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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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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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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68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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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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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40. 그런 녀석이었지

DUMMY

하루가 머리를 내밀기도 전인 태양을 숙소 앞에서 마주하고 있다.


그 뒤로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던 포름이 기가 막힌 듯 그를 쳐다봤다.


분명 수다는 같이 떨었을 텐데 자신만 피곤한 데에 의구심을 느끼는 한편, 오늘 아침 거울을 봤을 때 떠올린 제 몰골에 금방 이해했다.


부스스한 머리로 눈을 비비는 루돌프를 지그시 내려다 봤다.


─녀석이 처음 눈을 떴을 때 그 눈빛이, 예전의 저를 보는 듯했습니다.


어젯밤 루돌프의 입양 이유를 묻던 하루에게 흘린 답이 지금 와서 낯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곤 다시 제 턱과 예전만 하지 못한 복부를 쓰다듬었다.


─루돌프가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면 역시 기사로 키우실 생각입니까.


─그거야 녀석이 원했을 때죠. 하지만, 제 바람이면 역시 그렇네요.


─이미 포름보다 나은 것 같던데요.


잠시나마 마음의 상처를 받을 뻔했던 말을 줄곧 신경 쓰고 있었다.


‘하긴 말 한 마리 못 쫓아서야 어제 루이스님에게 한 소리 들었던 것도 어쩔 수 없었나.’


“아아. 이렇게 일찍 출발해야 할 일이야?”


기지개를 켜는 루이스가 하루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말없이 이동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루이스가 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루돌프가 한심한 듯한 눈빛을 했다.


“뭐야.”


용케 눈치챈 루이스가 째려봤다.


“뭐가.”


“방금 한심한 듯 게슴츠레 떴잖아.”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런 거.”


아무렇지 않게 툭 내던지고선 하루를 뒤따라 걷는 루돌프에게 ‘건방진 꼬맹이’라며 질색하던 루이스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레이의 영지를 방문해본 적이 있던 포름이 앞장을 섰다.


뒤통수에 깍지를 끼곤 무료한 표정으로 뒤를 따라 걷던 루이스가 뭔가 떠올린 듯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 그레이란 사람 있잖아. 정말 꼬맹이 말대로면 딱히 잘 못 한 건 없는 거 아냐?”


“예? 애들 붙잡아놓고 교육이랍시고 구타하는 종교에 가담하는 게 잘못이 아니고 뭡니까?”


루이스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포름이 뒤를 힐끔 쳐다봤다.


“그런가······. 성녀가 없어도 그런 짓을 했을 거 아니야? 근데 그걸 못 봐주겠으니까 애들을 치료해주는 거고, 애들도 엄청 따른다면서.”


“그 못 봐주겠다는 장면을 우연히 발견했겠습니까? 뭔가 제안이 들어왔으니까 치료해준 거겠죠. 엄연히 가담한 거고, 방조죄 아닙니까.”


포름은 유난히 그녀의 행동에 더 격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방조······가 아닐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예?”


그러다 하루가 브레이크를 걸면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침착해졌다.


루이스가 꼴좋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협박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요.”


“협박요? 천하의 그레이가 말입니까.”


“그녀의 모든 걸 알 순 없으니까요. 루이스가 말한 가능성이면, 아이들을 상대로 한 협박일 수도 있겠네요. 그 외에 또 다른 인질이나 비밀 폭로 등 협박법은 많습니다.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명예 실추를 목적으로 한 약점을 잡을 수도 있겠네요.”


포름이 입을 다물었다.


무엇이 그의 미간을 좁히게 만드는가.


전쟁 때 함께 섰던 기사라는 부분만으로 그는 그렇게도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는 걸까.


곧 그가 루돌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 생각은?”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루돌프가 호명을 받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잘은 몰라도······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너희를 치료해줘서?”


포름이 의심쩍게 물어도 루돌프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냥.”


맥없는 답이었다.


“그냥?”


“응, 그냥. 그런 사람인 것 같았어.”


포름이 어이없이 맥없는 답에도 한동안 다시 말이 없더니 곧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런 녀석이었지.”


알게 모를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


하루와 루이스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 ‘아직 단정은 금물이니까요 하하,’ 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 웃음조차 씁쓸하게 들렸다.


한창 그런 얘기들을 하고 있으면 어느덧 언덕 밑으로 드넓게 퍼진 도시가 눈에 띄었다.


루이스와 루돌프가 입을 쩍 벌렸다.


“오.”


하루도 짤막한 감탄사를 내뱉을 만큼의 대도시.


감히 일개 영지라고 떠올릴 수 없을 다채로운 색감을 지닌 번화가.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왕성과 견주어볼 만하다 체감할 정도였다.


“원래 귀족이면 다 이래?”


“아름답다······.”


감동한 루돌프와 달리 어쩐지 세상의 무상함을 알아버린 루이스가 영혼이 다 빠져나간 목소리를 흘렸다.


귀족의 대표쯤이나 되면 보통인 건가 싶던 하루는 처음 사적인 감정으로 그녀에게 짓궂은 의구심을 품었다.


‘·········왕에게 한 번이라도 찔러볼 걸 그랬나.’


그런 생각 따위를 해도 영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깨닫고 일찌감치 사심을 접었다.


그 예전 귀족의 비리가 심했던 당시도 눈앞의 번화한 영지만큼은 아니었다.


“인계 전쟁의 공헌도가 높다곤 해도, 만약 하루님 같은 분이 계셨으면 그레이 대신이었겠네요.”


접은 사심이 고이 펴졌다.


루이스와 루돌프의 공허한 눈총을 받고 있자니 어리석은 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다.


“저로선 썩 좋게만 안 보이네요. 어쨌든 귀족의 태반이 그 공적들을 먹었다는 얘깁니다.”


그 전쟁통에서도 용병들의 대우를 항상 주장하던 그였기에 안타까움은 더했다.


“어쨌든 가보자고요.”


그가 풀 죽기 전에 선수 친 하루가 언덕을 내려갔다.


“아, 예.”


루이스와 루돌프도 그 뒤를 따르면 시무룩할 새도 없이 허둥대며 움직였다.


영지 입구에 늘어선 마차가 많았지만 동시에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마차가 없으신 분들은 이쪽에서 대기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앞쪽에서 한 경비가 외치자 마차 라인에 있던 몇몇 인원들이 옮겨갔다.


절차를 나눠 진행하는 점 또한 눈여겨볼 점이었다.


“루돌프가 좀 걱정이긴 한데. 설마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


“그녀가 온 영지에 알린 것도 아닐 테니 아직은 문제없겠죠.”


루이스의 걱정에 하루는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정작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으니까.


적어도 루돌프는 그녀의 성까지 데려갈 수 없었다.


“관광으로 왔습니다.”


경비 앞에 선 하루가 신분증을 내밀며 말하자 경비가 천천히 적었다.


“어른 셋에 아이 하나······.”


그러다 포름의 신분증을 살피던 경비가 잠시 움찔했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한 경비에게 포름은 미리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경비는 조용히 주먹을 가슴팍에 가져가며 무언의 예를 갖췄다.


“이야, 무난하게 통과했네.”


입구에서부터 긴장하고 있던 루이스가 속 시원하게 숨을 내뱉었다.


“근데 빨간 아저씨 유명인이야?”


“아하하, 이거 쑥스럽네. 저런 경비마저 예를 갖춰줄 거라 생각 못 했는데.”


“포름은 너무 자신의 평가에 호된 면이 있습니다.”


입구를 지나면 분홍빛의 꽃들이 만개한 포장길이 그들을 맞이했다.


“이건 뭐야?!”


루돌프가 꽃잎을 손에 올리며 물었다.


“연중화입니다. 연중 꽃이 만개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분수광장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벤치에 앉아 분수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평범해 보이는 중앙의 물줄기가 돌연 무지갯빛을 내며 공중으로 높게 치솟았다가 360도로 갈라져 큰 포물선을 그렸다.


촤악, 하며 시원하게 일어나는 물보라에 가까이 있던 이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루돌프는 줄곧 초롱초롱한 눈으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셋은 그런 그를 흐뭇한 미소로 보고 있었다.


“루돌프, 단장과 함께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세요.”


“아저씨들은?”


“저흰 성에 잠시 들렀다 오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는 당신을 알아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어쩔 수 없다는 표정도 잠시 루돌프는 조금 올려다보는 눈동자로 바라봤다.


“그럼······ 그래도 돼?”


하루는 조용히 루돌프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가 조금이나마 즐겼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도중에 쓸데없는 죄책감에 빠질까 그게 걱정이었다.


“단장.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루의 의중을 어느 정도 눈치챈 루이스도 쿨한 미소를 지었다.


“다녀와.”


넷은 광장에서 나뉘었다.


하루는 둘이 멀어지는 걸 확인하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색적.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300m까지는 가볍게 탐지 가능한 보이지 않는 구체 형태를 만들어낸다.


필시 자신이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상에 한하는 능력이지만, 그 반대도 가능했다.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이미 그런 그의 답을 기다리던 포름이 하루가 고개를 젓는 것에 안심했다.


둘은 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녀와 만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루의 질문에 포름의 눈동자가 공허해졌다.


또 어느 과거를 탐방하고 있는 건지 짐작할 수 없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갑작스레 무게를 잡는 어조가 하루의 이목을 끌게 했다.


“뭡니까.”


“전 그녀가 협박을 당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말을.


“그녀가 동문이기 때문입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사실 몰랐다.


그가 유독 그녀에 대한 각종 의심과 딴지를 선수 쳐 말했던 것에서부터 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은 아닙니다.”


그 이상으로 그가 그녀에게 품는 마음이 있는지까지 예상했지만 아닌 모양이다.


하루는 계속해서 그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폐하께서······ 왕좌를 포기하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아무리 하루라도 조금 당황케 했다.


“내려와요? 귀족의 문제에 책임을 느껴서입니까.”


“원래는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내려올 생각이십니다, 그분은.”


“생각해둔 후계자가 있는 겁니까? 아니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겁니까?”


말없이 고개를 젓는 의중을 전혀 모르겠다.


하루는 그가 내려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유가 있다면 그건 그 자신의 심적인 문제 때문이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지금 그것은 아니라 한다.


“그분이 백성을 국민이라 부르기 시작했던 걸 아십니까.”


포름의 물음에 설마 했다.


“설마.”


속에 있던 단어가 무심코 튀어나왔다.


그야 이 세계에선 절대 불가능한 사고라 봤기 때문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백성은 국민이 될 수 없어.


지금 그는 언젠가 왕이 읊조렸던 말을 그대로 하루에게 전했다.


하루의 안에서 요 짧은 사이 나타난 개념들이 위화감을 달고 다시 떠올랐다.


그것은 기필코 나쁘다고 말할 순 없는 것들이었지만, 왜인지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감정들은 썩 좋지 않은 종류였다.


“분명 언젠가 그분은 내려오시겠죠. 그뿐 아니라 귀족제를 모조리 뒤엎어버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엔 아직 때가 아닙니다. 그게 이윱니다.”


때가 아니라기보다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령 왕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바라거나, 위화감을 떨치거나, 한동안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정리하던 둘은 말이 없었다.


“로자릭 경에 이어 아그레스 경. 사실 알려지진 않았어도 그 외의 크고 작은 비리들을 밝혀냈습니다. 그에 그레이 경까지 가세한다면, 그분은 확정을 지어버리시겠죠. 하루님. 만약의 경우 저는 어떻게든 그녀의 사정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포름이 진심을 하루에게 전할 때쯤엔 어느새 둘은 성 입구에 다다랐다.


하루는 아름답고도 굳건한 그 성을 올려다 봤다.


“그 전에 그녀가 소문값을 하길 바라야겠군요.”


작가의말

몇 번을 죄송하단 말씀을 드려도 모자란 것 같습니다.

좀 더 정신차리고 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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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4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4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9 4 12쪽
»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4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7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1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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