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시작의 언덕 - 2
“흐음, 그래서 어디어디를 다녀왔는데?”
“아, 그러니까.......”
“로제니악!”
이미 충분히 당황스러움이 가득해 있던 리아세스테였지만, 리아유스테의 발 빠른 대답에 이번엔 추가로 말을 잃고 얼굴까지 새파래졌다.
“그러니까 라니악을 나와서 바로 여기로 온 거다. 이거지?”
“그, 그게.......”
“응, 맞아.”
식은땀만 흐르지 않았지 난처함이 만연해있는 리아세스테의 머리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이는 듯하다.
“그러니까....... 여기부터 시작해서 주-욱 돌면서 알아보려고!”
“알아보려고!”
“.......”
어쨌든.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어떻게 되든 날 귀찮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꿍꿍이가 있다는 게 확실해 졌다.
“그러면 내가 소개해줄게. 리아유스테....... 맞지?”
“응!”
원래 어린애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대답을 잘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예쁜 것 같기도 하다.
“여기는 로제니악이랑 연결돼있는 베스파로제님의 성이야.”
“응!”
“자 소개 끝. 그럼 리아세스테, 다음에 봐.”
하고 조금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휙 하고 돌아서 버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리아세스테를 대하는 건 아직 어렵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로, 로제에스테?”
.
.
.
“.......해서 그런거니까....... 도와줘!”
“도와줘!”
무슨 말인지는 알았다.
세르피리아님도 신경 안 쓰고 있고, 다른 수계자들도 아는 척도 안하는 게 차마 보고만 있기 그래서 일단 데리고 나왔다는 것.
기세 좋게 론니악을 안내해줄게! 라고 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데리고 나오니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날 찾아왔다는 것 까지 말이다.
물론 마지막 말은 단순한 핑계일 테지만.
론니악의 안내와 나와의 연관성은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로제에스테? 도와주는 거야?”
“도와주는 거야?”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 종일 누워 있어봤자 해결되는 것 하나 없이 짜증만 계속 났을 테고.
또 어쩌면 이렇게 돌아다니던 중 레이셀님이 말씀하신 그 준비가 안됐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나도 론니악을 잘 아는 건 아니다만.......”
내가....... 리아세스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고, 고마워!”
“고마워!”
아아, 안 돼지. 안 돼.
여기서 또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다간 눈치 채일지도 모른다.
물론 리아세스테는 그렇게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그보다 저 꼬마 아까부터 메아리도 아니고 왜 자꾸 네 말을 따라 하는 거야?”
“응? 왜? 이상해?”
“아니, 이상하다기 보다는....... 조금 거슬린달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어린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건 특히나 더.
“그래? 난 귀여워서 좋은데.”
하고 리아세스테가 다시 머리를 쓰다듬자 바로 실눈이 돼서는 몸을 베베 꼬며 좋아하는 리아유스테.
“그거, 널 놀리는 거 아니야?”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어린 아이가 사사건건 말끝마다 똑같이 따라해 온다면 어른을 놀리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만.
“유스티, 로제에스테 말이 사실이야?”
라는 리아세스테의 물음에 기분 좋게 헤헤 웃고 있던 그 얼굴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듯 울먹울먹한 눈으로 바뀌었다.
“저는 그렇게 나쁜 악마가 아니에요.......”
그 대답에 다시 나를 올려다 본 리아세스테의 눈빛에서 당장 유스티한테 사과해! 라는 말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주춤하며 뒤로 한 걸음.
“아, 아니 나는 그런 뜻이.......”
리아세스테에게 너는 지금 속고 있는 거라고 눈빛으로 전해봤지만 전해지지 않았다.
악마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괜히 이전에 세르에스테 때문에 그 고생을 했던 게 아니다.
게다가 나쁜 악마가 아니라니.
그 만큼 모순되는 말이 어딨어!
“아빠는....... 내가 아빠를 잘 따라한다고 항상 칭찬해 줬는데.......”
아.......빠?
언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조금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다만, 그건 리아세스테를 가족처럼 생각해서 그런가보다 했었다.
“아빠라니? 누구?”
세르피리아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건 아닐테구.
“응? 당연히 아빠는 아빠지. 오빠 바보?”
아빠는 아빠지. 라는 말에서는 그래, 물어본 내가 바보지. 라고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빠 바보? 라는 말에서는 반쯤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
그래, 처음 보는 나한테도 오빠라고 부르는 걸 보면 어디서 이상한 남자악마. 그래, 스레나스님 같은 악마라도 만나서 칭찬을 들었던 걸 테지.
바보라는 말에는 조금 화가 났다만 여기선 같이 언성을 높이는 것 보다는 어른스럽게.......
“내가 리아세....... 네 언니보다 더 서열이 높다는 건 알고 있어?“
높은 이라는 글자에 힘을 주며 무게 있는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내뱉었다.
“그 말은....... 네가 나한테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될 위치가 아니라는 말이지.”
라는 말에 웬일로 이번엔 바로 대답안하고 리아세스테의 다리를 붙드는 모습이 겁이라도 먹은 모양이다. 하하, 역시 내 연기력이란.
“싫-어.”
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흥! 하는 소리와 함께 혀를 낼름 내미는 모습에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벙 찌고 말았다.
“유, 유스티! 그래도 로제에스테가 서열이 더 높은 건 맞으니까.”
이번엔 리아세스테도 조금 문제가 있다 생각이 드는지 살짝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한마디 해주었다.
“괜찮아요, 언니. 저 오빠는 바보니까요.”
음, 사실 바보라는 말은 딱히 지옥이라서가 아니라 인간계에 있을 때만 생각해도 그렇게 심한 모욕은 아니다.
친구들끼리도 농담 삼아 야, 바보야! 같은 말은 서로들 많이 했으니까.
“브아-보.”
하지만 난처해하는 리아세스테를 옆에 두고 이번엔 양 손으로 볼을 잡아당기며 혀를 내미는 그 모습이 합쳐지니.......
“브아아-보오.
어른답게 대처해야한다느니, 어린애한테 화를 내서 뭐하냐느니 같은 마음 속 구속이 바로 찢겨 사라져 버렸다.
“브아아-보오오오.”
그래, 어린애같이 생겼든 아니든 악마는 악마니까.
.......왼팔의 방출 한방 정도는 날려도 괜찮겠지.
“로, 로제에스테 잠깐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리아세스테가 그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들어 올렸던 왼 팔을 다시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지 말고. 빨리, 빨리 나가자. 돌아볼 곳이 많잖아? 가자, 유스티.”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리아세스테는 먼저 리아유스테의 손을 붙들고는 창문을 열어 넘어갔다.
남은 것은 그 뒤를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나.
그리고 새빨개진 얼굴로 내가 던져놓은 젖은 이불 끝을 붙들고 있는.......
“.......잔느?”
역시 또 모르는 악마가 들어와 버린 바람에 겁이라도 먹은 걸까?
“주, 주인님! 저 악마 뭐예요? 저렇게 귀여운 데 악마가 맞아요? 네?”
.......잠시나마 걱정했던 내가 바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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