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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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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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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27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5.0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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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DUMMY

작전이고 전략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눈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리아세스테의 팔에 박힌 채.

발이 먼저 앞서 나갔고 오른 팔에 얼음을 두른 것은 그 다음.


“학습능력이 없는 겁니까? 몇 번을 얘기해야 알겁니.......”


봤기에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성기사의 앞.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혔어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비켜!!”


소리를 지르며 입에서 튄 피가 눈가를 스쳐지나갔고.

오른 주먹은 그대로 날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 위로 내리 꽂혔다.


“.......이거 이거, 괜찮은 걸 숨기고 있었군요.”


주먹이 멈춘 곳의 주위로 퍼져나가는 얼음막.

보인다. 녀석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의 모습이.

그리고 보인다. 주먹 앞. 명백히 보이는 작은 균열이.


“성력을 얼리다니요. 상식의 선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습니다만....... 이 정도는 해주셔야 악마와 싸운다는 기분이 들죠. 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 벽을 뚫고 녀석에게 닿을 수 있.......


“그 정도로는 제 가호를 뚫을 수 없습니다.”


바램과는 달리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팔의 얼음, 그리고 벽을 둘러싼 얼음막.

결국 저 벽을 무너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이번 건 조금 신선했습니다. 다른 숨기고 있는 힘은 또 뭐 없습니까?”


왼팔을 들어 녀석을 향했다.

물론 내 왼팔의 방출은 조금의 신성력을 제하면 잠시 눈을 멀게 하는 것 말고는 아무 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눈앞에 서있는 성기사에게 이 신성력이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으, 으앗!”


잠시 눈이 머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왼팔의 방출에서 뿜어져 나온 빛에 녀석이 인상을 쓰며 손을 들어 눈을 가리는 사이, 오른 쪽으로 발을 돌려 녀석의 등 뒤로 돌아섰다.


“가, 같잖은 술수를.......”


빨리 뒤로 돌아서 성기사 쪽을 견제해야 한다고 목숨의 위험을 감지한 본능이 소리친다.

하지만.......


“리아.......세스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리아세스테는.

양 다리가 부러져 꺾이고 배와 얼굴은 부츠발로라도 차인건지 잔뜩 멍이 든 채.......


“.......”


리아세스테의 왼 팔 위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깊게 파인 이빨 자국.

바로 알 수 있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자기 팔을 물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성기사가 한 말대로 자존심 때문에? 아니다.


“호오, 뭔가요? 적을 앞에 두고 뒷모습까지 보이고서는....... 악마끼리 동료애라도 있다고 하고 싶은 건가요?”


또....... 나는 또.......


“뭔가요? 계속 그렇게만 서 계실 거라면.......”


“.......여 버리겠어.......”


처음으로 느낀

분노가 아닌 살의라는 녀석은

말라 찢긴 가슴에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 여서


“이번엔 이쪽에서 공격하겠습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죽여 버리겠어!!”


“또 입니까? 몇 번을 해 봐도 당신은 제 가호를 뚫을 수 없.......?!”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모른다.


“어, 어라? 이럴 리가 없는데?”


얼음을 두른 내 팔은 갑주를 뚫고 녀석의 복부에 박혀있다.

눈이 움직여 일어난 상황을 체 파악하기 이전에 떨어져 내리는 얼음. 그리고 성기사의 갑주 상의.

주먹은....... 녀석의 몸까지는 닿지 못한 듯하다.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


눈앞에 일어난 일들의 인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녀석의 몸에 손이 닿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녀석의 눈이 당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대로 왼 주먹을 들어 녀석의 안면에 내리꽂았다.


그대로 녀석과 함께 넘어져 녀석의 위로 올라타 녀석의 몸을 손이 닿는 대로 내리 찍었다.

눈 위로 튄 녀석의 피가 흘러내리며 검게 물들었던 시야를 닦아낸다.

그 흐르는 피를 따라 내린 시선에 피범벅이 된 녀석의 얼굴이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주먹을 멈추고 말았다.


“.......의 .......징벌.......”


“?!”


쩌억하는 소리와 함께 피막을 뜯으며 열린 녀석의 입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싶더니 순간 눈앞이 하얗게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몸이 뒤로 나재껴지며 날아가 수 번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구르다 돌에라도 부딪힌 건지 뒤통수 쪽에서 끔찍한 고통이 몰려오더니 이마를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한줄기 흘러내린다.

억지로 눈을 부릅떠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니....... 녀석은 이미 일어나 내 앞에 와 서 있었다.


“당신, 뭐죠? 마신에게도 상처를 남겼다는 가장 강력한 성술을 맞고도 멀쩡하게 일어서다니.......”


거짓말.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녀석의 얼굴엔 상처는커녕 내 주먹이 박힌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득 머릿속을 그쳐지나가는 한 단어. 치유.

성기사들도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넘어져 다친 아이들을 치유해 주곤 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가호를 깨트리고 징벌도 견뎌냈다....... 혹시 이름이라도 있는 악마입니까, 당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 차분한 녀석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그래도 역시 그렇게까지 강한 힘이 느껴지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그 쪽이 힘으로 가호를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움직여야 한다. 쉴 틈을 주면 안 된다.


“아니, 깨 부쉈다기 보다는 그냥 없어져 버린 느낌이었죠. 그렇게 따지면 남은 건 같은 신성력으로 가호를 공격했다는 말이 되는데.......”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향한 왼 팔.


“설마....... 거짓말이죠? 무슨 신성력을 가진 악마라도 된다는 겁니까?”


못 믿겠다는 표정을 하며 녀석은 코웃음을 쳤다.


“크큭........크하핫! 나 참, 그렇게 악마는 신성력에 있어 역상성이니 뭐니 골백번은 떠들어대더니.

이래서 늙은이들이 하는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보십시오. 같은 성자끼리의 싸움을 막기 위해 만든 성술의 신성력에 대한 강제해제 규칙이 무슨 꼴을 만들어 낸 건지.”


녀석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녀석의 그 보이지 않는 벽은 내 왼팔의 방출이 없앤 게 맞다는 것.

그리고 녀석의 성술이라는 것이 내게는 효과가 없다는 것.

녀석이 얘기하는 동안 터질 듯이 뛰던 심장이 진정돼서 그런 걸 까?

어느새 눈앞을 물들였던 붉음은 사라졌고 마음속은 차가워지는 기분까지 든다.


그리고 그래선지....... 떠올랐다.

몸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며 악마가 소멸하는 장면이.

밑도 끝도 없이 어두웠던 마음속에 빛이든 기분이 들었다.

리아세스테는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거 뭐 반대로 이쪽이 역 상성을 만난 기분까지 드는군요.”


오른팔의 방출은 이미 두 발을 다 사용했다.

한방 더 사용했다간 바로 반동이 올 테니 없다 치고....... 왼팔의 방출로 녀석의 벽을 걷어내고 다시 몸을 날려.......


“.......?”


무언가가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려 힘을 준 다리에서 붉은 물줄기가 솟아올라 얼굴에 튀었다.


“아, 다행히 검은 먹히는 군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뒤.

돌아본 곳에 서있는 녀석은 하얀 보석으로 치장된 검을 든 채.......


“악마들은 마법 없이도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하던데, 제가 아까 당신한테 맞을 때 이대로 허망하게 죽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했다는 거....... 알고 계셨겠지요?”


깊게 베인 허벅지의 상처에서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에 순간 머리가 하얗게 바래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차분히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제가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다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일어나서 피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가로지어져 갈라지는 가슴 팍.

옷이 벌어진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혈류.


“.......알고 계시겠지요?”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아니면 피어올랐던 빛이 꺼져버린 충격인지 머리가 아찔해지며 땅에 얼굴을 파묻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지금 장난하시는 건가요? 겨우 두 번 베였다고 끝이라는 겁니까?”


이미 지옥에서 몇 번이고 죽어봤기 때문일까?

죽을지도 모른다. 죽는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두렵거나 떨리지도 않는다.

아무 생각도 없다.

죽음이 익숙해졌다? 그런 건 아니다.

그래, 미련을 남길 게 없으니까 일 테지.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무것도.......


“저쪽의 레이디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저는 뭐 때문에 그 오랜 기간을 수행해 온 건지.......”


아니다. 그래, 이대로 눈을 감을 순 없는 이유가 하나 남아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들어 리아세스테를 살폈다.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리아세스테이지만....... 아직까지 소멸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수 없다. 라고, 아니 죽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였다.


눈앞에 떨어져 있는 작고 동그란 무언가가.



가슴을 베였을 때 주머니가 벌어진 틈으로 떨어진 게 분명한.



테르에스테가 내게 주었던 그 약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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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16화. 파괴된 우리 - 8, After 18.05.17 353 0 21쪽
76 16화. 파괴된 우리 - 7 18.05.17 345 0 18쪽
75 16화. 파괴된 우리 - 6 18.05.16 526 0 18쪽
74 16화. 파괴된 우리 - 5 18.05.16 602 0 14쪽
73 16화. 파괴된 우리 - 4 18.05.15 341 0 15쪽
72 16화. 파괴된 우리 - 3 18.05.15 328 0 14쪽
71 16화. 파괴된 우리 - 2 18.05.14 473 0 12쪽
70 16화. 파괴된 우리 - 1 18.05.14 337 0 8쪽
69 15화. 시작의 언덕 - 7, After 18.05.13 340 0 28쪽
68 15화. 시작의 언덕 - 6 18.05.12 325 0 10쪽
67 15화. 시작의 언덕 - 5 18.05.12 667 0 10쪽
66 15화. 시작의 언덕 - 4 18.05.11 398 0 15쪽
65 15화. 시작의 언덕 - 3 18.05.11 338 0 12쪽
64 15화. 시작의 언덕 - 2 18.05.10 343 0 8쪽
63 15화. 시작의 언덕 - 1 18.05.10 344 0 10쪽
62 14화. 반각성 - 4, After 18.05.09 387 0 20쪽
61 14화. 반각성 - 3 18.05.09 361 0 15쪽
60 14화. 반각성 - 2 18.05.08 358 0 11쪽
59 14화. 반각성 - 1 18.05.08 372 0 8쪽
58 용어 및 등장인물 설정 18.05.07 342 0 23쪽
57 외전. 켈론스의 기록 18.05.07 373 0 12쪽
56 13화. 영웅의 피 - 3, After 18.05.06 346 0 13쪽
55 13화. 영웅의 피 - 2 18.05.06 360 0 15쪽
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53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18.05.05 357 0 11쪽
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1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1 0 8쪽
»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7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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