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개화의 새벽(2)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화-개화의 새벽(2)
지크와 안나는 여름밤을 산책했다. 세루크가 지크를 아케메네스 저택에 초대한 후로, 지크는 저택을 많이 방문했다. 아이 얘기는 한 번도 묻지 않았지만, 둘의 사이는 다시 예전처럼 애틋해졌다. 지크는 베르세르크가 빚어 낸 세상에서 제일 가는 명검이고, 안나는 오직 지크에게만 꼭 맞는 칼자루였다. 구천에게 한 번 꽂혔다고 하여 그 사실이 변하진 않았다.
풀벌레 소리가 우는 아케메네스 저택의 동산은 아늑하고 고요했다. 풀밭에 앉은 안나가 지크의 손을 쥐었다. 둘은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안나."
"응?"
"요즘은 기분이 어때?"
"그냥 행복해."
"조증인가?"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우울해?"
"아니라니까."
지크가 하하 웃으며 머리를 쓸었다. "그래. 건강해 보여."
"모자란 게 없으니까. 애도 있고, 너도 있고. 이 행복이 언제까지고 지속되면 좋겠어."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가 있었으면 좋겠어?"
안나가 입술을 꼼지락거렸다. 지크가 안나의 입술을 손끝으로 쓸었다. "말해 봐."
"솔직히, 옐로이즈가 네 애였다면 좋았겠지. 나도 얼마나 바랬는지 몰라."
지크가 웃었다. "나도 그랬어."
"너와 애가 생긴다면, 나한테 그거보다 더 행복은 없겠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의사를 찾았어." 지크가 안나의 팔을 감쌌다. "너 같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도와주는 의사."
"정말?"
안나가 활짝 웃었다. "정말이야?"
"그래. 이제 우리 아이를 가질 수 있어."
"언제 보러 가?"
"아직 어디 사는지를 못 찾아서. 찾는 대로 같이 가자."
"너무 행복해!"
안나가 지크의 목을 감쌌다. 둘이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아이를 갖자, 안나. 진짜 아이를."
"응!" 안나가 눈물을 흘렸다. "진짜. 진짜 우리 아이를 갖자."
- 이제 됐다. 의사를 찾는 대로, 아이를 가져가자!
지크가 안나를 부드럽게 풀숲에 눕혔다.
- 디트리히나 누가 오진 않겠지.
그가 조심스럽게 안나의 치마 안에 손을 넣었다. 안나가 신음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지크는 정든 아버지 아케메네스 저택의 울타리 끝을 움켜잡았다. 아버지가 살던 시절의 울타리는 엉성한 나무 울타리여서, 비가 많이 오면 물이 고여 끝이 썩어가곤 했다. 하지만 안나가 담을 넘어 사라진 이후, 저택은 높은 돌담으로 둘러쌓인 요새가 되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나중에 보수할 걸.
지크가 이를 악물고 벽을 기어올랐다. 얇은 팔이 파들거리며 지크의 깡마른 몸통과 다리를 끌어올렸다. 그가 헉헉거리며 한 발을 발에 걸쳤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다니, 도둑놈들한테도 상을 줘야 해.
"윽!"
지크가 무거운 몸을 맞은편에 그냥 떨어뜨렸다. 나뭇가지 몇 개, 부드러운 잔디와 이끼가 그의 몸을 받쳤다. 그는 아픔이 차오르는 왼팔을 짚고 겨우 일어섰다. 부러지진 않은 것 같다.
그가 조용히 머리를 들고 불빛이 가득한 아케메네스 저택을 쳐다봤다. 왜 저렇게 불을 밝혔는지 알 수가 없다. 저 안에 있는 건 안나와 에네레실, 둘 뿐인데. 지크, 스트라울, 우사이막스는 작전을 가고 없다.
"......"
그가 수풀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 지크의 명령으로 경비병들은 10시부터 12시까지 자리를 비웠다. 정문에 도착한 그가 문을 열었다. 그는 안나를 만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앞으로 할 일을 안나가 막아선다면, 그는 주저없이 안나를 밀쳐 버릴 작정이었다.
"지크."
멀리서 지크를 발견한 안나가 멈춰 섰다. 그가 안나를 천천히 바라봤다. 노란 앞치마를 입고 금발을 질끈 묶은 안나. 예뻤고 건강했다. 산후우울증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나..."
지크가 자기도 모르게 안나에게 다가갔다. 안나가 말없이 앞치마를 움켜쥐었다.
"옷차림이 왜 그래? 왜 이렇게 늦었어. 오늘 저녁 먹으러 온다고 했잖아."
그녀가 검은 바지와 면티에 복면을 쓴 지크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봤다. 등에 멘 카타스크로아의 손잡이가 위협적으로 빛났다.
"어디 가? 무슨 일 있어...?"
안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지크가 안나의 손을 잡았다. "누나는?"
"자."
안나가 지크의 복면을 벗겼다. 거칠은 그녀의 손에서 비누 냄새가 났다. "왜 그래. 지난번에 다 풀린 줄 알았는데. 그래서 세루크하고 같이 온 거 아니었어?"
"다 풀렸어."
"그럼 왜 왔어?"
"그건 그거고, 국사는 국사야."
"...그게 무슨 뜻이야?"
"애는 어디 있지?"
안나의 얼굴이 변했다. "여기 없어."
지크가 그녀를 밀쳤다.
"지크!"
지크가 안나의 방으로 달렸다. 안나가 비명을 지르며 그를 쫓았다. 그가 방을 열어젖혔다. 아이는 없었다.
"지크! 지크!"
안나가 지크의 앞을 막아섰다. "못 가!"
지크가 안나를 다시 밀쳤다. "아악!" 안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지크가 식당으로 달렸다. 예상대로 아이가 있었다.
지크를 발견한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앙!" 지크가 애의 머리를 잡고 배낭에 구겨 넣었다. 안나가 지크의 등을 잡고 매달렸다. "그만 해! 그만 해!"
지크가 대답 없이 다시 안나를 밀쳤다. 안나가 소리를 질렀다. "이러려고 왔었어? 어? 이러려고 그때 왔었어!"
"맞아."
"애를 뺏어가려고? 어? 이러려고 나를 데려온 거야!"
안나가 미친 듯이 외쳐 댔다. "넌 악마야! 너 같은 건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냥 영락궁에서 죽었어야 돼!"
배낭을 맨 지크가 안나를 쳐다봤다. 안나가 식칼을 꺼내들었다. "못 가!"
"......"
지크가 배낭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까무러치듯 들렸다. 그가 아내에게 다가갔다. "애는 또 낳으면 돼."
"웃기지 마. 애를 내놔!"
"진짜 애를 만들어 줄게. 안나."
"애를 내놔! 내 애야! 내 애라구!"
지크가 다시 안나에게 다가갔다. 그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안나의 얼굴이 하얘졌다.
"뭐 하는 거야?"
"다시 아이를 갖자, 안나."
"지금... 뭐-"
안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애를 돌려 줘!"
"이리 와!"
지크가 안나를 껴안았다. 안나가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녀가 손톱으로 지크의 온 몸을 긁어 댔다. 지크가 안나를 그러안았다.
"다 나아질 거야. 날 믿어. 다시 시작하자. 아이는 다시 가질 수 있어-"
"이 개새끼야!"
"내가 다시 만들어 줄게. 널 낫게 할 수 있어. 의사를 찾았어! 그러니까-"
"이 개새끼!"
안나가 지크를 밀쳐 냈다. 지크가 당황했다. "안나. 의사를 찾았어. 너 같은 여자들을 몇 번이고 고친 적 있는 의사야. 그러니까 이 애는 이제 놔줘도 돼-"
"그 애를 어쩔 생각이야!"
"진짜 부모를 찾아 돌려줄 거야. 그리고 다시 아이를 갖자. 여기서 가둬놓고 키우면 한 1년 차이나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들어 봐. 거짓말이 아냐. 정말 의사를 찾았어!"
그건 사실이었다. 지크가 옐로이즈를 데려가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안나와 같은 처지의 여자들을 몇 번이나 구해준 의사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옐로이즈에게 새 부모를 찾아 줄 생각은 없었다.
"아발론에서 대대로 의사 집안을 했던 의사야. 너 같은 사람들 전문이고. 내일 널 1번으로 진료해 주기로 했어! 다시 아이를 만들자. 이 애는 자기 부모에게 데려가고-"
"내 애를 내놔!"
"안나."
"내 애야!"
안나가 바닥에 떨어진 식칼을 집어들었다. "아무리 너라 해도 내 애를 뺏을 순 없어. 내가 아무리 다시 애를 만든다 해도 그 애를 포기할 순 없어! 어서 애를 내놔!"
지크가 당황했다. 안나는 아이를 잃은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어, 어디서 애를 줏어다가 자기 애 행세를 한다고 생각했다.
옐로이즈를 제 부모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이건 다 작전이라고 설명하면 안나가 다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
안나가 벼락처럼 고함을 쳤다. "애를 내놔!"
지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안나가 정말 자기보다 애를 더 중시할 줄은 몰랐다. 자기 애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네 애도 아니야. 안나! 정말 미쳤어? 난 네 남편이고 쟤는 그냥 고아잖아! 어디 약쟁이 소굴에서 줏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내 애야!"
"안나. 이성을 찾아!"
"저 애는 내 애야! 티라니아가 그렇게 말했어. 네 애라고 했어!"
"제발 좀. 넌 티라니아를 만난 적도 없잖아."
"만난 적 있어! 보겐자 산에서! 그 여자가 초커를 찾아 줬어. 진국에서 옐로이즈를 찾아 나한테로 데려왔다고!"
안나가 식칼을 움켜쥐었다. "절대 그 애는 못 보내! 네 애가 아니라고 그렇게 심하게 굴 수 있어? 저 애는... 내 첫 아이야!"
지크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안나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싶다고 울먹이는 안나에게 의사를 찾아 주면 애를 포기할 줄 알았던 자기가 어리석었다.
"안나, 이건 왕명이야. 아이는 부모에게 데려가겠어."
"안 돼!"
지크가 식당으로 뒷걸음질쳤다. 바닥에 떨어진 배낭 안의 아이는 아직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지크가 배낭을 둘러멨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못 가."
"안나."
"못 가!"
안나가 식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지크가 안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안나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지크가 힘겹게 안나를 눕혔다.
"안나!"
"안 돼!"
안나가 죽을 힘을 다해 매달렸다. 지크가 안나와 함께 바닥을 기었다. "애가 위험해! 놔 줘!" "절대 안 돼!"
쿵쾅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위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다. "누나! 누나!" "언니! 언니!"
지크와 안나가 함께 에네레실을 불렀다. 잠옷만 입은 에네레실이 바닥에 뒹구는 둘을 보았다. "언니, 지크를 잡아 줘!" "누나! 안나를 잡아!"
에네레실이 맨발로 다가왔다. 그녀가 안나의 팔을 잡고 끌어냈다. 안나가 에네레실을 쳐다봤다. "언니! 뭐 하는 거야!"
"으으으어아아!"
그녀가 안나를 잡고 뒤로 질질 끌어냈다. 안나가 발버둥을 치며 뒤로 밀렸다. 지크가 잽싸게 일어나 달렸다. "지크! 지크!" "음음으음!"
에네레실이 안나를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지크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크! 지크! 지크!"
쾅, 하고 밑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안나가 에네레실을 밀쳐 냈다. "언니!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음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에네레실이 충혈된 눈으로 안나를 쳐다봤다. 그녀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었다. 안나를 가리키고, 자기를 가리키더니, 가로로 선을 긋는다.
- 너.
- 나.
- 이제 공평해.
"......"
안나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네레실이 그런 그녀를 서늘하게 쳐다봤다.
"언니..."
슥, 하고 에네레실이 몸을 돌렸다.
지크는 밤낮없이 말을 달렸다. 배낭 속의 애가 빨리 죽지 않도록 우유를 먹이면서 이틀을 달렸는데, 애가 갑자기 울지 않았다.
- 뭐지?
지크가 당황하며 배낭을 열었다. 안은 아이의 똥오줌 냄새가 진동했다. 애가 빨리 죽으면 앞뒤 상황을 맞추기 곤란한데.
지크가 짜증을 내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는 냄새나는 배낭을 매고 가장 가까운 마을에 방을 잡았다. 애가 죽었다면 작전은 종료. 여기서 새 애를 찾아야 한다. 안나 때문에 죄 없는 애한테 화풀이를 한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지크는 방에서 온갖 오물에 절은 아이를 씻었다. 코와 입에도 오물이 가득해서 손을 넣어 씻어 주었다. 따뜻한 입 안에 손가락이 들어가니 아이가 손가락을 빨았다.
- 먹을 것이 부족했나. 모유를 좀 사 줘야겠어.
그는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가 지크의 발걸음에 맞춰 음악이 되었다. 그는 갑자기 기분이 가벼워졌다. 노점에서 맛있는 꼬치를 먹으며 주변을 구경했다. 평소의 지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어머. 애기 너무 귀엽다!"
주변의 아가씨들이 지크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옐로이즈가 방긋방긋 웃으며 아가씨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제서야 왜 거리에 나왔는지가 생각이 났다.
"저기, 여기 탁아소 어디 있어요?"
"왜요?"
"모유 좀 얻으려구요. 애 엄마가 어디 갔어요."
"아! 그럼 저 집에 가 보세요! 요즘 새로 여는 집이 있는데, 아기가 없어서 모유가 남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지크가 다 먹은 꼬치를 버리고 안내받은 집으로 갔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간판인데. 그가 발을 내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조그마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맙소사. 지크가 눈을 의심했다.
"티라니아!"
그 여자는 티라니아였다. 티라니아가 지크를 보더니 씩 웃었다. "어머! 애 아빠잖아. 애가 알아서 찾아 갔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뭐가?"
"그 애는 어떻게 했어!"
"거기 안고 있잖아."
티라니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짓을 했다. "애가 배고프대? 이리 줘."
지크가 아이를 주었다. 티라니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윗도리를 걷어올렸다. 아직 여물지 않은 가슴을 아이에게 물렸다.
"너... 도대체 몇 살이야?"
"그건 알 것 없어."
"너, 가슴이..."
아무리 봐도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어린애의 가슴이었다. 하지만 옐로이즈는 티라니아의 가슴에서 나오는 모유를 잘도 먹었다.
"어유. 다 먹었어요?" 티라니아가 웃으며 아이의 입을 닦아 주었다. 아이가 칭얼댔다. "졸린가 본데. 자."
티라니아가 아이를 다시 지크에게 주었다. 지크는 아이를 받지 않았다.
"넌 도대체 누구지? 스옌 산맥에서 봤던 그 환상들은 도대체 다 뭐였어?"
티라니아가 피식 웃었다. "무슨 환상? 양귀비를 너무 많이 마셨나 보지."
"산을 내려오니 넌 없었어."
"난 계속 거기 있었는데? 당신이 안 왔잖아. 난 장사가 안 되어서 이 쪽으로 이사 왔어."
"안나를 만났어?"
"만났지. 안나한테 그 애를 줬어. 안나가 그 애 엄마잖아. 당신이 아빠고."
"안나가 엄마인 걸 어떻게 알았지?"
"냄새가 똑같으니까."
"......"
- 냄새가 똑같아?
지크가 안나의 냄새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여름밤에 안나와 사랑을 나누며 맡았던 안나의 체취. 안나의 땀에 절은 목, 겨드랑이, 그리고 음부에서 풍겨 나왔던 그 시큼한 땀 냄새와 살냄새. 분명 강렬했지만 기억은 나질 않았다.
"이리 줘 봐."
지크가 옐로이즈를 안았다. 옐로이즈의 입과 몸에서 확 퍼지는 냄새에 절로 여름밤의 기쁨이 되살아났다.
- 그래. 이 냄새다. 정말 똑같구나.
"......"
지크는 이 아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잘 가! 용건 끝났으면. 웬만하면 죽이지 말고!" 티라니아가 하하 웃었다.
"설마 죽이진 못하겠지! 그렇게 벌벌 떨더만."
-뭐야?
지크가 티라니아를 노려보았다. 티라니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방글방글 웃었다. 그가 탁아소 문을 박차고 나왔다.
"곧 여기 군대를 보낼 거다!" 지크가 문 뒤에서 소리쳤다. "그 때까지 도망갈 생각 마라!"
탁아소 안은 고요했다. 지크가 아이를 안고 급하게 방으로 돌아왔다. 그가 말에 올랐다. 여기에는 한 시도 있고 싶지 않았다.
"저기. 지크다!"
접선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디트리히와 스트라울, 우사이막스가 지크를 발견했다. 배낭을 맨 지크를 본 디트리히가 눈쌀을 찌푸렸다.
- 애가 없잖아.
"지크! 옐로이즈를 데려왔어?"
"어."
지크가 무표정한 얼굴로 배낭을 던졌다. 디트리히가 배낭을 받았다.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디트리히가 당황했다.
"여기... 여기 넣어 왔어?"
"열어 봐. 아직 안 죽었어."
디트리히가 역한 냄새가 나는 배낭을 열었다. 안은 아이의 똥오줌으로 엉망이었다. 아이의 팔 한 쪽이 꺾여 있었다.
"이게 도대체..."
"살아 있으면 된 것 아냐."
지크가 무표정하게 손을 저었다. "계획대로 해. 세부 계획은 받았지?"
"어. 뭐." 디트리히가 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나는 잘 지내?"
"잘 지내지."
"안나도?"
지크가 인상을 썼다. "잘 지내. 걱정 마."
스트라울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디트리히에게 턱짓을 했다. 디트리히가 눈썹을 찡긋했다. "됐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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