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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블랑 님의 서재입니다.

역대급 무역천재가 사업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10.16 10:21
최근연재일 :
2023.12.18 19:02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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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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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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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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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6화 내가 호구같냐?

DUMMY

“나가서 일 봐!”


냉정한 얼굴로 귀찮다는 듯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휙 내저었다.

눈을 깔고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내려다보는 그에게서 몸을 돌려 문을 향해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두통으로 지끈지끈한 머리.

덜덜 떨리는 온몸을 간신히 가누며 문을 열고 나왔다.


밖의 모습은 여전하다.

계단까지 줄지어있는 작은 화분들.


정면에 보이는 화장실로 부지런히 들어갔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나를 향해 달려오던 트럭의 번쩍거리던 헤드라이트와 경적,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니 전신에 느껴지던 견딜 수 없던 통증도 여전히 남아있는 듯 온몸이 얼얼하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다.

아니 어제 오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녀석의 모습으로 빙의했을 때의 모습과 똑같다.


‘겨우 3년’이라는 나의 말에 웃음 지으며 노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네 생각보다 꽤 오래 걸릴 수도 있을걸세.”


그의 그 말이 혹시 이런 뜻이었나?

죽으면 다시 처음의 순간으로 반복해서 회귀한단 말인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휴대폰을 꺼냈다.


[10월 23일 월요일 11:10]


어제 이곳에서 확인한 시간까지 동일하다.


“....흐음.”


어디 앞으로 돌아가는 일을 확인 해 보면 확실해지겠지.

사고로 죽음을 겪은 공포를 애써 억누르며 나는 몸을 돌렸다.


여전히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발을 옮겨 화장실을 나와 1층 사무실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사무실로 향하는 문을 열자 내 책상에 파일을 툭 던져놓는 부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가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네 책상에 있는 비욘드 서류 확인하고 빠진 거 미리 만들어 놔.”

“...예. 알겠습니다.”


틀림없이 하루 전으로, 월요일 이 시간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인간이 알아낼 방법 따위가 있을 리가.


의자에 앉자 등 뒤에서 공장장이 부른다.


“이사님이 뭐라고 말 안 하시드나?”

“예. 별말씀 없으셨는데요.”


입안에 혀의 움직임도 불편하고 낯설다.


“그래애?”


고개를 갸웃거린 공장장이 희멀건 웃음을 입술 끝에 날렸다.


“좀 알아서 잘 해라잉?”

그의 말에 대꾸 없이 비욘드 파일을 열었다.

무시라기보다는 여전히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중이다.


어제 어떤 일이 있었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오른손으로 슬며시 쓸어내렸다.

그리고, 어제 오전 내게 일어났던 일을 곰곰이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어제 부장이 거래처 두 군데 배송 보내라고 말했었는데...“


“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오 부장의 거만한 말투.

어제 들었던 음색과 크기, 틀림없이 똑같다.


“그 파일 확인해 보고 네고 할 서류 빠진 거 채워놔.”

“...예.”

“그리고 이 앞에 한산정공하고 안산에 신흥철강 오늘까지 납품한다고 했으니 이 기사 들어오면 배송하라고 해. 알았지?”

“이미 이 기사한테 얘기해놨습니다. 12시 전에 들어올 테니 다시 말해 놓을게요.”

“....그래?”

“예.”


어쩐지 뻘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오 부장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털썩 주저앉았다.


“비욘드 수출품 출하 언제 완료하는지 공장장님한테 여쭤보고 차량 수배해 놓고.”


오 부장의 말에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와 공장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슬그머니 입꼬리에 비웃음을 흘리는 공장장. 네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지 보자는 듯한 부장의 음흉한 표정.


마치 심한 몸살을 앓은 직후 같다.

몽롱한데다가 몸속에 남은 기운은 하나도 없다.

머리마저 띵하고 위 속은 불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는 상황.


“내일 야간조가 마지막 정리하는 거 아닙니까? 밤 10시경 생산 완료할 거라고 윤 반장이 그러던데요. 맞죠? 공장장님.”

“..어...어. 그래 맞다.”

“궁시각씨가 오늘 밤 9시까지 들어오기로 약속되어있는데 다시 한번 전화해서 컨펌 해 놓겠습니다.”


알아서 열심히 해 놓았다는 보고를 받는 오 부장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해 있다.


“...에 헤엠..!”


공연히 헛기침을 한번 한 공장장이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모지리 취급하던 부하직원이 미리 알아서 똘똘하게 일을 처리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왜 얼굴은 잔뜩 찌푸리고 앉아들 있는 걸까?


아! 또 할 일이 있다.

마 대리.

자기가 잘못 지시한 사항을 가지고 전화해서 개지랄을 떨었었지.

미리 쓰레기장에 가서 메모장을 가져와야겠군.


책상 위 한쪽에 있는 이빨 빠진 머그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색깔별로 볼펜 몇 자루, 연필, 사인펜, 그리고 커터칼이 눈에 들어왔다.


커터칼로 손을 뻗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손의 진행 방향을 바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예. 인천특수철강 입니다.”

“Hello?”

귓속에 들려오는 한 사내의 목소리. 어제 부장이 받았던 전화가 틀림없다. 거래처 비욘드에서 걸려 온 전화이다.


“Hello Mr. Cheng. This is Kangjingu from Inchon Special Steel.”


내 입에서 나오는 영어에 부장과 공장장은 물론 경리부 부장과 두 직원도 고개를 들고 나를 흘끗 바라보고 있다.


“I was just about to call you to inform you of the shipping schedule.”


물론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영어가 완벽은커녕, 원어민과 비슷할 수도 없다.

어색하거나 문법에 맞지 않은 부분도 당연히 있을 터.


그래도 영어만 쓰면서 외국생활 4년 했다.

미국친구들 사이에서도 의사소통 문제 없었고, 꽤 잘한다는 칭찬 듣기도 했다.

정말 미국온지 그정도 밖에 안되었냐며 놀란 사람들도 있었으니.

뭐, 대부분 입바른 칭찬이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기분 나쁘진 않았다.


결과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영어를 해야한다고 해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렇게 지난번 오 부장이 통화한 내용을 찾아 기억을 헤집으며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누구냐?”


수화기를 내려놓는 나에게 오 부장이 물었다.

의심과 불만이 가득한 표정.

손을 뻗어 커터칼을 집어 들며 별일 아니라는 투로 입을 열었다.


“비욘드 미스터 쳉요. 수출품 1차 선적분 생산은 내일까지 완료하고 이번 주 금요일 H 상선으로 보낸다 했습니다. 지난번 2차 선적분에서 불량 난 것도 이번에 같이 보내겠다고 했고요.”


내 대답에 아무 말 없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오부장은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다.


“..에..헤엠!”


실없는 헛기침을 한 공장장이 나를 흘끗 보고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적거린다.


서랍에서 투명 테이프를 꺼내 커터칼과 함께 손에 쥔 후, 경리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직 경리부 직원들은 이름도 모르고 있네.


가까이 다가가자 장부를 내려다보고 있던 남자 직원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나를 올려다본다.


“....왜애?”

“현장 안에서 신을 안전화 좀 신청하려고요. 265로요.”


“뭐냐? 징그럽게 웬 존댓말?”


뭐 잘못 먹었냐는 듯한 그의 표정.


“근데 너 안전화 없었어? 내가 전에 신청해 줬는데. 미쓰 한?”


그가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직원을 부르자 그녀가 책상 위에서 뒤적이던 장부를 덮고 고개를 들었다.


“진구 안전화 아직도 안 왔어?”


그의 말에 미쓰 한이 옆에 놓여있던 책받침을 들어 슬며시 자신의 오른쪽 얼굴을 가렸다.

부장들 시선을 가리려는 거겠지.


그리고 남직원을 보면서 뭔가 속삭이듯 입을 오물거린다.

컨디션도 최악인데다 돌아가는 짓에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미운털이 박혔길래 이런 치졸한 짓까지 주변 인간들이 저지르는 건가?


“저. 그냥 지금 안전화 다시 신청할게요. 미쓰 한. 지금 안전화 신청하면 언제 받아요?”


짜증스러운 말투가 내 입에서 확 튀어나왔다.

똥그래진 눈으로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일. 내일 찾아다 드릴게요.”


붉어진 얼굴에 우물쭈물 대답하는 그녀를 보자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다.

하긴 아무 힘없는 그녀 잘못이겠어? 다 뒤에서 시킨 짓이겠지. 안전화도 내주지 말라고.


사무실 밖으로 발을 옮기면서 흘끗 본 곁눈질에 부장은 한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쭈그리고 있고 공장장은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좋은 아침!”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나의 귀에 열린 현장의 문을 통해 압연기에서 나오는 소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린 남자의 얼굴이 나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장은호다.


내가 죽기 전, 밤늦게 김 주임의 차로 나를 버스 정거장까지 태워다 준 녀석.

11시 반이 넘었는데 좋은 아침이라니.


“장은호씨도 좋은 아침!”


호칭을 뭐라 부를지 몰라 이름 뒤에 ‘씨’를 붙였더니 좋다고 웃는다.

그래도 이 녀석과 인사하며 웃는 사람도 있네.

최악의 컨디션에 그래도 눈곱만큼 기분이 나아졌다.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녀석에게 나도 슬쩍 손을 들어 보이고 부지런히 쓰레기 더미로 향했다.


두 번째 쓰레기봉투의 중간 부분.

메모지의 글씨를 확인하고 커터칼로 비닐의 그 부분만 살짝 그었다.

끄집어내어 손에 쥔 메모장.

투명 테이프로 갈라진 비닐을 말끔하게 붙여놓고 다시 몸을 돌렸다.



* * *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틀림없는 마 대리.

수화기를 들면서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1시 40분이 가까워지고 있다.


“인천특수철강입니다.”

“야! 차진구!!”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하셨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마 대리의 목소리가 내 귀에 울린다.

그럴 줄 알고 넉넉하게 귀에서 수화기를 떼고 받았건만 여전히 귀가 먹먹해진다.


“예에. 마 대리님.”


귀찮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다 귀찮다. 힘들어 죽겠다.


쉬고 싶다.


“너 학산철강에는 왜 120 x 2.5를 보냈냐?”


수화기 너머에서 전화선을 타고 오는 마 대리의 목소리가 마치 확성기라도 틀어놓은 듯 쩌렁쩌렁하게 사무실에 퍼진다.

아마 제일 먼 곳에 앉아있는 미쓰 한도 그의 말이 정확하게 들릴 것이다.


“내가 114 x 1.8 보내라고 했잖아! 지금 학산에 공장 멈춰 섰다고, 작업 못하고 놀고 있다고 난린데 너 그거 어떻게 할 거야? 왜 도대체 시키는 대로 안 해?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에 한 말을 그대로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감탄스럽네.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정말 이런 해괴하고 신기한 일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거라고?


“너 이번에 네가 잘못한 걸로 거기서 거래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쩔 거야? 네가 책임질래?”


슬쩍 돌아본 나의 시야.

오 부장과 공장장이 희색만면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재미있는 리얼리티 쇼거나 장터에서 벌어진 개싸움을 구경하는 듯한 표정이다.

이제 코너에 몰린 약한 놈이 ‘깨개개갱’ 거리며 배를 내놓고 발라당 자빠져 죽은시늉을 해야 할 차례.

기대감에 넘친 얼굴로 희멀건 웃음을 날리며 나를 흘끗거린다.


“마 대리님이 책임지셔야죠. 왜 제가 책임져요? 마 대리님이 그렇게 지시하셨는데.”

“뭐야? 내가 너한테 그거 보내라고 시켰다고?”


버럭 하는 그의 목소리가 절정에 다다랐다. 운전하면서 저렇게 전화로 흥분해서 난리를 치는 게 가능하다고? 신기한 인간이로세.


“물론이죠. 마 대리님이 써 주신 메모장 지금 내 손에 있는데 읽어드릴까요?”


크게 말하니 말을 뱉어낼 때마다 골이 울린다.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고 책상에 올려있는 마 대리가 쓴 메모장을 읽기 시작했다.


“학산철강. 120에 76. 68 킬로. 13일 괄호 열고 토. 괄호 닫고. 오후 5시 이전까지 배송완료 할 것. 5시에 퇴..”

“회사 다 왔으니까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할 테니 기다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와아!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

개막장 드라마에 등장한 미운오리새끼가 된 기분일세.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와서 제 눈으로 확인한다고 해서 수긍할 사람도 아니란 거 잘 알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렇게 쉽게 흥분해서 날뛰는 사람 어디 놀릴만한 일 없을까?


‘...그런데 혹시라도..’


내 기억 속의 내용과 지금 맞부닥친 현실이 조금이라도 다르진 않을까 싶어 비욘드 파일을 열어 신용장과 나머지 서류들을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모두 들어맞는다.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얼굴이 시뻘겋게 된 마 대리가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메모지 줘, 난 저얼때 실수하지 않는...”


“아! 소리 좀 지르지 마세요. 골 흔들려요.”

나도 몰래 짜증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예상치 못했던 내 반응에 그의 얼굴색이 변하기도 전 그의 앞에 메모지를 휙 내밀었다.


“똑똑히 봐요. 120 x 2.5 맞죠? 마 대리님!”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메모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휴대폰으로 깨끗하게 찍어서 마 대리님 톡으로도 보냈어요. 증빙서류 영구 보관하시라고요.”


사무실 모든 직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마 대리.

얼굴이 시뻘게지는 그를 보면서 나도 몰래 슬그머니 입꼬리에 비웃음을 흘렸다.


“너 이거 내 글씨 아닌데...”

“아 진짜!”


설마 했건만 선 넘고 막 나가자는 거지?


“왜요? 내가 일부러 마 대리님 글씨체 흉내내서 쓴 거라고요?”

“새꺄! 너라면 충분히...”

“새꺄? 지금 나한테 새꺄라고 그랬냐?”


나, 차진구인 척, 아니 차진구로 살려고 무진 노력했다.

너는 모르지만 나 벌써 오늘로 차진구로 3일 차다.

재활용도 못 할 이 인간쓰레기 새꺄.


“이 씨발...진짜!”


내 입이 나도 몰래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는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마 대리의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올려다보았다.


“사장님한테 마 대리님이 학산철강 물건 잘못 내보냈는데 나한테 뒤집어 씌운다고 보고하고, 국과수에 필적 감정 보내요? 어떻게 할까요?”


“이것들이 지금 사무실에서 뭣들 하고 있어?”

등 뒤에서 부장의 벽력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그만들 해라아.”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공장장이 능글거리는 표정을 하고 나와 마 대리의 등을 툭툭 쳤다.


“차진구. 지금 현장 가서 비욘드 내보낼 거 얼마 남았나 확인하고 와. 로스(loss) 난 것도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서 적어오고. 어서!”


그가 나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뒤돌아서서 나를 여전히 노려보고 있는 마 대리를 강제로 떠밀려 문밖으로 나올 때까지 나도지지않고 쏘아보았다.


문이 닫히고 고개를 돌린 후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흥분으로 잊고 있던 두통이 다시 밀려왔다.


여전히 떨리는 몸을 가누며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열려있는 공장 안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대충 알고 있었다.


내가 없는 사무실에 남아있는 놈들이 내 뒤에서 어떤 터무니 없는 작당을 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 * *



“저 새끼 성깔 있네?”


자리에 돌아와 앉은 공장장이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자리에 앉아 이를 악물고 있는 마대리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마 대리.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네 글씨가 아니라는 건 너무 나간 거 아니냐. 이 사람아.”


오 부장이 그런 마 대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차진구 씨도 화나니 무섭네요?”


피식 웃으면서 경리부 강 부장이 끼어들었다.


“근데 영어 못한다더니 아까 통화하는 거 보니까 보통 실력 아니던데요? 발음도 좋고 유창하고...”

“좋기는 무슨! 외워 놓은 거지.”

“근데 외워서 저 정도 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는데.”


오 부장의 말에 다시 강 부장이 고개를 돌리고 오 부장과 공장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게 비욘드하고 통화한 건지 혼자 쑈 한 건지 어떻게 알아? 이따가 호철이한테 비욘드에다가 전화 한번 넣어보라고 해봐야겠네. 정말 통화한 건지.”

“에이. 설마 그랬겠어요?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하나는 확실해. 저놈 사장님이 첩자로 박아 놓은 거야.”


공장장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오 부장과 강 부장을 넘겨보았다.


“뻔하지 뭐. 저 새끼 면접 보러왔을 때 우리랑 같이 보고 난 뒤에 사장님하고 둘이서만 속닥속닥하는 거 보고 그때 벌써 난 눈치챘어. 그때 면접 보러 온 것들 중에서 저 새끼가 젤 맘에 안 들어서 사장한테 저놈만 빼고 뽑자고 했거든.”

“나도 저놈은 안 된다고 했어. 거. 김 누구냐. 키 크고 시원시원한 게 일 잘하게 생긴 놈. 그놈 뽑자 했거든.”


말을 멈추고 공장장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사장 아들 한국 돌아오는 게 내년 4월이지 아마?”


책상 위 서류를 뒤적거리며 오 부장이 손끝에 침을 발랐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사장 아들이 드뎌 돌아오는 건가요? 그럼 머지않아 회사에 입성하겠네요? 오자마자 사장 자리 넘겨주는 건 아니겠죠? 나이도 아직 어린 거 같던데.”

“회사 일 모르니 처음부터 사장 자리 넘겨주진 않겠지.”

“다행이네요.”

“예전에 그 사장 아들놈 장난 아니었지. 맨날 싸워서 사장 학교 불려가고 그랬었는데. 그게 벌써 십 년 전이네?”


회사에서 오랫동안 뼈를 묻고 생활한 듯, 공장장이 허공에 시선을 두며 입꼬리에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군대 지원하게 하고 또 제대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 LA로 보내버린 거 아냐. 거기서 공부 좀 하고 오라고.”

“그럼 이제 나이 먹었으니 사람 좀 됐으려나요?”

“사람 바뀌는 거 봤어?”


강 부장의 말에 공장장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사장도 뻔히 아는 거지 뭐.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놈 이제 돌아올 때 됐지. 회사 일은 쥐뿔도 모르는데 그냥 넣어놨다가 무슨 사달이 날 줄 알아? 그러니까 첩자로 저놈 박아 놓은 거라고.”


마치 눈앞에 차진구라도 있는 것처럼 공장장이 사무실 문을 흘끗 바라보았다.


“저놈, 현장 직원 따라다니면서 알랑알랑거리는 거. 그거 왜 그러는 거겠어요? 다아. 이유가 있는 거지.”


입 다물고 씩씩거리던 마 대리도 거든다.


“백지한이도 알아서 처신 똑바로 해. 저놈 이 회사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사장 아들 여기서 자리 잡으면 네 자리 남아있을 거 같애?”


공장장의 말에 경리부 남자 직원이 슬며시 고개를 돌려 공장장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여전히 닫혀있는 사무실 문을 흘끗 보면서 공장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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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화 사장 아들의 등장 +5 23.11.28 812 28 12쪽
44 44화 찾아드는 행운 +3 23.11.27 845 27 13쪽
43 43화 앨리슨 드부아 +5 23.11.26 868 3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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