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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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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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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18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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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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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쪽

15화. 시작의 언덕 - 7, After

DUMMY

그렇게 처음으로 리아유스테의 공격을 막아낸 만족감은 안타깝게도 얼마 가지 못해 또 한 번의 공간 이동 후유증에 덮여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쉬잇, 여기는 조용히 해야 해.”


헛구역질을 하는 바람에 눈가에 고인 눈물이 시야를 가려 잘 모르겠지만 어두운 회색빛만이 얼핏 보이는 걸 보아하니.......


“아, 저 성은.......”


“그래, 세스티는 와 본 적 있지?”


으으, 이제 좀 괜찮아 진 것 같다.

그래도 갈수록 회복되는 시간이 빨라지는 걸 보면 이것도 몇 번 더 겪다보면 익숙해지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 그러니까.......”


“마신님의.......”


“어라? 나스미스테도 와 본 적 있던 거야?”


마신님? 그 말에 눈을 비벼 뿌연 시야를 닦아 냈다.


“네, 전에 마신님께서 부르셔서 스레나스님과 함께.......”


“헤에, 마신님께서? 별 일이네. 마신님께서 다른 악마를 성으로 직접 부르는 일은 잘 없거든.”


마신님의 성? 이란 건 역시 눈앞의 기둥 뒤로 멀리 보이는 저 거대한 성을 말하는 거겠지?


“우리 세스티를 부르셨을 때도 꽤나 놀랬었는데.”


그때는 베스파로제님과 공간이동으로 바로 내부로 이동해 몰랐었다.

그 때는 책에서 읽던 동굴 속 성을 상상했었건만.


“로제에스테도 베스와 왔었으니까. 그럼 마신님의 성을 처음 보는 건 유스티 뿐인건가?”


“아뇨! 저도 아빠랑 한번 온 적 있어요!”


그보다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었길래 저리들 난감한 표정들을 하고 있는 건지.

대화의 흐름에 끼어들기는커녕 알아 들을 수도 없다.

무슨 상황인건지 알려달라는 의미로 리아세스테를 바라봤지만 눈이 마주친 리아세스테는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일 뿐이다.


“뭐야~ 다 아는 곳이라니! 그럼 마신님의 성 안내는 여기까지!”


으엑? 이제야 좀 정신이 들어 설명을 들어보자 하니까 끝이라니.

그럼 바로 또 공간이동을 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세르피리아님?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응? 왜? 벌써 피곤한 거야?”


“피곤하다기보다는 공간이동이.......”


적어도 좀 쉴 시간은 줘야지.

아까 몇 번 더 겪다보면 익숙해지지 않을 까 했던 건 전부 농담이었단 말이다.


“아, 그거라면 상관없어. 다음에 갈 곳은 바로 요 앞이니까.”


요 앞? 세르피리아님께서 가리키신 곳을 돌아봤지만 보이는 건 마신님의 성 옆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높은 절벽.

그리고 그 끝으로 이어져 있는 언덕 뿐.


“걸어가도 충분하니까. 그럼 문제없는 거지?”


저, 저 언덕을? 올라가다 지쳐 죽을 것 같다만....... 괜히 투덜댔다가 공간이동으로 가자는 말이 나올까 겁이나 문제없다고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이동~”


뭐가 그리 신이 나시는지 세르피리아님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베스파로제님의 팔짱을 끼고 앞서 걸아나가셨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리아세스테와 나스미스테. 그리고.......


“꺄, 꺅!”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보았건만 역시나였다.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 건 둘째 치고, 떠밀려는 손 모양까지 걸렸으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겠지.

뭐, 애초에 저 녀석 시치미를 땔 마음도 없어 보이지만.


“사, 사과 하세요!”


할까 보냐! 라고 속으로만 윽박질러 준 뒤 바로 몸을 돌려 언덕 위를 향해 발을 옮겼다.

이제 슬슬 리아유스테가 습격하는 순간을 알 것 같달 까.

왠지 다음번에는 이쪽에서 역습도 노릴 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

.


“자, 도착!”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 한줄기를 손을 들어 닦아냈다.

더워서 난 땀이 아니다.

오른 팔에 란세르님의 영혼석이 들어갔을 때부터 지옥의 열기는 면역이 됐으니까.

인간계였으면 이 정도 높이까지 올라왔으면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 땀을 식혀 줄 텐데.......

이곳에는 그저 열기 또 열기 뿐.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돌아본 저 밑은 아찔할 정도 깊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로제에스테님, 괜찮으세요?”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숨을 고르느라 허리도 못 피고 있는 내게 다가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오는 리아세스테.

그 얼굴에 인간계에 나갔을 때와는 정 반대가 되어버린 지금의 모습이 왠지 우스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여튼, 약해가지고.”


나스미스테의 핀잔이야 이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오히려 자연스럽다.

휴우,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여기가 바로 지옥에서 가장 높은 곳. 시작의 언덕이야.”


라는 세르피리아님의 말씀에 허리를 피고 뒤를 돌아봤다가 입을 벌린 채 온 몸이 굳고 말았다.


“아.”


이번엔 내가 먼저.

그 다음으로 리아세스테가 그리고 나스미스테가 눈앞에 펼쳐진 황홀한 전경에 빠져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어때, 굉장하지? 여기서 보는 지옥의 모습은 정말이지 최고로 아름답다고.”


지옥이 아름답다는 말부터가 조금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이성적 상식과는 상관없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까이에서 봤을 때는 단지 희망한 점 없는 붉고 어두운 음울함만이 가득 찬 지옥이었건만.

이렇게 높이서 바라보니 그 불을 뿜어내는 산 하나하나, 흘러내리는 유황 길 하나하나.

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그 용암 호수마저 하늘을 둘러싼 검은 구름과 함께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저기 보여? 저 높이 솟은 성이 론니악이야.”


잘은 보이지 않지만 세르피리아님이 가리키신 것이 어딘지는 알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커다란 론니악이었건만 여기서 보니 너무나도 작게 보여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왼 편으로 보이는 게 베스의 성.”


세르피리아님의 손가락을 따라 옮긴 시선에 분명하게 보이는 베스파로제님의 성.

의외로 론니악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또 저기가 아까 갔던 켈타니아 호수. 그리고 저쪽이 르호텐 강.”


“끝이 없을 것 같이 커 보이더니.......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생각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네요.”


나스미스테의 말 대로다.

하지만 론니악이 저렇게 조그맣게 보이는 거에 비해 얼핏 봐도 두세 뼘 이상 되어 보이는 걸 보면 역시 큰 것 아닐까.


“굉장하지?”


그 물음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크, 크흠. 한 가지 더 설명하자면 여기가 시작의 언덕이라 불리는 대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세르피리아님. 그건 제가 설명할게요.”


“그래줄래? 그래준다면 나야 고맙지 세스티.”


설명을 해준다니.

리아세스테는 이곳에 처음 와 본 게 아니었던 건가?

하지만 나와 나스미스테와 같이 이곳의 전경에 빠져들었던 건.......


“신이 이곳에 서서 지옥을 만들었다 해서 불리는 이름이 바로 시작의 언덕이에요.”


지옥.......을?

물론 신빙성 없는 전설일게 분명하나 그래도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렇게 지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름은 종말의 언덕.”


두 개의 이름이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라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태초에는 지옥과 천계가 나뉘어져 있지 않았다고 해요.”


그건 또 무슨 말인지 역시나 이해가 가지 않아 설명해 달라는 의미로 리아세스테를 돌아봤다.


“지옥도, 천계도 원래는 하나의 인간계였다고 해요.”


“.......잠깐만.”


에이, 허무맹랑한 전설도 정도가 있지.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내가 전에 마신님께 들은 얘기로는 신은 인간을 천사와 악마와 함께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네, 그건 맞아요. 지금 제가 드리는 얘기는 그보다 훨씬 전의 이야기에요.”


그 이전의? 그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럼 인간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의 ‘인간계’였다니.


“처음 신이 세계를 만들었을 때 신은 오직 인간만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첫 번째 피조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고 하죠.”


그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적어도 내가 마신님께 들은 얘기는 해그놀리아에서 한번 본 내용이기도 한 대다, 이 영웅의 피라는 것과 이어져 신빙성이 조금은 느껴졌지만

리아세스테가 하는 얘기는.......


“하지만 인간들은 그 신의 사랑을 잊고 금세 거만해지고 말았어요.

신을 잊고 왕을 만들더니 서로간의 전쟁을 시작했고, 결국에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에 이르렀죠.

신은 참지 못하고 이곳에 서서 세계를 무너트렸다고 해요.

그게 이곳이 종말의 언덕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이죠.”


결국 마음의 갈피는 잡지 못한 채.

다음 얘기를 독촉하기 위한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은 인간을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한 번 더 기회를 줬다고 해요.

물론 원래대로 다시 되돌려 놓았다간 금세 잊고 또 문제가 생길 걸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요.

인간의 수명은 짧아 금세 모든 걸 잊고 만다는 걸, 신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인간의 수명은 짧아 금세 모든 걸 잊고 만다는 말에.

이유 없이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그래서 신은 그 선행에 동기를 만들어 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게 천계와 지옥이라는 거죠.

선한 자들에겐 영원한 행복을, 악한 자들에겐 영원한 고통을 이라는 명목 하에 말이죠.”


왠지 모르게 이 하나의 이야기가 모두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종말, 그리고 시작이 이 한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거죠.

전지전능하다는 신도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관리 못해 실수를 했다는 게 재밌지 않나요?”


“.......”


재미라니. 뭐 분명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웠다만.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시는지....... 악마인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리아세스테?”


마주친 두 눈에.

심장이 멈춰버리고 말았다.


“세르피리아님은 로제에스테님이 인간이라 그런 거라 하셨지만....... 저는 모르겠어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르겠어요! 그렇게 즐겁게 웃으셨으면서....... 왜 아파하시는 건지!”


리아세스테는 기억을 잃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제가 부탁드린 거예요. 세르피리아님께, 베스파로제님께. 도와 달라고.”


그 말에 돌아 본 세르피리아님은 머쓱한 표정으로 웃고 계실 뿐이었다.

그럼 아침부터의 모든 일들이 다 날 여기로 데려 오려고 그렇게.......


“인간계 체험도 제가 따라간 거예요. 에스테님께 부탁해서.”


“.......”


연이은 고백에 사고가 정지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다 제가 원해서 한 거니까.”


“나, 나는.......”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알아요! 로제에스테님이 저를 버린 거라는 것도! 다시 돌아온 이유가 저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도!”


숨을 쉴 수가 없다.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고개를 숙였지만 전혀 편해지질 못한다.


“기억나지 않는 척 했어요. 로제에스테님이 절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리아세스테, 그건.......”


“알아요. 그런 제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하시며 괴로워하시던 걸.”


“.......”


“알아요. 괴로워하시던 그 모든 게 저 때문이라는 걸.”


“.......”


“하지만 역시 모르겠어요. 왜 저 때문에 괴로워하시던 건지.”


“.......”


“하지만 왜 제가 기억나지 않는 척 했는지,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한 건지는 알아요.

그러니까....... 그냥 말해주세요. 제가 싫어져 버린 게 아니라고. 저는 그 말이면 돼요.”


“.......”


“그리고....... 그만 아파하셨으면 좋겠어요.”


“.......”


손을 들어 막아섰다.

더 듣고 싶지 않아서.

더 들을 필요가 없어서.

그리고

더 들었다간.......


“로제에스테님.......”


고개를 들어 리아세스테와 눈을 마주쳤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눈물이 흘러 바보 같은 모양이 돼버리고 말았다.


“.......”


리아세스테를 지나쳐 언덕 끝, 깎아내리듯 가파른 절벽 위로 자리를 옮겼다.


“로제에스테님?”


뜨거운 열기가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나도 그대로 흘러가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인간계 체험 때, 쓰러진 리아세스테를 안아들고 걸어오며 끊임없이 내뱉었던 그 말을.

이제야 다시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들었다.


“.......미안해.”


무력하기만 했던 그 때의 내 연약함에 대한


“미안해.”


비겁하게 도망가려고만 했던 내 연약함에 대한


“미안해.”


그 말을.

먼저 말하지 못했던 내 연약함에 대한.......



그리고.


그럴 리가 없음에도


방금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아-압!!!”


“우, 우와아아아아악!”


리아유스테 특유의 기합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밀치려던 그 손을 피해냈다.


“.......너는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거냐!”


하고 이를 악물고 소리를 지르며 노려보았지만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한 리아유스테가 보이질 않는다.

어라? 어디로 숨은 거지?


“꺅! 유스티!”


리아세스테의 비명소리에 그 시선이 향해있는 곳을 돌아보니


“어, 언니!”


이미 반 이상 몸이 절벽 끝을 넘어 선 리아유스테가 눈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떨어진다. 잡아주기에는 늦었다.


“제, 제기랄. 대체 뭐냐고오!!”



.

.

.



“.......바보 오빠?”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물어올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바람. 아니 바람이 아니다.

바람은 그대로 있는데 내가 떨어지고 있는 것 뿐.

슬며시 내려 본 밑은 바닥도 보이지 않아 아찔하다.

기절해버릴 것만 같은 눈을 꼭 감고 리아유스테를 안아 쥔 팔에 힘을 주었다.


“.......”


이 녀석이 나한테 했던 짓을 생각해보면 역으로 밀어 버렸어도 상관없을 터인데.

난 무슨 생각으로 몸을 던져 녀석을 안아 든 건지 스스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 아니지. 그런 자책은 일단 무사히 바닥에 도착했을 때로 미루.......


“젠장.”


눈을 감으니 다행이도 집중이 되기는 한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무사히 벗어날 생각이 드는 건 아니다.

먼저 드는 생각은 그냥 떨어져 죽어버릴까? 하는 무책임한 생각.

베스파로제님이라면 다시 살려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베스파로제님이 리아유스테도 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인데다가 왠지 또 ‘떨어져 죽은 건 복구가 불가능 하다.’ 라는 말을 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럼 리아유스테라면.......


“.......”


다시 눈을 떠 바라본 리아유스테의 눈을 보고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아, 바랄 게 따로 있지.

눈을 떠버린 바람에 봐 버린 우리의 낙하예상 지점은....... 아, 드디어 저 멀리로 바닥이 보인다.

라기보다 머리가 어질.

나, 나는 높은 곳을 무서....... 아니 싫어한단 말이다!

이전에 란세르님과 베스파로제님의 결투 때도 세르피리아님이 날 데리고 날아올랐던 바람에.......?!


“아!”


아, 왜 이제야 기억이 난 건지.

나도 날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갑자기 차오른 희망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이 날개. 쓸모없을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때가 있구나!

이제까지 구박만 했던 게 미안해진다. 기특한 녀석.

좋아, 그럼 어디 나의 첫 비행을.......


“.......”


해제어가 뭐였더라?


“.......”


.......


“아아아아아아악!!”


인정해야겠다! 내가 바보라는 사실을! 라기보다 기억안난다고 포기할 상황이 아니라고 지금!


“린? 테르? 로라? 샤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마구 뱉어내 보지만 이건 뭐 맞을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다라? 데라?”


머릿속을 있는 대로 쥐어짜내도 비슷한 어감의 기억만이 부서져 나돌아다닐 뿐,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다라도 아니고 데라도 아니고.

데르? 타라? 아니다.

뭔가 다른 느낌이었는데.

뭔가 다른.......


“아! 다르!”


이거다! 하는 직감이 들어 외치기가 무섭게 등 뒤로 펼쳐진 검은 날개.

그 날개에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짐과 함께 희망이 샘솟는다.

역시 난 바보가 아니었어! 과정이 어찌됐든 결국엔 맞췄잖아!

슬쩍 내려 본 바닥은 이미 상당히 가까워 져 있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다 해결 됐.......


“.......”


그런데....... 어떻게 날지?


“아아아아악!!”


혼돈. 절망. 좌절.


[호오, 하지만 날개는 꺼내어 놓는 게 좋을 텐데? 항상 신경 쓰지 않으면 정작 위험할 때 날개가 있다는 걸 기억도 못하는 사례가 많거든.]


아아, 어째서 인간은 항상 일이 일어난 후에야 후회를 하는 걸까.

만약 살아 돌아갈 수 있다면 레이셀님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겠다고 결심....... 해봤자 뭐해!


“미안, 리아유스테.”


이제 바닥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포기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바보로 태어나지 않으리라 라고 다짐하며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


꾸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빠져 들었다.

입속으로 차오르는 물을 숨을 참고 밀어내며 머릿속은 혼돈의 도가니.

물? 감았던 눈을 떠보았지만 물속이 맞다.

바닥에 호수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있었으면 용암이 있겠지 물이 있을리는 없다.


“푸, 푸하앗!”


내가 물 밖으로 빠져나온 건 아니다.

마치 나와 리아유스테를 감싸 안았던 물이 흩어지듯 터져 나간 것 같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믿기지 않게도 내 발은 물에 젖은 바닥 위에 붙어있었다.

다행인 일인 건 분명하다만 상황 파악이 되질 않는다.

물이라니.

잔뜩 젖은 머리에서 흘러내린 물 한줄기가 눈앞을 가려 손을 들어 닦아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

자는 척 하고 있던 날 리아유스테가 깨울 때 분명 이불이 물에 젖어 있었.......


“리아유스테, 혹시 네가?”


“아빠?”


내려 본 리아유스테의 눈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아빠! 아빠! 어디 계세요!”


리아유스테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럼 대체.......


“로제에스테님!”


“로제에스테!”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공간이동으로 따라 내려온 건지 리아세스테와 나스미스테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어?”


그 걱정 가득한 눈빛들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얼떨떨할 뿐.


“아, 응. 어떻게 잘 넘어갔어.”


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무사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여기저기 팔다리를 허공에 휘저어 보았지만 어디 다친 곳은 없는 듯하다.


“다행이네요.”


“그러게, 죽었다라고 생각했었.......”


“풉.”


.......나스미스테?


“꺄하하하하!! 로제에스테. 완전 온 몸이 폭싹 젖어가지고! 녹아내린 유체 같아!”


.......?

물론 지금 내 몰골이 웃긴 꼴이라는 건 알겠다만 녹아내린 유체라니.

그게 어디가 웃기다는 건지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아 뭐라 따져들지도 못했다.


“.......그, 그렇네요.”


리아세스테도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고....... 웃긴 건가? 이게 웃긴 상황인건가?


“뭐, 뭐야! 이쪽은 죽다 살아났다고!”


라며 화난 척 뒤돌아섰으나.


이유 모를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미소지만.


왠지.



이렇게 편안하게 웃어보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화. 시작의 언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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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 After


================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다.

무언가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었고.

대놓고 면죄부라도 구입한 것 역시 아니었으나.......

지옥 안내를 다녀온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이 너무나도 편하게 돌아왔다.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 까지도.


“잔느, 나 세르니악에 다녀올게.”


잠을 푹 잔 덕분인지 몸이 가볍고 머리가 맑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들 뜬 것은 그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재에 가시는 거죠?”


꽤나 오랫동안 책에서 손을 놓고 있었기에 그런 걸까?

벌써부터 무슨 책을 읽을 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는다.


“저기....... 오시는 길에 아무 책이나 한 권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무슨 책이 보고 싶은데?”


“요리! 요리에 관한 책이 있을 까요?”


요리? 갑자기 요리라니?

내 기억으로는 아마 귀족과 음식예절 이라는 책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책에 요리에 대한 게 나올지는 모르겠다만.


“응, 찾아보고 가져다줄게.”


“감사합니다!”


그대로 몸을 돌려 창문을 열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짝 뛰어 넘어갔다.


“아, 테르에스테!”


로제니악의 복도에 도달하자마자 마주친 테르에스테에게 인사.

꽤나 당황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뭐 이상한 거라도 본 건가?


“로제에스테? 괘, 괜찮은 거야 이제?”


“괜찮냐니....... 나야 항상 괜찮았다만.”


뭘 이상한 걸 물어보는 건지.


“아.......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어딜 가는 길이야?”


“세르니악. 오랜만에 책이나 볼 까 해서.”


“으응, 재밌는 책 있으면 나중에 나도 한 권 추천해줘.”


“알았어. 그럼 이만.”


싱겁기는.

그렇게 테르에스테를 뒤로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로제니악을 빠져나왔다.

오늘의 론니악은....... 맑음! 이라기 보다 지옥의 날씨가 뭐 항상 그렇지.

후끈하고 덥고....... 지옥에도 비가 왔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계속.

어느새 세르니악의 앞에 도착했다.


“세르에스테, 나 왔어.”


문을 여니 복도에서 날 맞아주는 세르에스테.

느낌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책을 읽는다고 내게 쌀쌀맞게 대한 게 미안했는지 최근 세르에스테는 내게 좀 더 친절해진 것 같다.

물론 맞아줬다는 건 내 말이고 사실은 슬쩍 날 바라보고 가던 길을 간대다가 내가 건넨 인사는 무시한 게 사실이다만.


“레이셀님은?”


라고 세르에스테의 등 뒤에 대고 물어보자 세르에스테는 걸어가던 그대로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저어 답해왔다.

세르니악에 안 계시다는 말이겠지.

잘 됐다. 혼자 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신이나 뛰어가 듯 계단을 올라갔다.


“으음~”


서재의 문을 열 때 전해져오는 오래된 종이의 향기는 언제 맡아도 황홀하다.

맘 같아서는 이곳에서 자며 살고 싶다만....... 마음은 마음일 뿐.

잠시 더 그 향기를 만끽하다 바로 책장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어디.”


어디까지 책을 읽었는지 주욱 책장을 따라 훑어보는 나만의 가장 행복한 시간.

삶과 인생의 이해. 이건 전에 읽었고.

음악의 신. 이것도 전에 읽었고....... 아, 꿈의 해석! 이건 안 읽은 것 같은.......


“.......”


순간. 왠지 모르게 등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이 느낌은 지옥안내를 다니며 숙련 된 나의 리아유스테 감지능력이 발동할 때의.......

아닐거다. 아닐 테지. 라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더니.......


“.......”


.......정말 리아유스테가 서 있었다.

그 일이 지난지도 벌써 3일이 넘게 지났는데....... 그래, 내가 졌다.

그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면 지금이라도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하겠다 마음먹었다.


“전에는....... 감사했어요.”


.......어라?


“그래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고분고분한 목소리에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사과하라고 따지러 온 게 아닌 건가?

게다가 갑자기 팔을 들어 등 뒤로 향하는 건 또 무슨 의미.......?


“리아유스테?”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 시선을 내려 보니 바닥에 닿은 건 리아유스테의 드레스 어깨에 달려있던 하얀 보석이다.

그렇다고 그 보석이 옷에서 떨어져 바닥에 닿은 건 아니다. 붙어 있는 그대로.

잠깐, 그렇다는 말은.......


“우와아아아악!!! 뭐, 뭐하는 거야!!!”


무의식 적으로 들어 올린 눈에 보인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 연분홍색 살결에 기겁하며 뒤로 나자빠져 버리고 말았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무, 문제라니! 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야?”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실 저런 어린애야 옷을 입든 벗든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긴 하다만....... 그래도 이건 다른 문제다!


“하, 하지만 세르피리아님께서 감사를 표현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또, 또냐! 세르피리아님은 대체 수계자들한테 뭘 가르치고 계신 거야!

물론 매혹의 악마니까 라고 이해 못할 건 아니다만 이건 아니라고!


“아, 알았으니까! 알았으니까 일단 옷 입어!”


주섬주섬 옷가지를 집어 올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살며시 눈을 떴다.


“여, 여자애가 그렇게 함부로 막 옷을 벗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알았어?”


“하지만.......”


“알았어?”


“알았어요.......”


알았다는 대답을 받아낸 후에야 겨우 안심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속편이 혼자 책 좀 읽는 가 했더니 이게 무슨 재난인지.


“하지만 그럼 보답은.......”


.......끝난 게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감사하다느니 보답이라느니 하는데, 무슨 얘긴지 나는 도통.......”


“그 때 시작의 언덕에서.......”


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하지만.


“그, 그때는 내가 도와준 게 아니라 리아유스테 네 아빠가.......”


나스미스테의 증언으로는 바닥에 닿기 직전 거대한 물방울이 생겨나 내가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물이었기에 리아유스테가 한 일이라고 생각했건만 본인이 아빠가 도와준 거라고 하니 나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로 감사를 받을 이유도 없고.


“아빠가 도와준 건 맞지만....... 그래도.......”


“아냐아냐, 됐어. 난 그렇게 감사를 받을 일을 하지도 않았고 그런 걸로 생색낼 생각도 없으니까.”


뭔가 또 일이 쓸데없이 꼬여만 가는 것 같아 대충 둘러대고 다시 시선을 책장으로 돌렸다.


“하, 하지만!”


“정말 괜찮으니까.”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싶은 거지 이런 쓸데없는 말장난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럼 역시 세르피리아님 말대로.......”


“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 못 했어!”


.......젠장.

분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세르피리아님의 교육이 정확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이, 일단 옷은 다시 입고! 그런 것보다 대신에.......”


내게 사과를 받겠다고 몇 번이고 달려들었던 고집을 생각해보면 대충 둘러대 보내는 건 포기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가장 좋은 건 뭐라도 대신 보답을 받고 끝내는 건데.

문제는 내가 저 녀석에게 보답이라고 받을만한 게 과연 있기나 한 지.......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리아유스테, 너 고대 악마어 읽을 수 있었지?”


“네? 네.”


그래, 그게 있었다.


“나한테 고대 악마어를 가르쳐 주는 걸로 감사를 대신하는 게 어때?”


“고대 악마어요? 그런 걸로 괜찮으시다면.......”


그래, 이건 좋은 기회다.

고대 악마어를 배우면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이 배는 늘어날 테니까.

의외로 얻은 수확에 급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기분이 많이 좋아졌나 보네? 로제에스테?”


갑자기 끼어든 또 다른 목소리에 깜짝 놀라 움찔.


“레, 레이셀님?”


어, 어느새?

아까 분명 세르에스테는 안계시다고.......


“마신님을 뵈러 갔다가 로제에스테가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왔지.”


.......조용히 혼자 책을 읽겠다는 계획은 포기해야겠다.




“그보다.......무슨 일이라도 있던 거야? 그 눈.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네.”





15화 - After. 끝.


16화. 파괴된 우리 로 계속.


작가의말

중간에 끊기가 애매한 내용이라 두 편 분량을 한 편으로 뭉쳤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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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16화. 파괴된 우리 - 7 18.05.17 345 0 18쪽
75 16화. 파괴된 우리 - 6 18.05.16 526 0 18쪽
74 16화. 파괴된 우리 - 5 18.05.16 602 0 14쪽
73 16화. 파괴된 우리 - 4 18.05.15 341 0 15쪽
72 16화. 파괴된 우리 - 3 18.05.15 328 0 14쪽
71 16화. 파괴된 우리 - 2 18.05.14 472 0 12쪽
70 16화. 파괴된 우리 - 1 18.05.14 337 0 8쪽
» 15화. 시작의 언덕 - 7, After 18.05.13 340 0 28쪽
68 15화. 시작의 언덕 - 6 18.05.12 325 0 10쪽
67 15화. 시작의 언덕 - 5 18.05.12 667 0 10쪽
66 15화. 시작의 언덕 - 4 18.05.11 397 0 15쪽
65 15화. 시작의 언덕 - 3 18.05.11 338 0 12쪽
64 15화. 시작의 언덕 - 2 18.05.10 342 0 8쪽
63 15화. 시작의 언덕 - 1 18.05.10 344 0 10쪽
62 14화. 반각성 - 4, After 18.05.09 386 0 20쪽
61 14화. 반각성 - 3 18.05.09 361 0 15쪽
60 14화. 반각성 - 2 18.05.08 357 0 11쪽
59 14화. 반각성 - 1 18.05.08 371 0 8쪽
58 용어 및 등장인물 설정 18.05.07 342 0 23쪽
57 외전. 켈론스의 기록 18.05.07 373 0 12쪽
56 13화. 영웅의 피 - 3, After 18.05.06 345 0 13쪽
55 13화. 영웅의 피 - 2 18.05.06 360 0 15쪽
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53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18.05.05 357 0 11쪽
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1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1 0 8쪽
50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6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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