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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조회수 :
27,932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01 00:00
조회
109
추천
4
글자
12쪽

#44. 당신, 용사입니까

DUMMY

루이스가 지그시 하루를 노려보다 눈에 힘을 풀었다.


“뭐, 너만의 사정이 있겠지.”


생각 외로 간단하게 물러서는 듯해서 좀 찝찝했지만, 루이스 나름대로 상황을 납득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뒤만 봐주고 저도 나가겠습니다.”


그자를 만나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이 먼저였으니까.


하루가 먼저 문밖의 인기척을 확인한 이후 넷은 방을 나가 행동에 나섰다.


첫 방을 기점으로 천천히 아이들을 모아간다.


걱정이 있다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느냐였는데, 생각보다 성녀란 호칭의 효과는 큰 모양이었다.


하루는 속으로 그레이에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감사하다 연신 되뇌었다.


그 외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하는 것만큼은 순조로웠다.


이따금 전체적인 움직임을 지켜보던 하루가 아이들의 몸놀림에 감탄을 내비칠 정도였다.


최소한의 기척으로 최대한의 속도와 효율.


마치 과거의 전투훈련을 연상시켰다.


혹, 그 당시에 인계를 도왔던 천계인 중 하나라고 한다면.




과거 회상에 들어가려던 찰나, 제 발아래 떨어진 작은 돌 하나로 깨졌다.


신호를 준 필이 방문을 닫으면 하루 역시 한쪽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순간 소름 끼치는 팔을 부여잡았다.


새삼 그 능력에 담긴 위화감을 깨달았다.


필과 아이들이 있는 방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진다.


그녀의 말로는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면 공간을 인식할 수 있다, 정도였지만 틀림없이 그 이상이었다.


하루는 필사적으로 희미해지는 공간을 기억에서 떼놓지 않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수업 시간이에요! 모두들 나오세요~”


아이들이 모여있는 방에선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일부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서로를 의지한다.


이미 거대한 연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평소라면 진작에 열리고도 남았을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대주교는 아직까진 미소를 없애지 않은 얼굴로 재차 그들을 불렀다.


열리는 문은 단 하나도 없다.


차츰 대주교의 입꼬리가 가라앉는다.


“여러분~?”


사제들이 웅성대며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대주교의 이마에 핏줄이 솟기 시작할 때쯤 그녀의 옆에서 렉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해. 문 열어.”


렉스가 귀찮다는 듯한 억양으로 말하면 사제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덜컹

덜컹


연달아 열리는 방문 소리로 소란스러울 즈음 사제 하나가 안절부절못하며 다가왔다.


렉스의 미간이 더 귀찮은 상황을 짐작하고 주름진다.


“저······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주교가 눈을 뒤집고 신음을 흘렸다.


“여기도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여기도······”


사방에서 속출하는 행방불명 소식에 대주교가 기어코 두 눈을 희번덕였다.


“찾아아아아!”


렉스가 한쪽 귀를 막고 총총걸음으로 밖으로 나가면 사제들이 뒤를 따랐다.


‘으으 히스테리.’


렉스가 자리를 벗어나고도 지하에서 들리는 비명이 뒷받침이라도 해주듯 연이어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떨고 있는 아이들은 방안에서 최대한 숨을 죽였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하는데도 자동반사적으로 정상적인 호흡이 유지되지 않는다.


초조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도 대주교 자신에게 전해져오는 그 어떤 소식도 없었다.


“아아아악! 영 도움 안 되는 것들이!”


하루가 또각거리는 힐 소리와 함께, 떠나는 대주교의 모습을 먼저 확인했다.


필이 아이들을 가엽게 보고 있을 때 돌연 문이 열렸다.


잠깐 사이 최고조에 달했던 긴장은 하루의 얼굴을 확인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빠르게 이동합시다.”


아이들이 루이스와 필을 뒤따라 빠르게 뒷문으로 향했다.


“이거 여간내기들이 아니네.”


달리다 말고 뒤를 힐끔 쳐다본 루이스가 피식 웃었다.


적어도 평범한 아이들이 따라올 속도가 아니었을 텐데, 그들은 대형을 유지하면서도 뒤처지지 않았다.


가장 뒤에서 예의주시하던 하루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대체 어떤 교육을 하고 있었는지.


근육의 움직임부터 하나하나 근접해 봐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이따금 은밀한 작전에 투입되기 위한 이들에게 나타나는 습관들이 보인다.


축복받은 세대부터 함께한 이들이 차례로 머릿속에 나열된다.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필과 루이스가 경계하며 다리와 허리춤에서 각각 대거 두 자루씩을 꺼냈다.


출구 앞에서 그녀들을 마주한 사제도 당황했는지, 흠칫하다 뒤늦게 본분을 떠올리고 입을 열려던 찰나.


필과 루이스의 바로 뒤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뛰쳐 나왔다.


먼저 반응한 아이 둘이 상호 연계를 통해 사제의 턱을 발끝으로 가격한다.


도약대를 자처한 아이와 공세에 들어간 아이의, 일체 소통도 없이 신장 차이마저 극복한 부드러운 반응.


뒤이어 둘은 쓰러질 때의 소음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곧장 등 뒤로 이동해 기절한 사제를 지탱한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광경을 얼 타고 보고 있던 루이스나 필과 달리, 하루는 뒤에서 상황파악을 못 하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빨리 이동해요.”


하물며 뒤에서 재촉까지 있어야 필과 루이스는 다시 움직였다.


지하 출구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돌프를 발견했다는 숲이 나왔다.


“이제 한시름 놔도 되는 건가?”


“그건 성까지 도착한 후에 하죠.”


냉정하게 말하는 하루를 잠시 쏘아보던 루이스가 다시 아이들을 이끌고 출발했다.


“루돌프?”


하루가 잠시 이동하지 않는 루돌프를 보면 넋 나간 것처럼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하에서부터 빠져 나와 이 길로 쉬지 않고 그 슬럼가까지 달린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재차 돌아오긴 했어도 그 과정이 없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도 없었으리라.


‘정말······ 다시 나온 건가?’


중천에서 내리쬐는 태양이 따갑다.


피부가 몸소 느끼는 걸 보면 꿈은 아니었다.


저 앞에 달리고 있는 친구들 역시.


나탈리가 조용히 다가와 그런 루돌프의 한 손을 부여잡았다.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야.”


하지만 그 감성에 제어를 가하듯 이 아이는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이 맞습니다.”


하루의 말에 수긍하며 루돌프는 달렸다.


이번엔 그 아이의 손에 이끌린 채로.


#


“찾았습니다!”


한 사제가 가리키는 영상에 숲속 장면이 비췄다.


수많은 영상을 앞에 둔 대주교가 기분 나쁘게 웃는다.


“이것만큼은 덕을 좀 봤네요~”


그녀의 눈동자에 인공적인 빛이 한가득 감돈다.


뒤돌아 입구를 나서는 대주교가 다시 정색하더니 그 자리에 멈춰섰다.


옆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검은 제복의 택배기사.


그가 그녀의 앞을 막아선다.


그러더니 눌러쓴 모자챙을 더욱 누르며 곤란하다는 듯 말한다.


“이거, 오늘 배송품은 받았나요?”


“뭔가요?”


“상자 뒀었는데.”


대주교는 지하 입구에 있던 상자를 떠올렸지만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 받았죠.”


“착불입니다만.”


어지간히 귀찮게 한다는 듯 입꼬리를 내리고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물론 사정은 알 바 아니라는 듯 자리를 지켰다.


“사제분들에게서 받으시면 되겠네. 난 바빠서 이만.”


대주교는 그를 제치고 출구로 빠져나갔다.


다른 사제가 돈 자루를 건네자 그는 멍하니 그것을 받고 서 있었다.


“아 맞다. 그 용건이었지. 이런, 또 까먹었네.”


그저 덜렁댄다고밖에 볼 수 없는 행동과 느릿한 어조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다시 대주교가 지나쳐간 방향을 느긋이 지켜봤다.


“시간도 남았고, 조금 미룰까.”


모자챙 밑으로 붉은 안광이 섬뜩하게 새어 나온다.


#


“저 성 아니야?”


역시 훈련받은 이들이라곤 해도 아이들이었는지 금방 신나선 발걸음이 대형이 흐트러진다.


아이들과 동행하던 셋도 그 분위기에 끌려 고조되던 참에, 위에서부터 앞쪽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내려왔다.


쿠웅!


운석이라도 떨어진 건지, 자욱한 흙먼지를 들여다보기도 전에 실루엣이 비췄다.


대주교다.


“설마 거기서부터 날아온 거야?”


“날개가 없어.”


“도약한 거면 더 미친 짓인걸.”


성을 눈앞에 두고 기가 막힌 루이스와 필이 다시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렇게나 히스테리를 부리던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인자한 미소를 지니곤 천천히 걸어 나왔다.


“무슨 발칙한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전부 쓸모없게 되었네요?”


아이들이 빠르게도 동요했다.


주춤하며 뒷걸음질 치는 아이들의 등을 하루의 커다란 손이 뒤에서 조심스레 지탱했다.


“여긴 저한테 맡기세요.”


그러더니 아이들의 인파를 뚫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러분~? 전 이해한답니다. 아이들은 반항기도 겪으며 자라는 게 자연스러운 법이죠. 전 화나지 않았답니다. 그러니 돌아갈까요?”


그녀는 하루에게 티끌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 앞에 우뚝 선 순간까지도.


하루가 시야를 막고 서면 그제야 대주교의 눈웃음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들을 데려간 사람이 당신인가요?”


드디어 한 마디를 건네면 이번엔 하루 쪽에서 그에 응대하지 않고 뒤돌았다.


루이스와 필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가라는 눈짓을 했다.


그럼 그들이 뒤에 있던 대주교의 눈치를 보면서도 조심스레 움직였다.


쉽사리 움직이지 않던 아이들도 하루가 그녀의 모습을 차단한 덕에 조금씩 움직였다.


루이스가 먼저 옆으로 돌아 지나치려 할 때, 갑작스레 돌변해선 오른팔로 성속성의 단일계 술식을 허공에 그리기 시작했다.


채앵─


영문도 모르고 깨지는 술식에 루이스와 대주교 모두 당황했지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루이스와 아이들은 빠르게 이동했다.


잠시 멈칫한 루돌프가 남아있는 하루를 힐긋 쳐다보곤 다시 발을 뗐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성속성의 잔향에 대주교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였다.


제 앞을 막고 선 건방진 인간.


대주교는 어지간히 장이 뒤틀린 듯한 모양이다.


그 얼굴이 대변이라도 해주듯 일그러졌다.


“당신, 용사입니까?”


인계인이면서 천계인과 동일한 속성을 다룬다고 하면 그것밖엔 없었다.


하지만 그 장면은 동시에 그녀가 천계인이라 확신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빼돌린 거죠?”


“······.”


“방금의 역산. 아무리 축복받은 용사라고 해도 단기간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정도 영웅이 아직도 살아있을 리 없죠.”


“······.”


“성녀인가요? 그녀가 기어코 뒤통수를 친 거라······ 뭐라고 말 좀 해봐!”


계속 입을 열지 않는 하루에게 결국 대주교는 질문을 던지다 말고 폭발했다.


히스테리식 비명을 질러대는 그녀가 두건을 바닥에 던지더니 머리를 헤집었다.


그녀의 머리나 등에 날개는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본성이 비집고 나오는 탓에 그녀의 눈동자가 그것들을 대신하듯 빛나고 있었다.


“······제 발로 와주네.”


아이들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야 그는 입을 열었다.


“뭐?”


대주교가 씩씩대며 드디어 입술을 뗀 하루를 응시했다.


“아이들에게 암부식 교육을 주입했습니까?”


그의 눈빛이 평소보다도 더 가라앉는 한편, 말을 듣던 대주교가 잠깐 사이 단계별로 입꼬리를 올렸다.


참으로 기뻐 보인다.


기분 나쁠 정도로.


얼핏 인격을 여럿 구사하고 있는 건지 착각할 정도의 급격한 변화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 줄곧 차오르던 빛은 천천히 어떠한 형태를 형성해갔다.


여섯 갈래의 날개.


다름 아닌 그 속에서 찬란하게 펼쳐진다.


이윽고 완성된 형태 그대로, 고정된 빛의 테두리가 은은하게 발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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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7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64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6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7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3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3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3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09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6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0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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