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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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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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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20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5.0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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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4화. 반각성 - 1

DUMMY

마신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 일주일.

나스미스테도, 세르에스테도 그리고 리아세스테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혼자만의 일주일.

이 일주일동안 나는 신경이 극한까지 예민해져 꽤나 수척해져 있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

리아세스테를 향한 죄책감뿐만이 아니라, 영웅의 피와 아버지의 일, 어머니와 레나의 죽음까지.

하지만 가장 큰 이유를 꼽아보자면 역시나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잠에만 들면 찾아오는 이 꿈일 것이다.


물론 그때도 그다지 기분이 좋은 꿈은 아니었지만, 인간계에 있던 기억을 꿈으로 꾼 건 몇 번이고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계속되는 이 꿈은....... 그래, 악몽이다.


기본적인 꿈의 흐름은 다르지 않다.

동생과의 장난, 어머니와의 산책, 밀 창고에서의 독서.

하지만. 그 모두가 피에 물들어 있다.


나는 피에 물든 들판을 동생과 뛰 놀며 장난을 치고 피에 물든 농장 위를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으며 피에 물든 밀짚 위에 누워 책을 읽는다.

그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질감은 언제나 잠에서 깬 후에야 인식되며 날 괴롭혔다.

하지만 이도 하루 이틀이 지나자........


“주인님?”


잔느의 눈짓에 자리를 비켜주었다.

앉아있던 자리의 먼지를 털어내는 잔느를 뒤로하고 탁자 옆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또다. 또 아무 이유 없이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것도 실없는 웃음이 아니라 꽤나 즐거워지기까지 하는 웃음이다.

웃긴 일이 생각나서? 내 방이라고 꾸며놓은 이 계단의 모서리가 우스워서?

이전의 일로 다 죽을 것 같이 누워 있다 시덥지 않은 얘기를 들었다고 복수를 하겠다며 이를 갈고 있는 스스로가 우스워서?


아니다. 그래, 이건 그 때의 성기사와도 같은 순수한 의미의 광기.

나는 미친 게 분명하다.


“.......”


그래, 미친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머릿속이 시원할 정도로 정리될 리가 없다.

이렇게 가슴속이 상쾌하게 가라앉을 리가 없다.

이렇게....... 이렇게 차분하게 복수를 계획하고 있을 리가 없다.


이 일주일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제국을 무너트리는 일을.

성왕을 찢어 죽이는 일을.

성기사들을 목 졸라 죽이고 사제들을 불 태워 죽이는 일을.


자신들의 같잖은 욕심을 이유로 가족들을 비극으로 내몬 것에 대한 복수심?

맞을지도 모른다.

마신님께 복수하겠다 대답해 보였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그 후로도 한 이틀간은 그랬다.

같은 이유로 분노에 이를 갈고, 무력한 자신의 모습에 벽을 치며 괴로워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이 아파오더니 그 악심이 모여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생겨난 날개.

은연중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것처럼 등 뒤로 솟아 있는 이 날개를 본 그 순간부터,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혼란스럽던 가슴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이제 알았다. 내가 미쳐버린 이유를.


“주인님? 오늘도 안에만 계실 건가요?”


내 안의 수용치를 넘어 선 슬픔 때문도.

생애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순수한 분노 때문도.

등 뒤로 날카롭게 선 흑익 때문도 아니다.


“응, 그럴 것 같아.”


갑자기 변해버린 자신이.

이렇게 차분한 목소리로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자신이 납득되질 않는 것이다.








13화. 반각성










끼이익 하는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화들짝 놀라다니.

이런 큰 감정의 기복 자체가 꽤나 오랜만인 것만 같아 스스로에게 조금 놀라고 말았다.

한동안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기에? 아니다.

내심 누구든 다른 악마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몸을 일으킨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반가움이 설명되질 않으니까.


“어라, 오랜만에 오시는 손님이네요.”


잔느도 반색하며 창문을 돌아봤다.

이해는 간다. 내 등에 날개가 솟아난 이후로 잔느는 아무래도 나를 껄끄러워 하는 듯 보였으니까.


“응, 그러게.”


라고 역겹기까지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도 나 역시 가슴속에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나스미스테이려나? 그날 이후로 전혀 찾아오지 않았으니 이제 찾아올 때가 되기는 했지.

아니면 세르에스테? 보통 나스미스테나 리아세스테와 함께 놀러오는 세르에스테이지만 가끔 혼자 찾아오기도 했었으니까.

아니면 혹시.......


“아.”


창을 넘어온 새하얀 다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감탄사.

저 눈같이 하얀 피부는 세르에스테다.“


“우와,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이렇게 엉망으로 공간을 이어 붙였을 줄이야.”


하지만 그 반가움은 세르에스테를 뒤따라 창문을 넘어온 녹발의 불청객의 출현에 바로 사그라들었다.


“네가 소문의 그 영웅의 피로군!”


마주친 그 녹색의 눈동자에서 본능적으로 느낀 그 불길함에


“잘 부탁해, 난 그림자의 악마, 레이. 아, 지금은 레이세르지? 이것 참. 적응이 안 된다니까? 하하.”


하며 내민 그 손을.......


“하지만 레이세르는 발음하기 어려우니까....... 그래, 그냥 편하게 레이셀이라 부르면 돼. 잘 부탁해 계승자씨?”


받아들지 못했다.


.

.

.



“여기.......”


처음 보는 악마인지라 아무래도 조심스러운지 잔느는 반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마지막 찻잔을 내려놓고는 바로 뒷걸음질 해 빠져 나갔다.


“하인까지 있고, 호화롭게 살고 있구나?”


자신을 레이셀이라 소개한 그 녹색단발머리의 남자, 아니 악마는 뭐가 그리 유쾌한지 한번 크게 웃어보이고서는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보다 레이세르라니. 처음에 자신을 레이라고 소개했다가 세르를 붙였었다.

그렇다는 건 그 뒤에 붙인 세르는 란세르님의 이름에 붙어있던 그 세르를 얘기하는 건가?

그렇다면 저 악마가 새로운 서열 8위?


“그거.......”


눈앞의 불청객 때문에 혼란스러운 난 보이지도 않는 듯, 내 오른편에 앉은 세르에스테가 손을 들어 가리킨 것은 내 등 뒤 검은 날개.


“호오, 그러고 보니 너. 영웅의 피라는 건 인간이잖아. 그런데 뭐지?”


하고 그 불청객이 다가섰고 호기심이 가득 찬 그 눈이 싫어 몸을 조금 뒤로 뺐다.


“2차 각성이라도 했다는 건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1차 각성이란 것도 했으니 2차 각성이라고 못하라는 법은 없지.


“흐음, 하지만 조금 다르네. 마치 감정이 들어가다 멈춘 것 같은....... 그래, 이건 말하자면 반각성 같은 거로구나.”


.......반각성?


“아, 몰랐던 거야? 말 그대로야. 희귀한 현상이라 나도 듣기만 했지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반각성. 반만 각성했다는 거야. 감정은 정해졌지만 그 감정의 양이 부족해 각성을 하던 것이 중간에 멈춰버린 거지.”


그 말을 이해하기 전, 내 옆으로 와 오른팔을 안고 들러붙은 세르에스테 때문에 잠깐 사고의 고리가 끊겨 버렸다. 하지만.


“그 증거로 너, 네 감정이 뭔지 모르지?”


라며 내게 손을 들어 지적해 보이는 그 불청객의 목소리에.


“.......”


이해할 수 있었다.

반각성의 의미를.


“역시, 당연한 거야. 각성의 열쇠가 된 감정 전부가 그 각성의 제물로 흡수되어 버렸으니까. 그 감정이 몸에 남질 않은 거지. 그 감정만 다시 찾으면 금방 나머지 반의 각성을 할 수 있을 거야.”


나를 둘러싼 복잡하고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 터무니없이 사라져버린 이유 까지도.


“뭐 그건 별일 아니니 일단 접어두고. 너, 내가 왜 널 찾아온 건지 궁금하지 않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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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16화. 파괴된 우리 - 8, After 18.05.17 353 0 21쪽
76 16화. 파괴된 우리 - 7 18.05.17 345 0 18쪽
75 16화. 파괴된 우리 - 6 18.05.16 526 0 18쪽
74 16화. 파괴된 우리 - 5 18.05.16 602 0 14쪽
73 16화. 파괴된 우리 - 4 18.05.15 341 0 15쪽
72 16화. 파괴된 우리 - 3 18.05.15 328 0 14쪽
71 16화. 파괴된 우리 - 2 18.05.14 472 0 12쪽
70 16화. 파괴된 우리 - 1 18.05.14 337 0 8쪽
69 15화. 시작의 언덕 - 7, After 18.05.13 340 0 28쪽
68 15화. 시작의 언덕 - 6 18.05.12 325 0 10쪽
67 15화. 시작의 언덕 - 5 18.05.12 667 0 10쪽
66 15화. 시작의 언덕 - 4 18.05.11 398 0 15쪽
65 15화. 시작의 언덕 - 3 18.05.11 338 0 12쪽
64 15화. 시작의 언덕 - 2 18.05.10 342 0 8쪽
63 15화. 시작의 언덕 - 1 18.05.10 344 0 10쪽
62 14화. 반각성 - 4, After 18.05.09 386 0 20쪽
61 14화. 반각성 - 3 18.05.09 361 0 15쪽
60 14화. 반각성 - 2 18.05.08 357 0 11쪽
» 14화. 반각성 - 1 18.05.08 372 0 8쪽
58 용어 및 등장인물 설정 18.05.07 342 0 23쪽
57 외전. 켈론스의 기록 18.05.07 373 0 12쪽
56 13화. 영웅의 피 - 3, After 18.05.06 345 0 13쪽
55 13화. 영웅의 피 - 2 18.05.06 360 0 15쪽
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53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18.05.05 357 0 11쪽
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1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1 0 8쪽
50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6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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