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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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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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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4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23 00:06
조회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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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60. 이해, 조화······ 대화

DUMMY

“이렇게 보니 사람이 많긴 하네요.”


가장 뒤에서 걷던 그레이가 일원들의 나란한 행렬을 보고 있었다.

뭔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투다.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경비병보다 많을지도.”


필의 일침에 괜히 더 불안해진다.


“애당초 기사단장을 만나러 가는 인원은 저와 필, 세인 셋이었으니까요.”


하루의 말에 포름이 무안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 저도 설마 제 저택이 점거당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만.”


“우리도 교회가 왕실 옆으로 옮겨졌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고.”


포름과 드레이코가 각자 억울함을 호소했다.


흩어져 가려던 길이 한곳으로 몰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교회는 그렇다 쳐도, 귀족의 욕심이 포름의 저택을 차지할 만큼 그득할 줄은.


─이젠 못 참겠습니다! 저놈들의 목을 싹 다 베어버릴 테다!


지하수도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던 걸 용케 막은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그럼 왕실은 또 어떤가.


대체 경비도 제대로 세워두지 않고서, 이렇게나 무방비할 수 있는 걸까.


오늘따라 이상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게 머리가 여간 아픈 게 아니다.


기사단장의 자격에 의심이 싹트려는 순간, 뒤에서 걷던 포름의 표정을 확인해버렸다.


포름이 턱을 만지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보기에 모자란 녀석이었어도, 기본이 안 되어있는 기사단장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그를 기사단장으로 추천하는 일도 없었을 터다.


어디까지나 그의 스승이었던 포름의 기준에 모자랐을 뿐이다.

이내 그가 걷다 말고 제자리에 멈춰섰다.

생각 없이 걷던 발터부터 차례로 앞사람에게 부닥쳤다.


“뭐 하는 거야.”


드레이코가 못마땅한 투로 내뱉어도 그는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상해.”


그러더니 뜬금없이 그렇게 말한다.


“그래, 내가 봐도 이상해. 아까부터 뭔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뒤에서 봐도 훤히 보일 정도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라도 경비병을 전부 물릴 정도로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아.”


“뭔가 성에 이상이라도 생겼단 말이야?”


내부에 첩자가 있던 것도 아니고 상황을 모르니 이렇게나 답답할 수가 없다.


색적에 걸리는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 이미 하루는 의심하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조용한 게 도리어 불안을 자아낸다.


“함정이라면?”


“그들이 눈치라도 챘단 말입니까?”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습니다.”


포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형님의 색적이 있으면 회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쇄 가능한 술식은 있습니다.”


앱하손의 존재만으로 통제될 가능성은 있었다.

게다가 반대로 색적을 쓸 수 있는 이가 있다면······.


하아.


하루의 한숨이 무심코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럼 둘로 나뉘죠.”


갑작스러운 제안에 다들 어벙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포름. 현 기사단장이 색적 사용자입니까?”


“그렇게 효율적인 술식을 다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둘은 어차피 교회에 있는 이가 목적이라 했습니까?”


하루가 이번엔 발터와 드레이코를 가리켰다.


둘은 서로 시선을 나누다 고개만 끄덕였다.


그들은 완고했다.


확실하게 복수만을 위한 이들처럼.


“사제들이 교회에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건가?”


“맞습니다.”


“근데, 우리가 교회로 빠지면 전달할 길이 없잖아?”


“그래서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그 복수, 조금만 늦추시죠.”


“다시 돌아오라고?”


생각지도 못한 부탁이었다.


너무 굳건한 눈동자를 한 둘에게 이 말이 닿을지, 하루는 예상할 수 없었음에도 그들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사실 이참에 그만두라는 말을 내놓고 싶었다.

두 생명이 부질없이 지는 일밖엔 되지 않을 테니.


하지만 발터는 둘째치고 드레이코가 거기까지 허용할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낮게 음을 흘리며 뒷머리를 매만졌다.


그러더니 필을 흘겨봤다.


다시 한숨을 반복한다.


그때 그곳에 있던 이들은 그의 안에 꿈틀거리던 게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아, 그래. 까짓거. 빚 청산이라고 생각하지.”


그의 답이 발터에게도 의외였는지 놀라는 모습이었다.


“뭐, 그렇다면 저도 미루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만.”


수상쩍게 쳐다보던 발터가 눈치를 주니 드레이코가 괜히 헛기침만 내뱉었다.


처음 옥에서 자신을 데리고 나왔던 그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다.


“좋습니다. 그럼 둘에 더해 포름이 동행하죠.”


“예? 왜 하필······”


포름이 딱 봐도 꺼리는 반응을 하며 둘을 번갈아 살폈다.


“뭐야 그 반응은. 우리라고 좋은 줄 알아? 그냥 둘만 가면 되지 왜 하나를 달아?”


여태 간단하게 수긍한다 했던 드레이코도 드디어 딴지를 걸었다.


“둘의 억제 역할입니다. 살피고 오라곤 했지만, 그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장담합니까?”


하루의 말에 차마 받아칠 말이 없다.


둘은 입을 다물었다.


하루는 아직도 영 찝찝한 표정을 짓는 포름의 어깨를 두세 번 토닥였다.


일행들이 한참 다시 걷다가 갈림길에 멈춰섰다.


드레이코가 못마땅하게 포름을 한 번 흘겨보더니 먼저 앞장섰다.


발터가 그 뒤를 따르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포름도 터덜터덜 걸어갔다.

나머지 일행들은 반대편으로 향했다.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요.”


“포름이 있으니 괜찮겠죠. 교회는 처음이어도, 옮겨진 위치가 어딘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이곳이었다.


하루는 이윽고 멈춘 곳에서 고개를 들어 거대한 문을 올려다 봤다.


왕의 알현실.


정작 그 주인은 제 앞에 있다고 하는데, 문은 굳게 닫혀있다.


“어떤가요? 둘을 기다려야 할까요?”


지속적인 긴장 탓일까.


세인이 재촉하는 듯하다.


그럼 하루는 그 앞에서 색적을 발동시킨다.


느껴진다.


문 너머에 그가 있다.


어째선지 그 혼자라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앱하손이 수를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루가 단정하면 세인의 긴장도 배가 되었다.


세인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드디어 문에 양손을 가져갔다.


끼이익


“·········익숙하고, 지겹고, 외로운 장소였을 텐데요, 당신에겐.”


문을 염과 동시에,

저 계단 위 왕좌에 앉아 한가득 그늘진 얼굴을 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긴 복도와 드넓은 공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공간으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크기다.


“레온.”


세인이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기사단장이자, 왕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반역자.

호칭에 걸맞지 않은 그의 황금색 머리칼과 눈동자는 영웅의 상을 하고 있다.


역시나 모든 걸 눈치채고 기다리고 있던 반응이다.


“왜 다시 돌아온 겁니까.”


“그곳은 짐의 자리이기 때문이지.”


하루 때와는 사뭇 다른 말투의 세인이 기사단장을 노려본다.


레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왕권을 없애려 하시면서 이 자리를 논하는 겁니까.”


“그렇기에 논할 수 있는 자리니까.”


레온은 기어코 조소를 띠었다.


“말장난 때문에 이곳까지 직접 행차하신 겁니까.”


“······.”


입을 다물었다.


문득 고개를 떨군 세인은 제 발길부터 복도를 따라 높은 계단과 왕좌에 도달하기까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재차 레온을 마주했을 때, 그의 눈동자는 한층 더 아련해져 있다.


“조금 더 가까웠다면······.”


마냥 멀게만 보이는 그 거리가, 자신을 마주해온 이들이 늘 갖던 시야였을까.


알게 모를 말을 흘리는 세인을 보며 레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모든 걸 포기하고 자유도시에 잠자코 있었다면, 당신의 꿈에 더 쉽게 다가갔을 겁니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제 앞에 이렇게 서는 일이 없었다면,

만일 지금에서라도 입을 꾹 닫고 돌아선다면,

칼을 맞대고 서는 일도 없으리라 여겼다.


“당신은 폐하가 어떤 마음으로 발을 디뎠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그레이의 외침을 세인이 가로막았다.


오즈와 필은 무언으로 시작되는 그들의 대화를 지켜봤다.


한참 그와 마주하던 세인이 다시 숨을 한 번 가다듬었다.


‘······틀렸구나.’


심호흡을 거친 세인을 보니 문득 그렇게 단정 지어졌다.


“레온. 그대는 누구보다 스승인 포름을 이해하고, 서민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지녔었을 터. 지금이라도 그곳에서 내려오는 건 어떤가.”


레온은 여전히 인상을 쓴 채로 고개를 좌우로 몇 번 저었다.


“예상에서 벗어나질 않는군요.”


“대체 왜······!”


“저희를 신뢰하지 않은 건 당신이 먼저였습니다.”


“······!”


“신뢰를 주지 않는 자의 말을 믿는 만큼 우둔하고, 우매한 자가 또 있답니까.”


그렇게 딱 잘라놓는 레온이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났다.


그 누가 그를 일개 기사단장으로 볼까.

아우라와 기백만큼은 감히 왕이라 일컬어도 좋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일행들이 모를 리도 없었다.


“당신께서 먼저 물어주셨으니, 저 역시 무의미하단 걸 알면서도 여쭙겠습니다─”


곧 그의 주름진 미간에 드리운 고고한 그림자가, 그의 황금의 안광을 더욱 부각한다.

이미 높게 솟은 눈높이는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가 버겁다면, 제게 맡기시겠습니까.”


과연 제안이라 생각되지 않는 언행.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다.


포름을 둘에게 붙여 보낸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저 태도를 그가 가만히 보고 있었을지가 의문이다.


굳게 다물어진 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세인의 입술에, 레온은 그만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털썩


재차 왕좌에 주저앉은 그가 여전히 높은 시선에서 내려다 봤다.


“보십시오. 어차피 맞물리지 않을 대화였습니다. 헛걸음이라 생각진 않았습니까.”


“그대와 마주해야 했으니까.”


“그 행위가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이해, 조화······ 대화.”


“틀렸다는 것도 지금 증명이 되었군요.”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레온의 사상이나 고집도 문제였지만, 하루는 그뿐만이 아닌 듯한 직감을 확고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저 역시 당신과의 대화를 위해 성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물렸으니, 조금이나마 기대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기사단장으로서 그 판단은 어떤가 싶네요.”


또 한 번 참다못한 그레이가 뱉는 말을 레온은 우습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그레이스 경······. 글쎄요. 제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갖고 여러분을 맞이한 것 같습니까.”


직감.

레온의 반응과 발언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터무니없었다.


게다가 뒤이어 그가 보인 장면으로, 예감이 확신으로 변하게 되기까진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했다.


지직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


레온의 머리 위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던 잡음은 일종의 일그러진 고리를 만들어냈다.


“전 제 능력을 경솔하게 판별하지 않습니다.”


그의 용모가 이미 인간과 멀어져 있다.


작가의말
비록 컨택을 받진 않았지만, 매니지에서 제의를 주셨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ㅎㅎ
힘들 때마다 꼭 한 번씩 좋은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에게도 많은 응원 받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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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7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7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3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3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3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09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6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0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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