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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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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33,433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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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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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DUMMY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 뒤로 새겨지는 붉은 길.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아래 스며드는 달빛만이....... 보이지 않는 눈앞을 비추어 억지로 발을 움직이게 할 뿐이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이미 그 의미를 잃은 지 오래고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안아 든 리아세스테는 힘없이 늘어진 그대로.

한층 추워진 날씨에 손에 닿은 그 온기는 점점 싸늘해져만 간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


다른 수계자들이 있다고 했던 그 방향으로 막연히 걸어 나가기를 얼마나 했던 것일 까.

발에 힘이 풀리며 무릎 꿇듯 쓰러지고 말았고, 리아세스테를 떨어트리지 않도록 억지로 몸을 비틀어 바닥에 쓰러졌다.


“미안해......”


그렇게 드러누워 바라 본 하늘 위로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내가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로, 로제에스테!”


나스.......에스테.......?


.

.

.


“.......해 봐. 빨리!”


“나 참, 그런다고 안되는 게 되지는 않.......”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져 눈을 떴다.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분명 눈을 감기 전에는 밤이었던 걸로 기억하건만 눈앞을 덮친 햇빛에 다시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로제에스테? 저, 정신이 들어?”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스에스테와 테르에스테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나스에스테를 만났다고 생각한 건.......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리, 리아세스테!”


몸을 일으켰다가 눈앞이 어질하면서 결국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씬 올라온 흙먼지에 작게 기침을 수 번.

그대로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리아세스테는 보이지 않는다.


“진정해, 진정해! 리아세스테는 괜찮아. 아직 의식만 찾지 못했을 뿐이니까. 오히려 위험한 건 너라고! 겨우 아물게 한 상처가 또 벌어지잖아! 얌전히 누워 있어!”


내 어깨를 잡아 누르는 나스에스테의 입에서 나온 그 리아세스테는 괜찮다는 말에, 그제서야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테르에스테! 교대할 시간! 아아, 힘들어 죽겠....... 아, 로제에스테님!”


테르에스테를 밀쳐내고 내 옆에 와 앉은 건 온 몸에 붉은 피가 잔뜩 묻어있는 루나에스테.


“으아, 막 교대해온 참이라 조금 더러워도 이해해 주세요. 아니, 그보다 몸은 이제 괜찮으신 거예요? 테르에스테! 로제에스테님은 괜찮으신 거지?”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로 사정없이 말을 쏟아내는 루나에스테의 목소리에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 졌다.


“일단 몸의 상처는.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지만....... 그럼 이번엔 내가 가볼 테니까 로제에스테를 잘 보고 있.......”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순간 주위가 어두워졌다 싶더니, 테르에스테의 뒤로 날개를 접으며 내 쪽을 향해 걸어오시는 안제루즈님이 눈에 들어왔다.


“.......”


마주친 안제루즈님의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가 않아....... 눈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일부러 날 풀어주신 안제루즈님께 죄송해 그 얼굴을 차마 고개 들어 쳐다 볼 수가 없다.


“이번 인간계 체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뒤로 돌아선 안제루즈님.

그리고 그제서야 눈치 챘다.

눈을 떴을 때부터 나던 진한 피 냄새가 내 몸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 안제루즈님?”


당황한 테르에스테의 목소리.

안제루즈님은 그대로 걸음을 계속하셨고, 내 눈은 그 양옆으로 울타리 치듯 주변을 둥글게 막아세워둔....... 그 시체의 도열에 고정되어.......


“우웁.......”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그 때 안제루즈님의 수업 때 본 적이 있는 것이다.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내장을 끌어낸 뒤, 쇠꼬챙이로 아래에서 위로 관통해 바닥에 꽂아놓은 시체.

그와 같은 것들이 수십, 아니 수백 개가 모여 마치 장벽을 만들 듯 이 주위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제서야 눈치 챌 수 있었다.

지옥. 아니 지옥 이상으로 짙은 심상의 무리를.


그 장벽의 바로 앞까지 다가선 안제루즈님이 손을 들어 허공에 휘젓자, 안제루즈님 앞의 수십 개의 꼬챙이가 구부러져 튕겨 나가듯 뽑혀 나갔다.


그 꼬챙이가 가리던 시야 위로 보이는 것은 바닥에 늘어선 갈기갈기 찢긴 시체,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수십 명의 성기사들.

바닥의 점칠 된 피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흰 색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 시체들이 모두 성기사들의 시체라는 것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는가! 천사의 가죽을 쓴 악마여!”


멀리서 봐도 티가 날 정도로 덩치가 거대한 성기사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안제루즈님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 철퇴 기사단 단장 후툴라가 너를 처벌하겠다!”


하면서 성기사는 그 손에 든 장창을 안제루즈님을 향해 겨눴다.


“시끄럽다. 벌레.”


“뭐, 뭣!”


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토마토 터지듯 갑옷만 남기고 말 그대로 터져버린 성기사.

그와 동시에 벽 뒤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퍽. 퍽 하는 불쾌한 소리.

뒤돌아서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하는 안제루즈님의 뒤로 보인 터져 오르는 핏 줄기들.

머릿속으로 쑤셔 들어오는 벽 뒤의 장면이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여 다시 또 비위가 상하고 말았다.


“그럼, 돌아가도록 하지.”


내 머리위로 안제루즈님의 손이 올려졌다는 걸 느낀 순간.


주위가 어둠에 물들었고.



곧 익숙한 열기가 내 몸을 덮쳤다.



12화 – 인간계 체험 下. 끝.





=========================


12화. 인간계 체험 - 下 -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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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세스테를 남겨두고 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동산을 뛰어 내려가는 내 발걸음은 그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지막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발이 닿은 곳은 마을의 정돈 된 흙바닥.


마을에 들어선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건 루니스 아주머니 댁의 젖소였다.

젖을 많이 짰는지 홀쭉 말라서는 음메~ 하며 인사를 해오는 모습이 어느 때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지 않아, 마치 지옥에 가 있던 그 경험 모두가 꿈이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갔는지 이미 꽤 마을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사람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하긴, 하늘을 보니 아직 다들 농장에 나가있거나 성안에 가서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오히려 지금은 사람이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몇 십, 몇 백, 몇 천 번을 밟아왔을 길을 걷는 것임에도 그 한걸음 한걸음에서 느껴지는 낯설음이 너무나 기분이 좋아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도착한 노란 울타리 앞.

울타리 안 염소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그 울타리의 끝을 잡고 몸을 돌렸다.


이 울타리를 돌면.

바로 우리 집이 있다.


어머니는 내가 없는 동안 고생이 많으셨을 것이다.

다행이도 아직 밀 수확의 날은 오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남자의 힘이 필요한 일은 많고, 동생은 또 팔이 굵어진다느니 핑계를 대면서 밀 농장에는 절대 발을 들이지 않았을 테니까.

혼자 무리를 하셨을 게 뻔하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팔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을 해야지.


그리고 동생은....... 그렇게 혼자만의 방을 갖고 싶다고 투덜거리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돌아온 걸 질색하며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표정을 짓는다면 알밤을 한 열방은 때려줘야지 하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혼자 후후 하고 웃고 말았다.


“어머니! 레나! 나 돌아 왔어!”


.

.

.


“로제에스테님!”


“로제에스테!”


눈앞에 익숙한 지옥의 광경이 펼쳐지자 긴장이 풀리며 아찔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양쪽에서 부축해 주는 루나에스테와 나스에스테의 손을 밀치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어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혼자.......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하고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어 앞으로 나아갔다.

검에 베인 자리가 쓰라려오기는 하지만 피는 멈춘 듯하다.

지속되는 고통에 반쯤 마비된 온 몸이 비명을 질러대지만 조금만 더 걸어가면 쉴 수 있으니까....... 참을 수 있다.


“무, 무리하지 마 바보야!”


등 뒤에서 들려온 나스에스테의 목소리가 너무 따스하게 느껴져 몸이 더 무거워 지고 말았다.

나는....... 나는.......


.

.

.


“아, 주인님! 돌아오셨....... 꺄, 꺄악! 상처가!”


창문을 넘어 들어오기가 무섭게 힘이 풀려 쓰러지듯 잔느에게 안기고 말았다.


“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두 개의 막대를 수직으로 겹친 뒤 기울여 둔 모양의 형태.

린크로스 라고 부른다고 했다.

신에게 죄를 진 자를 빛이 들지 못하는 곳으로 쫓아내는 징벌의 표식.


“주인님?”


나를 붙들어 말리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이틀 밤을 세서 달려 간.

마을 사람들이 얘기한 마을 밖 루데스 산 옆 골짜기.


그 곳에서 찾아낸 아버지의 무덤은 거짓말이었다.

그곳에는 방치 된 시체가 한 구 있었을 뿐이었다.

‘인간의 반역자’ 라는 글씨가 새겨진 린크로스.

양 팔과 양 다리가 그 막대 끝에 못 박힌 채 방치 된 시체가 말이다.


엉망진창으로 난도질당해 겨우 그 정체가 사람이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던 그 시체는

매정하게도 그 목에 걸린 목걸이를 통해 자신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전해 왔다.


“주인님? 괘, 괜찮으신 거예요?”


부끄럽게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난. 그렇게 결국 인간계에 있을 곳을 잃고 다시 도망 나와.


“어째서.......”


‘이 곳을 내려치시는 겁니다! 그 악마의 냉혈로. 그 반역자의 주먹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징벌의 표식에 박아 넣은 그 태양신의 성도를 만났음에도.


“주, 주인님?”


잔느의 등을 뚫고 나온 얼음을 두른 오른팔은 잔혹하게도 조금도 떨리지 않고 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하지 못했던 거야.......”


끝을 내지 못했다.


“주, 주인님?”


그걸로 모자라.

나는 아버지의 얘기에 정신이 팔려.


“미안.......”


나를 다시 받아 준 리아세스테가 쓰러져 있다는 걸.


“미안해."


내 팔을 뿌리친 녀석이 도망가 버린 후에야 기억해 냈다.


"주인님......."



나는.


인간계에서도.


지옥에서도.


설 곳을 잃었다.




12화 – 인간계 체험 - 下 - Afte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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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16화. 파괴된 우리 - 7 18.05.17 346 0 18쪽
75 16화. 파괴된 우리 - 6 18.05.16 526 0 18쪽
74 16화. 파괴된 우리 - 5 18.05.16 602 0 14쪽
73 16화. 파괴된 우리 - 4 18.05.15 341 0 15쪽
72 16화. 파괴된 우리 - 3 18.05.15 328 0 14쪽
71 16화. 파괴된 우리 - 2 18.05.14 473 0 12쪽
70 16화. 파괴된 우리 - 1 18.05.14 337 0 8쪽
69 15화. 시작의 언덕 - 7, After 18.05.13 340 0 28쪽
68 15화. 시작의 언덕 - 6 18.05.12 325 0 10쪽
67 15화. 시작의 언덕 - 5 18.05.12 668 0 10쪽
66 15화. 시작의 언덕 - 4 18.05.11 398 0 15쪽
65 15화. 시작의 언덕 - 3 18.05.11 339 0 12쪽
64 15화. 시작의 언덕 - 2 18.05.10 343 0 8쪽
63 15화. 시작의 언덕 - 1 18.05.10 344 0 10쪽
62 14화. 반각성 - 4, After 18.05.09 387 0 20쪽
61 14화. 반각성 - 3 18.05.09 361 0 15쪽
60 14화. 반각성 - 2 18.05.08 358 0 11쪽
59 14화. 반각성 - 1 18.05.08 372 0 8쪽
58 용어 및 등장인물 설정 18.05.07 343 0 23쪽
57 외전. 켈론스의 기록 18.05.07 373 0 12쪽
56 13화. 영웅의 피 - 3, After 18.05.06 346 0 13쪽
55 13화. 영웅의 피 - 2 18.05.06 361 0 15쪽
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18.05.05 358 0 11쪽
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1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1 0 8쪽
50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7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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