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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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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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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25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28 00:00
조회
76
추천
3
글자
12쪽

#63. 형님뿐입니다!

DUMMY

“하루!”


그레이가 무심코 이름으로 부를 만큼 그의 행동이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남의 정원에 2톤 땅개를 들이밀고 들어온 것과 같은 이치였달까.


“오랜만입니다, 그레이.”


받아치고 싶지도 않은 뻔뻔함이다.


단순히 무덤덤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원래 그런 인물이었던 건지, 곰곰이 생각하면 이따금 카뮤와 함께 있던 장면이 스치면서 저도 모르게 수긍하고 말았다.


“오랜만이라는 의미는 알고 하는 말이에요?”


“갑자기 휴식 시간을 받았는데, 갈 곳이 없어서 말이죠.”


“그럼 수면이라도 취하지 그랬어요.”


“그럴까도 생각해봤는데, 딱히 잠이 올 기분은 아니라서요.”


그런 기분은 또 뭐람.


하루는 훌쩍 뛰어내려 와이번의 목을 한 번 쓰다듬었다.


“식사 중이셨습니까?”


“예, 뭐.”


“그럼, 함께 해도 되겠습니까.”


“애초에 거절을 생각했으면 이렇게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잖아요.”


속내가 너무 빤했던 건지, 어찌 되었든 예의상으로 말한 거지만 곧잘 파악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레이는 안중에도 없는 듯 뒤돌아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와이번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엎드리고 나서야 하루는 정문으로 돌아 식당으로 향했다.


“아저씨!”


왜 그레이는 언니면서 자신은 아저씨였는지 전부터 궁금했지만, 그렇게 불리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기면서 입을 다물었다.


루돌프가 고개를 돌려 팔을 흔들었다.

제 옆쪽에 자리가 비어있다는 의미였을까.


포크를 입에 물곤 우물대던 입이 유독 눈에 띄었다.

볼이 한가득 부풀어 오른 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천천히 다가가 그 옆에 앉았다.


“발터와 드레이코는요?”


끝자락에 있는 그레이에게 물으면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어디긴요. 자유 도시의 여관에 있겠죠.”


하고 답했다.


하루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설마 그 둘을 백묘와 가장 마주칠 확률이 높은 곳에 그대로 두고 오다니.

틀림없이 함께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던가.


하루의 반응을 곁눈질로 지켜보던 그레이가 또


“제가 전과자 둘을 이 땅에 들여보낼 리가 없잖아요.”


아주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야 아이들이 있는 곳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부디 둘이 알아서 판단하에 행동해주리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루돌프가 자연스레 제 음식을 하루에게 덜어 주었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이 조그마한 아이의 음식을 차마 가질 순 없다.


“전 괜찮습니다. 측근씨의 요리를 먹으면 되니까.”


필이 그렇게 부르던 게 입에 딱 달라붙었는지, 차마 이후로 이름을 물어볼 생각도 못 했다.

그보다 셰프의 음식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에 가슴이 아리다.

그 말을 엿들은 누구는 감격에 겨운 듯했지만.


“죄송한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금방 내오겠습니다.”


측근이 그렇게까지 후다닥 자리를 벗어난 기억이 없다.


루돌프가 빤히 제 얼굴을 바라본다.


“무슨 말이라도?”


“그냥. 괜찮았나 싶어서.”


“예, 뭐.”


“그럼 됐어.”


뭐였을까.


언젠가 유리와 비슷한 말을 주고받았던 것도 같다.


“기특하지 않습니까? 걱정됐는지 오자마자 한 말이 그겁니다.”


루돌프의 쑥스러운 듯 고개를 묻고 더 음식에 집중했다.


하루가 의문스럽게 있으면 어째선지 앞쪽에 앉아있던 포름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양자 제안도 못 한 사람이.


코로 얕게 숨을 내뱉었다.

괜히 포름이 머쓱한 표정을 띠었다.


“그런데 형님. 정말 어쩐 일이세요?”


“정말 아무 의미 없습니다. 다만······”


“······?”


하루가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니 세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식사 후에 산책이나 좀 하지 않겠습니까.”


“전 좋습니다!”


영문은 몰라도 그는 그저 하루가 권하는 모든 게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측근이 음식을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먹고도 더 들어갈 양이 있었는지, 아이들은 그 음식들마저 잘도 넘겼다.


방금까지 서운할 뻔했던 측근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창 자랄 때지.’


하루는 자신의 분만 조금 덜어와 입에 넣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맛.

그녀의 고향 음식이었을까.

여태 먹어본 것들관 묘하게 근본적으로 다른 풍미가 느껴진다.


하루가 음식에 대해 질문하면 측근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전투에만 능수능란한 줄 알았던 사람이, 타지에서 온 음식의 맛까지 구별할 수 있다고 하면 누구나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이제 와선 각 세계의 맛이 섞인 탓에 미묘한 향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었으니.


“전 인계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에게 곧잘 배웠습니다.”


“음······.”


하루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나지막이 괜찮네요, 하고 읊조린다.


무슨 연유에선지 그냥 그 한 마디가 측근의 기분을 좋게 했다.

정작 무덤덤함 속에서도 복잡한 표정을 섞어냈지만.


한창 식사를 마치고 나니 몸이 나른해졌다.

아이들의 표정에도 그게 물씬 묻어나왔다.


“형님, 바로 산책가실 건가요?”


하루가 반쯤 뜬 눈으로 그렇게 묻는 세인을 응시한다.

그의 얼굴에서 강아지상이 보인 건 기분 탓이었을까.


“그러죠.”


평소라면 따라나서겠다고 했을 몇 아이들도, 지금은 등이 의자에 붙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를 두드리면서 나른하게 풀어진 눈들은 그레이의 잔소리를 사기에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입을 열기 시작할 때 둘은 성에서 빠져 나왔다.


“매일 이런 일상에서 살 수 있다면 좋겠어요.”


확실히, 세인이 저들 사이에 섞여 있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레이 역시 별반 다르진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아이들의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가능케 한 인물이 바로 제 옆에 있는 자라고 생각하니, 하루는 속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격한 칭찬을 아끼지 못했다.


부우우─


저 멀리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배 한 척이 보인다.


“저 건너편에 다른 세계가 있는 겁니까.”


세인이 바다 건너편을 가리켰다.

방금 배 한 척이 드나든 곳.

이곳에서 보이진 않지만 크라운마린으로 향하는 입구가 있다.


“맞습니다.”


저 먼바다의 반사광이 세인의 눈동자까지 비추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형님도 다른 세계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예.”


“외교를 위해 들르는 이들은 곧잘 봤습니다만, 저는 한 번도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그가 여타 세계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던 것도 모두 그레이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다른 세계의 풍습이 많이 스며든 곳.

그게 다루스 영지였다.


“이 땅을 그레이에게 맡겨서 다행입니다.”


하루 역시 그리 여겼다.


무역이 활발한 영지로 발전할 수 있던 것도 그녀가 발 벗고 뛴 탓일 테니.


세인은 점차 검게 물드는 수평선을 한참 바라봤다.


곧 완전히 검게 물들면 수평선엔 가지런히 빛들이 수놓아졌다.


그 정체가 뭔진 몰라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다.


언덕 위로는 어느덧 밤바람이 차게 불어왔다.


“형님.”


그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하려던 말씀이 있지 않으십니까.”


막상 그렇게 물으니 곧바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괜히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그와 같은 풍경을 주시한다.


“아직도 칠성교를 안고 갈 생각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의외의 답이다.


“사실 제대로 보질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모른다고 했던 건가.

거의 포기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내 세인은 하루를 똑바로 마주했다.


“한 번만 더 도와주실 순 없을까요.”


“제가 도와준다 한들 연합이 허락할 리가 없습니다. 작전 중엔 사소한 엇갈림이 희생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대로 그들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하루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토했다.


세인이 잠시 움찔했다.


세인의 반응에 하루도 머쓱해졌다.


그의 고집은 이타적이면서도 이기적이다.

서로 맞물리지 않는 둘을 포용하고 싶은, 말 그대로 객기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럼에도 세인의 눈동자엔 함부로 거절 못 할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럼 제가 제시한 대로 해본 이후에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 포기하겠다 약속하시겠습니까.”


세인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럴 때면 정말 단순한 소년에 불과했다.


“역시 형님뿐입니다! 그 방법이란 게 무엇입니까?”


“가면서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밤바람이 차니 슬슬 들어가죠.”


#


성으로 돌아오는 하루와 세인을 그레이가 입구에서 맞이했다.


“백묘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러고 보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휴식 시간을 너무 소비했나.


“슬슬 갈 채비를 하죠.”


“아이들은 이번엔 괜찮습니까.”


“모두 재워뒀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루가 와이번을 세워둔 마당으로 향하려고 하자 그레이가 그를 붙잡았다.


“기껏 재운 애들 전부 깨울 생각이에요? 와이번은 맡겨두고 선착장으로 가죠.”


마침 포름이 짐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하루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비행선에 올랐다.


몇 번을 타도 감명 깊다.

이번 일을 끝내게 된다면, 반드시 개다래 상단을 방문하리라.


주변을 둘러보면 시간이 시간인지라 승객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 아까부터 그레이의 상태가 이상했다.


굉장히 멍한 게 평소의 그녀에게선 곧잘 볼 수 없는 표정이다.


그녀의 이름을 조심스레 불러봐도 답이 없다.

마치 영혼이 통째로 빠져나간 것처럼.


반복해서 부르면 포름과 세인도 관심을 가졌다.


“그레이?”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녀가 퍼뜩 정신 차렸다.


“예?”


“혹시 졸린 겁니까?”


“무슨······”


무슨 상황인지 잠시 파악하던 그녀가 제 이마를 짚었다.


“아뇨. 그냥, 성녀의 잔재 때문이에요.”


태초의 성녀가 계승자들에게 남겼다는 기억.


“없는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 유독 더하네요.”


그녀가 심호흡을 거쳤다.


“성녀의 기억이란 게 뭡니까?”


그레이가 그렇게 묻는 하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한 게 평소의 그다.


이따금 느끼는 거지만, 그의 호기심은 정말 예상하지 못 한때에 튀어나왔다.


넘겨버릴까 하다가도 그 옆자리 나머지 둘의 시선도 비슷해 그럴 수도 없게 생겼다.


“별거 아니에요. 태초의 성녀가 죽기 전에 있던 장면인 것 같은데. 예고 없이 멍하니 있을 때면 나와서 거슬리네요.”


‘아니, 그거 다잉메시지잖아.’


일제히 어이없다는 듯한 셋의 눈빛이 그녀를 향했다.


“뭐, 뭐예요?”


“그레이의 스승은 아무 말도 없었습니까?”


“예, 뭐.”


선대 성녀들은 모조리 눈치가 없는 게 내력인 건지 의심스럽다.

아니면 그 기억에 대해선 의심하지 못하도록 방어기제처럼 걸려있다거나.


하루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그럴 리는 없겠지.


“그래서 죽기 전에 태초의 성녀는 뭘 본 겁니까?”


그때의 질문까진 순수한 궁금증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후에 나온 그녀의 답을 듣기 전까진, 연이어 태초의 기억이 전승되는 성녀들의 시스템 자체에 의심은 일절 없었다.


“어떤······ 사람 하나를 본 것 같은데요. 아니, 사람인가?”


기억의 오류.

새삼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그녀가 갑작스러운 두통을 느끼는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제대로 상기시켜보려고 한 적은 없어서요. 날개가 달려 있었던가. 아니야, 날개는 없었어. 이상하다······ 한 명뿐이던가?”


기어코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보다 못한 하루가 그녀를 멈추려 하자, 그녀는 마지막 한 마디를 읊조린다.


“아자······젤.”


여태 무표정을 고집해오던 하루의 안면이 이례적으로 일그러진다.


작가의말
우리나라 선수들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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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8. 너만은 널 21.08.04 73 3 12쪽
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7 4 12쪽
66 #65. 정말 좋은 구경했네 21.07.30 77 4 12쪽
65 #64. 단장 명령! 21.07.29 74 3 13쪽
» #63. 형님뿐입니다! 21.07.28 77 3 12쪽
63 #62. 정말 미친놈이라고 21.07.27 83 3 13쪽
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6 4 12쪽
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7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6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3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5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3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3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09 4 12쪽
43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09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6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40 #39. 흥미가 있습니까 21.06.25 10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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