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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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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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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17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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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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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16화. 파괴된 우리 - 8, After

DUMMY

“아아아아악!!!!”


벼락이라도 치듯 사고가 깨어지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온 몸이 불편해 옷을 벗으려 바닥을 짚자 잡혀든 것은.......


“.......”


내 이불? 순간 눈앞이 번쩍 뜨이며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친 것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루즈에스테의 얼굴이다.


“노, 놀랐습니다. 악몽이라도 꾸셨던 건가요?”


악.......몽? 꿈이었다는 건가?

아니, 꿈이었다는 게 꿈이 아니었다는 건가?

아아, 이제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파오는 머리를 감싸 안고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아, 일어났구나.”


들려온 것은 테르에스테의 목소리.

고개를 들어보니 테르에스테는 다행이도 상처는커녕 언제나와 같은 모습 그대로다.


“베스파로제님 말씀으로는 다 되돌려 놓으셨다는데 도통 깨어나질 않아서 걱정했다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이해되질 않아 머릿속이 지끈지끈 아파온다.


“대체.......”


“일단 이것 좀 마셔. 오랫동안 쓰러져 있어 혼란스러운 모양인데, 조금 괜찮아 질 거야.”


라며 테르에스테가 내민 것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찻잔.

갑자기 든 생각에 고개 돌려 찾아 낸 잔느는 처음 보는 두 악마가 두려운지 어쩔 줄 몰라하며 저 멀리 벽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고마워.”


받아 든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테르에스테의 말대로 뜨거운 찻물이 목을 타고 넘어 내려가자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은 듯한 기분이 든다.

후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내 집인 마냥 편안한 이 자리에서 보는 풍경에 마음이 놓....... 일리가 있냐!!!!


“아카드민! 아카드민은?”


내 목소리가 조금 컸던 걸까? 나를 바라보고 있는 테르에스테와 루즈에스테의 눈빛이 사뭇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음, 그러니까....... 역시 영웅의 피랄까. 나도 깜빡 이대로 소멸하겠구나 싶었는데 훌륭했어 정말. 하하.”


“저, 전 로제에스테님께서 해내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둘의 입에서 동시에 나온 그 한마디 한마디 말들이 왠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수상해 눈을 가늘게 떴다.


“나한테 뭐 숨기는 거라도 있는 거야?”


라는 내 물음에 테르에스테는


“아, 아니 숨기는 거라니! 그, 그런게 있을 리가!”


라고 의심만 더 깊어지는 대답을 해올 뿐.


“흐음.......”


“그, 그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악마인 우리가 인간인 네게 도움을 받은 거잖아. 부, 부끄럽달까.......”


아무래도 미심쩍기는 하지만....... 그럴 듯한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악마는 자존심이 강하다고 들었으니까.


“도움은 무슨. 원래 내 일이었잖아. 도와줘서 고맙다고 감사해야할 건 바로 나인 걸.”


그래, 뭐 저런 짜잘한 것 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 파괴된 우리에서 무사히 돌아왔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보다 로제에스테. 어디 몸이 아프거나 그렇지는 않아? 앞이 잘 안 보인다던가.......”


그러고 보니 나도 온 몸이 아작이 났었다는 걸 떠올려 냈다.

얼핏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인다만.

오른 팔 역시 엉망으로 부러졌던 것이 꿈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멀쩡히 잘 움직이고.......


“글세, 별 문제 없는 것 같.......”


“으아아아! 그보다! 그보다 말이에요!”


갑자기 끼여든 루즈에스테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에 도리어 이쪽이 더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루즈에스테?”


“아, 전....... 그, 그러니까.

그....... 어떻게 아카드민을 쓰러트리실 수 있으셨던 건지 듣고 싶어서.......”


얼굴이 빨개져 주춤 물러서며 중얼거린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역시나 조금. 아니 많이 겸언쩍기는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고....... 운 좋게 기회를 잡아서 신의 검으로 베어낼 수 있던 것뿐이지.

사실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을 때는 정말 끝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네? 끝을 내지 못하셨다니요?”


“응? 검이 깊이 들어가지 않아 아카드민의 목을 완전히 잘라놓지 못해서.

지나간 일이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뭐, 흘리는 피의 양으로 봐선 안심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달까?”


어차피 나밖에 모르는 일 아닌가라는 생각에 끝에는 조금 허세도 부려보고.......


“잠깐만요, 제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주위로 피만 잔뜩 뿌려져 있고

쓰러진 로제에스테님의 옆으로 아카드민의 눈만 덩그러니 있었던걸요?”


“.......뭐?”


“저는 당연히 로제에스테님께서 눈만 남기신 채 소멸시켜버리신 줄 알았.......”


“그, 그럴 리가.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렇게.......”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어.”


“이상한 점이요?”


“응, 네가 쓰러지고 나서 아카드민이 내게 앞발을 휘두르는 데, 눈을 감아버려 잘은 보지 못했지만 어떻게 된 건지 다시 눈을 뜨고 나니 그 앞발이 찢어져 떨어져 나가 있더라고.

내가 뭔가를 한 적은 맹세코 없으니까.

아마 그게 누군가 도와준 거였다면 그 사람, 아니 그 악마가 또.......”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때 있던 일들이 모두 아귀가 맞는다.

하지만 누가? 누가 도와 준.......


“아냐, 그건 절대 아냐 로제에스테.”


도와준 자의 정체를 생각하는 도중 사고를 끊고 들어온 테르에스테의 목소리에서 전해져온 그 확고함에 조금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절대 아니라니. 뭐 알고 있는 거라도 있는 거야? 테르에스테?”


라는 나의 물음에 너무나 적나라하게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오는 테르에스테.

정신이 들고나서부터 계속 무언가 미심쩍다 생각이 들던 게 혹시 이것에 관련된 일인 게 아닌가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 그게....... 그러니까.......”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테르에스테는 역시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루즈에스테와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더니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로제에스테. 내 해방은 심상을 피에 흘려보내는 거야.”


무슨 큰 각오라도 한 듯 내뱉은 그 한마디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해방? 해방이라면 분명 2차 각성을 하고 방출에 감정을 불어넣는 기술을 얘기하는 걸 텐데.

그거랑 그게 무슨 상관이?


“다른 말로 하면 피를 독으로 바꿔놓는 거라는 말이지. 그것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말이야.”


그게 대체 뭐? 라고 물으려 입을 여는 와중 테르에스테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독은 부식독. 그것도 아주 강력한 마비효과가 동반되는 독이야.

육체에 반응해 순식간에 전부 증발해 버리기 전까지 부식시켜 들어가고

마지막엔 강한 마비효과까지 남기지.”


머릿속에 테르에스테의 배를 뚫고 나와 있던 아카드민의 발톱이 떠올랐다.

맞다. 뜯겨져 잘려나간 아카드민의 팔은 딱 그 테르에스테의 피가 묻어있던 위치에서였다.

게다가 마비효과라니 그 후에 아카드민이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비틀거렸던 것 까지 다 이해가 간다....... 가 아니라 잠깐!


“서, 설마.......”


급하게 손을 들어 오른 편 얼굴 위를 더듬었다.

그래, 그 때 테르에스테의 피는 내 얼굴에도 튀었었다.

그러고 보니 그 피가 도통 닦이지 않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도 오른 쪽 눈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설마.......


“아, 걱정 안 해도 돼.

네 다친 몸은 베스파로제님께서 완벽히 다 치료해주셨고 마비된 부분도 내가 만든 영구면역제로 다 가라앉았으니까.”


그 말 그대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을 더 더듬어 만져 보았지만 오른 쪽 눈은 아무문제 없이 잘 보일뿐더러 얼굴에 흉터 하나 남은 것 같지 않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정말.


“그, 그런 것 같네....... 그보다 영구 면역제라니? 해독제가 아니라?”


“응? 아, 응. 맞아. 영구면역제. 아무래도 네게 계속 미안해서 말이야.......”


“미안하다니?”


“그, 그러니까....... 그 전에 말했던.......”


아아, 테르에스테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알 것 같다.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테르에스테는 아직도 내 피를 각성시켜버린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독을 만드는 것 밖에 없어서 말이야.

그렇다고 독을 줄 수는 없으니까 계속 연구해 왔었거든.

여러 악마들의 면역인자를 모아 항체를 만들어 내는 걸.”


그 말에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불편한 생각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 잠깐. 네가 요즘 다른 수계자들의 신체를 모은다고 하던 게 설마.......”


“응? 알고 있었어?

맞아. 웬만한 독에는 영구히 면역을 가질 수 있는 약을 만들려면 필요했거든.

다른 악마들의 신체의 일부가”


역시....... 라는 생각과 함께 루즈에스테를 돌아보았다.

루즈에스테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

뭐야, 내가 그러니까 쓸데없는 의심이라고....... 하는 마음과 함께 다행이다. 라는 마음이 뒤섞여 복잡한 심정이 돼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데모테르님의 진실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슴 속 답답했던 부분이 풀어 헤쳐진 것은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좋은 일이다.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설정했던 독의 종류의 반 정도밖에 면역력을 넣지 못했지만.......

흔한 독들 정도는 간단하게 막아줄 수 있을 거야.

원래는 네가 인간계에 나가기 전에 선물로 주려고 연구기간을 잡았던 건데 이렇게 급하게 쓰게 돼버릴 줄은 몰랐거든.”


하는 말에 나는 아냐 아냐, 괜찮아 라는 말을 반복하며 테르에스테의 손을 잡아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느꼈던 그 미심쩍음은 아마 테르에스테가 내게 준 약의 정체를 말하기 부끄러워 그랬던 것이었을 테지.

나도 참. 다 좋게 끝난 마당에 쓸데없는 의심이나 하고


“미안,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아냐. 아냐,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 모두 무사히 돌아왔고 목적한 걸 잘 이뤄냈다는 거니까.”


라고 웃어 보이며 쓸데없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카드민의 눈은?

데모테르님께서 약으로 만드시고 계시려나? 언제쯤 만들어질지 알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래 누워있었기 때문인지 온 몸이 뻐근해 허리에서 두둑두둑 하는 소리가 나고 목은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맘 같아서는 더 오래 누워있고 싶지만 그래도 날 도와주고 또 지금까지 간호해줬다는 걸 생각하면 파이라도 만들어 대접해주지 않으면 내가 섭섭.......


“.......쳇, 잘 넘어가나 싶더니.”


.......테르에스테?


“그러게, 잘 넘어가나 싶더니.”


.......루즈에스테?


“내가 말할까?”


“아뇨, 제가 말할게요. 루즈에스테님.”


“자, 잠깐만! 갑자기 무슨 말들을.......”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한숨을 내쉬며 테르에스테는 피곤 가득한 표정과 함께 말을 이었다.

뭐, 뭐야. 지금까지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잖아.


“베스파로제님께서는 알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가능하면 숨기라고 하셨는데 말이야.......”


베스파로제님께서?


“그러니까....... 녹아 없어져 버린 눈은 되돌려 놓으실 수가 없다고 하셔서.......”


.......눈? 눈이 녹아 없어졌다고? 돌려놓을 수가 없다고?

하지만 분명 똑똑히 양쪽 눈 다 잘만 보이는데?

잠깐. 서, 설마.......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게.......”


아니다. 아닐 거다. 라는 말을 되뇌며 내려 본

찻잔에 비친 내 오른 쪽 눈은


“아카드민의 눈이라서 말이야.


피 같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아아아아아!!!!!!”




16화. 파괴된 우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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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파괴된 우리 –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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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몇 십. 아니 몇 백 번째일지 모르는 한숨은 다시금 진한 궤적을 남기며 눈앞에서 흩어져 갔다.

머릿속은 내 주위에 일어난 변화들과 새로 알게 된 사실들로 가득 차 무거워져 더는 움직이지 못한 채 가라앉기만 할 뿐.

뭐, 어쨌든 누가 아카드민의 눈만 남긴 채 아카드민의 시체를 가져갔는가에 대한 의문만 빼두고서는 대부분 그 후의 대화로 해결되었으니까.

속마음만은 편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겠고.......


“하아.”


내려 본 대리석 바닥에 비친 내 눈에 자연스레 다시 한 번 한숨이 새어나온다.

왼쪽 눈은 검은색. 오른쪽 눈은 붉은색.

눈동자의 색만 빼면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내 얼굴임에도 몇 번을 봐도 어색해 도무지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또 다시 내 몸을 멋대로 바꿔놓은 것에 대한 분노와 혼란은 이제 다 진정 되었다만.......

등에는 날개, 오른팔은 악마의 팔, 오른 눈은 마수의 눈.

아직도 난 스스로를 인간이라 불러도 되는 건가? 하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만은 그만 둘래도 그만 둘 수가 없다.


“하아.”


그리고 몇 번이고 그 생각 끝에 도달하는 한숨까지도.


“아, 기다렸어?”


내게 시킨 일과 그 일로 인해 내가 겪은 고통, 고뇌, 상처는 한번이라도 생각이나 해본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레이셀님은 평소 그대로의 쾌활한 웃음과 함께 문을 열며 등장했다.


“오, 그게 아카드민의.......”


역시나 눈이 마주치자마자 지적하는 건 내 오른 쪽 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세르니악에 들어오던 중 마주친 세르에스테는....... 한참을 말없이 날 바라보다가 풉 하고 조용히 웃음을 터트리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잔느도 그랬다. 어디에 눈을 마주쳐야할지 모르겠네요. 라고 하더니 자꾸만 눈을 피하고.......

아아, 눈에 대한 생각은 그만두자.


“나와 데모테르님이 얘기했던 건 그런 식은 아니었지만.......

뭐,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긴 했으니까. 잠깐 한 번 시험해볼까?”


“시험.......이요?”


“자, 이걸 한번 봐봐.”


라는 말과 함께 레이셀님이 허공에 손가락을 튕기셨다.


“몇 개 였을까?”


“.......네?”


뭔가 하신 건가?


“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 같네. 음....... 그래, 이렇게 한 번 해보자. 왼쪽 눈을 감아봐.”


왼쪽 눈을?

무슨 의도로 시키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셀님의 말씀은 잘 듣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별 말없이 왼쪽 눈을 감았다.


“어, 어라?”


갑자기 붉어진 시야에 당황해 감았던 왼쪽 눈을 다시 뜨고 말았다.

설마, 하고 다시 왼쪽 눈을 감아보니 다시 붉어지는 시야.

두 눈을 같이 뜨고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눈동자가 붉은 색이라 붉게 보이는 건가?


“준비 됐어?”


잠깐, 신기한 건 신기한 거고.

뭘 하려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지금은 그 ‘시험’인지 뭔지를 하던 중이었으니까.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선 왼쪽 눈을 감았다.

준비가 됐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붉게 물든 시야를 치켜세운 레이셀님의 손가락에 고정했다.


“자, 다시 간다.”


라는 말씀과 함께 튕겨진 손가락 위로 3개의 불꽃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라 사라졌다.


“보였어?”


레이셀님이 말씀하신 것이 내가 본 불꽃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몇 개 였지?”


몇 개냐 물어 오시는 걸 보면 그 불꽃을 말씀하시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한데.......


“3개.......요?”


“맞아! 역시나.

쓸데없이 약 같은 걸 만드는 것 보다 처음부터 이렇게 눈을 직접 이식해 버리는 게 확실하다니까.

고생해서 데모테르님을 설득한 보람이 있네.”


.......잠깐.


“레이셀님? 지금....... 어라?”


순간 오른쪽 눈이 뻑뻑하게 아파오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 당황해 말을 다시 삼키고 말았다.


“가, 갑자기 왜.......”


깜짝 놀라 감고 있던 왼쪽 눈을 떴다.


“흐음, 그 눈. 생각보다 꽤나 무리를 주는 것 같은데?”


붉게 물들었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아파오던 것은 가라앉았으나 눈물만은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내려 연거푸 손을 들어 닦아냈다.


“뭐, 아직 네 몸에 익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왼쪽 눈을 감을 때마다 매번 이랬다가는 겁이나 눈을 깜빡이고 다니지도 못했을 테니까.


“아,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너 이번에 아카드민을 상대할 때 각성제를 먹었다지?”


각성제.......? 아, 뭘 말씀하시는지 알겠다.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앞으로는 웬만큼 위급할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베스파로제님 말씀으로는 각성하지 않은 피를 억지로 깨워 놓는 거라 몸에 부담도 클뿐더러

크게 줄인다고 하시더라고. 네 수명을 말이야.”


그 말씀에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인간계 체험 때도. 이번에 아카드민과의 일 때도

약을 먹자마자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며 피를 토해냈던 이유가.

그보다 수명이 줄다니.......


“하지만 이번 아카드민을 상대할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태였잖아?

아카드민이 제 상태가 아니기는 했었지만 그 때 신의 검을 빼어들지 않았으면 금세 회복해서 다시금 달려들었을 테니까. 안 그래?”


.......


“레이셀님?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계시는 거죠?”


아까 하셨던 말씀도 있었고....... 굉장히 불쾌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자세히라니?”


“저, 아카드민을 상대했던 일을 다른 악마에게 말한 적이 없어서요.”


“아, 난 또 뭐라고. 그야 뒤에 숨어서 다 보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


“음, 그보다. 기억 날련지 모르겠지만 이 수업의 목적은 네게 검술을 가르치는 거였잖아?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데모테르님과 아카드민의 일은 사전 준비였다고 생각해 두고.”


.......


“오늘부터 매일 아침 내게 검술수련을 받도록 해.

남은 시간이 없어 결국 기초정도밖에 가르치지 못하겠지만

그 눈과 함께 잘 사용하면 듀오나이트들 정도는 가뿐히 물리칠 수 있겠지.”


.......


“검술 얘기를 잠깐 하자면.

내 원래 계획대로 양쪽 눈을 모두 교체했다면 인간계에서 가장 강한 검술이라 칭송받는 유스타스가(家) 양검류를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한쪽 밖에 얻질 못했으니.......”


.......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 쪽 뿐이라 안 좋다는 건 아니야.

오래 못 버티는 걸로 봐선 오히려 필요할 때만 왼쪽 눈을 감고 사용하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


.......


“어쨌든 그런고로 내일부터 네게 가르쳐 줄 검술은 헤르탄 왕국 철쇄기사단류 외검술로 결정!

강한 검술이라기보다는 한손 검과 방패를 사용하는 수비가 탄탄한 검술이야.

아, 그렇다고 방패를 들라는 건 아니고.

전투 중에 한쪽 눈을 필요할 때마다 감았다 뜨는 건 불가능하니까.

방패를 들어야 할 왼손으로는 왼쪽 눈을 가린 채 오른 손으로는 빛의 검을 든 모양새가 되겠지.”


.......


“아, 물론 철쇄기사단류 외검술이 방패가 없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야.

원래 그 방패는 화살 같은 원거리 무기를 막는데 쓰이는 거고

기본적인 공격과 방어는 검으로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


“.......그런데 왜 아까부터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아, 내가 어떻게 검술들을 잘 알고 있는 건지 신기해서 그렇구나?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인간계에 나가있던 기간이 조금 많이 길어서 말이야.

심심풀이 삼아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검술과 격투술을.......”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하시려는 말씀이 다 끝나실 때까지 참고 있으려 했건만.......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레이셀님.”


“응?”


“처음부터.......”


참아왔던 말들을 모두 뱉어내려 혀를 풀고 입을 연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바람에 다시 다물고 말았다.

순간 짜증이 확 일어 대체 또 누가....... 하면서 돌아보니.......


“로, 로제에스테님!”


리아세스테? 여기는 왜?



“유스티가....... 유스티가 없어졌어요!”





16화. 파괴된 우리 - After 끝.


17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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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6화. 파괴된 우리 - 6 18.05.16 526 0 18쪽
74 16화. 파괴된 우리 - 5 18.05.16 602 0 14쪽
73 16화. 파괴된 우리 - 4 18.05.15 341 0 15쪽
72 16화. 파괴된 우리 - 3 18.05.15 328 0 14쪽
71 16화. 파괴된 우리 - 2 18.05.14 472 0 12쪽
70 16화. 파괴된 우리 - 1 18.05.14 337 0 8쪽
69 15화. 시작의 언덕 - 7, After 18.05.13 339 0 28쪽
68 15화. 시작의 언덕 - 6 18.05.12 325 0 10쪽
67 15화. 시작의 언덕 - 5 18.05.12 667 0 10쪽
66 15화. 시작의 언덕 - 4 18.05.11 397 0 15쪽
65 15화. 시작의 언덕 - 3 18.05.11 338 0 12쪽
64 15화. 시작의 언덕 - 2 18.05.10 342 0 8쪽
63 15화. 시작의 언덕 - 1 18.05.10 344 0 10쪽
62 14화. 반각성 - 4, After 18.05.09 386 0 20쪽
61 14화. 반각성 - 3 18.05.09 361 0 15쪽
60 14화. 반각성 - 2 18.05.08 357 0 11쪽
59 14화. 반각성 - 1 18.05.08 371 0 8쪽
58 용어 및 등장인물 설정 18.05.07 342 0 23쪽
57 외전. 켈론스의 기록 18.05.07 373 0 12쪽
56 13화. 영웅의 피 - 3, After 18.05.06 345 0 13쪽
55 13화. 영웅의 피 - 2 18.05.06 360 0 15쪽
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53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18.05.05 357 0 11쪽
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1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1 0 8쪽
50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6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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