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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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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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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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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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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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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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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43. 나갈 수 있어

DUMMY

건물 벽에 기대고 있던 하루가 문득 손을 흔들었다.


입구에서 필이 그를 발견하고 총총걸음으로 뛰어왔다.


“지부장 교육 중에 불러서 미안합니다.”


필은 고개를 저었다.


“말한 대로 와이번은 근처까지만 타고 왔어.”


“여기서 눈에 띄어 좋을 건 없으니까요.”


하루가 걷기 시작하면 그녀도 나란히 걸었다.


필은 아직 뭐라 한마디도 해주지 않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하루가 그녀의 시선을 느꼈지만, 여전히 입은 다문 채였다.


“내 능력, 필요한 거지?”


“······.”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갑작스레 부른 것도 모자라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면 그것밖에 더 있겠는가.


예전의 필이라면 필시 그것에 둔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루 역시 그 부분을 잘 알고 있기에 꺼내기가 힘들었다.


일시적이라도 잃긴 쉽지만 되찾기까지가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


오히려 그녀에게 위로받고 말았다.


하루는 무안하게 고개를 들곤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미안합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도 필만큼 최소한의 마찰로 아이들을 되찾을 수 있는 법이 없었어요.”


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편리하긴 하지.”


그녀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곤 해도 심장을 찌른다.


그리곤 그녀는 예전보다 덜 메워진 공허함으로 하루를 바라봤다.


“도움이 된다면 괜찮아.”


그녀에겐 다른 방식의 도움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또 같은 식으로 그녀를 이끈 셈이다.


“검은 아저씨네. 근데 그 옆엔 누구야?”


루돌프가 멀리서 보이는 익숙한 얼굴을 먼저 발견했다.


루이스에게도 역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루돌프. 당신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어떻게 먼저 찾아왔나 싶으면 그는 그렇게 물었다.


루돌프는 빤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와 눈을 맞췄다.


입꼬리를 씩 올린다.


“내가 부탁해야 할 말인데.”


#


넷은 한동안 입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레이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럴 기색도 없을뿐더러 잘은 모르지만 그런 것에 서툰 여자일 것이다.


한 무덤가를 쭉 가로질러 왔다고 생각하면 그곳엔 건물도 뭣도 없었다.


“사원?”


“숲이라고 하지 않았어?”


“거긴 뒷문일 거야. 여긴 나도 처음인데.”


셋이 어리둥절 있으면 하루가 한 발짝 먼저 앞서 손을 내밀었다.


치지직─-


이질적인 음파가 퍼진다.


공간에 겹겹이 있던 또 다른 공간들이 나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깨진다.


그리곤 생전 있을 것 같지 않던 기묘한 분위기의 기계실이 그곳에 펼쳐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셋에게 하루는 뒤돌아 내밀었던 손을 들어 보였다.


“검은 아저씨 정체가 뭐야?”


“터무니없는 게 일상인 사람.”


루이스가 그렇게 던지면 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통 차가워 보이는 인공적인 설비들만 가득하다.


“루돌프, 이곳입니까?”


하루의 물음에도 고개만 저었다.


“이런 곳이 아니야. 훨씬 척박하고······ 조금 더 칙칙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지하.”


루돌프는 언젠가 한없이 뛰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머릿속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통로는 없었다.


“그것도 인위적으로 덧씌워진 장면일지 모릅니다.”


그레이 역시 조작된 공간을 보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이 공간은 어디까지 인위적인 조작이 가능한 걸까.


자칫 루돌프가 볼 수 있는 최악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도······


“여기······!”


속삭이듯 외치는 루이스를 따라가면 이전의 상상이 무안하게 그럴 가능성은 배제되었다.


여지없이 위화감 잔뜩 느껴지는 방엔 수많은 기계음, 거대한 화면과 그것을 지켜보는 수도복의 누군가가 있다.


다들 입구에 바짝 붙어선 안을 들여다 봤다.


“저 화면, 이 공간의 맵 아니야?”


“그런 것 같네요.”


간소화된 수치나 지도상에 수없이 떠도는 점들로 미뤄보아, 생체상태나 공간의 상황 체크까지 겸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상당수 나뉜 간격이나 구조는 루돌프의 증언대로 지하와 아이들이 갇힌 방으로 보였다.


“일단 지하 통로를 찾는 게 먼저겠네요.”


“화면만 봐도 어딘지 모르겠는데.”


“넓은 만큼 복잡해.”


루돌프가 아까부터 잠자코 있었다.


온전치 않은 기억이라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다는 사실이 막막하기만 했다.


“이렇게 있어도 발각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던 하루가 먼저 뒤돌면 때마침 복도를 지나치던 누군가가 고개를 돌렸다.


검은 제복과 모자, 손에 들린 하나의 상자.


모자를 푹 눌러쓴 탓에 외형은 잘 보이지 않아도 영락없이 그레이가 말했던 택배기사를 연상케 한다.


“······?”


그런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고 있다.


넷의 이마에 일제히 식은땀이 흘렀다.


곧 그의 눈이 하루의 옆에 있던 아이에게 향한다.


그러더니 혼자 이해한 듯한 효과음을 냈다.


“아, 혹시 처음? 그쪽 아닌데요.”


손가락으로 하루의 뒤에 있는 방을 가리키더니 자신을 따라오라 손짓한다.


넷은 그의 행동에 서로 시선만 나누다 뒤를 따랐다.


그러면 이상하리만치 순조롭게 지하로 향하는 문을 찾았다.


“여기.”


어떤 의심도 없이 검은 제복의 사내가 먼저 문안으로 들어선다.


먹이를 조여오는 듯한 섬뜩한 눈동자들을 뒤에 둔 채.


#


지하통로 한구석에 검은 제복의 사내가 온몸이 밧줄로 칭칭 감긴 채 멍하니 누워있다.


속으로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장한테 또 혼나려나. ······뭐, 물건은 일단 문 안까지 제대로 배송했고. 상관없으려나.’


그렇게 멋대로 스스로를 면죄해주던 때에 하루는 아이들이 있는 지하에 발을 디뎠다.


긴 통로, 양쪽에 늘어선 방문들을 따라 원형의 광장과 다시 그 주위를 둘러싼 방들.


“이쯤 되면 거의 사관학교 하나 차리겠는데?”


루이스가 질색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광경을 쭉 지켜보던 필이 두통을 느끼고 휘청이면 하루가 옆에서 그녀를 지탱했다.


일순간 지하에 있던 일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반듯이 섰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위태로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없는 건가?”


조금 더 이동하려다 인기척을 느낀 루이스가 뒷걸음질 치면, 나머지 셋도 모퉁이를 두고 벽에 밀착했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탓에 넷은 곧바로 옆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철컥


사제 하나가 그 자리에 다다랐을 땐 이미 아무도 없었다.


순간 들린 소리를 착각이라고 여기고 떠나면, 멀어지는 인기척에 방 안쪽에서 넷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돌프?”


더 안쪽에서 들리는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에 루돌프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콧잔등의 양옆으로 옅게 주근깨가 나 있는 아이.


“나탈리.”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떨림이 섞였다.


“왜 돌아온 거야.”


애써 보낸 그가 다시 돌아왔다.


한동안 고된 징계를 받으며, 또는 일부 동료들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버텼던 이유 하나가 다시 돌아와 제 눈앞에 서 있었다.


그토록 허무한 게 또 있었을까.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를 마주하니 자연스레 루돌프의 고개가 떨궈졌다.


“······미안.”


밖에서도 나탈리가 한 고생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오히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것뿐이었다.


루돌프는 제 머리에 커다란 손의 감촉을 느꼈다.


“고개를 드세요.”


하루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들곤 그를 바라봤다.


“당신은 다시 갇히기 위해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견고한 의지의 계기가 되었다.


루돌프가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탈리.”


아까와는 달리 목소리에 떨림은 없었다.


다져진 마음만큼이나 올곧은 말.


“함께 나가자.”


루돌프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탈리는 그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옆에 있는 이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간단하게 나갈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는 그 말을 그렇게도 가볍게 지를 수 있는가.


마치 여태 자신들이 바라지 않아서 나가지 못한 것처럼.


나탈리의 인상이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민 손이 움찔했다.


“어떻게 내보냈는데······ 다시 여길······.”


기어코 나탈리의 뺨에 눈물이 흐르면 옆에 있던 셋은 당황해 서로 시선만 나눴다.


그때 루돌프는 뚜벅뚜벅 걸어가 그녀를 작은 품으로 안았다.


“오.”


또 쓸데없는 감탄사를 내뱉은 루이스를 하루와 필이 지그시 노려보면 머쓱하게 어깨만 으쓱였다.


루돌프의 미간이 살며시 접혔다.


이전보다도 왜소해진 느낌이다.


아이들의 미세한 떨림을 진지하게 지켜보던 루이스가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이번엔 그녀가 둘을 크게 껴안으면 하루와 필의 소소한 미소가 그 곁에 맴돌았다.


“나갈 수 있어. 이번엔 다 같이.”


근거 없는 말이라 여기면서도 그런 말을 처음으로 해주는 커다란 품이 있다는 건, 그토록 북받치는 일이었을까.


마침내 아이 둘은 그 품 안에서 수긍했다.


연신 작은 고개들을 끄덕였다.


하루는 역시 택배기사로서 루이스는 자신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여겼다.


적재적소,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그녀는 택배기사의 신념 중 하나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슬슬 의뢰를 완수해야 하는데.’


그에 반해 마찬가지로 신념 중 하나인 신속배송을 완벽하게 말아먹은 자신에게 회의감을 품었다.


“아.”


돌연 나탈리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붉게 물든 눈시울을 한 얼굴을 퍼뜩 들었다.


“곧 있으면 교육 시간이에요.”


뒤늦게 루돌프도 기억해낸 표정이었다.


“교육?”


“일정 시간마다 방안의 아이들이 훈련을 받으러 광장에 모여요.”


“서둘러야겠네요. 여기서부턴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하루는 재빨리 남은 시간을 체크하고 동선 확립을 위해 모든 방의 위치를 전해 받았다.


역시 가장 좋은 위치는 루돌프가 빠져 나왔다던 뒷문과 가장 가까운 방이다.


“필과 루돌프, 루이스와 나탈리가 한 조로 방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이 방으로 모아주세요. 아이들이 많다곤 해도 방 안의 면적이 좁은 건 아니니까 전부 들어갈 겁니다.”


“그때 능력을 쓰면 되는 거지?”


“능력은 교육 시간이 시작된 후에 쓰세요. 부담은 최소화하는 게 좋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루돌프가 지그시 손을 들었다.


“뭐죠?”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 말을 곧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 나탈리가 덧붙였다.


“분명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을 거예요. 그 녀석들······ 우수한 탓에 불편한 기색은 없는 것 같았으니까요.”


루돌프와 나탈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아이들이 있는 부분은 상정 외였다.


하루는 잠시 고민하곤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떠올린 거지?”


루이스가 그의 표정을 알아보고 재촉하니 하루는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녀에겐 실컷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어댔거든요.”


“그녀?”


“성녀가 찾고 있다고, 전하면 효과는 있을까요?”


“언니? 언니가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런 나탈리의 반응을 보면 일단 효과는 있을 듯했다.


사실 아이들을 뒷문으로 빼낸 후에는 어차피 그녀의 성으로 먼저 보낼 예정이었으니, 어찌 되었든 그녀를 만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생각이 지금쯤이면 정리되었을지 영 미덥잖았다.


그래도 포름이 있는 만큼 어떻게든 되겠지.


그저 잘난 듯 실컷 떠든 후에야, 그녀의 도움을 받는 게 그냥 꺼림칙 할 뿐이었다.


“교육 시간이 돼서도 반응이 없으면 사제들은 가장 먼저 방들을 확인할 거예요.”


“그럼 전부 들키는 거 아닌가요?”


필은 불안해하는 나탈리와 루돌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런 필의 행동에 하루도 다소 안심감을 가졌다.


“방을 전부 확인한 후에 아이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위치파악을 위해서라도 사제들은 분명 위층으로 향할 겁니다. 그럼 그때 모두 반대편 뒷문으로 빠져나가세요.”


“넌?”


하루는 루이스의 물음에 잠시 망설였다.


“만에 하나를 예방해서 가장 뒤에서 따라가야죠. 사실 기회만 된다면······”


“기회만 된다면?”


또 그때처럼 분노의 꿀밤을 얻어맞을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거짓을 말해도 간파할 여자였다.


“대주교란 이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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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7. 만회했으려나 21.08.03 75 3 12쪽
67 #66. 전조 21.08.02 7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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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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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59. 드디어 널 만날 수 있어 21.07.22 81 4 12쪽
59 #58. 일단 먹고 +2 21.07.21 87 4 12쪽
58 #57. 적당한 보험 정도로 21.07.20 80 4 12쪽
57 #56. 회유······요? 21.07.19 86 3 12쪽
56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55 #54. 스미스 정비소 21.07.15 83 3 12쪽
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4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4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44 #44. 당신, 용사입니까 21.07.01 110 4 12쪽
» #43. 나갈 수 있어 21.06.30 110 3 13쪽
42 #42. 성녀는 그래야 하는 건가요 21.06.29 116 4 13쪽
41 #41. 끝까지 모른다고 해줘 21.06.28 10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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