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Prologue.
추적추적 젖은 지면을 오래 딛고 있으면 신발이 좀먹힌 듯 흙에 묻혔다.
하늘은 수많은 핏물을 씻어내려 끊임없이 비를 쏟아냈다.
일찍이 각 종족이 나뉘어 서로의 침범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 세계에 ‘구멍이 뚫린 날’ 전쟁은 일어났다.
처음 인계와 연결된 구멍이 어느 세계로 이어졌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신, 저승인, 사람과 오크, 드루이드부터 엘프, 난쟁이, 용, 골렘, 흡혈귀, 수인──
입으로는 차마 담기 어려울 만큼의 수가 참여한 전쟁은 4백······ 뭐 그 언저리쯤 되는 시간을 끌고 끌어 오늘 종전되었다.
대종족전쟁의 막이었다.
그마저도 어디에서부터인지, 누구에게서부터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시체가 된 이들과 시체 위에 선 자들, 주저앉은 자들, 돌아서는 자들,
그 누구의 환호성이나 탄식도 들리지 않는다.
끝을 함께하는 빗소리와 내음을 맞이할 뿐이다.
하아─
입김이 뻐억 내뿜어졌다.
언제부터 이 세계에 도달한 건지도 잊었다.
어느새 누군가에게 지어진 이름처럼, 하루하루 살았을 뿐인데 평범한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늘어있질 않나, 인계를 대표하는 용병이 되어있질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선을 슬쩍 돌려보면 본래 이렇게 높았던가 싶은 언덕에 서 있었다.
몇몇 함께하던 병사들은 그 아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천인들은 하늘 위를 향하고 있었고, 저승인이 발밑에 깔려있던 해골을 회수한 건지 갑자기 푹 꺼지는 언덕에 무게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들고 있던 칼로 겨우 유지했지만 어째선지 눈앞이 핑 돌았다.
시체 사이로 드러난 지면에서 갑작스레 나온 나무줄기가 손목을 잡았다.
연이어 거대한 나무기둥이 솟더니 갈라진 나무껍질로 미세하게 눈동자가 보였다.
순간 경계하며 검을 들어 보였지만, 그 눈은 웃고 있는 듯했다.
드루이드.
아무리 종전이라곤 해도 이제 막 끝을 내린 참에 방금까지 적군이었던 자를 도울 수 있는 건지.
그 인성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종족이다.
그때 콧구멍에서 가느다랗게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가 곧 입에서도 울컥 쏟아져 나왔다.
드루이드도 갑자기 쏟아진 혈액의 양에 놀란 듯 가지를 흔들었다.
퍼석─
기어코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몸을, 드루이드는 잎이 전부 떨어진 마른 가지를 순식간에 겹겹이 쌓아 받아냈다.
하늘이 보였다.
바로 이마 위에서 빗줄기가 쏟아지는 것만 같이 가깝게 느껴진다.
걱정하는 걸까 싶은, 몸을 감싼 줄기들의 미세한 움직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 큰일이네.’
용병의 생활이 끝났다는 생각과 함께 떠올린 고민거리 하나를 나지막이 읊조릴 뿐이었다.
“이제부터 뭐 먹고 살지.”
-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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