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영광의 계승자(12)(2부 完)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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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영광의 계승자(12)(2부 완(完))
쾅-
영락궁의 아홉 문 중 첫 번째 문이 열렸다. 으어어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호위병들이 문 뒤에 짓뭉개졌다. 초커의 강력한 앞발을 5분이나 버틴 거대한 문이었다.
“가자!”
지크가 병사들을 몰아댔다. 양귀비의 고양감과 영락궁에 입성했다는 흥분에 싸인 병사들이 마구 총칼을 휘둘러 댔다. 환관들과 궁녀들과 모든 시종들이 그들을 맨몸으로 막아섰다. 하지만 지크와 군사들은 인정사정 없었다.
- 라노르.
지크가 이를 갈았다.
- 라노르 아저씨를 죽여야 해!
하지만 시간이 없다. 지크가 초커를 몰고 두 번째 문으로 달려들었다. 두 번째 문은 열려 있었다.
“공격!”
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무리의 호위병들이 달려들었다. 지크가 외쳤다. “3열 횡대!”
3열 횡대로 늘어선 머스켓병들이 돌아가며 불을 뿜어 댔다. 총알이 멈추질 않아서 적이 접근하기 가장 힘든 대형이었다. 칼과 방패를 든 적들이 푹푹 쓰러졌다. 반 이상 정리가 되자 지크가 외쳤다.
“돌격!”
지크를 필두로 한 병사들이 호위병들에게 달려들었다. 호위병들도 뭉쳐져 있던 대형을 풀고 뛰쳐 나왔다. 지크가 맨 앞에서 적들을 도륙냈다. 최소 시랑급이라 그런지, 일반 병사들보다 무예가 출중했다.
“으억!”
아군들이 꽤 많이 죽는다. 지크가 말에서 뛰어내려 칼질을 해 댔다. 시랑 몇 명이 그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머스켓병 몇 명이 거리를 확보한 채 시랑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어윽, 윽-”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도 총 앞에서는 무력했다. 시랑들이 힘없이 칼을 놓치고 나뒹굴었다. 지크가 헉헉거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 이제 검의 시대가 지는구나.
지크의 마음이 갑자기 울렁였다. 마지막 검의 시대, 마지막 기사의 시대에 지크는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아케메네스의 시대가 가고 있었다.
- 이럴 때가 아니다.
그는 고개를 저어 감상을 털어냈다. 저 안에 안나가 기다리고 있다. 이럴 시간이 없다.
“돌격!”
지크가 세 번째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너무나 쉽게 뚫렸다.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여섯 번째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지크와 군사들이 몇 개 남은 폭탄을 집어던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막아라!”
안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호위병들이리라. 지크와 군사들이 먼지 안으로 마구 총을 난사했다. 먼지가 가라앉자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군이 총질을 멈추자 벽 뒤에 숨어 있던 적군이 튀어나왔다.
“죽어라!”
분노한 적군들이 고함을 지르며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한 점을 향해 달려들면 사격이 더 쉽다. 초크스칼라가 이히힝, 하고 울부짖으며 적들을 짓밟아 댔다. 지크는 그 위에서 계속 칼을 휘둘렀다.
“왕자님. 왕자님!”
누군가가 그를 불러 댔다. “왕자님. 끝났습니다.”
“......”
지크는 그제서야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가 흥분한 초커를 달랬다. 초커도 눈을 끔뻑였다.
“가자!”
그들은 다시 진격했다. 지크는 아군이 몇 명이나 남았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마침내 두 번째 문이 열리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지크 왕자님.”
문 앞에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선 자는 라노르였다. 라노르가 외쳤다.
“지크 왕자님, 영락궁에 입성하신 것을 축하드리옵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이제 영락궁의 가장 깊은 이곳까지 드셨으니, 왕자님이 원하는 것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
지크와 군사들은 잠시 벙쪄서 가만히 있었다. 아직도 양귀비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머리가 약간 몽롱했다.
“그럼, 안나를 데려오시오.”
지크가 위엄 있게 명령했다. 라노르가 태자궁 안을 향해 손짓을 했다. 한 무리의 시종들이 가마를 내어 왔다.
“문을 열어 드려라.”
지크가 가마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나.”
가마 안에서 안나가 신음하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그녀가 앙상한 손을 뻗었다. “지크.”
“안나...”
지크가 말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라노르의 함정일 지도 몰랐다.
“안나를 말 위에 올리시오.”
“태자비는 해산이 코앞이라 말에 타실 수가 없습니다. 마차를 드리겠습니다.”
- 마차는 느려서 안 돼.
지크가 칼을 뽑아들었다. “당장 태자비를 꺼내라!”
라노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들이 신음하는 안나를 마차에서 꺼내 차가운 바닥에 눕혔다. 앙상한 팔다리와 목, 윤기를 잃은 금발의 안나는 배에만 물주머니를 넣은 것처럼 불룩했다.
“안나...”
지크가 울먹였다. “괜찮아?”
안나가 웃었다. “응.”
지크의 눈물을 본 라노르가 가만히 말했다. “왕자님, 태자비는 몇 시간 전 양수가 터졌습니다.”
안나가 그를 노려보았다. 의사인 라노르가 양수가 터지도록 직접 손을 넣어 안나의 질과 자궁을 주무른 것이었다.
라노르가 태연하게 말했다. “이제 곧 해산할 것입니다. 말 위에서 해산할 수는 없습니다. 태자비를 두고 가시는 것이 태자비의 건강을 위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크가 침을 삼켰다.
“왕자님, 아니면 마차를 내어 드릴까요?”
- 어쩔 수 없구나.
“마차를 가져와!”
지크가 외쳤다. 지크의 군사들이 태자궁으로 우루루 몰려들어갔다. 곧 말과 마차가 밖으로 끌려 나왔다.
지크가 말에서 내려섰다. 잠시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지크가 마차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당신!”
지크가 라노르를 노려보았다. 마차 바퀴의 조임쇠가 몇 개 풀려 있었다. 이대로 나갔다간 월우성 한가운데에서 주저앉았을 터였다.
지크가 칼을 빼들고 라노르에게 다가갔다. 라노르가 지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크.”
라노르가 웃었다.
“날 죽일 거니?”
지크가 라노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서 안나를 태워.”
라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이 신음하는 안나를 태우고 마차 바퀴를 꼼꼼하게 조였다.
“안나.”
지크가 물었다.
“라노르 선생님을 어떻게 할까?”
“헉-” 갑자기 안나가 숨을 흡, 하고 들이쉬었다. 그녀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죽여!”
지크가 칼을 쳐들었다. 라노르의 얼굴이 변했다.
“너, 세루크-”
“닥쳐!”
지크가 라노르의 목을 쳐 버렸다. 이다볼 왕국에서 태어나 진국에서 내시가 되고, 다시 이다볼 왕국의 첩자 노릇을 한 대가로 영예와 권세를 누렸던 라노르의 목이 날아갔다.
“아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안나가 웃어젖혔다. 섬뜩해진 군사들이 마차 안을 쳐다보았다. 지크는 애써 태연했다.
“초커, 네가 마차를 몰아야겠다.”
지크가 얼굴에 묻은 피를 씻으며 말했다. 초커가 얌전히 마차 앞에 섰다. 군사들이 초커의 목에 줄을 맸다. 다른 말들이 초커의 위세에 눌려 주춤거렸다.
“가자!”
지크가 외쳤다. 그가 라노르의 목 없는 시체를 뒤로 하고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홉 번째 문을 지나고 나서야 합려 생각이 났다.
- 합려를 죽였어야 했는데.
합려는 첫 번째 문 안, 황제의 침궁에 갇혀 있을 터였다. 합려를 죽이는 걸 잊어버렸다.
- 뭐, 그건 오스카르 왕을 위해 남겨 두지.
지크가 피식 웃었다. 저 앞에 한 무리의 적병들이 나타났다. 정말 끈질겼다.
“초커.”
지크가 초커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초커가 이히힝, 하며 말머리를 돌려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에 탄 안나가 지크를 아련하게 쳐다봤다.
지크가 웃어 주었다. 그제야 안나도 조금 웃었다. 그녀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히히히힝!”
지크의 마음도 아랑곳없이, 초커는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지크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도 적군이 저렇게 많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지크가 다시 칼을 뽑아들었다. 군사들이 다시 3열 횡대로 늘어섰다. 이제 지크의 군사들은 50명도 남지 않았다.
지크가 뒤쪽의 성문을 흘긋 보았다. 남은 폭탄은 두 개. 이 걸로 이 문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가 폭탄을 크랙이 난 거대한 황금 대문의 왼편에 놓았다. 역시, 순금이 아니라 금칠을 한 쇠기둥에 불과했다. 기둥 옆의 담장도 그저 흙과 판자를 바른 벽에다가 금칠을 한 것이었다.
- 그럼 그렇지. 금이 이렇게 많을 리가 있나.
갑자기 그의 마음에 안도감이 올라왔다. 진국도 그냥 사람 사는 나라일 뿐, 이다볼 왕국이 절대로 넘보지 못할 수준의 대국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크가 웃으며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은 지크가 뭘 하려는지 눈치 챘다. 지크가 머스켓 총을 들었다.
쾅- 우르르르르!
진국의 영광의 상징인 영락궁의 황금 정문이 무너져 내렸다. 저 뒤쪽에서 진군하던 적군이 깜짝 놀라 달렸다.
“뭐야? 어디야!”
적군이 먼지를 헤치며 지크를 확인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먼지가 걷히자,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3일 후.
범려와 살아남은 진군은 구천이 숨어 있는 남쪽으로 남하하여 적의 진격을 대비했다. 구천이 남쪽에 있지 않았다면 월우성에서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구천과 함께 잿더미가 된 월우성에 들어가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오스카르 왕과 탕리, 디트리히는 별 어려움 없이 진국의 수도 월우성에 입성했다. 구천의 손에 이다볼 왕국이 완전히 점령당한 지 근 4년 만이었다. 수많은 배상금을 지불하고 수십만의 국민이 굶어 죽는 일을 겪었지만, 참고 참은 끝에 결국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 밋밋하구만!”
망국의 씨앗이 된 라노르의 목 잘린 시체를 발견한 탕리가 쩝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마지막 결전을 기대했는데 말이지.”
“마지막 결전은 지크가 벌써 해 버린 거지.”
오스카르 왕이 텅 빈 태자궁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전리품도 그 놈이 다 가져갔군.”
“폐하.”
모부시가 왕의 휠체어 앞에 부복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올라가시지요.”
오스카르 왕이 승리를 선언할 무대 준비가 끝났다는 말이었다. 월우성의 백성들을 모아 영락궁의 무너진 황금 정문 앞에 거대한 단을 쌓게 한 것이다.
왕이 옆구리에 맨 붕대가 안 보이도록 옷매무새를 고쳤다. “내가 너무 아파 보이지 않나?”
탕리가 웃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다 옆에 있겠습니다.”
- 지크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폐하.”
지크 대신 왕의 곁을 지키는 세루크가 왕의 선언문을 보여주었다. 왕이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잘 썼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이제 가자.”
“네?” 탕리가 물었다. “아니, 아직 대전까지 안 들어가셨습니다. 합려의 머리를 가지고 오르셔야지요.”
왕이 고개를 저었다. “됐소. 뭐 하러 거기까지 하겠소? 의미 없는 일이오.”
“진국의 황제를 살려두신단 말씀입니까?”
“됐소.”
왕이 휠체어를 휙 돌렸다.
왕은 적국의 백성들에게 휠체어를 숨기지 않았다. 앙상한 다리에 담요를 덮고, 단 위에 오른 왕이 재투성이가 된 진국의 백성들과 월우성을 휘둘러보았다.
- 전쟁은 뭐든지 잿더미로 만드는구나.
오스카르 왕의 머릿속에 황폐했던 이다볼 왕국의 수도 아발론이 떠올랐다. 지금 월우성의 모습과 똑같았다.
“여러분.”
오스카르 왕이 여러분, 이라는 말을 썼다. 군사 몇 명이 잘못 들었나 싶어 왕을 올려다보았다. 월우성의 진국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짐은, 영락궁과 진 제국을 다스렸던 합려가 폐궁으로 유폐되고, 그의 아들 구천이 실권을 잡은 지 4년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짐, 이라는 말이 오스카르 왕에게는 참 낯설었다.
“짐이 여기까지 온 것은 짐의 선왕이신 베르단디 여왕을 강간하고 살해한 무도한 구천의 죄를 묻기 위해서이지, 죄 없는 여러분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항복한 자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무도한 약탈을 하지도 않았다. 저 안의 합려도 죽이지 않았다.”
오스카르 왕이 애써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아기 목소리처럼 앵앵거리게 들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합려의 차자 구천은 장자인 자신의 형 부차를 죽이고, 옆나라인 우리나라의 죄 없는 베르단디 여왕을 잡아다 강간하고 살해한 천하의 극악무도한 자다. 이 자가 진국을 다스리는 한, 결코 진국에 평화는 없을 것이다. 벌써 우리나라와 진국의 전쟁은 30년을 넘어가고 있다. 도대체 언제 이 땅에 평화가 오겠는가?”
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다. 구천이 자신의 가족에게 한 짓을 보라. 그가 자기 백성들에게는 그리하지 않겠는가? 나는 구천의 압제에 신음하는 여러분이 가엾다. 어째서 저항하지 않는가? 나는 이제 내 나라에 돌아가서 내 백성들과 평화롭게 살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진국은 그럴 수 있겠는가?”
단 아래 장교 정복을 입고 선 세레니아와 스트라울이 큰 목소리로 왕의 말을 번역했다. 백성들이 벙쪄서 오스카르 왕을 올려다보았다. 승리를 선언하고 배상금이나 노역 이야기를 할 줄 알았던 백성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난 내 나라로 돌아간다. 난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한 것은 구천이지 여러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식량도 다 나눠주고 갈 것이다. 우리 아들딸들도 죽었지만, 그대들의 아들딸들도 죽은 것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뒤쪽의 백성들이 박수를 쳤다.
“이제 나는 평화를 원한다!”
오스카르 왕이 외쳤다. “합려와 구천은 더 이상 우리 나라를 핍박하지 말라. 우리는 진국을 정복하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이유 없는 압제에 굴복하진 않을 것이다. 이만하면 극악무도한 구천도 내 가르침을 깨달았으리라 믿는다.”
와아, 하고 박수소리가 더 커졌다.
“자고로 의와 예, 지는 모두 인에서 나오는 법이다. 구천과 합려는 지금이라도 인의 이치를 깨달아라. 그러면 만세가 평화로울 것이고 우리와 진국의 자식들이 영원토록 번영할 것이다.”
왕이 손을 들었다. 백성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탕리가 그 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웃기는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 전쟁으로 진국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진국과 이다볼 국의 싸움은 둘 중 하나가 무너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르 왕의 이번 연설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제 진국과 이다볼의 싸움은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이고, 그 동안 오스카르도, 구천도 내정을 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만세! 만세!”
탕리가 만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진국의 백성들이 오스카르 왕을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이틀 후면 아홉이 되는 오스카르 왕이 위엄 있게 손을 들었다. 단 아래에 선 디트리히도 싱긋 웃었다.
“만세! 만세! 만세!”
진국 백성들의 만세 소리가 점점 커졌다. 디트리히가 단 위에 올라 왕의 휠체어를 내렸다. 왕이 계속 손을 흔들며 단을 내려갔다.
“만세! 만세! 만세!”
펑, 하고 축포가 터졌다. 나팔 소리가 영락궁의 겨울 아침 하늘에 뿌우우, 하고 울려 퍼졌다. 갑자기 왕은 백성들의 외침이 부담스러워졌다. 왕이 휠체어를 돌려 마차 안으로 사라졌다.
세레니아와 군사들이 백성들에게 쌀과 물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백성들이 아기새처럼 군사들에게 팔을 벌려 댔다.
왕을 마차 안에 모셔놓고 나온 디트리히가 백성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 원정은 성공이다. 구천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오스카르 왕이 영락궁을 함락시켰고, 지크의 마음도 이다볼 왕국을 향하게 되었으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이제 이다볼 왕국으로 돌아가면 오스카르 왕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으리라. 톨스토아도, 이아이누도 함부로 오스카르 왕을 흔들지 못할 것이다. 지크가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 지크는 잘 있을까?
디트리히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 안나와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디트리히!”
- 잘 있겠지 뭐.
탕리가 불렀다.
“네!”
디트리히가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그는 더 이상 지크를 걱정하지 않았다. 지크에게는 초커가 있고 또 명검 카타스크로아가 있다. 지크는 단 500의 군사로 진 제국의 수도 월우성을 함락시킨 명장이다. 누가 감히 지크를 건드린단 말인가?
“디트리히, 이 단은 놔 두자. 구천이 와서 보게 말이다.”
디트리히가 킬킬거렸다. “구천이 엄청 열받아 하겠네요.”
“그러라고 놔 두는 거다!”
탕리와 디트리히가 웃으며 단을 올려다보았다.
- 다음에 올 때는 아마 지크가 백성들의 박수를 받겠지.
디트리히가 휙, 하고 등을 돌렸다. 이제 그의 마음에는 아무런 안타까움도, 걱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친구 지크 왕자가 돌아올 때까지, 히스토리아 호랑이는 지금처럼 이다볼 왕국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지크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이제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이다볼 왕국의 계승자이고, 아픔으로 얼룩진 조국을 영광으로 전생시킬 천년 대국의 주춧돌이니까.
오스카르 왕이 작은 머리를 마차 밖으로 뺐다. 진국 백성들의 함성이 높아졌다. 그가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진국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이 하늘을 지크에게 물려 줘야만 해. 세계는 나와 지크의 대에 하나로 일통해야만 해.
왕이 지크가 사라졌을 스옌 산맥을 돌아보았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또 보자, 지크.”
(2부 완(完))
(3부 ‘천년 대국의 문’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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