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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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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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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77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22 00:04
조회
81
추천
4
글자
12쪽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DUMMY

“이게 뭐야!”


드레이코의 감탄사가 난발했다.


그 옆에 있던 발터는 오죽하면 눈물까지 흘렸다.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남성이 음식을 먹으면서 흐느끼는 꼴이라니.


뭐 경우에 따라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는 하루 역시 애써 감탄사를 참고 묵묵히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게 음식이지! 앞으로는 수용소에도 음식다운 음식 좀 넣어줬으면.”


“으븝, 으브브!”


드레이코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말에 세인은 뭐라는 건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을 외계어로 받아쳤다.


불만은 있어도 입안에 가득 넣어둔 음식은 포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과연! 이건 왕실의 요리사들도 한 수 접어들겠네!”


“왜 여태 먹어볼 생각을 안 했는지, 과거의 자신을 나무라고 싶네요.”


포름과 그레이의 칭찬도 일색이었다.


우아한 자태로 입에 빠르게 음식을 집어넣는 그레이가 문득 포크를 놓았다.


“음? 뭔가 마음에 안 들었나?”


곁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셰프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더할 나위 없어요. 다만······.”


다 먹고 나서 측은한 눈동자를 해도, 그 이후의 나올 말들은 설득력이 떨어졌을 테지만.


“두고 온 아이들이 있어서요.”


“아이들? 그레이스 경께서 혼인했다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그의 말에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이윽고 볼이 붉어지면 하루가 옆에서 대신해서 말했다.


“고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아. 이거 본의 아니게 실례를 했습니다.”


셰프가 정중히 사과하니 그레이가 숙인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셰프, 무례가 아니라면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값은 당연히 드리겠습니다.”


장사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이미 이 정도의 대접 자체가 무례였지만 이미 무례한 김에, 라는 생각도 없잖았다.


그러면 셰프는 여전히 쾌활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물론, 하루의 부탁이라면야.”


셰프의 그런 발언은 매번 어딘가 낯간지러웠다.

마찬가지로 주변에 있던 이들 역시 그때마다 하루를 우러러보는 눈을 했다.


“자,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주겠나?”


하루는 잠시 스푼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명이 진행될수록 셰프의 얼굴이 진지해진다.


연합의 장에서 나눴던 회의나, 콜로사이니에게 외주를 받는 업체의 수소문 등.

아마, 드레이코와 발터도 처음 들었을 부분까지.


그러다 문득 셰프는 하루의 언급 중에 신경 쓰이는 게 있는지, 오른손을 살며시 들었다.


“잠시만. 그럼 이곳에 지금 왕께서 계신다고?”


하루의 시선을 따라 셰프의 눈동자가 구르다 멈추면, 곧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폐하?”


세인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맞이했다.


“오랜만에 잘 먹었습니다.”


분명 왕의 초청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어느 자리에서나 본 실력을 발휘하던 셰프였지만, 역시 어전에선 그도 별수 없는 모양이었다.


포름과 그레이는 둘째치고, 그 옆에 있던 이들이 오히려 비이상적이었달까.


하물며 주방에서 식기를 정리하던 제자들도 그 소리를 듣곤 종종 손을 떨었다.


급 긴장하는 셰프에게 세인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부담을 덜었지만, 그답지 않게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는 듯하다.


‘셰프가 이렇게 약한 모습일 줄은 몰랐는데.’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던 ‘레시피 수집가’라 불리던 그의 약점을 발견하고 말았다.


“크흠. 그래서, 폐하께선 지금 반 세력의 우두머리격인 자를 만나겠다는 말씀인 거죠?”


“예, 그렇습니다.”


“쉽진 않을 겁니다.”


셰프가 고심하더니 그렇게 내뱉는다.


“그와 만난 적이 있는 겁니까?”


하루의 물음에 셰프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단지 소문이 사실이라면······”


“소문?”


“손님들 사이에 돌고 있는 소문입니다. 최근에 기사단장이 급변한 것 같다나? 옆엔 항상 사제 하나가 따르는 모양이고요.”


“그 사제 때문에 쉽지 않을 거란 말입니까.”


“그것도 그렇고, 급변했다는 게 성격과 연관이 있어서. 많이 예민한 모양이던데···.”


음식을 씹던 드레이코가 잠시 멈칫했다.


썩 좋지 않은 예감.


하루가 설명했던 버드의 이상징후가 왕성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상당히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 셰프의 이야기도 쉽게 넘어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괜한 의심이면 좋겠지만.


앞에선 발터가 그런 드레이코의 상태를 눈치챘다.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소곤소곤 그에게 내놓으면, 드레이코는 다시 콧방귀를 끼면서 음식을 마구 입에 넣었다.


“기사단장이 혼자 있을 때를 노려야겠네.”


입가를 닦던 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태 묵묵히 음식 섭취를 하던 그녀가 가장 먼저 식사를 마쳤다.


“사제는 아마 사람들이 움직이는 오후 때를 제외하면, 웬만한 시간은 교회에서 지내는 것 같아. 그를 보려고 들르는 사람도 많거든.”


그 시간만 노리면 기사단장과 대면할 기회가 있다는 건가.


이동이야 그녀의 능력이라면 은폐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그곳까지 계속해서 필의 능력만 믿고 이동할 순 없습니다. 계속해서 건물 내부를 오가면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어째선지 하루의 반박에 필이 뾰로통해졌다.


매번 그 능력에 관한 얘기라면 반대 의견부터 내놓으니,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하루는 그런 그녀의 표정엔 눈길도 안 주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옆에서 드레이코의 쩝쩝대는 소리만 울렸다.


“그레이, 혹시 왕성까지 이어지는 지하수도의 여부를 알고 있습니까?”


“있긴 한데······ 거기도 수색병은 있을 거예요. 이런 시기면 더욱 그렇겠죠.”


하루는 빤히 필을 바라봤다.


여전히 시큰둥한 입술이다.


“거기선 필의 능력을 믿어야죠.”


문득 필의 눈은 순간 다시 빛을 내는 듯했다.


“능력을 반복해서 쓰지 않고 곧바로 향하는 길이니, 우리만 빠르게 이동한다면 부담은 덜 할 수 있습니다.”


처음이었다.

그가 먼저 미안하다 꺼내지 않고, 제 능력에 의지해주는 일은.


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그녀의 능력이 뭐길래······”


“말해 뭐해. 대단한 택배기사 양반이란 것도 결국 별수 없는 모양이네.”


발터의 의문에 드레이코는 그렇게 초를 쳤다.


드레이코만큼 잘 아는 이도 드물었으리라.


게다가 방금의 발언으로 하루에겐, 다시금 필에 대한 죄책감이 싹트려 했다.


“당신과는 달라.”


필이 그 싹을 잘라버리듯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그녀가 매섭게 드레이코를 노려본다.


잠시 반쯤 뜬 눈으로 그녀와 대치하던 드레이코는 혀를 차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아, 배부르다. 잘 먹었어, 요리사 양반. 일품이구만.”


그가 먼저 화제를 돌리면서 회피했다.


하루가 필의 상태를 잠시 살폈다.


어렴풋이 사죄라는 행위 자체가 그녀에겐 실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거 다행이네. 지하도로 향하는 맨홀은 우리 가게 뒤에도 있어. 다만 왕성으로 향하는 길까진 모르니까 그 이후로 책임지진 못하지만.”


마침 다들 식사도 마친 듯했다.


하루가 먼저 자리를 벗어나니 일행들도 하나둘 일어났다.


“셰프,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됐어. 평소 하던 일 외에 해준 것도 없는데.”


“그게 바로 가장 도움이 된 겁니다.”


하루의 말에 뒤에 있던 일행들이 모두 수긍했다.


작전을 가다듬느라 다룰 시간은 없었어도, 얼마 전보다 풍부해진 메뉴에 맛까지.

누구라도 감히 그의 재능에 한계를 가늠하진 못할 것이었다.


이곳저곳에 수주의뢰를 내놓는 게 그에겐 마냥 쓸데없는 일이 아니란 얘기다.

정말이지 끊임없이 진화하는 남자다.


“그럼 이따가 한 번 더 들르라고. 아까 말했던 아이들 몫은 준비해둘 테니까.”


잊지 않고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 가게의 평판을 유지하면서 장수할 수 있는 이유였으리라.


하루가 그러겠다고 다짐을 놓고 가게 뒷문으로 나갔다.


뒤따라 나가는 일행들을 차례차례 마중해주던 셰프의 눈에, 마지막으로 세인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저······”


멈칫한 세인이 뒤를 돌아봤다.


다소 진지한 표정의 셰프가 서 있었다.


“예?”


“뭐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를 만나서 어쩌실 생각입니까.”


기사단장의 이야기인가.


“딱히 어쩌자는 건 아니지만······”


그에 대해 질문하는 이가 없었던 만큼, 이렇다 정해둔 이야기도 없었다.


잠시 입을 닫고 눈썹을 찌푸리던 세인이 곧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찌푸린 인상 그대로 웃어 보이던 그는,


“하하, 잘 모르겠어요.”


허탈한 답을 내놓았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대책 없다 나무랄지 모르겠다지만 정말이지 당장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대화를 나눠보겠다고 무턱대고 따라와도, 단순하게 얼굴을 직접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에겐 여러 가지로······’


자신이 내놓은 답에 오히려 스스로 곤란한 표정을 짓던 세인에게, 셰프는 옆집 꼬맹이를 보던 아저씨 같은 미소를 띠었다.


그러면 세인은 또 멍하니 그의 잔잔한 미소를 응시했다.


난감한 답안이 오히려 셰프에겐 충분한, 그런 표정이었다.


“다녀오십시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세인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문밖으로 나섰다.


덜컹


문이 닫힌 가게에 홀로 남은 셰프가 제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청춘이구만.”


#


언제까지 걸어야 했을까.


슬슬 필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할 때쯤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그거 알아?]


지상의 주민들이다.


[뭔데? 어디서 또 뭘 주워왔길래.]

[아이, 이번엔 솔깃한 소식이야.]

[그래, 그래. 어디 들어보기나 해보자고.]

[우리 기사단도 저번에 일이 있어서 들른 적이 있거든.]

[어딜?]

[자유도시.]

[어디?]

[아이, 택배기사라면 소식 정돈 들어봤을 거 아니야. 거기선 아직 타세계하고 거래도 활발한 모양이던데. 비행선의 제작도 들어갔고. 우리도 슬슬 진출할 때 아니야?]


[다른 세계? 지금 전쟁이 일어날까 말까 중인데 그런 분위기겠어? 허풍이 심하네, 참.]


[답답아! 지금 자유도시 뒤쪽에 있는 마을이나 도시는, 그런 게 뭔가 싶을 정도로 평화 그 자체야. 너야말로 정보가 너무 뒤떨어졌다고.]


맨홀 바로 위에서 정보를 나누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온다.


백묘의 일원들이 그들의 발언 때문에 위상에 제대로 취해 있었다.


과연, 유리의 판단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자유도시는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세인에게도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축소판이라 여겼던, 도시의 높은 성장세 소식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아. 드디어 찾았네.”


포름은 저 앞에서 지친 기색과 함께 한 마디를 토해냈다.


달칵


맨홀 뚜껑을 열고 눈만 빼꼼 내놓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밑에서 대기하던 일원들을 부른다.


하루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니, 그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곳에서부턴 은밀 신속이 필수라는 걸 명심하세요.”


모두의 수긍을 끌어낸 하루가 포름을 뒤따라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기사단장과의 대면이 목전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세인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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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2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7 4 12쪽
»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2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8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4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90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4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9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4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7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1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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