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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33,428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5.1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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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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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6화. 파괴된 우리 - 7

DUMMY

의심했어야 했다.


“어, 어떻게.......”


그 거대한 아카드민이 검은 갈기의 마수를 짓이겨 놓을 때까지

우리는 아카드민이 다가오는 것조차 몰랐던 것을.


“로제에스테 도망.......”


입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피에 테르에스테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던 테르에스테가 그대로 들어 올려져.

그 포효소리와 함께 거친 발길질에 뽑혀 날아가 떨어질 때까지.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만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Kraaaaa!!!!!”


다시 움직일 수 있었던 건 테르에스테의 피로 물든 아카드민의 앞발이 내 앞을 내려친 후.

고개를 돌려선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테르에스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쓰러져 있는 테르에스테에게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는다.


“테르에스테?”


발을 멈추기가 무섭게 오른편에서 귀를 찢어놓을 정도의 파열음이 일어 튕겨져 나갈 듯 몸이 비틀.

중심을 바로잡으려 돌아서는 도중 보인 것은 내 오른 편 허공에 떠있는 루즈에스테의 결계와 그 뒤로 내리 꽂히는 아카드민의 발.


“Ker! te! namus!”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다시 테르에스테를 향해 걸음을 시작했다.


“제기랄.......”


이 빌어먹을 피는 몇 번을 문질러내도 도무지 닦이지를 않는다.

오른 눈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똑바로 걷지를 못하고 비틀거리기를 계속.

바닥을 밟고 다시 들어 올리는 발끝에서 짜증이 치솟는다.

그 와중에 이번엔 왼편에서 다시 한 번 파열음이 일었다.


“.......”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시선이 닿은 그 끝에서.


“테르에.......”


아무 움직임 없는 테르에스테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이

인간계 체험 때의

리아세스테의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무릎 꿇고 말았다.


“크윽.......”


이를 악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카드민을 향해 돌아서자마자 어둠이 덮쳐오며 그와 동시에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앞을 막아선 루즈에스테의 결계가 깨어져 흩어지고.

그 뒤에 선 아카드민은 안광을 빛내며 다시금 내리쳤던 앞발을 들어올렸다.


“Kraaaaa!!!”


그 손이 빛을 가리며 짙게 깔려오는 어둠의 안에서....... 나는 오른팔에 얼음을 둘렀다.


“으아아아아!!!”


소리를 질러 아카드민의 시선을 끌며 테르에스테가 있는 곳의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른팔에 심상을 불어넣어 얼음을 넓게 펼쳤다.

나스미스테와 개방의 형상을 고민하던 중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기억해놨던 모양이다.

얼마나 도움이 될련지는 모르겠지만.......


“루즈에스테! 테르에스테를!”


눈이 마주친 루즈에스테는 어쩔 줄 몰라 하다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Kraka! te! namika!”


그리고 나를 향해 휘둘러오는 아카드민의 발톱.

막아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간만 끌면 된다.

내 몸이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Ker! sa! kraaaa!!”


우드득. 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그 충격이 고통이 되어 돌아온 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 후 한바탕 피를 토해낸 뒤.


“아.......으.......아.......”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억지로 눈을 떠 테르에스테가 있는 곳을 살폈다.

하지만 루즈에스테가 공간이동으로 데리고 도망가 이미 없어야 할 테르에스테는 그 자리 그대로.

그럼 루즈에스테는?

아니. 아카드민은?


“Keraaaaa!!!!!!”


아카드민의 포효소리가 들려온 곳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쪽의 정 반대 방향.

그리고 그 방향은.......


“아.”


서, 설마 처음부터 노렸던 건 내가 아니라.......


“루, 루즈에.......”


다시금 넘쳐 올라온 핏물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에 토해냈다.

내 마음 속 비명은 전혀 전해지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서며 연이어 결계를 펼쳐 아카드민의 발길질을 막아내던 루즈에스테는


“죄송합니다, 로제에스테님. 저도 여기까지.......”


라는 말과 함께 무릎 꿇고 쓰러지고 말았다.


“아, 안.......”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줬다.

다리를 굽힘과 동시에 허리가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다행이도 아직 다리가 움직인다는 생각에 참아낼 수 있었다.

그래, 다리는 움직인다.

끊어지려는 의식 역시 입속에 가득 찬 비릿한 핏 내음이 억지로 붙들어 잡아주고 있다.

그러니까 일어날 수 있다.


“아.......으.......”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노랗게 떴으나. 일어나는 것을 성공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그 성취감을 즐기고 있을 여유가 지금 내게는 없다는 것.

어떻게든 아카드민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소리를 지르기 위해 입에 남은 핏물을 뱉어내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


머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의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망막위로 분명하게 틀어박힌

움직임을 멈춘 채 고개 숙여 루즈에스테를 살피고 있는 그 아카드민의 모습에.

그대로 몸이 굳고 말았다.

그 받아들일 수 없는 정적에 사고가 끊겼다 살아나며 쓰러질 것처럼 몸이 비틀.

아, 안 된다. 주먹을 꽉 말아 쥐어 힘이 빠진 다리 위를 내리쳤다.

생각하지 말자. 이해하려 하지 말자.


“이, 이쪽....... 이쪽이다!!”


억지로 내뱉어지른 외침과 함께 기침을 수어 번.

허공으로 흩뿌려진 핏방울과 목에서 올라온 핏 내음은 만성이 되어 더는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이제까지보다 더 뚜렷해져만 가는 시야 위로.......

나를 향해 고개 돌린 아카드민의 모습이 들어왔다.


“.......?”


피를 너무 많이 흘러서였던 걸지도 모른다.

어질하고 아파오는 머리에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방금 전까지 루즈에스테의 옆에 서있던 아카드민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괴이한 모습이 단순히 헛것을 본 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다만 망막위로 남아있는 붉은 잔상만이 신경 쓰여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한걸음 왼편으로 옮겼고.......

그와 동시에 오른편에서 큰 파열음과 함께 땅이 울리며 흙먼지가 물씬 솟아올랐다.


“Kerr......”


숨결에 쓸려 날아가는 흙먼지 사이로 보인 그 거대한 붉은 송곳니에 눈앞에 맺혔던 붉은 잔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이 헛것이 아니었다는 것 까지도.


“Tes.......ne ter da.......”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은 후.

아니다, 더 일찍 알아챘다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을 테지.

흙먼지를 가르며 하늘 높이 솟구친 아카드민의 발톱에 망연자실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Kyaooo!!!!”


이렇게 되기까지 몇 번을 포기하고 도망가려 했었는지.

매번 그랬듯이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 절망감만이 기분 나쁘게 꾸물꾸물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꺼풀과는 반대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에 식은땀만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릴 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매번 그래왔듯이.


“.......”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잠깐 땅이 울린 것 말고는 그 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의아함에 눈을 떠 본 앞에는 덮쳐오던 어둠은커녕 아카드민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긴박하게 움직이는 시선에 걸려 잡힌 것은

주위 모든 것과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하얀 바윗덩이.

아니 바윗덩이라고 하기엔 부자연스러운 흩날리는 털과 그 끝에 솟아오른....... 발톱?

아니다, 이건 바윗덩이가 아니다.


“Ker.......no.......”


등에 와 닿은 뜨거운 숨결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체 무슨.......’ 하고 마음속에 맴돌던 목소리가 터질 듯이 커졌다.

믿기지도. 이해가 가지도 않지만.

돌아 선 얼굴 위로 다시 한 번 와 닿은 이 숨결은 진짜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잘 못 본 게 아닐 것이다.

눈앞에 쓰러진 채 괴로워하고 있는 아카드민도.

마치 늘어 끊어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아카드민의 것이 분명한 오른 앞발도.

그래, 매번 그랬듯이.


“Ner.......”


완벽한 절망 속에서 거짓말처럼 희망의 빛이 보였다.


.

.

.


무슨 연유로 아카드민이 저렇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눈앞의 아카드민의 상태가 우리가 그렇게 계획했던 그대로의

도망가지도, 공격해오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

시간이 없다. 언제 회복할지 모르니까.

테르에스테는....... 일어나는 건 커녕 저대로 소멸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해선 안 될 걱정만이 드는 상태.

고개 돌려 본 루즈에스테 역시도 움직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Ner.......ka.......”


그래, 망설일 것 없다.

어차피 이 모든 시작은 나로부터였으니까.

내 손으로. 내 손으로 끝내는 거다.

각오를 다지며 오른 팔에 얼음을 둘렀다.


“크윽.......”


팔을 타고 감싸 오르던 얼음이 깨어져 떨어졌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오른팔의 개방으로 방패를 만들어 아카드민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 팔이 부러진 것 같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뼈가 부러져 꺾여 살을 뚫고나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은 어떻게든 참아본다 해도 팔이 도저히 움직이질 않는다.


“제기랄.......”


그렇다면 다음을 기약하고 테르에스테와 루즈에스테를 업어들고 도망간다?

가능할 리가 없다.

내 몸 상태가 둘을 안고 도망갈 수 없는 상태라는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인데다 그렇다고 나 혼자 도망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 역시 무리.

내가 공간이동이라도 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다만 애초에 여기서 어떻게 론니악까지 가는지도 모르니까.

그래, 다른 방법은 없다.

여기서. 여기서 끝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공격수단인 오른팔의 개방을 쓸 수 없는 지금 어떻게.......


“.......”


무의식중에 시선이 테르에스테에게 빼앗아 두었던 약병이 들어있는 주머니로 향했다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물론 이 약을 뿌리면 아카드민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테르에스테가 말했던 역병이 퍼진다해도 테르에스테는 면역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했고.

나와 루즈에스테도 후에 치료제 같은 걸 먹으면 별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누군가 우리를 구하러 온다는 가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

안 된다. 모두가 살아 돌아가려면....... 루즈에스테가 다시 회복될 때까지 만이라도 나는 정신을 차리고 혹시나 올지도 모르는 다른 마수들을 쫓아내야 한다.


“Ner....... se teminus.......”


괴로워하는 듯 헐떡여오던 아카드민의 울음소리가 많이 진정된 것처럼 들렸다.

회복하고 있다는 건가?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급한 대로 왼팔의 방출이라도 날려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잠깐 눈이나 멀게 하는 건 무의미한 행의다.

역시 포기하고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방안인 테르에스테로부터의 역병을 사용하는 게.......

으으, 안 된다.

이제까지 그런 될 대로 되라 식의 내 결정이 좋은 결과로 치달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지 않았는가.

생각하는 거다.

오른팔의 개방 외에 내가 쓸 수 있으면서도 아카드민을 절명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공격수단을.......


“아.”


순간 번개 치듯 뇌를 스쳐 지나간 생각에 왼팔을 들어 위에서부터 주머니를 뒤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네가 가지고 있는 게 좋겠네.>


<네? 필요하셔서 가져오라고 하셨던 게.......>


<뭐, 알아낼 건 다 알아냈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필요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그때는 레이셀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질 않았었다. 하지만.


“.......있다.”


찾아 꺼내든 약병을 바라보며, 레이셀님의 말씀은 꼭 잘 들어야겠다고 다시금 결심했다.


“keser.......”


다시 한 번 들려온 아카드민의 울음소리는 이전보다 한층 더 잦아들어 있었다.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다.

뚜껑을 물어 뽑아낸 뒤 한 알을 그대로 입안에 흘러 넣어 삼켰다.

전에 인간계에서 먹었을 때는 흙과 함께 주워 먹는 바람에 무슨 맛인지 전혀 몰랐지만....... 씁쓸한 게 딱히 맛이 좋지는.......


“우웁.......”


순간 눈앞이 흐릿해지며 무릎 꿇고 쓰러져 한바탕 피를 토해냈다.

몽롱해져오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해보려 애를 써 보았지만

물결치는 눈앞의 모든 것에 생각은커녕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남아 맴도는 생각은 전에도, 인간계에서 같은 약을 먹었을 때도 한바탕 피를 토해내고 난 뒤엔.......


“Kra.......”


웅웅하고 울려오는 아카드민의 울음소리에 억지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Tes.......narga.......”


비틀 하고 불안해 보이지만 아카드민은 몸을 일으킨 채 안광을 빛내며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Kraaaa!!!”


그대로 덮쳐오는 붉은 송곳니를 향해 왼팔을 들어올렸다.

그래, 그때도 그랬다.

언제부터 쥐고 있던 건지 모를 순백의 검.

뿜어져 나오는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에 눈을 감으며 검을 내질렀다.

내리깔린 어둠 위로 남은 것은 눈을 감기 직전 바로 앞까지 도달한 붉은 잔상.

멋들어지게 기합을 넣을 힘도 기운도 없다.

단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손에 쥔 검을 휘두를 뿐이다.


“Takeraaaa!!!!”


허공을 벤 듯 단지 휘저어졌을 뿐인 검의 간극에.

결국엔 이렇게 끝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눈을 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거라 생각한 죽음의 풍경위로는

깊숙이 베여 갈라진 아카드민의 목만이 있었을 뿐이다.


“Ser....... ke.......”


마치 멈춰버린 듯한 시간은

눈앞, 아카드민의 갈라진 목 틈 사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나를 지나쳐 대지를 울리며 무너져 내린 아카드민.

눈앞에 일어난 일련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혹여나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아직도 왼 손에 쥐어져 있는 그 순백의 검을 보고나니 그런 의심은 싸그리 깨어져 없어졌다.


“.......”


해냈다. 라는 목소리가 가슴속으로 울려 퍼지며 온 몸의 긴장이 풀려 팔에 힘이 빠졌다.

진이 다 빠져버린 머릿속으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 일단 눈앞의 불은 껐으니까.

이제 쉬어도.......


“Ker....... tak.......”


설마. 하고 고개 돌려 본 아카드민은 힘없이 바닥에 늘어진 채 목의 상처로 피를 쏟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안심하며 다시 고개를 돌리던 와중 스치듯 마주친 아카드민의 눈은.

내게 덮쳐오던 그때 그대로.

숨이 막혔다. 끝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저렇게 쓰러져 있지만.......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른다.

몇 번을 그래선 안 된다 생각해놓고서도 절박한 상황이 또 안이한 생각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니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끝....... 끝을.......”


검을 지팡이 삼아 땅을 짚고 일어서던 중.

속이 뒤틀리듯 아파오더니 한바탕 또 다시 피를 토해내었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듯 눈앞이 아득해져와.......


“끝을 내야.......”


억지로 내딛은 한 걸음은.

몸을 디디고 있던 순백의 검이 사라지며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대로 쓰러진 몸은 땅 밑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이 무거워....... 더는 일어서지 못했다.


.

.

.


“끽!”


오랜만에 듣는 듯한. 그 그리운 소리에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잿빛 하늘 그리고 눈에 익은 기암절벽들.

그리고.......


“끼익! 끼이익!”


임프가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덴이다.


“.......”


이해가 가질 않는다.

파괴된 우리에 있던 내가 갑자기 왜 덴에?

그리고....... 아카드민은?


“끼익? 끽?”


터져버릴 것만 같이 혼란스럽던 머리는 내 주위를 맴돌며 눈치를 살피는 임프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정리됐다.


“꿈....... 이었다는 건가?”


허탈한 마음에 진이 다 빠져 일으키던 상체를 다시 눕혔다.

하늘을 바라봐도 심상은커녕 빛 한줄기 보이지 않는다.

죽기 직전에, 한 편의 긴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하....... 하하.......”


그게 다 꿈이었다고?

리아세스테도, 나스미스테도, 세르에스테도, 론니악도.

인간계로 돌아갔던 일과 가족이 모두 죽은 일도.

내가 영웅의 피라는 것 까지도 전부?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나온다.


“끽! 끼익!”


그래, 생각해보면 전부 말도 안 되는 일 투성이었다.

악몽. 그래, 악몽이란 말이 맞겠지.

지옥에서 꾸는 악몽이라 그리도 장황했던 모양이다.


“끽!”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임프는 내 주위를 뛰다니며 맴돌기만을 계속.

오랜만.......은 아니지만 기나긴 꿈을 꾼 후라서 그런지 그리 짜증나던 저 끽끽거리는 소리마저도 그저 반갑기만 할 뿐이다.


“끽! 끼익! 끽!”


그렇게 흐믓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자니 걸음을 멈추고 옆에 와 오른팔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

어디 놀러라도 가자는 건가? 하고 몸을 일으키며 은연 중 내려 본

임프가 붙들고 있는 내 오른팔은.


“.......”


푸른색이었다.


“끽?”


그러고 보니 몸을 일으킬 때도 조금 이상했다.

왼 팔을 들어 등을 향하던 중 걸려 잡힌 것은 날개.

이, 이게 무슨....... 하며 내려 본 임프의 눈에 반사되어 비친 내 얼굴은.


“.......”


아카드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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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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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1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1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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