던 걱정이 생길 것만 같았다.


잇따라 도착한 포름과 그레이도 그들에게 다가왔다.


“셰프, 갑작스레 죄송하지만 일단 안으로 들여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또 이렇게 제 앞에 모이면 적지 않은 인원수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지만 셰프는 얼결에 수락했다.


게다가 그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일행들은 셰프의 제자들과 함께 식재료를 빠르게 안쪽으로 날랐다.


이윽고 마지막 짐을 든 하루가 문을 닫고 들어섰다.


“그래서 저들은 다 뭐고, 그 복장은 어떻게 된 거야?”


이때다 싶어 셰프는 참았던 질문을 내뱉었다.


그가 엄지로 가리키던 뒤쪽에 어째선지 일행들이 이미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게 얼마만의 제대로 된 음식 냄새야!”


단순히 냄새만으로 발터와 드레이코는 이미 군침을 한가득 흘리고 있었다.


둘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인원들도 식당에 들어선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이다.


내심 같은 마음이었던 하루도, 설명은 어느새 뒷전으로 셰프에게 면목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들의 반응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는 셰프가 갑작스러운 두통에 이마를 어루만진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제 요리에 품는 기대란, 쉽사리 자신의 미소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래, 일단 먹고 듣자.”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 dm******..
    작성일
    21.07.21 12:57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10 야링
    작성일
    21.07.22 00:08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9 #68. 너만은 널 21.08.04 73 3 12쪽
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8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3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7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10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