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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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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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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7.16 00:01
조회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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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55. 좋지 않습니까

DUMMY

목재 식탁에 올라온 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스프였다.


투박하게 썰어 넣은 고깃덩이가 종종 보인다.


“좋아하실지 모르겠네.”


미트 스프에 호불호 같은 것도 있던가.


드레이코와 발터가 빤히 그릇을 바라봤다.


“별로······ 세요?”


마저 그릇에 샐러드를 담아온 장로가 재차 걱정스레 물었다.


드레이코가 먼저 수저를 들고 스프를 입에 넣었다.


발터는 그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장로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띠었다.


“감사합니다.”


발터가 뒤늦게 말하면 장로가 손사래를 쳤다.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마을을 구해주신 분들 아닙니까.”


“어이 영감. 우리도 죄인이라고.”


드레이코가 입에 음식을 넣다 말고 내뱉어도 장로의 미소는 가시질 않는다.


그런 반응을 보더니 드레이코는 콧방귀만 뀌곤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쪽 분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다만······.”


발터는 스프를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제가 있으면 불편하실 테니, 다 드시면 기별해 주십쇼.”


장로는 뒤돌아 밖으로 나갔다.


드레이코의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뭐해? 먹기 싫으면 내놓던가.”


벌써 그릇을 다 비워가던 드레이코가 눈독 들이자, 발터가 제 분은 사수했다.


답지 않은 행동에 드레이코가 조소를 띠었다.


발터가 뒤늦게 스푼을 들고 한 입 떠먹는다.


따뜻하다.


그런 감정마저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소비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옷까지.


허름하다곤 해도, 단연 죄수복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설마 죄인들이 활개 칠 거란 가정은 못 했습니다.”


“우리도 나왔는데, 다른 죄수라고 못 나오겠어.”


발터가 먹다 말고 이미 식사를 끝낸 드레이코를 응시했다.


부른 배를 만지던 드레이코가 기분 좋게 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가 무턱대고 마을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자꾸 그런 가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미 지난 일이었지만, 제 선택이 또 다른 희생을 나았을지 모른다.


어떻게 해도 제 선택은 잘 못으로 이어지는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드레이코가 자신과 마주 보고 있었다.


“또 쓸데없는 생각이라도 하나?”


쓸데없는 생각이라니···.


그에겐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정말 낙관적이군요.”


“그런가? 당신이 비관적인 거겠지.”


딱히 나쁜 의미로 꺼낸 건 아니었지만 그 말대로였다.


“그럼 이제 어쩔 생각입니까.”


질문에 드레이코는 테이블을 검지로 몇 번 툭툭 내리쳤다.


그러더니 썩 불만인 표정을 짓는다.


“아, 술 비슷한 거라도 없나.”


손으로 와인잔 드는 행세를 하면 발터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 옷도 얻었고 식사도 했겠다. 이제 남은 건 하나잖아.”


당연한 걸 묻냐는 식의 말투다.


여전히 아니꼬운 표정.


하지만 발터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복수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도 정말 형편없는 일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죽기 직전 마지막 발악 정도.


‘그래, 그 말이 절묘하네.’


발터의 식사 속도가 너무 느려선지 슬슬 드레이코가 지루해하는 듯하다.


하여간 귀족들이란.


그의 눈빛이 마치 그렇게 읊조리는 것만 같다.


한참 후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하품을 내쉬던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창문 쪽으로 걸어가면 뭔가를 발견하곤 혼자 벽에 밀착했다.


“······무슨 일입니까.”


드레이코는 그저 검지를 입술에 가져갈 뿐이었다.


그 행동에 맞춰 발터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발터에게도 서서히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누군가의 실소도 묻어나온 것 같아 보면, 드레이코의 입가가 웃고 있다.


“그러게, 식사는 서두르지 그랬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던 그가 뒤이어 정 반대쪽 창문을 활짝 열어 재꼈다.


뒤이어 한쪽 다리를 창틀에 걸친다.


“무슨······”


발터의 질문이 채 나오기도 전에 드레이코는 방금 보던 창문을 엄지로 가리켰다.


수저를 놓고 발터도 방금 그가 봤을 광경을 두 눈에 담았다.


갑옷을 입은 인원들.

그 옆에 수도복을 입은 인원들까지.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방금까지 자신들이 속박해 놨던 죄인들을 수송해간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으나 드레이코가 움직인 원인임엔 틀림없었다.


“뭐해. 안 갈 거야?”


그가 다리를 걸친 채 이쪽을 바라봤다.


“우리를 잡으러 온다는 보장도 없잖습니까.”


“저기 끌려가는 죄인들은 특별대상인가? 먹이를 빌미로 저들이 신고할지는 또 어떻게 알아?”


“그런······”


발터가 말을 잃었다.


잠시나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혼란스럽다.


죄인이라면 마땅히,

따위의 신념이라도 지니고 있던 걸까.


─성직자 납셨네.


드레이코의 비웃음이 과거에서부터 밀려온다.


재차 우선순위를 정립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곤 숨을 한껏 들이마신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발터의 각오가 무서울 만큼 다져진 얼굴이다.


“갑시다.”


희미한 미소를 띠면서 먼저 나가는 드레이코의 뒤를 따랐다.


장로의 저택에서 빠져나온 둘은 뒷마당으로 유유히 떠났다.


한참을 걷던 발터가 무심코 뒤를 돌았다.


얼마나 걸어온 걸까.


슬슬 보이지 않게 된 저택을 향해 그가 늦게나마 허리를 숙였다.


느닷없는 행동에 평소라면 쓴소리를 쏘아댔을 드레이코도 웬일인지 아무 말이 없다.


“스프는 맛있었지.”


그렇게 내뱉을 뿐인 한 마디가 그토록 씁쓸하게 느껴질 일이었나 싶다.


#


“설마 저 죄인들을 다 잡으시다니, 마을의 경비가 다 무색하겠네요.”


기사 하나가 그렇게 되뇌곤 장로에게 인사를 마지막으로 떠났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기사님들.”


장로가 홀홀거리며 여유로운 웃음으로 기사들을 마중했다.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도 장로와 한뜻인 양 말을 아꼈다.


그들이 다녀간 마을은 적막했다.


죄수들을 실은 마차가 완전히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마을 사람들은 장로에게로 모여들었다.


“촌장님. 디저트를 만들었는데, 그분들과 나눠 드세요.”


한 여인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하나씩 거들었다.


“이걸 어떻게 다 가져가나. 그러지 말고들 우리 집으로 함께 가세.”


웃음이 만개한 장로가 그들을 이끌고 집 문을 열면, 젖혀진 창문 하나에서 들어온 바람만 휑한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미 떠나신 모양이야.”


장로의 아쉬움이 마을 주민들에게도 전염되어간다.


“생각해보니 그들도 죄를 지었다고 하셨었죠.”


“어쩔 수 없죠. 다들 나중을 기약합시다.”


주민들은 서로를 달래는 듯한 말투지만, 얼굴에 비친 서운함을 감출 여력은 없어 보인다.


모처럼의 은혜.


마을 중앙에 놓인 여신상에 전한다면 그 감사는 전달될까.


그런 걸 신경 써도 두 사람이 무신론자로 전향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 리는 없었다.


#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모르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어느덧 심리파악까지 할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거창한 얘기라기보단 익숙해졌을 뿐이겠지만.


정처 없이 걷는 건 매한가지인데, 단순히 죄수복과 맨발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바람을 맞는 기분은 그토록 바뀌었다.


발터의 부스스한 머리칼이 흔들렸다.


예전과 같은 가지런하고 반듯한 스타일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선지 그의 표정도 한결 여유로웠다.


“음?”


근처를 둘러보던 발터가 드레이코의 효과음에 고개를 돌렸다.


언덕 아래에 마차가 서 있다.


설마 지금 와서 약탈을 입에 담으려는 건 아닐 테고.


발터가 그의 결정을 기다리듯 가만히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어때?”


그러면 드레이코 역시 발터의 의견을 물어왔다.


“어떻냐는 게······”


그럼에도 의심의 뿌리를 거두지 못하고 그렇게 되물으니


“뭐긴! 마차에 올라타면 어느 마을로든 가지 않겠냐는 거지.”


느닷없이 화를 냈다.


“무임승차는 금방 들킬 텐데요.”


“······날 대체 뭐로 보는 거야 당신.”


“예?”


“그냥 한 마디 부탁하면 되잖아.”


“아.”


장족의 발전.


드레이코가 떨떠름하게 발터를 한 번 쳐다보곤 먼저 앞장섰다.


마차에 다가가면 어느 젊은 여성이 허리를 굽히고 뭔가를 살피고 있는 듯했다.


“아, 정말!”


인적 드문 곳에서 혼자 신경질을 내던 여성이, 인기척을 느끼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드레이코도 그녀의 태세에 다소 당황했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이 낯이 익은 게, 눈을 게슴츠레 뜨고 조금 더 살펴봤다.


“택배기사?”


혼자 읊조리고 있으니 그녀가 더욱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무슨 착각이라도 한 건지 두 주먹을 움켜쥐고 격투 자세를 취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팔짱을 끼던 드레이코가 답답함을 못 참고 뒤쪽의 발터에게 내뱉었다.


“바퀴가 구덩이에 빠진 것 같습니다. 다행히 부서진 부분은 없는 것 같네요.”


발터는 여성이 방금까지 살펴보던 마차 밑을 무심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가 순간 얼을 탔다.


“어쩐지 이런 인적 드문 곳에 멈춰 있더라니.”


혀를 차던 드레이코가 마차 뒤로 천천히 걸었다.


발터와 여성이 그런 그를 멍하니 지켜보고 있으면,


“뭐해! 안 뺄 거야?”


역시나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둘이 허겁지겁 달려와 힘을 싣던 드레이코에 가세했다.


한동안 셋의 기합 소리만 주변에 울려 퍼졌다.


푸르륵!


말은 어떻게 알고 혼자 앞쪽에서 마차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침내 구덩이에서 마차를 빼내면, 셋은 첫 만남이라곤 생각 들지 않게 서로 기뻐했다.


그것도 무색하게 그새 어색해졌지만.


“크흠, 의도치 않게 오해를 하고 말았네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성이 먼저 사과를 건네니 드레이코가 대수롭지 않게 응대했다.


“감사는 무슨. 우리도 용건이 있어서 그런 거야.”


“예? 무슨······”


“가는 길에 아무 마을까지만 태워다주면 돼.”


“예? 아무 마을이나요?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곳이어도 괜찮다면······”


“괜찮아.”


어차피 지금 당장 거리에 또 나앉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그녀가 택배기사라면 후에 번화가로 나갈 수 있는 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려울 건 없죠. 마침 저도 기사단으로 복귀하던 참이고.”


발터와 드레이코가 서로 다른 한숨을 함께 내쉬었다.


둘이 짐칸에 자리를 잡고 앉는 걸 확인한 여성은 고삐를 내리쳤다.


말의 경쾌한 목청과 함께 마차가 천천히 나아갔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원.”


한동안 잠자코 있던 드레이코가 툭 내뱉었다.


아무래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제 처지가 어이없던 모양이었다.


“목적은 고사하고 분수에도 안 맞는 선행이라니······”


그것을 시작으로 연이어 내놓던 드레이코의 푸념을 발터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처음 수감 되었을 때부터 알았지만, 역시 말이 많은 자다.


같이 있으면 적어도 무료하진 않았다.


발터는 무심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자와 함께 있는 걸 만족스러워할 날이 올 거라곤, 과거의 자신 또한 상상도 못 했겠지.


“어? 우습냐?”


혼자 찔려선 그렇게 쏘아대는 드레이코를 빤히 바라보다가도, 다시 고개를 돌려 바깥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참 자기주장이 확고한 날씨다.


속도 모르고 혼자 저토록 푸르게 색을 내는 하늘이, 어쩐지 밉살스럽지만은 않다.


“좋지 않습니까.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란.”


그렇게 덧없는 한 마디가 드레이코의 입을 다물게 했다.


칫.


혀를 차던 드레이코는 곧 마차에 기대 턱을 괴었다.


상반된 표정의 둘을 흘깃 바라보던 택배기사에게 가벼운 미소가 드리운다.


작가의말

다음 주는 더한 폭염이 온다고 하네요 ㅇ0ㅇ

더위.. 두렵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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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1. 답답하진 않네 21.07.26 81 4 12쪽
61 #60. 이해, 조화······ 대화 21.07.23 8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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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좋지 않습니까 21.07.16 8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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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3. 나는 반반 21.07.14 85 4 13쪽
53 #52. 저게 왕이라니 21.07.13 89 3 12쪽
52 #51. 차세대에 맡기겠습니다 21.07.12 96 5 12쪽
51 #50. 검은 아저씨 21.07.09 90 4 13쪽
50 #49. 당신이었군요 21.07.08 93 4 13쪽
49 #48. 자유도시 21.07.07 93 4 13쪽
48 #47.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21.07.06 93 5 12쪽
47 #46. 모든 걸 배송해드립니다 21.07.05 100 4 12쪽
46 #45. 특권이란 21.07.02 98 4 12쪽
45 #40. 그런 녀석이었지 21.07.01 10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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