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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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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a3333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6
최근연재일 :
2022.06.3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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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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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9,945

작성
22.05.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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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베두인 커피와 디야파

DUMMY

16. 베두인 커피와 디야파




무쇠 프라이팬 안에 있던 내용물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고, 방안으로 향이 퍼져 나가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와 생두를 직접 볶고 계셨구나···”


볶아진 생두를 집주인은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은 한국 전통 절구보다 작은 절구에 원두를 넣어 빻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빻는 소리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은 일정한 리듬이 있었다.

작은 주전자에 약간의 물과 빻은 원두를 넣었고, 그 물을 난로 위에서 다시 졸였다.

집 안으로 커피 향이 가득해지면서 나는 마치 내 집과 같은 왠지 모를 아늑함을 느꼈다.

집주인은 그 커피 주전자를 가져와 우리에게 한 잔씩 따라 주셨고, 아들은 달달한 대추야자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말린 대추야자와 커피예요.”


"이야··· 대추야자는 단맛이 강해서 커피와 참 잘 어울리네요.

커피도 너무 맛있고요."


바로 볶아서 우린 커피가 맛이 없을 리는 없었다.

기계 하나 없이 모든 과정을 손을 거쳐 만든 커피였다.

그 커피는 내가 마셔본 그 어느 커피보다 진하고 깊은 향으로 여운을 남겼다.

한 모금의 커피 맛 보신 8번 아저씨가 눈을 감고 잔을 가볍게 돌리며 커피 향을 한 번 더 음미하셨다.


“아...이 커피 향... 방금 할아버지가 생각났어.

우리 할아버지가 베두인 전통 방식으로 만드셨던 커피 맛과 비슷해.

모두들 커피의 원조라고 하면 이탈리아를 떠올리는데, 사실 우리의 커피 역사가 훨씬 길다고.

이탈리아에는 십자군 전쟁 이후에야 전해진 거야.”


아저씨는 커피 문화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집주인이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커피 맛은 괜찮아요?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얘기해요.”


그때 4번 아주머니가 일어나 집주인을 향해 90도의 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갑자기 문을 두들겨 무례하게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집주인도 같이 허리를 90도 굽혀 동양식 인사를 하며 말했다.


“별말씀을. 우리 언어로는 환대를 ‘디야파’(diyafa)라고 해요.

당신이 방금 나에게 몸을 90도로 굽혀 인사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중요한 기본 덕목이죠.“


같은 베두인인 8번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집주인 말이 맞아.

우리 베두인들은 설령 적이라도, 도움을 요청하는 자를 사막에서 마주쳤을 때는 본인이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손님으로 맞아서 숙식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전통이 있어.”


나는 이 전통이 신기했다.


“적이라도 숙식을 내어준다고요?

집에 함부로 들였다가 위협을 당하면 어쩌려는 거죠?

그리고 가난한 본인이 먹을 게 없는데 남에게 내어 주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8번 아저씨가 말했다.


“사막에서는 그런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상대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야.

불명예스럽고 용기가 없는 일이라고.

언제든지 위험에 내몰릴 수 있는 곳이 사막이라는 걸 너도 봤잖아.“


우릴 삼키려던 모래 폭풍을 두 눈으로 보았던 나는 멋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주인 아저씨가 나에게 말했다.


“저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막에는 언제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몇 명의 목숨을 살리면 그 빚을 언젠가 누가 갚아줄 수도 있고.

언젠가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기대감으로 서로를 믿으면서 살아남는 거예요.“


8번 아저씨가 몇 마디 거들 듯 말씀하셨다.


“서로 상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사막이라고.

서로 등을 돌렸다가는 다 같이 죽어.”


나는 예전에 ‘호혜적 이타주의’ 에 대해 읽었던 적이 있다.

인간이 지금 당장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다른 이를 도와주는 이유는,

자신이 반대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기대감들로 기본 덕목이나 사회적 도덕이 유지되고 있는 지도 모르지?’


10번이 말했다


“다들 잊지 말아요.

우린 아직 시험 중이에요.

폭풍이 멈추면 다시 떠나야 해요.“


나는 이 게르가 마음에 들었던 건가? 어쩐지 여기를 떠나기가 아쉬웠다.


‘아···다시 떠나야 하는구나···

여기서 커피 한잔 더하고 쉬었다 가고 싶은데.

밥 대신 매번 알약이나 삼키고 있고···

무슨 마법의 알약인지 먹고 나면 신기하게 배는 부르긴 하단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포만감이 음식을 먹는 이유를 전부 대신 할 수 없어.

무언가를 맛보는 재미조차 베가로부터 빼앗겨 버린 느낌이라고.‘


집주인이 8번 아저씨를 불렀다.


“모하메드. 잠깐 이쪽으로 와보세요.”


나는 궁금해서 집주인과 8번 아저씨를 따라가기로 했다.


“저도 같이 가도 되죠?”

“그럼요. 같이 오세요.”


게르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다른 창고 용도의 방이 있었다.

집주인 아저씨가 창고 문을 여니 그 안에는 여러 물건이 쌓여있었고,

낙타도 한 마리 묶여 있었다.

나는 감탄했다.


“와··· 뒤쪽으로는 이런 창고 공간이 있었다니···모래 폭풍에도 끄떡없고요.

사막에 잘 맞는 정말 튼튼하고 멋진 집이에요.“


아저씨가 왠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집은 베가가 준거예요.”


나는 베가를 오해하고 있었나 하고 잠시 생각했다.


‘베가가 집을 주다니?

오··· 의외로 선행이나 기부도 많이 하고 있었구나?’


순간 집주인 아저씨가 한층 격해진 목소리로 울분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이 집 하나를 주고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어요.

우리 가족은 원래 유목 생활을 같이 했는데, 이제는 유목을 하기에는 주위 환경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요.

베가의 산업으로 인해서 사막은 점점 커지고 있고,

모래 폭풍은 점점 강하고 빈번해져서 이젠 도심으로도 번지고 있죠.“


나는 안타까운 얼굴로 집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선행이 의도가 아니었군···’


“베가에 불만을 표하니 우리에게 이 집을 주었고, 그 후 우리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어요.

아마도 이 집은 베가에게 도청과 모니터링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막 환경이 바뀌다 보니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살 수밖에 없는 신세이죠.“


나는 도청이라는 말에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말했다.


“헉··· 그럼 도청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런 얘기를 해도 괜찮은 거예요?”


집주인 아저씨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셨다.


“모래 폭풍이 불 동안은 괜찮아요.

강한 모래 폭풍은 자기장에 의해 일어나는 거라 주변 전력을 다 차단하거든요.

전력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에 폭풍이 조금 약해지면 이 집을 떠나세요.“


8번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걸어올 때 걸음 수를 세어 두었던 곳이 바람에 이제 다 지워지고 없을 거예요···

출발했던 장소를 찾아가야 시험이 끝나는 데 더 이상 찾을 수 없겠죠.“


“잠시만요···”


8번 아저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집주인은 귀한 물건을 꺼내듯 창고 선반 위 상자를 꺼냈다.


“달그락달그락”


상자 안에서 무언가 꺼내며 말했다.


“자~제가 이걸 드릴게요”


나침반이었다.


“베두인 쪽 개발자가 베가를 피하고자 몰래 만든 나침반이에요.”


이것을 본 내가 말했다.


“개발자가 만든 거에요? 그냥 일반 나침반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요?”


“언뜻 보면 그런 것 같죠?

들킬 때를 대비해서 위장용 디자인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나침반의 꼭지 부분을 한번 누르면 레이더망이 켜져요.

베가랑 관련된 것들이 점처럼 레이더망 위에 드러나죠.

가까이에 있는 베가 관계자나 베가 건물, 운송 기관 같은 것들이요.“


나는 베두인 개발자가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베가를 대항하는 작은 개발자들도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


집주인은 8번 아저씨께 나침반을 쥐어주며 말했다.


“우리는 이 레이더 점들을 피해 다니기 위해 사용했지만, 당신들은 이 점을 따라가면 출발지에 도착하겠네요.“

8번 아저씨는 집주인 아저씨의 두 손을 잡고 인사했다.


“어떻게 이 마음을 말로 표현해낼지 모르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집주인 아저씨는 7개의 고글을 꺼내서 나에게 내어주었다.


“아 한 가지 더···

모래 폭풍 안에서도 눈을 뜨고 호흡할 수 있는 사막용 고글을 드릴게요.“


나는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생각했다.


‘아··· 이젠··· 벌써 8 개가 아니고

7 개가 필요하지···

이렇게 새로운 라운드를 거칠 때마다

후보자의 수는 계속 줄겠지···

다음은 내가 될지도 모르고···‘


나는 창고에서 7개의 고글을 받아 한 명씩 나눠주었다.


"여러분 사막용 고글이에요. 모두 받으세요!“


나와 8번 아저씨가 나머지 5명에게 소리쳤다.


“자 폭풍이 완전히 멈추기 전에 조금 걸을 수 있는 정도만 되면 빨리 떠나야 해요.

지금 바람이 조금 약해졌으니 바로 떠나기로 하죠.

자세한 설명은 걸어 가면서 해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요. 이 아이도 같이 갈 거니까요.”


우리가 바로 떠나려고 하자, 집주인은 낙타를 창고에서 데리고 나왔다.


“혹시 낙오자가 생기면 이 낙타에 태워서 가요.

그리고 모래 폭풍이 멈추려고 하면

베가가 눈치채기 전에 고글과 나침반을 모랫 바닥에 얕게 묻어주세요.

우리는 나중에 낙타와 같이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거에요.“


8번 아저씨가 감동했는지 집주인 아저씨의 얼굴을 그윽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가까이 입을 맞출 정도의 거리로 다가갔다.

우리는 모두 움찔한 상태로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헉 뭐야 이 상황은 갑자기 설마···?‘


9번이 나와 같은 생각인 듯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8번 아저씨 말이에요.

집주인 아저씨에게 왜 저렇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요?

설마 남자끼리 작별의 입맞춤이라도 하시려는 거예요? 하하···

저는 그런 건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아요!

미리 고개를 돌리고 있겠습니다;;“

베두인커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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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라운드 마지막 순간 +3 22.05.25 51 3 10쪽
» 베두인 커피와 디야파 +3 22.05.24 59 3 10쪽
16 2라운드. 현대식 게르 +3 22.05.23 59 3 10쪽
15 2 라운드. 사막 개미 +4 22.05.22 67 3 10쪽
14 탈락자들. 2 라운드 시작 +4 22.05.21 77 3 10쪽
13 결정의 시간. 추억과 음악 +4 22.05.20 82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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